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70화 (7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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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포우의 추가 투자 소식은 가상화폐 시장을 또다시 뒤흔들었다.

한창 소셜 채굴로 논란이던 시기에, 세계적인 투자사가 추가 투자에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소셜 채굴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시그널이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타자 도토리 코인은 하루 만에 40%가 넘게 폭등했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도 기대감에 덩달아 가격이 치솟았다.

이런 폭등장 속에서 단연 압도적인 상승률을 보인 가상화폐가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한민국 정부에서 인증한 아리랑 코인이었다.

"3.6달러 선을 무난히 걸쳤습니다. 당분간은 3.5달러 전후에서 시세가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커뮤니티 여론도 긍정적이고, 거래량 추이도 나쁘지 않습니다. 국내 거래소 한정으로 거래량 톱3입니다."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사내들의 목소리가 산발적으로 쏟아진다. 이들은 아리랑 코인 운영팀이었다.

그리고 그들 바로 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나민성이 앉아 있었다.

"나쁘지 않다고? 그딴 정도로는 안 돼. 거래소에 연락해서 거래량 더 뻥튀기시켜! 지금보다 거래량이 3배는 올라가게."

"여기서 3배나 더 말입니까? 그렇게 했다간 자전거래 의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개미 새끼들이 의심하면 어쩔 거야? 거래소 쪽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냥 시키면 시킨 대로 해. 알겠어?"

운영팀 쪽에 지시를 마친 나민성은 숨 돌릴 새도 없이 전화를 돌린다.

"아이고, 편집장님. 저 나민성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뉴스 한 번 더 뿌려 달라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예, 당연히 챙겨드려야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다른 연락처로 전화를 건다. 이번은 포털 뉴스 관리 담당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연락받으셨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건은 정부에서 밀어주는 프로젝틉니다. 예예, 잘 좀 봐주십시오."

나민성은 필사적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그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다.

"퉤. 해달라면 그냥 해주면 될 것을, 꼭 꼬치꼬치 캐묻고 지랄이야."

나민성은 통화를 끝내자마자 습관적으로 아리랑 코인의 시세 차트를 살폈다.

3.65달러.

한때 0.5달러까지 떨어졌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올랐다.

최명자가 팔아치운 코인을 다시 매입하고, 자전거래, 루머 살포, 언론 마사지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끌어 올린 시세였다.

'만약 작업하는 동안 악재가 하나라도 터져서 다시 하락세가 왔으면...'

나민성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에서 진짜 떨림이 느껴진다.

화면에 찍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발신자는 최명자였다.

"후..."

나민성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통화 버튼을 터치한다.

-나 프로~ 수고가 많아.

평소보다 최명자의 목소리 톤이 높다. 아리랑 코인 시세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삼키며 입을 뗀다.

"어쩐 일이십니까, 사모님."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코인 있잖아. 그걸 연계할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나민성은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어떤 아이디어일까요."

-내후년에 올림픽 있는 거 알지? 그거랑 가상화폐를 연계해서 크게 한방 땡길 수 있을 것 같아.

올림픽이면 2018년 초에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 예정인 건 맞다. 그런데 올림픽과 가상화폐를 어떻게 연계한단 말인가.

-지금도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돈 걸고 그러잖아. 뭐라더라... 토토?

저 말을 듣자마자 나민성은 저도 모르게 '헛!'하고 헛숨을 들이 삼켰다.

"아리랑 코인을 올림픽 경기 베팅에 연계하자는 말씀입니까?"

-역시 나 프로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먹는다니까. 할 수 있지?

"정부에서 허가만 나오면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박과 관련된 사업은 제약이 많다. 카지노부터, 경마, 경륜만 봐도 극히 일부만 허가되지 않던가.

하지만 가상화폐는 현금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피해갈 여지가 많았다.

'나중에 올림픽 토토가 불발 나더라도 상관없어. 아리랑 코인이 쓰일 수 있다는 썰만 풀어도 시세는 미친 듯이 오를 테니까.'

나민성은 가상화폐를 장기적으로 운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단기간에 호재를 풀고 시세를 폭등시켜서 빼먹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사모님, 정말 멋진 아이디업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호호호. 내가 어릴 적부터 총명하다는 소릴 많이 듣긴 했어.

예전 같았으면 속으로 개소리하지 말라며 쌍욕을 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은 진심으로 최명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가상화폐와 올림픽 토토의 결합은 투자자들의 눈먼 돈을 털어먹기 좋은 아이템이었다.

* * *

벌써 4월 중순이지만 제주도는 아직 두꺼운 외투가 아쉬울 정도로 추웠다.

꽃샘추위가 온 거라고 하는데, 하필이면 내가 제주도에 딱 오니까 날씨가 이런 꼴이다.

"일 끝나고 제주도 구경이나 할까 했더니, 빨리 돌아가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빠른 걸음으로 공항 입국장에 도착했다.

입국장 앞엔 염소수염을 기른 사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낯이 익다. 저번 신정의 회장이 왔을 때, 그의 옆을 지키던 수행 비서였다.

"반갑습니다, 신우혁 씨. 이쪽으로 오시죠."

한국 공항에서 외국인이 나를 마중 나와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나는 부지런히 그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뭐하나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회장님은 어째서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 별장에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내 얼굴을 쳐다본 뒤에야 입을 연다.

"요즘 퍼지고 있는 루머 때문입니다. 루머의 중심인 신 대표님이 일본에 들어오면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테지요."

여기서 언급된 루머란 소프트포우가 도토리 코인에 추가 투자한다는 것을 뜻했다.

신정의 회장은 루머가 더 퍼지는 것을 막아 볼 생각으로 미팅 장소를 제주도로 잡은 모양이다.

'머리를 쓰긴 했다만, 이 정도 연막작전으론 기자들을 따돌리기 힘들걸.'

비서의 안내를 따라서 공항 입구까지 나간다.

그곳엔 흔히 볼 수 있는 국산 세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죠."

나는 별생각 없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타려다가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린다.

차 안엔 별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신정의 회장이 타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어서 타게나."

어쩐지 선팅이 지나치게 짙게 돼 있다 했더니, 신정의 회장은 차 안에서 나를 만나고 다시 떠날 생각인 듯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빠르게 흩어버리고 고갤 숙인다.

"반갑습니다, 회장님. 그간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자네가 일을 벌여 준 덕분에 시끌벅적하게 지내고 있다네."

그가 말하는 뉘앙스를 들어보니, 내가 이번 루머가 퍼지도록 의도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나는 부인할까 고민했지만, 이제 와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대놓고 신규 코인을 3천만 개나 찍어냈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도토리 코인 3천만 개는 최근 시세로 환산하면 10억 달러에 달한다.

가상화폐에 그만큼 큰돈을 투자할 만한 곳은 소프트포우밖에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관련 루머가 퍼진 것이다.

"투자를 더 받고 싶었으면 내게 연락을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해?"

"도토리 코인에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작은 잡음이 있었습니다. 그걸 빠르게 정리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더군요."

"뭐?"

신정의 회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물론 그런 용도만으로 회장님을 끌어들인 것은 아닙니다. 미리 떡밥을 던져둔 덕분에 회장님께도 좋은 기회를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기회라니?"

"루머가 퍼질 당시에 도토리 코인은 개당 30달러였습니다. 그랬던 게 불과 일주일도 안 돼서 55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선 무려 25달러나 싸게 투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자넨 나랑 농담 따먹기를 하려고 온 건가?"

"농담 같은 게 아닙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도토리 코인을 30달러에 투자할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괴변이었기에, 신정의 회장의 얼굴에 노기가 떠오른다.

나는 그가 진짜 역정을 내기 전에 재빨리 질문을 던진다.

"회장님은 페이팔을 아십니까?"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나? 미국의 간편 결제 서비스잖는가."

"알고 계시니 설명이 빠르겠군요. 저희는 도토리 코인을 활용한 간편 결제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가상화폐와 간편 결제 서비스.

아직은 두 서비스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이해가 쉽지 않았기에, 신정의 회장은 가만히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도토리 코인은 처음부터 빠른 전송속도 구현을 목표로 개발됐습니다. 그렇기에 개발이 막바지인 지금은 그 어떤 가상화폐보다 전송이 빠릅니다."

"얼마나 빠르단 말이지?"

"한국에서 미국까지,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하는 데 딱 2초가 걸립니다."

신정의 회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존의 결제 수단보다 빠를 줄은 알았지만 2초밖에 안 걸릴 줄은 예상 못 했나 보다.

"저희 결제 서비스는 블록체인 기술로 보안성이 뛰어나고, 전송속도도 빠르며, 수수료도 적은 새로운 결제 수단입니다."

"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전송받은 돈을 그대로 예치했을 땐, 자동으로 도토리 코인으로 전환돼 두 자릿수의 이자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감추려 했으나 이미 처음의 근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언급한 가상화폐 기술이 진짜 돈이 될만한 것인지를 파악하느라 머릴 굴리고 있었다.

'앞뒤가 꽉 막힌 늙은이라면 신기술을 거부하겠지만, 신정의 회장 같은 사람이라면 필시 관심을 보일 거다.'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을 두고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그 뒤로 신정의 회장은 10분이 넘도록 장고를 거듭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네의 그 기술에는... 상용화까지 커다란 허점이 있어."

"어떤 허점이 있을까요."

"흠, 허점보다는 허들이라는 표현이 옳겠군."

그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표정으로 다리를 반대로 꼰다.

"시중엔 페이팔과 은행의 스위프트 송금보다 더 뛰어난 결제 서비스가 발에 챌 정도로 많아.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 기존 서비스를 고수하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익숙함입니까?"

"맞아. 익숙함. 원래 사람이란 동물은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기존의 것을 바꾸려 들지 않거든."

나 역시 그 점을 우려해서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도 이미 내 의도를 알아챈 것 같다.

"새로운 서비스가 들어오려면 기존의 익숙함을 허물 정도의 충격이 있거나, 아니면 인위적으로 물꼬를 틔워줘야 하지."

"회장님께서 물꼬를 틔워줄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맞았어. 그러니 내가 역으로 제안함세."

그는 상체를 내 쪽으로 돌려 앉은 뒤, 앞으로 손을 뻗는다.

"개당 27달러로 어떻겠나."

"신규 발행 코인 3천만 개를 전부 매입한다는 조건이라면 25달러로 드리겠습니다."

이젠 반대로 내가 손을 뻗고 기다리는 형국이 됐다.

짧은 헛웃음 소리가 났고, 이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손을 잡는다.

"내가 자네에겐 못 당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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