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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TS컴퍼니엔 구내식당이 없다. 그래서 초창기엔 식사 시간이 되면 주변 식당으로 나가서 밥을 먹어야 했다.
메뉴 선택이 자유로운 건 장점이지만, 그 외엔 모두가 단점이었다.
이동 거리가 멀고, 대기 시간도 길며, 결정적으로 너무 번거로웠다.
사옥을 넓은 곳으로 옮기면 전부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그래서 최근엔 빌딩 2층을 대형 카페 겸 휴게실로 리모델링하고, 식사 시간이면 출장 뷔페 업체에서 음식을 공수했다.
넓어진 휴식 공간, 질 좋은 음식, 다양한 메뉴, 가까운 접근성까지.
임시방편치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나 역시 멀리 나가기 싫어서 도시락을 배달시켜서 먹었던 터라, 출장 뷔페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사내에서 밥을 먹다 보니 필연적으로 귀찮은 일도 존재했는데.
"와츠 가입자가 저번 주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기존엔 아시아 위주의 성장이었다면 이젠 미국, 유럽, 남미, 중동. 전 세계적으로 반응이 오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냐면 말이죠."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밥 먹을 때만이라도 업무를 접어두고 싶었는데, 주변 환경이 날 가만두지 않는다.
"이젠 싸이와 와츠가 글로벌한 SNS가 되어 페북과도 경쟁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지게 된 겁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 있다면..."
내 옆에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이는 공민준이다.
그는 말이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무지무지 많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말하는 도중에 숨을 어떻게 쉬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아무도 공민준과 밥을 안 먹으려고 하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밥을 먹게 조용히 해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공민준의 표정이 너무 해맑았다.
"요즘 SNS팀이 야근이다 뭐다 힘든 일이 많을 텐데, 공 팀장님은 에너지가 넘치시는군요."
"제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전 싸이클럽이 한창 잘 나갈 때는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까지 일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일하면 사람이 버틸 수 있습니까?"
"그땐 일이 너무 잘 풀려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 싸이의 인기가 이렇게 빨리 사그라질 줄은... 모바일 전환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게 치명적이었습니다."
싸이클럽이 발 빠르게 모바일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네이티온 메신저가 무료로 공격적인 확장에 나섰다면 국내 SNS 업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다.
어쩌면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싸이가 대기업에 흡수된 순간부터 '발 빠른 대응'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대화를 마쳤을 땐, 국이 다 식어 있었다.
국을 다시 받아올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던 차에, 식당 입구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이 썅! 대표 불러와! 빨리 대표 불러오라고!"
처음 보는 사내가 보안팀 직원들에게 붙잡혀서 끌려나가고 있었다.
외부인은 애초에 입구를 통과할 수도 없었을 텐데, 저 사람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소란의 중심으로 향했다.
"앗! 대표님."
나를 본 담당 직원이 놀라서 고갤 숙인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별 건 아니고, 소셜 채굴을 반대하는 시위대입니다. 식당 관계자로 위장해서 안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최근 도토리 코인 시세가 하락하면서 소셜 채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대 의견이 나오는 정도였지, 이렇게 회사까지 와서 시위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너! 네가 대표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를 잃은 줄 알아? 야! 이거 놔! 놓으라고! 씨팔!"
붉은 조끼 사내는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소릴 지른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놓으라고 했지? 잡지 마라."
"퇴장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사내는 그 뒤에도 한참이나 더 난리를 치다가 끌려나갔다.
내가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자, 담당 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기 바쁘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모든 출입 인원의 통제를 강화하겠습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서 창밖을 내려다본다. 회사 입구에는 아까 봤던 사내처럼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통제만 강화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 * *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나민성 아까부터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론 조작을 도와준다던 전문가가 진짜 국정원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소릴 했다면 농담으로 여기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이 말을 해준 사람은 진짜 국정원을 움직일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실세.
그녀의 말은 한없이 가벼웠으나, 말이 가지는 힘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후우... 젠장."
근처 약국에 들러서 청심환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떨림이 진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근거림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진짜 저들의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가 다 뒤집어쓰는 건 아니겠지?'
뒤집어쓰기만 하면 다행이지, 여차하면 다음 날 변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발을 빼긴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젠장. 젠장. 젠장."
걷다 보니 어느덧 약속 장소가 코앞이다.
오래된 다방 간판이 걸린 상가다.
건물은 심하게 낡았지만, 국정원이라면 이런 곳에 비밀 사무실을 마련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배 찌든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가 풍겨온다.
내부는 완벽히 옛 다방을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마치, 90년대로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 같다.
주변을 더 둘러보고 있던 차에,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넘어온다.
"뭐해? 왔으면 얼른 앉아."
그곳엔 후줄근한 차림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복장은 별 볼 일 없었지만, 눈빛에서 풍겨오는 무게감이 나민성을 긴장케 했다.
"여기가 그... 국정원 사무실입니까?"
"뭐?"
노인은 히쭉 웃더니 커피잔을 들어서 보여준다.
"자네는 여기가 사무실로 보이나? 그냥 다방이야.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려고 여기로 불렀어."
"..."
"그리고 난 이제 은퇴해서 국정원 직원 같은 것도 아니야. 소일거리나 처리해주는 늙은이일 뿐이지."
나민성은 힘이 탁 풀렸다. 진짜 국정원 사무실도 아니고, 상대가 현직 국정원 직원도 아니었다니.
'그 멍청한 년은 어째서 이런 늙다리를 소개해준 거야?'
그래도 아직 실망하긴 일렀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컴퓨터가 줄줄이 놓여있고, 여론 작업 중인 국정원 직원들이 모여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몇 가지 물어봄세."
나민성은 전직 국정원 노인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했다. 공격할 대상은 누구이며, 여론을 움직이는 방향과 최종적으로 이뤄야 할 목적 등.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졌음에도 국정원 직원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초조해진 나민성은 참다못해 질문을 던진다.
"저기... 어르신. 작업은 여기서 하는 게 맞습니까?"
"작업을 여기서 어떻게 해?"
"그야 컴퓨터로..."
컴퓨터라는 말이 나오자 노인이 책상을 내리친다.
"예끼! 요즘 젊은것들은 헛물이 들어서는, 뭐만 할라치면 컴퓨터가 최곤 줄 안단 말이야."
"컴퓨터도 없이 여론 작업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기다려 봐. 곧 도착할 거니까."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방 입구에서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거 봐. 바로 왔잖어."
"누가 오는 겁니까?"
"이 방면의 전문가들."
다방 문이 열리고 안으로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쓴 노인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나이가 적게는 70대, 많게는 그 이상도 돼 보인다.
'미치겠네. 이런 노인네들과 뭘 한다는 거야.'
나민성이 썩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동안, 노인들은 거적때기와 막대기 같은 것들을 열심히 챙긴다.
그렇게 대충 정리가 끝났을 때쯤, 국정원 노인이 다가온다.
"자네도 나갈 준비해."
"어디 가는데요?"
"어디긴 어디야. 일터지."
* * *
국정원 노인을 따라나선 곳은 WHTS컴퍼니가 있는 판교였다.
이미 건물 앞에는 붉은 조끼를 입은 사내들이 소셜 채굴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아군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래 봤자 숫자는 10명 남짓. 이쪽 노인까지 합하면 20명도 안 되는 적은 인원이었다.
"어르신, 설마 여기에 시위하려고 나오신 겁니까?"
"맞아."
"아니... 하..."
나민성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전직 국정원 직원이라고 큰소리를 쳐대더니, 결국 하는 짓거리는 노인 시위대란다.
최명자 때문에 참고 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한계였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장난이라니?"
"이딴 장난질로 어떻게 여론을 움직이냔 말입니다. 어후, 믿은 내가 병신 새끼지."
나민성이 자릴 박차고 나가려던 차에, 이쪽으로 트럭이 도착한다.
트럭 짐칸에는 간이 무대 시설과 공연장에서 쓰는 듯한 커다란 앰프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관광버스들도 줄줄이 도착한다.
"뭐, 뭐야?"
총 6대나 되는 관광버스에서는 사람이 꽉꽉 차 있었다.
노인들은 버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리는 사람마다 붉은 조끼와 머리띠, 깃발을 딱딱 나눠준다.
버스 하나당 45인승이면 270명.
다수의 인파가 도로까지 점거한 채 시위를 시작하자, 어느새 경찰까지 나와서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그리고 무대 세팅이 거의 완료됐을 때쯤, 이번엔 방송국 차량이 3대나 도착한다.
-여기는 가상화폐 집회가 한창인 판교입니다. 시위대는 얼마 전 WHTS컴퍼니가 강행한 소셜 채굴 철회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추산 3000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모여 있으며...
-시위대의 집회 목적은 투자자의 자산 보호이며, WHTS컴퍼니가 응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방송국은 시위 현장을 찍고, 시위대의 인터뷰까지 따간다.
이 모든 일이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맞아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것이 저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인가.'
이대로 시위가 몇 차례 진행되고, 방송에 오르내렸다가, 인터넷까지 퍼지면 여론이 격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봐! 거기서 멀뚱히 뭐 하고 있어?"
무대 옆에서 국정원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까지 왔으면 자네도 밥값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나민성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준다. 그리고는 방금 완성된 간이 무대 쪽을 가리킨다.
"저더러 저길 올라가란 말입니까?"
"그럼 여기서 누가 해? 자네가 인터넷으로 하려고 했던 소릴 저기서 하고 와. 찍고 있으니까 그대로 방송에 나갈 거야."
인터넷 댓글이나 싸지를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어쩌다 보니 지상파 방송을 타게 생겼다.
나민성은 쭈뼛쭈뼛 무대 위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켠다.
-존경하는 투자자 여러분. 소셜 코인 때문에 가상화폐 시세가 어떻게 됐습니까? 대폭락했습니다! 그런데도 WHTS컴퍼니는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나민성이 한마디를 할 때마다 바람잡이들이 구호를 외친다.
"아주 나쁜 놈들이구만!"
"WHTS컴퍼니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구호 외치는 소릴 들어 보니 버스로 동원된 사람들도 한두 번 참석한 솜씨가 아니다.
-WHTS컴퍼니가 사태의 심각성을 안다면 대표가 직접 나와서 투자자들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구호 소리가 더더욱 격렬해진다.
"옳소! 사죄하라! 사죄하라!"
"양심이 있으면 대표가 나서라!"
"나서라! 나서라! 나서라! 나서라!"
성난 목소리가 한데 모여드니 정말로 무슨 일이 터진 듯한 비장함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라면 없던 죄도 만들어낼 기세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시위가 더 진행됐을 때, 난데없이 시위대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뭔 일이야?"
시위대는 무대의 우측, WHTS컴퍼니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민성도 반사적으로 그곳을 돌아봤는데 동시에 '억!' 하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빌딩 입구엔 WHTS컴퍼니의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서 나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이 찾던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입니다. 저는 시위대 대표분과 대화로 오해를 풀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시위대 대표라면 지금 무대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뜻했다.
나민성은 큰일 났구나 싶어서 냉큼 무대를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시선은 아까부터 나민성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