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77화 (7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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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드 트럼프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었기에 그를 지칭하는 단어 또한 수십, 수백 가지였다.

정치인,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 베스트셀러 작가, TV쇼, 영화, 각종 엔터테인먼트에 출연하는 셀럽 등.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가 그랬다는 거고, 내년이면 그를 지칭하는 단어는 한가지로 바뀌게 된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지금 이런 소릴 입 밖으로 냈다간 다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댈 거다.

그만큼 지금의 트럼프는 당선 가능성이 낮게 평가됐고, 심지어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언론과 분석가들은 힐러리의 압승을 예상했다.

'그렇기에 지금이 트럼프에게 줄을 댈 최적의 타이밍이다.'

나는 가능한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정치인이란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떠오를 땐 눈이 부시지만, 언제나 그 끝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베네수엘라 사태를 겪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가상화폐 금지법.

비록 베네수엘라라는 힘없는 나라일지라도 법안 한 방으로 가상화폐의 목을 조일 수 있었다.

만약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한미일 수준의 메이저 국가에서 비슷한 법안이 강행됐다면, WHTS컴퍼니 전체가 휘청거렸으리라.

"실례합니다."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는 내게, 피곤함에 찌든 인상의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건다.

"대니얼 신님 맞습니까?"

"그렇습니다만."

"후보자님께서 뵙길 원하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사내를 따라 호텔 중앙 통로에 놓인 엘리베이터를 탄다. 최상층인 스위트 룸과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다.

이후 스위트 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거구의 사내가 문을 열고 나온다.

"오우! 이 친구였군. 반갑습니다. 정말 반가워요."

도날드 트럼프였다. 그는 특유의 과장된 제스쳐로 손을 뻗는다. 나도 미리 연습해둔 대로 미소와 함께 악수를 받았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곧 그렇게 불리실 것 아닙니까."

"하하핫! 듣기 좋군요. 아주 좋아요. 최근에 받았던 인사 중엔 최고입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들어오라 손짓했다.

"신기한 화폐로 후원을 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상화폐라고 했던가요?"

"신개념 사이버 화폐입니다. 미래엔 가상화폐가 금을 대신해서 쓰일 날이 올 겁니다."

"돈이 아니라 금?"

"예, 금입니다. 화폐의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투자 상품의 역할도 수행해내죠."

트럼프는 금이라는 비유에 관심이 생긴 건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예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가상화폐의 원류 격인 비트코인은 초창기에 1만 개를 파파존스 피자 2판과 맞교환했습니다."

"오! 파파존스 피자. 멋진 거래를 했군요."

"5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은 1개당 4천 달러가 됐습니다. 그러니 비트코인이 1만 개면 4천만 달러. 피자 4백만 판을 살 수 있겠군요."

"4천만 달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트럼프는 황당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그럼 그 비트코인이라는 투자 상품의 가치가 5년 사이에... 그렇게 많이 뛰었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 예정이죠."

"이거 참.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언제든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래소에선 수백만 건의 가상화폐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트럼프는 뒤뚱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목구멍에 들이붓고 돌아온다.

"후... 말을 듣고 나니, 그런 멋진 화폐를 내게 선물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트럼프, 당신이 미국의 차기 대통령감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대뜸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세상 모두가 나는 대통령이 안 될 거라고 떠드는데, 굳이 나를 택했다? 당신 진심이요?"

"진심이 아닌데 후원금을 1000만 달러나 내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렇지. 맞아.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

트럼프는 다시금 뒤뚱거리며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향한다.

이번엔 콜라를 두 캔 가지고 와서, 하나는 자신이 따 마시고, 다른 하나는 내 앞에 놓아둔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기뻐하는 것 같으니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 주기로 했다.

치익.

살얼음이 떠다닐 정도로 차가운 콜라였다.

내가 콜라를 마시는 동안, 트럼프가 뭐가 그리 좋은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이때가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연설과 토론은 모두 챙겨봤습니다. 특히 불법 이민자를 막아서 내국인의 일자리를 만든다? 이건 참 중산층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발언이더군요."

"나는 진짜로 해낼 겁니다. 멕시코에 방벽을 세워서, 이민자를 아예 틀어막는 거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으면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라니?"

그가 흥미를 보일 때, 나는 재빨리 대화를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베네수엘라를 아십니까?"

"알지. 기름이 펑펑 샘솟는 나는 나라. 그러나 지금은 독재자 때문에 망하기 직전이라고 들었습니다."

"망하기 직전이 아니라 이미 망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선 작년에만 40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죠."

실제론 그보다 적지만 원래 이럴 땐 적당한 과장이 필요했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콜롬비아? 멕시코? 거기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텐데요."

"미국으로 넘어왔겠군."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 겁니다."

"흠..."

"베네수엘라는 기름만 다시 뽑아낼 수 있으면 정상화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넘어오는 이민자도 베네수엘라가 흡수할 수 있겠지요."

트럼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긴 했으나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먼저 베네수엘라에 군대와 기술자를 파견하는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빈국을 돕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기름이 펑펑 솟아나는 황금의 땅에 하는 투자입니다."

트럼프는 여전히 우물거리고 있을 뿐, 확답을 내놓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이 끌려서 좋을 게 없었다. 나는 준비해온 특수제작 USB를 테이블 위에 꺼내 놓는다.

트럼프는 눈빛으로 이게 뭐냐고 물어왔다.

"가상화폐가 든 전자 지갑입니다. 안에는 약 3천만 달러 가치의 가상화폐가 들어 있습니다."

"3, 3천만?"

"지금 가치로 따지면 그렇다는 겁니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하고 나면... 그땐 가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트럼프는 잽싸게 USB를 챙겨서 품에 갈무리한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흠흠, 다시 생각해 보니, 베네수엘라를 돕는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도움 되는 일 같군요."

* * *

-내년이 되면 물가가 안정된다는 마두로 정부를 믿어선 안 됩니다!

-1000볼리바르로 살 수 있었던 휴지 한 묶음이, 올해엔 5000볼리바르가 됐습니다. 내년엔 얼마가 될까요? 1만 볼리바르? 2만? 아니면 신권이 나와서 기존 볼리바르는 휴짓조각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당장 모든 현금을 가상화폐로 바꿔두십시오!

베네수엘라 총선을 한 달 앞둔 지금.

카라카스 광장에선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연설이 한창이다.

특이한 점은 의원들이 자신에게 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볼리바르 대신 가상화폐를 써달라고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한 광경이었으나, 이미 야당에선 큰 효과를 거둔 선거 전략이었기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가상화폐 사용을 독려했다.

"옳소! 볼리바르를 들고 있었으면 다 거지가 됐을 거야!"

"거짓말쟁이 마두로 정권에게 응징을!"

"투표로 응징합시다!"

현장 반응은 뜨거웠다. 누군가 바람잡이를 한 것도 아니다. 실제 가상화폐로 이득을 본 사람들이 야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가상화폐 전략의 선봉장이나 다름없는 에드윈은 무대 뒤편에서 연신 한숨을 쏟기 바쁘다.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만약 선거 전에 가상화폐 시세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그때, 옆으로 동생인 시몬이 다가온다.

"형님, 왜 그리 표정이 안 좋으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시죠?"

"아무것도 아니다."

"혹시 가상화폐 시세 때문에 그러십니까?"

에드윈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잘될 겁니다."

"시몬, 너는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구나. WHTS컴퍼니에서 시세 조정을 사실상 거부했다며?"

"그래도 대형 악재가 있지 않은 이상, 시세가 폭락할 일은 없습니다."

시세가 폭락하지 않고 유지만 돼도 야당으로선 나쁠 게 없다.

볼리바르가 알아서 추락해주니 가상화폐 구매자는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혹시 따로 호재는 없지?"

"형님도 은근히 욕심이 많으십니다."

"너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이때 가상화폐 시세가 폭등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상화폐 시세가 폭등하면 가상화폐에 부정적이던 여당 지지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어마어마할 터.

당연히 투표 심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WHTS컴퍼니가 도와주면 좋으련만,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미치겠구나."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할 수밖에요."

"어떻게?"

"우리가 가진 카드 중에 대형 호재로 불릴 만한 게 있잖습니까."

대형 호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에드윈도 카드의 정체를 떠올렸다.

"석유개발사업 우선권?"

"정답입니다."

"그걸 도토리 코인과 엮는 다라... 좋구나. 여기에 살만 살짝 붙이면 가상화폐 시세가 쭉쭉 오르겠어."

에드윈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가 자신의 동생을 홱 돌아본다.

"시몬,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그쪽에 석유개발사업 우선권을 줬던 거냐?"

"당연한 말씀을. 제가 그 귀한 것을 제시카가 떼쓴다고 내줄리 없잖습니까."

"이것 참. 몇 수 앞을 내다본 건지."

에드윈은 시몬이 자신의 동생인 사실에 안도했다. 만약 혈연관계가 아니었다면 아군이었어도 제거할 계획부터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 * *

도토리 코인 시세는 꽤 오랜 시간 동안 5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와츠가 승승장구하고 남미 진출의 성공으로 시세가 오를 만도 했으나, 소셜 채굴로 풀리는 막대한 물량과 1000억 펀드 투자 지연이 시세를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도토리 코인의 대형 호재가 터지게 된다.

[WHTS컴퍼니, 베네수엘라 석유개발 독점 외국인 사업자 선정. 거래 방식은 가상화폐인 도토리 코인이 유력.]

가상화폐가 실물 시장의 대장 격인 석유 거래에 사용된다는 소식은 도토리 코인의 폭등을 불러왔다.

언론사들이 뉴스를 다루기도 전에 시세는 30%가 넘게 치솟았고.

언론 보도가 된 이후에도 추가로 폭등이 이어져, 하루 만에 도토리 코인 시세는 55%나 폭등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미 폭등한 시세에 재차 기름을 붓는 호재가 발표됐으니.

[소프트포우, 1300억 달러 규모의 비전 펀드 드디어 출범! 제1호 투자처는 WHTS컴퍼니의 도토리 코인으로 투자금은 기존의 4배가 많아져...]

하루 만에 역대급 호재가 연달아 두 개나 터졌다.

이로 인해 도토리 코인은 물론이고 모든 가상화폐가 적게는 100%, 많게는 2000%에 달하는 시세 폭등을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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