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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TS컴퍼니의 자산관리팀은 며칠 전부터 하루에 14시간씩 2교대 근무에 들어갔다.
퇴근하면 회사 내에 마련된 숙소에서 자고, 깨어나면 다시 출근해서 일하고, 또 숙소에서 자고.
이들의 임무는 지금껏 도토리 코인을 팔아서 쌓아둔 가상화폐를 팔아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
어마어마한 가상화폐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선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직원들은 휴일에도 퇴근 없이 매매 작업을 반복했다.
"비트코인 1만2200 달러! 거래량도 따라붙는 걸 보니 다시 올라갈 듯합니다!"
"보유 비트코인 더 털어내세요. 최대한 1만 달러는 깨지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작업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더리움 지지선 깨졌어요!"
회사 보유 물량이 워낙 많았기에 시세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물량을 털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온종일 차트를 보고 있다가 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누르고, 또 누르고, 그러다 가격이 너무 내려가면 일시적으로 다시 사들이는 작업까지 해줘야 했다.
이 같은 작업을 24시간, 벌써 9일째 이어가고 있었기에 자산관리팀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아... 진짜 이놈의 코인 거래소는 왜 장 마감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온종일 차트를 보고 있으려니까 죽을 맛입니다."
"저도 그래요. 이젠 차트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
"우린 그나마 교대로 작업하니까 낫죠. 큰돈을 넣은 개인들은 아예 잠을 못 잔다고 하잖아요."
"하긴, 시세가 이렇게 요동치는데 전 재산을 코인에 넣어뒀으면... 으, 끔찍합니다."
이후로도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며 신세 한탄에 여념이 없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대화가 뚝 끊긴다.
"다들 무슨 이야길 그리 열심히 해요?"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이소영이었다.
그녀는 휴게실에 앉은 직원들을 쭉 쳐다본다.
"아, 아무것도 아녜요. 그냥... 좀 지쳐서 푸념 좀 해봤어요. 호호호."
팀 분위기가 어떤지는 책임자인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소영은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당근을 내놓는다.
"대표님께서 이번 작업을 끝내면 특별 상여금을 약속하셨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봐요."
상여금을 준다는 말은 이미 돌고 있었기에 직원들은 액수가 얼마냐를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자산관리팀 전원에게 일 년 치를 드리라고 하네요."
"저기, 일 년 치면 정확히 얼마인가요?"
"일 년이 12개월이니까 1200%겠죠?"
한 달을 미친 듯이 일하면 일 년 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 소식이 나오자마자 방금까지 먹구름처럼 우중충했던 직원들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거기에 2주간 휴가도 보내주신다고 했으니까, 꼭 월말까지 작업을 완수해봐요."
상여금 일 년 치받고 2주의 휴가까지.
보상치곤 과할 수도 있으나, 그들이 관리하는 자산의 가치를 생각하면 전혀 과한 것이 아니었다.
"꼭 완수하겠습니다!"
"WHTS컴퍼니에 뼈를 묻을 거예요!"
"갑자기 피로가 가시면서 힘이 펄펄 납니다. 하하핫!"
직장인에게 처방할 수 있는 최상의 치료는 금융치료다. 덕분에 직원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잠시 후, 휴게실에서 떠들던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젠 이소영 혼자만 남게 됐다.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짧게 한숨부터 내쉰다.
"조금... 힘드네."
그녀는 자산관리팀뿐만 아니라, 가상화폐 운영팀, 가상화폐 개발팀까지 같이 관리하고 있었다.
부서마다 따로 팀장을 뽑아도 됐지만, 이번 건은 보안상의 이유로 그녀가 직접 지휘해야 했다.
가상화폐 운영팀은 신규 도토리 코인을 발행해서 거래소에 매각하고, 자산관리팀도 보유한 코인을 전부 털어낸다.
이 모든 작업의 목적은 단 하나, 최대한의 현금 확보였다.
'대표님은 어째서 현금을 확보해두려는 걸까?'
지금처럼 가상화폐 시세가 쭉쭉 올라갈 때는 현금이 아니라 가상화폐 보유량을 늘리는 편이 이득이다.
하지만 신우혁 대표는 가상화폐를 사들이긴커녕, 가지고 있던 가상화폐마저 내다 팔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에 투자할 돈이 필요했나? 아니면 미국 대선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물어볼 걸 그랬어.'
그녀가 혼자서 끙끙 앓고 있길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붙잡는다.
"앗!"
놀라서 고갤 돌리자, 뺨에 손가락이 푹 꽂힌다.
언제 왔는지 신우혁 대표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뭐예요, 대표님!"
"소영 씨가 너무 심각한 표정이라서 장난 좀 쳐봤습니다."
이소영이 뺨을 찌른 손가락을 치우는 동안 그가 말을 잇는다.
"같이 점심 먹기로 했던 거 아니었습니까?"
"제가요? 앗! 내 정신 좀 봐."
"요즘 일이 많이 바쁜가 봅니다. 소영 씨 표정에 여유가 없어졌네요."
"일이 많긴 해요."
그는 이소영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종이백을 내려놓는다. 안에는 방금 받아온 듯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도시락이 담겨 있었다.
"급할 거 없으니까 쉬엄쉬엄하세요."
이소영은 입을 삐죽거렸다. 쉬엄쉬엄하고 싶어도 그녀의 성격상 할 일을 두고 쉬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가능했다.
'대표님은 내 성격을 뻔히 알면서... 설마, 일부러 저러시는 건가?'
도시락을 반쯤 먹었을 때쯤, 갑자기 방금 고민하던 일이 떠오른다.
그녀는 도시락을 마저 먹으면서 물을지 말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묻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표님! 질문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학생 같네요."
"그야... 작년까진 진짜 대학생이었으니까요."
신우혁은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가상화폐를 전부 현금화하는 이유가 알고 싶어요. 시세가 많이 올랐다곤 하지만, 이번은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그건, 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가 답을 내놓는다.
"저는 이번 사태를 욕망이 쌓아 올린 거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릴 제외하면 다른 가상화폐는 뭔가 이뤄낸 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곧 폭락이 온다는 말씀이신가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것도 꽤 큰 놈이 올 것 같군요."
가상화폐 폭락을 예측했다면 지금처럼 가상화폐를 전부 내다 팔고 현금을 보유하는 쪽이 옳은 판단이다.
하지만 반대로 가상화폐가 폭등한다면 이번 포지션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만약 폭락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땐 어쩔 수 없죠. 강제로 폭락하게 만들 수밖에요."
"예?"
"농담입니다, 농담."
그가 씩 웃는다. 아까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는 성질 자체가 달랐다.
어느새 그녀의 팔뚝에는 소름이 쫙 돋아 있었다.
'농담으로 한 소리가 아닌 것 같았는데... 농담 맞겠지?'
* * *
가상화폐 시세가 연일 폭등을 거듭하자, 뉴스는 온통 가상화폐 소식으로 뒤덮였다.
그것이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일단 뉴스에서 가상화폐가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업계엔 호재였다.
실제로 언론에서 가상화폐를 본격적으로 다룬 직후부터 가상화폐 투자자 숫자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오늘 들어온 월급 비트코인 풀매수했습니다! 비트코인 2만 달러까지 가즈아!
┗2만 찍고 3만까지 가즈아!
┗가즈아아아!
-리플코인도 곧 1000원 뚫어요. 늦기 전에 빨리 탑승하세요.
┗리플 얼마예요?
┗지금 200원이네요.
┗엥? 한 달 전에도 리플코인 200원 아니었어요? 진짜 안 오르네 ㅋㅋㅋ
┗계속 안 올랐으니까 이번엔 오르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중생아. 그렇게 속고 또 속냐.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게시글이 실시간 채팅처럼 올라온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눈이 가상화폐로 가 있었으니, 관련 커뮤니티는 서버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으휴, 병신들. 다른 잡코인 사지 말고 아리랑코인 사라니까. 말은 뒤지게 안 들어요."
나민성은 오늘도 온종일 가상화폐 커뮤니티를 모니터링 중이다.
말이 모니터링이지,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로 낄낄거리며 노는 게 전부다.
"어디 보자. 아리랑코인 시세가... 캬! 또 6%나 올랐어? 진짜 개뿔도 없는데 정부 인증이라고 가격은 쭉쭉 올라가네. 대한민국 정부 만만세다."
그가 수익금이 찍힌 계좌 인증샷을 올리면 그 아래로 부럽다는 댓글이 왕창 달린다.
어차피 인출할 수도 없는 계좌 내역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인터넷 세상에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추앙받을 수 있었다.
"멍청한 놈들아. 인증샷 봤으면 얼른 아리랑코인이나 사. 너희도 부스러기 정도는 주워먹을 수 있어."
한참이나 키보드를 두들기던 도중, 사무실 밖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 프로! 나 프로! 어디 있어, 나프로?"
그의 상관인 최명자의 목소리였다. 나민성은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밖으로 튀어 나간다.
"예, 사모님. 부르셨습니까."
"이번에 새로 코인 발행하기로 한 거, 아직이야? 고객분들이 기다리고 계시잖아."
"개발팀에서 3일 정도 걸린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안 돼. 오늘 안에 받아야 하니까 빨리 작업해서 넘겨. 알겠지?"
일방적인 통보나 마찬가지였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선, 아니, 대한민국에선 그녀의 말이 곧 법이었다.
"사모님, 그보다 이번 주에만 코인을 80만 개나 파셨던데, 구매자를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내 지인들이 물어 온 거야. 코인 팔면 인센티브로 30%씩 준다고 했거든. 그리고 그 아래가 15% 먹고, 그 아래는 7.5% 먹고, 뭐, 이런 식이지."
"그거 다단계 아닙니까?"
"다단계가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하는 거야. 네, 트, 워, 크. 4차 산업과 가상화폐랑 딱 어울리는 단어 아니니?"
"아, 예. 맞습니다."
참고로 다단계 판매를 영어로 하면 네트워크 마케팅이다.
나민성은 기가 찼지만 한편으론 최명자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무리 다단계라 해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코인을 80만 개나 팔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나 프로. 요즘은 어째 잠잠해?"
"잠잠하다뇨?"
"아리랑 시세가 계속 그대로니까 하는 말 아냐. 저번 주엔 가격이 팍팍 올랐잖아."
"원래 코인이라는 게 매번 시세가 오르는 게 아닙니다. 주식도 보시면 오를 때가 있고 내릴 때가 있는지라..."
"뭔 소리야? 주식처럼 오르면 주식을 하지 누가 코인을 해?"
나민성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을 수 없었다.
이럴 땐 괜히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들지 말고 외부에 책임을 돌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시세가 계속 제자리인 이유는 도토리코인 때문입니다."
"도토리?"
"예, 그놈들이 자꾸 가상화폐는 시세 안정이 최우선이라며 헛소리를 해대는 탓에 시세가 안 오르는 겁니다."
"그것들은 왜 지랄이야? 안 되겠어. 내가 연락해서 그 새끼들 영업 못 하게 막아 버릴 거야!"
예상했던 대로 최명자는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가 앞길을 막으면 눈이 돌아가는 성격이었다.
'쯧쯧, 최명자에게 찍혔으니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줄줄이 생길 거다.'
나민성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코인을 다시 손댄 이후로 생긴 습관이었다.
"어?"
슬쩍 확인한 아리랑코인의 시세가 쭉 내려가 있었다.
그는 놀라서 다시 차트를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시세는 -15%에서 추가로 4%가 더 빠져서 -19%가 돼 있었다.
"씹, 이게 뭔..."
이번엔 메인 메뉴로 나가서 다른 가상화폐의 시세까지 확인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도토리, 리플, 라이트코인 등. 모든 가상화폐 시세가 파란색으로 도배 돼 있었다.
-25%... -32%... -39%...
실시간으로 시세가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의 폭락이었다.
옆에 있던 최명자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나민성이 쥐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듯 가져가서 화면을 확인한다.
"나 프로 무슨 일이야?"
"아니, 이게 그..."
"빨리 말해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나민성은 필사적으로 변명 거릴 떠올리려고 했으나 이미 머릿속은 새하얘져 있었다.
그는 변명을 포기하고 이를 꽉 깨문다.
"아무래도 저희... 좆된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