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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채굴을 철회하라는 대규모 시위는 지상파 뉴스를 시작으로, 신문, 포털 뉴스까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하지만 언론의 호들갑에도 투자자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WHTS컴퍼니의 결정을 지지하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었다.
"인터넷 분위기 보셨어요? 여론이 우리 회사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던데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커뮤니티 메인에 걸린 인기 글이 도토리를 추가 매수해야 한다는 분석이더라고요."
"거기 인기 글이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를 욕하던 글이었는데..."
"진짜 신기해요. 누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아요."
WHTS컴퍼니 직원들도 반전된 여론에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소셜 채굴을 극렬히 반대하던 여론이, 어떻게 단 하루 만에 뒤집힐 수 있었을까?
직원들끼리도 추측만 무성하던 가운데, 팀장인 이소영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여러분, 좋은 아침이에요."
개발팀 직원들이 단체로 이소영 옆으로 쪼르르 다가간다. 팀장인 그녀는 내막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팀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투자자들 여론이 아예 뒤집혔던데요."
"어제 미팅도 시위대 측에서 깽판 치고 끝난 거 아니었어요? 저는 망한 줄 알았는데, 대박 반전!"
"맞아요. 파투났다고 뉴스까지 떴잖아요."
이소영 한 명을 둘러싸고 네댓 명의 질문이 동시에 쏟아진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저도 잘 모르는 일이에요."
"팀장님이 모르시면 진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건데... 짐작 가는 거라도 없으세요? 그냥 여론이 바뀔 리 없잖아요."
짐작 가는 것.
이소영은 뭐가 있을까 싶어서 잠시 생각을 더듬는다. 그러다 어제 신우혁 대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제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직원들은 기대에 차서 눈을 반짝인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답은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가까웠다.
"진심은 통한다."
직원들이 단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그녀가 말을 이어간다.
"대표님이 시위대분들을 진심으로 설득해보자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반신반의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그게 먹혀든 게 아닐까요?"
이소영은 나름 진지하게 한 말이었으나 직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물음표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말을 내뱉은 이소영 본인조차 진심이 통했다곤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직원 하나가 이번 일의 원인이 된 게시글을 발견하게 된다.
"팀장님! 이거예요! 이것 때문에 여론이 뒤집힌 거였어요!"
이소영보다 다른 직원들이 먼저 우르르 소리친 직원 자리로 몰려간다.
직원의 모니터엔 시위대 측에서 올린 미팅 후기 영상이 떠 있었다.
영상의 조회 수는 22만 건.
어젯밤에 올라온 영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솔직히 미팅 장소로 초대받았을 땐 놀랐습니다. 회사 측에서 진짜 준비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부끄럽게도 저는...
영상 속 사내는 어제 시위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그러다 미팅 현장에서 몰래 녹취한 음성 파일이 공개됐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채팅방 여론이 뒤집혀 버렸다.
"진짜... 진심이 통한 거였네요?"
영상을 보고 있던 이소영이 놀라서 중얼거린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호들갑을 떨어대며 맞장구친다.
"대단하네요. 역시 회사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그러게요. 아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게 무안해지네요. 대표님의 큰 그림인 줄도 모르고..."
"큰 그림 같은 게 아니죠. 대표님이 진심으로 다가갔기에, 상대측에서도 진심으로 답한 사람이 나온 거예요."
직원들은 한동안 대표의 진심이라는 말을 두고, 대단하니 어쩌니 하며 수다를 떨어댄다.
그러다 말이 뚝 끊기게 되는데.
"무슨 이야길 하고 계십니까?"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신우혁 대표가 나타났다.
개발실 직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 자리로 도망가 버렸고, 이소영 혼자서 그와 마주하게 됐다.
"아니요. 그냥... 아, 맞아. 오늘 날씨가 좋다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이소영은 말을 내뱉은 뒤에야 아차 싶었다. 밖은 먹구름이 잔뜩 껴서 언제 비가와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다.
"소영 씨는 흐린 날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마, 맞아요. 제가 직사광선을 싫어해서요. 하하하... 그런데 개발실엔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가 싱긋 웃으며 자신을 쳐다본다. 이소영은 떨림을 억지로 숨을 참아서 막아낸다.
"다름이 아니라 도토리 코인 신규 발행이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신규 발행을, 지금요?"
"예. 3000만 개 정도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도토리 코인은 수량의 제한이 없는 가상화폐라 개발사에서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코인을 새로 찍어내면 투자자들도 실시간으로 알게 됐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여론이 잠잠해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물량을 추가로 3000만 개나 찍어내면 반발이 심할 거예요."
"그 문제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소영은 반사적으로 '왜죠?'라고 물으려다가 입을 닫았다.
어제의 일도 그렇고, 언제나 그가 하는 말은 옳았기에, 그냥 믿고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요. 3000만 개를 언제까지 준비해두면 될까요?"
* * *
신정의 회장의 집무실엔 늦은 밤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평소엔 정시면 퇴근하던 그가 이 시각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는 이유는, 한국 언론사에서 뿌려댄 뜬소문 때문이었다.
[WHTS컴퍼니, 돌연 도토리 코인 3000만 개를 추가로 생성.]
[신규 생성된 도토리 코인의 용도는 소프트포우의 추가 투자분? 소프트포우 측 "아직 정확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
[소프트포우 투자 루머로 인해 도토리 코인 28% 급등!]
뉴스를 접한 신정의 회장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는 도토리 코인의 추가 투자를 아예 고려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가 직접 대니얼 신에게 연락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저희도 어째서 이런 루머가 퍼진지 모르겠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추가 투자를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기가 막혔다. 아무리 자신감이 마음에 들어서 투자를 결정했다지만, 그래도 이번 건은 도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고얀 놈 같으니라고. 그런다고 내가 추가 투자를 해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그때 노트북을 살피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회장님. 제 생각엔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 자넨 그 천둥벌거숭이를 두둔하는 겐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이득이냐를 따졌을 땐, 투자하는 쪽이 옳다고 보는 것이지요."
신정의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으나, 그래도 이야길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저희가 도토리 코인에 투자했을 땐 시세가 9달러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50달러까지 오르지 않았습니까?"
"다시 30달러까지 떨어졌다며?"
"그건 소셜 채굴 도입 소식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하락입니다. 와츠의 성장이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린다면 채굴 따윈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신정의 회장도 이 말엔 동의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 도토리 코인이란 와츠에 투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자넨 도토리가 다시 50달러까지 오른다고 보는 게야?"
"와츠가 지금처럼 글로벌한 성장을 이어간다는 가정하에, 100달러는 가볍게 넘길 거라고 봅니다."
"흠. 100달러라..."
수익률 100%짜리 투자 상품이 있다면 무조건 투자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신정의 회장이 선뜻 결정을 못 내리는 이유가 있었으니.
그 투자 상품이 주식이나 채권도 아니고, 현물도 아닌, 가상화폐라서였다.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에 돈을 더 투자하는 게 옳은 일일까?'
만약, WHTS컴퍼니가 도토리 코인을 폐기하고 새로운 코인을 찍어버리면 투자금 전액이 붕 뜰 수도 있었다.
그는 투자자지 도박꾼이 아니다.
이번 일이 도박이 아닌, 투자가 되려면 상대의 확실한 속내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길 해봐야겠군."
* * *
한때 들불처럼 퍼졌던 소셜 채굴 시위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여파도 있지만, 그보다 도토리 코인 시세가 다시 뛰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사라진 영향이 더 컸다.
시위하느라 밤낮으로 돌아다녔던 나민성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도토리 코인의 시세가 뛰면, 쌍둥이인 아리랑 코인의 시세도 같이 뛸 테니까.
"뭐야? 왜 계속 내려가?"
나민성의 기대와는 달리, 아리랑 코인의 시세는 좀처럼 오를 기미가 없었다.
1달러 초반대에서 횡보하던 아리랑 코인은 0.8달러가 깨졌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0.5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그러다 오후엔 대형 호재가 발표됐다.
[소프트포우, 도토리 코인에 추가 투자 나서나?]
아직은 루머 수준이었지만 원래 이 바닥의 호재는 전부 이런 식이었다.
뉴스가 뜨기 전부터 치솟던 도토리 코인 시세는 언론 보도와 동시에 28%나 치솟게 된다.
"좋았어. 이거라면 아리랑도 무조건 떡상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리랑 코인의 시세는 요지부동이었다.
의아해서 거래소에 들어가 봤더니 누군가가 시세가 오르려는 족족 아리랑 코인을 내다 팔고 있었다.
'호재가 떴는데 물량을 계속 던진다고? 대체 어떤 새끼야?'
나민성은 아리랑 코인 개발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다. 할 수 없이 최명자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세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었다.
그는 곧장 차를 성북동으로 몰았다.
끼익.
부촌의 대명사인 성북동에서도 유독 큰 단독주택.
저곳이 최명자의 집이다.
그는 차를 몰고 가는 중에도, 내리면서도,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설마 그랬겠어."
저택 입구에 차를 멈춰 세우자 경호원들이 다가온다.
그들은 나민성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안으로 들여주는 게 아니라 앞을 막아섰다.
"야, 비켜!"
"사모님의 지시가 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야이, 썅! 급하다고! 빨리 비켜!"
나민성은 무작정 경호원을 밀치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몸이 붕 뜨면서 하늘이 거꾸로 돌아간다.
쿵!
등에서 격통이 쏟아진다. 동시에 힘이 쫙 풀리면서 몸이 아예 안 움직인다.
"끄윽... 이 개새끼가..."
그 상태로 바닥에 얼마나 엎어져 있었을까?
체감상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가 만나고자 했던 이가 걸어 나온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최명자의 목소리였다.
나민성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몸을 일으켰다. 도중에 경호원이 다시 붙잡았기에, 몸부림 대신에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아리랑 코인을 파셨습니까?"
"그래. 팔았어."
"왜 파셨습니까. 이제 다시 가격이 오를 일만 남았는데요."
그녀는 나민성을 흘깃 쳐다보더니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네가 전에도 오른다고 했었지?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어? 계속 떨어졌잖아."
"이번은 진짜 오릅니다. 도토리가 오르면 따라 오르는 구조기에..."
"아, 몰라. 더는 가상화폔지 뭔지에 신경 쓰기 싫으니까 그냥 다 팔라고 했어. 본전이라도 찾아야 할 것 아냐."
폭등할 호재가 떴는데 개발사 측에서 물량을 던지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멍청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골이 텅텅 비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 때문에 내가 손해를 얼마나 본 줄 알아? 그거 어떻게 할 거야?"
나민성은 이가 갈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저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여길 뜨고 싶었다.
그런 생각 도중에 불쑥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대로 내가 떠나면... 저년이 나를 가만히 둘까?'
상대는 지식이 얕을 뿐이지 우둔한 인간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후환이 될만한 일은 철저히 제거하려 들 거다.
"..."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대뜸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
"사모님, 지금 도토리 코인이 28% 넘게 올랐습니다. 아리랑 코인은 낙폭이 컸기에 그 이상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나민성은 이를 악물고 바닥에 이마를 찧는다.
쿵. 쿵. 쿵.
한 번, 두 번, 피가 안 나면 날 때까지 찍는다.
고통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