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80화 (8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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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 위잉! 위잉!

여느 때처럼 휴대폰 알람이 울어댄다.

방금 잠들었던 것 같은데 벌써 일어날 시간이 됐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머리맡을 뒤적거린다. 그러던 도중, 알람 소리가 평소와 다름을 알게 됐다.

"이건?"

기상 알람이 아니라 비상사태 때 울리는 긴급 알람 소리였다.

눈이 번쩍 떠졌다. 주변은 온통 어두컴컴하다. 확실히 잠에서 깰 시간은 아니다. 머리맡에 둔 휴대폰으로 시간부터 확인해본다.

1시 40분.

잠든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바쁘게 손을 놀려서 비상 알람이 울리는 이유를 확인해본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가상화폐 시세가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평균 -40%, 많이 떨어진 이더리움 같은 코인은 ?55%가 떠 있다.

만약 주식이 30분 만에 이 만큼 폭락했다면 전쟁이 났는지부터 의심했으리라.

'폭등 후에 폭락이 올 줄을 알았지만 시기가 너무 일러.'

내가 예상한 폭락 시점은 폭등 후 3개월이 지났을 때부터였다. 그런데 고작 1개월이 갓 지난 시점에서 이렇게 급격한 폭락이 올 줄이야.

"진짜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건 아니겠지."

다행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전쟁과 관련된 뉴스는 없다.

가상화폐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제히 폭락했다는 속보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이다.

지잉-. 지잉-. 지잉-.

이번은 경보 알람이 아니라 전화가 온다.

발신자는 이소영이다. 안 그래도 연락할 생각이었기에 얼른 통화 버튼을 누른다.

-대표님, 가상화폐 시세 보셨어요?

"방금 확인했습니다. 쭉 내려갔더군요."

-단기간에 이렇게 많이 떨어진 건 처음이에요.

"원인은 파악됐습니까?"

-아직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이더리움 쪽에서 어떤 사고가 있었나 봐요.

2016년에 이더리움 관련 사고라면 하나밖에 없다.

DAO 해킹 사태.

이더리움의 DAO라는 시스템의 취약점이 공격당해서 이더리움의 10%가 도난당한 사건이다.

기존의 마운트 곡스 해킹 사건은 '거래소'가 해킹당한 사건이라면, 이번 DAO 해킹은 '가상화폐' 자체의 문제로 해킹당한 사건이기에 심각성이 더 컸다.

"우리 쪽 대응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시세 폭락과 동시에 긴급대응태세에 들어갔어요. 미리 매뉴얼을 다 숙지시켰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저도 회사로 갈 테니까, 자산관리팀과 가상화폐 운영팀 전원 출근시키세요."

대충 세수만 하고 옷을 걸친 뒤에 회사로 향한다. 회사에서 10분 거리 숙소를 잡은 이유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였다.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나보다 직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최근 비상근무로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표님!"

이소영이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녀도 급하게 회사로 나왔는지 얼굴에 화장기가 거의 없다.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도토리는 선제대응을 해서 ?16%, 94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어요."

"다른 코인은요?"

"비트코인은 방금 ?42%를 찍고 살짝 반등 중인데, 이더리움은 끝도 없이 빠지고 있네요."

"이더리움 쪽에서 사고가 터진 게 맞나 보군요."

"내부 커뮤니티에서 이더리움의 일부가 기술적인 문제로 해킹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고요."

이번 DAO 해킹 건은 이더리움 자체의 취약점으로 발생한 사태다.

즉, 이더리움의 구조를 아예 뜯어고쳐야 해결될 문제였는데, 블록체인을 쓰는 가상화폐 특성상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상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넓게 봐야 한다.'

나는 직원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 중앙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 주목해주십시오."

직원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다들 눈이 퀭하다. 이미 3주 넘도록 긴급교대근무를 해왔으니 몸이 말이 아닐 거다.

"갑작스러운 사태로 당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옆집에서 난 불이 우리 집까지 옮겨붙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도토리코인이 출범하고 처음 맞이하는 대폭락 사태다.

다들 말은 안 했어도 두려울 거다. 이대로 폭락이 멈추지 않고, 시장의 모든 돈이 빠져나가면 가상화폐 판은 끝장이다. 그쯤 되면 WHTS컴퍼니도 멀쩡할 순 없었다.

"위기 상황은 맞지만, 우린 당황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은 충분한 대비를 해왔잖습니까?"

내가 언급한 충분한 대비란 현금을 확보한 것을 뜻한다.

우리는 3주라는 기간 동안, 보유한 가상화폐의 80%를 현금으로 바꿔둔 상태였다.

"제가 장담컨대 전 세계의 그 어떤 가상화폐 업체도 저희만큼 위기를 대비한 곳은 없습니다."

드디어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대비를 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토리 코인은 100달러를 유지하는 선에서 관리를 진행합니다. 업무도 비상대응에서 시세 관리로 전환되는 만큼, 비상교대근무를 현 시각부로 종료하겠습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쏟아진다. 그러다 직원 하나가 조심히 일어나서 질문을 던진다.

"저... 진짜 이 난리가 났는데 퇴근해도 되는 건가요?"

"예전처럼 시세 관리 인원만 남기고 퇴근하시면 됩니다."

이번엔 확실한 반응이 온다. 뒷자리에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세 폭락하는 거 보고 집에 가긴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꿈 아니죠?"

"꿈 아니니까 빨리 퇴근해요."

"얏호! 드디어 퇴근이다! 퇴근! 3주 만에 퇴근!"

퇴근할 직원들은 후다닥 짐을 싸서 빠져나갔고, 남은 직원들도 내일이면 퇴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이 확 살아난다.

그러나 단 한 명, 총책임자인 이소영만은 경악한 표정이 돼 있었다.

"대표님, 아무리 상황이 낙관적이라 해도 갑자기 퇴근이라뇨? 너무 즉흥적이세요!"

"즉흥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한 일입니다."

"이게... 계획적요?"

이소영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눈을 깜빡거린다.

"가상화폐 관련 정보는 내부에서 흘러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방금 소영 씨가 이더리움 소식을 받아 온 것처럼요."

"그렇긴 해요. 가상화폐 쪽은 마땅한 정보 창구가 없으니... 앗! 혹시, 직원들이 정보를 흘리도록 일부러 퇴근시킨 건가요?"

"정답입니다."

직원들은 3주 동안 퇴근도 못하고 회사에 갇혀있었다. 그러니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하겠는가?

이럴 때 기자가 옆에 붙어서 조금만 바람을 넣어주면 정보를 술술 불어버릴 거다.

"제가 장담하는데 내일 아침이면 회사 내부 사정이 속보로 뜰 겁니다. WHTS컴퍼니는 폭락장에 충분한 대비가 돼 있다. 그래서 비상교대근무를 끝내고 정상근무에 들어간다. 같은 뉴스로 말이죠."

"그런 속보가 뜨면 시세 안정에 도움이 되긴 하겠네요."

"어디 도움만 되겠습니까."

대폭락장에서 홀로 시세를 유지 중인 코인이 내부사정까지 탄탄하다고 소문이 난다면?

갈 곳을 잃은 코인 머니들이 도토리코인으로 쏠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 *

-신 대표님께서는 이번 가상화폐 폭락사태를 거품이 꺼진 거라고 표현하셨는데요. 그에 대해서 자세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가상화폐는 지금껏 많은 투자금을 받았지만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이더리움 사태로 인해 거품이 펑! 하고 터진 겁니다.

-그래도 송금 서비스는 몇몇 업체가 시작한 것으로 압니다만.

-블록체인의 뛰어난 보안성을 기반한 송금 서비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 보안성에 금이 갔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가상화폐의 전망이 어떨지 말씀해주십시오.

-앞으로 가상화폐가 살아남으려면 꼭 가상화폐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가상화폐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봅니다.

쾅!

세찬 주먹질이 모니터 액정을 깨부순다. 그것만으론 모자랐는지, 모니터를 아예 통째로 집어 들고서 책상 모서리에 내리치기 시작했다.

"씨발!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개 같은 새끼. 역겨운 새끼.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저 짓거리를 해?"

나민성은 한참이나 모니터를 내리치다가, 남은 잔해들을 방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헉... 헉... 헉..."

난리치던 나민성은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발작하듯이 손을 파들파들 떨어댄다.

"망할."

이더리움 해킹 사태 이후, 모든 가상화폐는 일제히 폭락을 거듭했다.

자고 일어나면 시세가 떨어졌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매일이 폭락의 연속이었다.

이런 하락장일수록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기 마련이다.

유일하게 시세 하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안정적인 가상화폐.

도토리코인은 블랙홀이 됐다. 가상화폐 판에 들어온 모든 투자금을 흡수하는 블랙홀 말이다.

도토리코인에 돈이 몰릴수록, 다른 가상화폐의 하락세는 더 가팔라졌다. 그건 도토리코인과 쌍둥이라 불렸던 아리랑코인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나흘 만에 ?91%.

더 절망적인 것은 반등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우혁이 TV나 각종 매체에 나와서 떠들어댈수록, 눈먼 투자금만 보고 개발된 잡코인은 설 곳을 잃었다.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가상화폐는 존재 자체가 신기루입니다. 언제 데이터 쪼가리가 될지 모른다는 뜻이죠.

-송금? 보안? 위변조 방지? 그걸 꼭 가상화폐로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가상화폐의 거창한 미사여구는 눈을 속이는 장치일 뿐. 지금의 가상화폐는 명백한 투기 수단입니다.

나민성은 귓가에 환청이 들렸다. 가상화폐를 부정하는 말, 가상화폐를 끌어내리는 말, 가상화폐를 파멸시키는 말.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휴지를 찢어 귀에 쑤셔넣었다. 그러다 울어대는 휴대폰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

발신자는 최명자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변명거리가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미 변명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서 통화버튼을 누른다.

-나 프로. 어디야?

"저... 사무실에 있습니다."

-알겠어.

통화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최명자라면 쌍욕을 퍼붓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소리부터 질렀을 텐데, 어째서 이리 쉽게 끊어버린 걸까?

바로 그때, 현관문 너머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나민성 씨 계십니까."

평소라면 문을 열었겠지만, 나민성은 왠지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체인을 채우고 문을 살짝만 열어본다.

"헛!"

밖엔 경찰들이 서 있었다. 나민성은 황급히 문을 닫으려 했으나, 경찰이 팔을 밀어 넣는다.

"나민성 씨, 경찰입니다. 빨리 문 여세요. 불응 시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아니,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현행범입니까?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정말 깨끗한 사람이고..."

"유사수신 법 위반 및 사기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유사수신은 다단계 판매를 뜻했다. 그제야 나민성은 사태를 파악했다. 최명자가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다.

"이건 모함입니다! 저는 다단계랑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알겠으니까 문부터 열고 말씀하세요. 문을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민성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준다. 이대로 죄를 뒤집어 쓸 생각은 없었기에, 서에 가서 이번 사태의 진실을 전부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을 연 순간, 경찰들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그의 팔을 뒤로 꺾는다.

"뭐하는 짓이야? 나는 죄가 없다니까! 진범은 최명자! 최명... 읍! 읍! 읍!"

경찰은 수갑을 채운 것으로 모자라, 나민성의 입에 재갈까지 물렸다.

우악스러운 손들이 그를 강제로 끌고 나간다. 도저히 경찰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방식이었다.

"읍! 읍읍!"

나민성은 짐짝처럼 차에 실려서 경찰서로 갔다가, 다시 경찰청으로 끌려갔다.

그 뒤로 유치장에서 구치소까지 가는 동안, 그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는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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