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78화 (7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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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역사에 기록될 만한 초대형 호재가 터졌다.

도토리 코인은 하루 만에 100%에 달하는 폭등을 기록했고, 다른 가상화폐에도 돈이 몰리면서 일제히 시세가 치솟았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겐 축배를 들 소식이었으나, 도토리 코인의 시세 안정화가 최우선이던 WHTS컴퍼니로선 비상사태가 터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출근을 서두른다. 이미 회사 로비에는 이소영이 나와서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소식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어젯밤 사이에 도토리 코인 시세가 116%까지 폭등했어요."

"지금은 개당 얼마까지 올랐죠?"

"아까 확인했을 땐 110달러였는데, 잠시만요."

이소영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더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이런, 그사이에 더 올라서 121달러가 됐네요."

어제 내가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도토리 코인은 개당 51달러였다.

참고로 나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는 만큼, 불과 7시간 만에 시세가 130%나 올랐다는 뜻이 된다.

"시세 안정화 대응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미 코인을 2000만 개의 신규 발행을 진행했어요. 이 물량을 전부 와츠와 와츠 페이 보상으로 뿌린다고 했는데... 전혀 시세가 안정될 기미가 없네요."

본디 이번 대응책은 비전 펀드의 추가 투자 소식을 진화하려고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 못 한 베네수엘라 기름 투자 소식이 동시에 터져버렸으니.

어지간한 대응으론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를 꺾을 수 없게 돼 버렸다.

"2000만 개로 시세 안정화가 안 되면 그 이상을 찍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급격하게 신규 코인 물량을 늘렸다간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요."

"이미 난장판인데 여기서 더 혼란해진다고 별일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이긴 한데..."

"일단 추가로 1000만 개를 더 찍어보고, 그래도 시세가 안 잡히면 5000만 개까지 찍어보세요."

이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입을 뻐끔거린다.

"신규 발행을 5000만 개나 더하라고요? 농담이시죠?"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군요."

비트코인 시세가 폭등했다 해도 아직 1만 달러 내외다.

여기서 틀어막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향후 비트코인 시세가 7만 달러까지 치솟다가 우려하는 일이 터진다면.

'그땐 이 판 자체가 무너져 버릴지도 몰라.'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의 집무실로 향했다.

방에 외투와 가방만 던져놓고 나오려는데 비서 직원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뛰어 들어온다.

"대,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바로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회의실로 커피 배달시켜 놓으세요."

"지금 그럴실 때가 아니세요. 빨리, 저, 전화 좀 받아보세요!"

그는 거의 떠넘기듯 내게 전화를 넘긴다. 대체 누구 전화길래 이렇게 아연실색하는 걸까?

"여보세요?"

-오우, 내 친구 미스터 신!

놀랍게도 아침 일찍부터 전화한 사람은 도날드 트럼프였다.

엄밀히 따지면 미국은 오후 3시라서 아침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먼저 전화를 건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트럼프 씨."

-핫핫! 미스터 신 덕분에 아주 기분 좋게 지내고 있어요!

"제 덕분에요?"

-하루 사이에 미스터 신이 준 가상화폐 시세가 2배나 올랐더군요. 너무 멋진 투자 상품입니다.

"아, 예. 많이 올랐다니 다행입니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가상화폐가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늘어놨다.

그가 받은 4천만 달러의 가상화폐가 불과 열흘 만에 8천만 달러가 돼 버렸으니,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을 거다.

"저기... 트럼프 씨? 제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가상화폐는 주식처럼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나도 압니다. 투자 상품이란 본디 그런 법이니까요. 하지만 내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트럼프는 혼자서 껄껄거리면서 웃다가 말을 잇는다.

-미스터 신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가상화폐가 갑자기 폭락할 것 같습니까?

만약 여기서 내가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면 트럼프는 가상화폐를 전부 팔아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트럼프에게 가상화폐를 4천만 달러나 준 이유는 로비도 로비지만, 그가 앞으로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쳐주길 원해서였다.

대량의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친 가상화폐적인 행보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가상화폐가 폭락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겪는다면.

'임기 중에 오히려 가상화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나는 그가 보이지 않음에도 표정을 웃는 낯으로 싹 바꾸며 말했다.

"당연히 폭락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급등은 호재로 인한 자본 유입이 원인이잖습니까."

-오, 그렇지. 대형 호재더군요.

트럼프는 기분이 좋아서 주체를 못 하겠는지 다시금 껄껄 웃어댄다.

-미스터 신의 회사가 베네수엘라에서 기름을 파낸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베네수엘라의 야당 측과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아하. 그래서 내게 베네수엘라 정세에 개입해달라고 제안했었군요?

"맞습니다. 저는 사업가니까요."

-흠, 사업가라... 맞지. 사업가라면 응당 그래야죠.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 흐핫핫!

트럼프는 그 이후에도 한참을 좋아서 떠들다가 전화를 끊었다. 쥐고 있던 가상화폐 가격이 배가 됐으니 무슨 소릴 들어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러나 뒷일을 생각해야 하는 나로선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가상화폐 시세가 연일 폭등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난 열흘간 비트코인은 136%, 이더리움은 190%, 국산 코인으로 분류되는 도토리 코인과 아리랑 코인도 각각 125%, 311%가 넘게 올랐습니다.

-어... 부동산은 시드머니가 커야 해서 부담이 크고, 주식은 잘 안 오르는 느낌? 가상화폐는 그런 점에서 투자하기 좋은 것 같아요.

-이처럼 젊은 층에서 가상화폐 투자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폭등이 투기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뉴스의 경제 코너에선 첫 꼭지로 가상화폐 소식이 흘러나왔다.

신문이나 라디오, 포털 뉴스, 어느 매체를 봐도 메인 주제는 가상화폐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마치, 2017년의 코인 광풍이 1년 앞당겨서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한국도 가상화폐로 난리가 났구나."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 일본에서 넘어온 박태식이었다.

"일본도 비슷한 분위기지?"

"여기보다 더 과열됐지. 원래 일본이 가상화폐 투자의 본진 같은 곳이잖아."

일본은 가상화폐의 극 초창기부터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던 지역이다. 2014년에 해킹으로 파산한 마운트 곡스의 본사가 도쿄에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은 한국이 무서운 속도로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이번 사태 덕분에 일본 지사에는 와츠 페이를 도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폭주하고 있어. 이미 대형 마트 3사는 모든 준비가 끝나서 발표만 남긴 상황이고."

"의외네. 기존 편의점에서도 와츠 페이 실사용자는 얼마 없었잖아?"

"가상화폐 이슈가 뜨니까 홍보 차원에서라도 도입하려는 게 아닐까? 뭐, 이유가 어찌 됐든 우리에겐 좋은 일이잖아."

"그렇긴 한데..."

"앞으로 가상화폐는 더 유명해질 일만 남았어. 당연히 투자금도 더 많이 들어오겠지. 우린 이제 돈방석에 앉은 거나 마찬가지야."

박태식은 이번 가상화폐 폭등 사태를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억만장자가 될 기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이번 사태를 가상화폐 시장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태식아. 만약에 말이야. 이번에 가상화폐 시세가 쭉 오르다가, 한순간에 꼬라박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예를 들면 마이너스 50% 정도."

"갑자기 웬 재수 없는 소릴 하는 거야?"

"재수 없는 소리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내가 무게를 잡은 탓인지, 박태식도 진지하게 내 질문을 곱씹기 시작한다.

"일단 폭락이 시작되면 너도나도 가상화폐를 던질 테니, 시세가 더 빨리 떨어질 테고... 음... 마이너스 50%면 충격이 크긴 하겠네."

"충격 수준이 아니라 시장에서 곡소리가 날걸."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많이 올랐으니까 사고가 터져도 어찌 버텨지지 않을까?"

"보통은 그 반대지. 오른 게 많으면 떨어질 땐 더 가파르게 떨어지는 법이야.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박태식은 뭐라 말을 이어가려다가 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네가 이런 말을 하니까 괜히 불안해지잖아. 혹시 폭락의 전조라도 있는 건 아니지?"

"전조는 아니지만 비슷한 낌새는 있어."

"무슨 낌새?"

"전에 내가 이야기했었잖아. 가상화폐 폭등은 2017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거라고."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했던 말이지만 박태식은 기억하고 있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2017년 하반기에 시작된 폭등의 끝은 2018년 1월이었어. 불과 석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파티가 끝난 셈이지."

"그... 폭등이 끝난 뒤엔 어떻게 됐어?"

"거의 일 년 넘도록 시세가 곤두박질치다가 80%가 넘게 떨어졌을걸."

내 말을 들은 박태식의 표정이 싹 굳는다.

시세가 80%나 폭락하면 지금껏 벌어들인 돈을 다 토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헛! 폭등 후 석 달이면 앞으로 두 달 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잖아?"

"확실하진 않아. 지금이 같은 케이스도 아니고, 시기도 다르니까. 그래도 그런 위험을 배제할 순 없는 거지."

녀석은 갑자기 담배가 생각나는지 안주머니를 더듬거리기 시작한다. 사무실 내에선 금연이 원칙이지만 이럴 땐 예외였다.

박태식은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서너 번 정도 빨아들인 뒤 입을 뗀다.

"지금이라도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 폭락을 경고해야 하는 거 아냐?"

"투자자들이 내 말을 듣겠어? 잔칫집에 와서 초 친다고 욕만 한 바가지 먹을걸."

"그렇긴 하지."

나는 박태식이 내려놓은 담뱃갑에서 슬쩍 한 개비를 빼다가 불을 붙인다.

"후..."

흩어지는 연기를 보며, 잠시 과거 생각에 잠긴다.

자고 일어나면 코인 시세가 떨어진다는 뉴스, 코인으로 자살자가 급증했다는 뉴스, 가상화폐는 이제 끝장이라는 비관적인 뉴스.

그러나 가상화폐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려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어쩌면 이번 위기가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박태식은 기회라는 단어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운다.

"모든 코인이 폭락할 때, 도토리 혼자서 꿋꿋하게 시세가 유지되면 어떨 거 같아?"

"그땐, 음... 투자자들이 다른 코인을 던지고 전부 도토리코인에 몰리려나?"

"바로 그거야."

이번 작전이 성공하려면 초반에 시세를 지탱할 수 있을 만한 대량의 현금이 필요했다. 일단 초반만 어떻게든 버티면 이후엔 투자자들이 몰려서 자연히 시세가 지탱될 테니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 시간은 충분해.'

만약 이번에 시세가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면, 앞으로 도토리코인은 비트코인에 버금가는 가상화폐로 평가가 받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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