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68화 (6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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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에 대표가 진짜 나왔다고?"

나민성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방금까지 대표가 직접 나오라고 소릴 질러대긴 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구호일 뿐이다.

'염병, 저 새끼는 소리 좀 질렀다고 진짜 나오고 지랄이야.'

이제 와서 무대 아래로 도망가자니 아까부터 상대의 시선은 정확히 나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민성 홀로 떡 하니 차려진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으니, 누가 봐도 시위 주동자처럼 보였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머플러를 두르고 있어서 얼굴이 안 보인다는 것 정도일까.

'젠장. 젠장.'

나민성이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동안 무대 위로 국정원 노인이 올라온다.

"뭐 그리 얼어 있어? 어깨 펴고! 당당하게 대응해!"

"여기서 무슨 대응을 합니까. 저 대표랑 진짜 만나 주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만나자고 하면 만나줘야지."

나민성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봤지만,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혀를 찬다.

"상대의 노림 수가 뭐겠어? 방송국까지 출동해서 찍고 난리 부르스를 추니까 큰불부터 끄려는 거잖아."

"그럼 더 거절해야죠."

"여기서 우리가 거절하면 모양새가 안 좋아져. 그럴 바엔 만나서 꼬투리를 잡고 파투를 내는 게 낫다 이 말이야."

여기서 당장 만남을 거절하는 것과 협상 테이블에 앉은 뒤 꼬투리를 잡아서 파투내는 것.

두 상황이 비슷해 보여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거부한 꼴이 되지만, 후자는 협상 중 결렬 같은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와.'

방송국 차량이 때에 맞춰서 줄줄이 도착한 걸 보면, 저쪽도 우리와 한패일 터.

파투난 상황을 시위대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서 보도해준다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 * *

-여러분, 저희는 WHTS컴퍼니의 횡포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여러분도 함께하시겠습니까?

-예!

-그럼 다 같이 구호를 외칩시다! WHTS컴퍼니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투자자의 고혈을 빠는 소셜 채굴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창밖으로 아까보다 더 격렬해진 시위 소음이 넘어온다.

스피커 볼륨을 얼마나 키워뒀으면 빌딩 유리창이 웅웅 거리며 떨릴 정도다.

"대표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만나셨다간..."

같이 창밖을 보고 있던 공민준이 우려가 듬뿍 담긴 목소리를 내뱉는다.

내가 시위대와 직접 만나겠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 무모하게 보였나 보다.

"밖에서 저러고 있는 걸 내버려 둘 순 없잖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대화한다고 시위대가 설득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만약, 설득에 실패하면 분위기는 더 험악해질 겁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화답해주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듣고는 공민준의 안색이 더 어두워진다. 내 입으로 말했지만, 너무 이상론적인 이야기긴 하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그보다 시위대 대표들을 맞을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6층 응접실에 연회석처럼 자리를 마련해뒀습니다. 지금쯤이면 세팅이 끝났을 듯합니다."

"그렇군요. 우리도 슬슬 올라가 봅시다."

응접실로 올라가니 먼저 도착해 있던 이소영이 우릴 맞이한다.

"어머, 대표님? 벌써 오셨네요."

"벌써라뇨.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앗! 아직인데. 잠시만요. 조금만 더 하면 끝나요. 조금만..."

이소영은 급하게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번 미팅에 앞서, 시위대에게 도토리 코인의 구조와 현황, 그리고 미래 전망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가 너무 급하게 준비해달라고 했나요?"

"괜찮아요. 자료는 이미 다 있던 것들이라서요.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단어만 살짝 고쳐주면 끝나요."

잠시 후, 그녀는 작성한 문서를 출력해서 중앙 원탁에 한 장씩 올려놓는다. 이번 발표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자료들이었다.

"휴... 시간에 맞춰서 마무리는 됐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아녜요. 진짜 고생은 대표님이 하실 텐데요, 뭘."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몇 번이나 닦아낸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시위대 측에 설명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던 공민준도 같은 소릴 한다.

"대표님, 저도 걱정입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상대가 응할 생각이 없으면 말짱 꽝 아닙니까."

사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진심은 통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으니까.

* * *

최윤호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흔한 중위권 대학에 진학해서, 군대도 빨리 다녀왔고, 이젠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학비를 도토리 코인에 올인 투자했다가 원금의 반을 날렸고, 그래서 홧김에 철회 시위에 참석했다.

처음엔 시위장에 한두 번 나가고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시위에 참석했다는 후기를 커뮤니티에 올리자 투자자들의 응원과 후원이 쏟아지는 것 아닌가.

그날부터 최윤호는 매일 시위에 나가는 붙박이가 됐다.

"휴... 긴장되네."

그는 오늘도 시위 후기를 남기기 위해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특별한 일들이 많았기에, 벌써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도토리 시세 반등이 올까요? 더는 못 들고 있겠습니다. 빨리 다 던지고 싶네요.

┗그냥 쥐고 있는 걸 추천. 오늘 채굴 뉴스도 크게 탔으니까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이슈화 크게 되면 정부에서 나설 듯?

┗존버! 존버!

┗무조건 존버죠! 소셜 채굴 막히면 도토리 다시 떡상 확정인데요.

┗떡상 가즈아!

커뮤니티 분위기는 평소보다 많이 들떠 있었다.

철회 시위를 지상파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해준 데다가, 내용도 시위대에게 유리한 것들로 다뤄졌기에 그런 것이리라.

"흠흠."

최윤호는 물을 한잔 마시고 헛기침으로 목도 가다듬는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오늘 시위 다녀온 후기 방송입니다... 소신 발언하겠습니다.]

방송 게시글을 작성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는 캠까지 켜고 실시간 소통 방송을 하고 있었기에, 그 어떤 시위 후기 글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오! 드디어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후기 빨리 들려줘요.

-시위장에 WHTS컴퍼니 대표가 직접 나왔다며? 너도 미팅 장소에 갔었어? 분위기는 어땠어?

-오늘은 시위 현장에 사람이 엄청 많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KBC 아나운서 봤어? 실물이 더 예쁘지?

평소보다 몰린 사람이 많았기에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도 어마어마했다.

"안녕하세요, 형님들. 오늘도 후기 남기려고 방송 켰습니다."

첫인사만 했을 뿐인데 후원이 쏟아진다. 그만큼 오늘 후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저는 평소처럼 판교에 가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10시쯤 처음 보는 분들이 우르르 오시더군요."

"곧이어 관광버스가 와서 사람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도 오고, 방송국 차도 와서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닙니다. 가상화폐를 전혀 모르시는 노인분들이었습니다. 제 생각엔 시위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 같았습니다."

채팅창 반응에 순간적으로 물음표가 찍힌다. 오늘 시위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전문 시위꾼일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래도 그분들 덕분에 대표가 직접 나섰으니...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진짜... 이걸 말해야 하나. 하..."

여기서 말을 끊고 뜸을 들이자 채팅이 폭발한다.

뭔데 그러냐, 빨리 털어놔라, 후원 받으려고 시간 끄는 거 아니냐 등등.

최윤호는 그렇게 일 분 정도를 더 기다리다가 힘겹게 목소릴 짜낸다.

"솔직히 미팅 장소로 초대받았을 땐 놀랐습니다. 회사 측에서 진짜 준비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부끄럽게도 저는 가상화폐를 잘 모르는데,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그의 입에서 회사 측을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가 나오자 채팅창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아니,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파투냈다며? 그런데 준비는 뭔 준비야.

-이 새끼 회사 딸랑이 아님?

-한국말은 끝까지 좀 들어 봅시다. 지금껏 방장이 시위를 몇 번이나 나갔는데요.

-안에서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빨리 해명해!

-해명! 해명!

최윤호는 급히 준비해온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소셜 채굴로 인해 도토리 코인 가치가 하락했다는 점은 저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음성이 나온 뒤로 채팅창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따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이게 어떤 녹음 파일인지는 방송을 보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생소한 개념을 미리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셜 채굴이 정말 철회되어야 할 정도로 나쁜 방식일까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저는 소셜 채굴로 인해 도토리 코인 시세가 오히려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뭔 헛소리야! 지금 코인 시세가 어떤 꼴이 됐는데!

채팅창 반응도 음성 파일에서 내뱉는 일갈과 같았다.

채팅의 절반은 욕설이었고, 나머지 절반도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도토리 코인은 처음부터 싸이클럽과 한 몸으로 개발됐습니다. 그러니 싸이와 와츠가 성장한다는 것은 도토리 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래 봤자 가치가 얼마나 올라간다고 그런 소릴 하는 겁니까?

-소셜 채굴이 시작되고 3주 만에 1억2천만 명의 신규 사용자가 유입됐습니다. 이런 페이스가 계속된다면 올해 안에 가입자 4억 명을 넘기게 됩니다.

서비스 1년 만에 가입자 4억 명.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미친 성장 속도였다.

-미국 증시에 트윗이 상장될 때 가입자가 약 2억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10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았었죠.

-웃긴 소리!

-저는 언론에 보도된 팩트만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의심스러우시면 지금 검색해보셔도 됩니다.

-그런 괴변으로 넘어갈 생각이라면 오산이야!

이후에도 사측에서 조목조목 데이터로 설득하려 들면, 시위대 대표 측은 엉뚱한 말로 소릴 지르기만 했다.

마치, 선생님과 떼를 쓰는 아이의 대화를 듣는 것 같았다.

-이거 진짜 오늘 녹음된 거 맞아요? 음성 파일 조작된 건 아니죠?

-에휴. 수준 딸려서 못 들어주겠네. 소리만 빽빽 질러대고. 저런 놈이 우릴 대표해서 나갔어?

-완전 노답이네요.

녹음 파일이 종료되자 한동안 혼란스럽다는 채팅이 줄줄이 올라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뉴스에 보도된 내용은 사측의 일방적인 파투였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으니까.

-그런데 WHTS컴퍼니 말도 일리가 있지 않아요? 투자해서 도토리 코인 가치가 더 비싸지면 좋은 거잖아요.

-10조... 진짜 그 정도로 떡상하면 대박이긴 하죠.

-가입자가 트윗의 2배라잖아요. 10조 원을 넘길지도 몰라요.

-씁, 다시 사야 하나.

-안 팔고 존버하길 잘한 듯.

한참이나 채팅창을 살피며 침묵을 지키던 최윤호가 입을 뗀다.

"저는 저 현장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미팅하는 내내 누가 우리 편인지 혼란스럽더군요."

아까 같았으면 사측의 프락치니 뭐니 하며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러나 음성 파일이 공개된 이후엔 그런 채팅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제가 주제넘게 뭐라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판단은 녹음 파일을 들은 여러분이 직접 해주십시오."

최윤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종료했다.

방송 종료 직전 마지막으로 본 접속자가 6천 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떠들었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손이 덜덜 떨려온다.

"후우..."

최윤호는 참았던 숨을 몰아서 내쉰다. 그러다 책상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에 표시된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예, 방금 방송 끝냈습니다. 보셨다고요? 어땠습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연극부였거든요. 아유, 알겠습니다, 잔금은 계좌로 입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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