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75화 (7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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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

이곳에선 얼마 전부터 베네수엘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베네수엘라의 정세나 경제 상황, 혹은 구호 같은 이유는 아니었고, 조금은 황당한 일로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환율은 매일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건가? 벌써 사흘째 변동이 없어.

┗나라가 막장이라 환율도 실시간으로 반영이 안 돼서 그래.

┗오늘 자로 1달러당 144볼리바르야.

-와우. 4일 만에 10%가 넘게 떨어졌네? 환율이 이렇게 휙휙 바뀌어도 괜찮은 거야?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안 괜찮을걸. 물가가 올라서 죽을 맛일 거다.

┗그 나라가 어찌 되든 나랑은 상관없어. 오히려 좋지. 베네수엘라 환율이 떨어질수록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으니까.

┗너 진짜 쓰레기다.

┗그런 말 하는 너도 베네수엘라 화폐로 소프트웨어를 싸게 사고 있잖아.

-너희들 베네수엘라 화폐로 뭘 사는 거야? 나도 알려줘.

┗여러 가지를 살 수 있지. 주로 인터넷에서 파는 소프트웨어들. 윈도우즈나 오피스, 포토샵 같은 것도 있고.

┗오! 쒯! 베네수엘라 화폐로 결제하면 윈도우즈 최신판이 1.6달러밖에 안 해? 96%나 싸잖아.

-뭐? 윈도우즈가 1.6달러라고? 젠장, 난 4달러 할 때 6개 사뒀는데.

┗5달러에 20개 물렸다.

┗내 친구는 프로그램 돌려서 500개쯤 샀다더라. 나중에 시세 뛰면 옥션에서 되팔 거라나.

┗그전에 회사에서 막으면 어쩌려고?

┗그래 봤자 1000달러도 안 돼. 충분히 베팅할 만한 도박이지.

이후 댓글도 소프트웨어를 싸게 살 수 있어서 좋다는 내용이 쭉 이어진다.

그러다 댓글 2000개 만에 베네수엘라 상태를 궁금해하는 댓글이 달렸다.

-윈도우즈가 96% 싸졌다면 현지 사람들의 화폐 가치가 96% 날아갔다는 뜻 아냐?

┗거의 비슷해. 이미 베네수엘라는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야.

-끝장난 것 치곤 와츠를 켜보면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많던데? 특히 섹시 댄스를 추는 이쁜이들은 열에 아홉은 베네수엘라 출신이었어.

┗베네수엘라 하면 미인대회로 유명한 나라잖아.

┗미녀들이 눈 호강 시켜주는 영상이 많이 올라와서 너무 좋아. 와츠 최고. 베네수엘라도 최고.

┗그건 너희가 그런 영상만 보니까 비슷한 영상이 추천으로 뜨는 거야. 베네수엘라 친구들은 웃긴 영상이나 마술, 랩, 댄스, 길거리 파이트, 묘기 같은 영상도 많이 올리고 있어.

-베네수엘라에서 와츠를 많이 쓰는 이유가 있어?

┗화폐가 불안정하니까 가상화폐를 쓰는 사람이 많대. 그러다 보니 소셜 채굴이 가능한 와츠를 쓰는 사람도 많은 거고.

-내 친구가 베네수엘라에 사는데 가족 전체가 소셜 채굴로 생계를 유지한다더라.

┗엥? 소셜 채굴로 돈 벌려면 힘들지 않아? 좋아요를 몇백 개는 받아야 도토리 1개를 주는 것 같던데.

┗베네수엘라에선 도토리 코인 1개면 일가족 두 달 치 식비를 해결할 수 있다.

-참 서글픈 현실이네. 우리가 취미로 보는 영상이 누군가에겐 생계라니.

┗그래도 소셜 채굴이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 이거라도 없었으면 그들은 더 힘들었을 거야.

┗앞으로 베네수엘라 친구들 영상엔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자.

┗이쁜이들 영상을 자주 봐야 할 핑계가 생겼군.

* * *

베네수엘라의 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2015년까지만 해도 100볼리바르면 쌀 한 묶음을 살 수 있었지만, 2016년엔 400볼리바르가 필요했고, 석 달이 더 지나자 1200볼리바르까지 값이 치솟았다.

불과 1년 만에 물가가 10배 이상 뛴 셈이다.

더는 베네수엘라에 남아서 일을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남자는 해외로 나가서 일하거나 범죄 조직에 들어갔고, 여자는 국경에서 매춘으로 돈을 벌었다.

이렇게 해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송금 수수료가 적은 가상화폐 서비스가 활성화됐다.

기존에 14%~17%에 달하던 수수료를 0.3%만 내면 됐으니, 사용자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대로 베네수엘라에 가상화폐 서비스가 대중화되나 싶었다.

하지만 가상화폐 서비스는 개시 두 달 만에 정부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나게 된다.

"가상화폐 서비스를 정부 마음대로 금지하는 게 어디 있어? 다시 허용해! 이대론 생활이 안 된다고!"

"어째서 우리의 남은 희망마저 빼앗는가!"

"마두로 개자식아! 우릴 죽일 셈이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선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얼마 전 정부가 가상화폐 서비스를 금지한 이후로, 은행에 비치된 가상화폐 ATM이 전부 사라진 것이 원인이었다.

"마두로는 퇴진하라!"

"퇴진하라!"

"가상화폐 금지를 풀어줘라!"

"풀어줘라!"

이번 시위는 평소보다 더 격렬했다. 시민들이 애써 찾은 생존수단을 정부가 빼앗은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을 모아서 마두로를 끌어냅시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옳소!"

"갑시다!"

성난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이동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맥 마두로가 있는 대통령 궁이었다.

대통령 궁엔 이미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유혈 사태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은 시민들의 분노는 폭력의 두려움을 잊게 했다.

-시위대에게 경고한다. 더 다가오면 발포하겠다. 이것이 마지막 경고다. 경계선을 넘어오면 발포한다.

대통령 궁 앞에서 대기하던 무장 군인들이 최후통첩을 보낸다. 그러나 이미 잃을 것이 없는 시위대는 멈추지 않는다.

군인과 시위대의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

까만색 SUV 한 대가 달려와서 그들 사이를 막아선다.

척.

차에서 내린 이는 야당 의원인 에드윈 로메로였다.

그는 대뜸 차 지붕에 올라가서 소리친다.

-여러분 잠시만 진정하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마이크 스피커를 통해서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평소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던 그였기에, 시위대도 행진을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가상화폐를 금지한 법안에 상심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끝까지 법안 통과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위로는...

그는 대중 앞에서 능숙하게 연설을 이어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무력 충돌로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 얼마 뒤에 있을 선거에서 표로 심판해달라는 이야기였다.

평소였다면 그의 연설로 사태가 진정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은 대중의 분노가 너무 컸고, 상황도 평소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투표로 심판하라고요? 백날 투표하면 뭐해요. 지금까지 아무것도 바뀐 게 없잖아요."

"저들은 표를 조작한다구요!"

"투표로 바꿀 시간이 없어요. 그 전에 우린 굶어 죽을 거예요."

"맞아요. 가상화폐 계좌에 돈이 다 들어있어서 당장 쓸 돈이 없어요."

시위대의 목소리를 한참 경청하던 에드윈이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린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급하게 돈을 출금해야 하실 분도 있을 테고, 가상화폐 계좌가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인근 국가에도 가상화폐 ATM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에 가상화폐 ATM이 설치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지일지언정 돈을 못 뽑을 일은 없었다.

이 때문에 시위대에선 처음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한가지. 여러분이 쓰고 계신 가상화폐 계좌는 입금 후 3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예치 상태가 됩니다.

-예치 상태의 가상화폐 계좌는 연 12%~15%의 이자가 지급되고, 화폐 가치도 볼리바르처럼 폭락하지 않습니다.

도토리 코인의 예치 시스템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에겐 익히 알려진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송금용으로 가상화폐를 쓰던 사람들.

화폐 가치가 유지된다는 것도 좋은 소식인데 이자까지 준다고 하니, 사방에서 기쁨과 안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후... 이 정도면 급한 불은 끈 건가."

에드윈은 시위대가 흩어지는 모습을 다 지켜본 뒤에야 차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때, 차 안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넘어온다.

"형님, 쓸데없는 짓을 하셨습니다."

동생인 시몬이었다.

"쓸데없는 짓이라니? 시위대를 그냥 뒀다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대통령 궁 앞에서의 유혈 사태는 우리 쪽에 유리한 이벤트입니다. 그리고 외신의 주목도 받을 수 있을텐데..."

"시몬!"

에드윈이 꾸짖듯 소리쳤으나 시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의견을 이어간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으면 정권 탈환은 무립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람이 죽게 내버려 뒀어야 한단 말이냐?"

"정권 탈환에 실패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니 방조해서 베네수엘라를 구할 수 있다면 그리 하는 것이 옳습니다."

에드윈은 주먹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꽉 말아쥐었다가, 부들부들 떨어댄다.

"형님은 정치인입니다. 그러니 근시안적이 아니라 대국적으로 정세를 보셔야 합니다."

"나도 안다. 알지만..."

다시 터져 나오는 한숨.

"너는 어찌 그리 냉정할 수 있단 말이냐."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될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실패..."

"여기서 얼마나 더 처참해질지, 얼마나 더 끔찍해질지, 그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천천히 곱씹다 보면 형님도 냉정해질 수 있습니다."

에드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금보다 더 처참한 광경을 생각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다.

"괜찮습니다. 형님이 힘드시면 제가 대신 그 역할을 맡으면 되는 겁니다."

* * *

야심 차게 준비한 와츠 페이의 사전 서비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기존에 온라인으로만 서비스되던 SNS와 달리, 와츠 페이는 금융기관, 오프라인 매장까지 관리해야 했기에 준비과정이 상상을 초월했다.

직원을 대거 채용하고, 사무실을 늘리고, 협력 업체와 소통, 정부 기관의 허가 등.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베네수엘라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님, 그간에 잘 지내셨습니까.

제시의 오빠인 시몬 로메로였다.

베네수엘라엔 가상화폐가 금지된 이후로 아예 신경을 못 썼기에, 이번이 근 한 달 만에 통화였다.

"오랜만입니다. 시몬 씨. 그쪽엔 별일 없으시죠?"

-별일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이대론 다 굶어 죽을 판이라서요.

"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요."

나는 안부 인사차 건넨 말이었지만, 상대는 말을 바로 캐치해서 주제를 끌고 간다.

-안 그래도 선거 문제로 연락드렸습니다. 신 대표님께서 꼭 도와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도토리 코인. 최근 시세를 40달러 선으로 유지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선거와 도토리 코인? 벌써부터 느낌이 안 좋다.

-선거 직전에만 시세 캡을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꼭 시세가 안 올라도 좋으니 오른다는 시그널만 주셔도 좋습니다.

"시세의 변동을 크게 주는 것은 저도 곤란합니다."

-선거 직전에만 살짝 올려주시면 됩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가상화폐 시세를 올려서 선거에 써먹을 생각을 하다니.

"선거 전에 시세를 올렸다가, 선거 후에 다시 떨어지면 후폭풍이 심각할 텐데요."

-그건 저희가 감내할 부분입니다.

선거만 이기면 그다음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건가?

당선이 우선인 정치인으로선 해볼 법한 작전이다만, 그 농간에 놀아난 베네수엘라 국민은 무슨 죄란 말인가.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저희가 선거에서 승리해야 약속했던 석유채굴사업 우선권을 드릴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시몬과 통화가 끝난 뒤, 나는 한동안 고민의 늪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그들을 도와야 할까?'

코인 시세를 선거 전에만 바짝 올리자니 베네수엘라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였고, 그렇다고 현 정권을 가만두자니 끔찍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야."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무언가에 홀린 듯 포털 검색란에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단어를 채워 넣는다.

-미 공화당 경선을 앞두고 뉴욕에선 트럼프 반대 시위대가 등장했습니다.

-셧 업 트럼프! 셧 업 트럼프! 크루즈를 후보로!

-이들은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입니다. 트럼프로는 힐러리를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전문가들 역시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을 통과한다면 힐러리의 무난한 승리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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