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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코인 기자회견 이후부터, 나는 WHTS컴퍼니의 대표로서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대외 활동의 첫 단추는 기존에 고사하거나 직원들이 대신했던 언론사 인터뷰였다.
"대표님께서는 이번 가상화폐 급등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가 내 앞에 소형 마이크를 살그머니 가져다 댄다.
예전 같았으면 난처한 질문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답을 회피했겠지만, 이젠 그래 줄 생각이 없었다.
"부정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우려라는 표현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시장이 과열된 상태니까요."
"알겠습니다. 우려. 그렇다면 대표님께선 앞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내려간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상화폐는 투자 상품입니다. 당연히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는 법입니다. 오를 때 가파르게 오른 만큼, 내릴 때도 가파르게 내리겠죠."
건수가 하나 나왔는지 기자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대로 기사가 나가게 두면 내일 아침 신문에는 앞뒤를 다 자르고 이런 헤드라인이 박힐 거다.
[WHTS컴퍼니 대표의 경고 "가상화폐는 가파르게 폭락할 것."]
저런 기사가 뜨는 꼴을 안 보려면 구독자가 혹할만한 떡밥을 던져줘야 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개인 투자자들과 전문 투자자들의 정보격차입니다."
"그건 가상화폐 투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지 않나요? 주식이나 다른 투자 상품도 투자자 간에 정보격차는 존재할 텐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기존 투자 상품은 내부자 거래를 막는 등의 법적인 안전장치가 있죠."
한국은 관련법이 허술하지만, 미국은 내부자 거래 행위가 확실하게 입증되면 살인죄와 맞먹는 형량이 선고된다.
"하지만 가상화폐 판에서 내부자 거래로 부당 이득을 취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관련 법이 없으니..."
"아무런 처벌을 안 받습니다. 사실상 개인의 양심에 기대야 하는 겁니다."
개인의 양심.
돈이 오가는 투자판에서 이보다 가벼운 단어가 또 있을까.
"폭락이 문턱까지 왔을 때, 내부자와 전문 투자자들은 한발 빠르게 물량을 내던질 겁니다. 모든 피해는 정보 창구가 없는 개인이 뒤집어쓰겠죠."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인터폰이 울린다.
삑.
-대표님,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인터폰을 끄고 몸을 일으킨다. 그러자 인터뷰하던 기자도 급하게 따라서 일어섰다.
"최근에 저를 찾는 곳이 많아서 바쁘네요. 인터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시죠."
"대표님, 한 가지만 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자르고 들어간다.
"기자님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했었죠?"
"내일경제 신문의 권지은입니다."
"우리 기자님과는 이쪽 방면으로 말이 통하는 것 같아서 인터뷰가 편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뵙고 싶네요."
기자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속적으로 기삿거리를 제공해준다는 뜻이었으니 웬 떡이냐 싶었을 거다.
'앞으로는 언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테니, 나도 아는 기자를 미리 만들어두는 편이 낫겠지.'
* * *
인터뷰가 끝난 뒤, 곧장 차를 타고 여의도 컨벤션 센터로 향한다.
오늘 그곳에선 4차산업혁명과 가상화폐를 주제로 한 행사가 열린다.
가상화폐의 주목도가 높아져서 전국적으로 비슷한 행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지만, 이번은 여타 쭉정이 행사와 급이 달랐다.
"미래창조부에서 가상화폐 관련 행사를 주최하다니, 너무 뜬금없지 않아요?"
조수석에서 질문이 넘어온다. 행사에 같이 참석하게 된 이소영이었다.
나는 WHTS컴퍼니의 대표로서, 그녀는 도토리 코인의 개발자로서 행사장에 초대받은 참이다.
"정부에서 직접 챙길 만큼 가상화폐가 유명해졌다는 거겠죠. 언론에서도 연일 보도하고 있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괜히 불안하네요."
"뭐가 불안하다는 겁니까?"
"이번 행사에 저희 말고도 업계 사람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잖아요.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내기 전에 형식적으로 이런 행사를 연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의 가상화폐 정책이라면 썩 좋은 기억이 없다.
십중팔구는 가상화폐 규제책을 꺼내 들 것이고, 실제로 그런 규제책은 가상화폐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타이밍이 2년 이상 빠르다. 이미 가상화폐 쪽은 시간의 흐름이 뒤틀렸다고 봐야겠지.'
어쩌면 시기가 당겨진 게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아직은 가상화폐라는 불길이 크게 번지기 전인 만큼, 정부의 빠른 대응이 조기 진화를 이뤄 낼지도 모른다.
행사장에 도착하자 입구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초대받은 사람이 이리 많지는 않을 테니, 대부분 가상화폐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이 몰린 것이리라.
"어? 저 사람... WHTS컴퍼니의 대표 이사 아니야? 대니얼인가 다니엘인가 하던."
"아이 씨, 진짜네. 여긴 왜 온 거야. 또 초 치러 온 건가?"
"지금이라도 빨리 다 팔아요. 저 사람 초대받은 거 보면 정부 스탠스가 안 봐도 훤하네요."
우리를 보는 행사장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이소영도 그걸 느낀 건지, 내 옆으로 바짝 달라붙어서 몸을 움츠린다.
"대표님, 사람들이 왜 저러는 거죠?"
"최근에 가상화폐 급등을 경고하는 발언을 몇 번 했더니,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분위기라니..."
"이 정도면 양호한 겁니다. 그저께 참석한 행사에서는 입 다물지 않으면 혀를 잘라버린다고 하더군요."
"너무해."
투자자들에게 가상화폐 시장은 IT라는 포장지만 씌워뒀을 뿐, 하우스 도박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곳에 찾아가서 망한다는 말을 하고 다니면 과격한 반응이 돌아올 수밖에.
"대표님은 뭐하러 바른 소릴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그런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요."
"사실, 저도 사람들이 경고를 들어줄 거란 기대는 안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다 나중을 위해서죠. 이렇게라도 해두지 않으면 급락 이후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원망과 비난이 돌아올 겁니다."
일종의 면피성 행보라고 보면 된다. 이러다 운 좋게 위험을 피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생기면 좋은 것이고.
"지금 투자를 말리면 나중에 원망을 피할 수 있을까요?"
"완전히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는 거죠."
이소영은 내 옷깃을 꽉 붙잡으며 고갤 푹 숙인다.
"죄송해요. 제가 가격만 잘 방어했다면 이런 걱정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제가 누누이 말했지만, 그건 소영 씨 잘못이 아닙니다. 언제고 올 것이 지금 온 것일 뿐."
"..."
이소영은 너무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기에 사고가 나면 좀처럼 회복이 안 된다. 이럴 땐 단체로 휴가라도 다녀오면 좀 나을 텐데, 당최 일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번 정부 발표가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어주면 좋겠는데, 쉽진 않겠지.'
행사장의 옆으로 빠져서 무대 뒤편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간다.
나는 이번 행사에서 연설이 예정돼 있었기에 미리 대기실로 가서 대기해야 했다.
끼익.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무거운 인상의 중년인이 홀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나처럼 연설을 준비하러 온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돌아서 지나가려던 차에, 그가 나를 불러세운다.
"대니얼 신 맞습니까? 아니지, 그보다 신우혁 씨라고 불러야겠군요."
"누구신지?"
그제야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앉아 있을 땐 위압감 때문에 몰랐는데 키는 작은 편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어쩐지 어딘지 낯이 익더라니, 그는 대통령 비서실의 민정수석이었다.
"이번 행사는 청와대에서 직접 지시가 내려온 행사입니다. 신우혁 씨의 연설 또한 그 지시에 포함돼 있었고요."
내 연설을 청와대에서 원했다고? 정부는 가상화폐 규제를 원하니 그 명분을 내가 만들어주길 원하는 건가?
하지만 이어지는 비서관의 말은 내 예상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오늘은 가상화폐 투자에 긍정적인 면이 두드러지도록 연설해주십시오."
* * *
가장 가상화폐를 부정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초대해서 가상화폐의 긍정적인 면을 연설해달라고 한다.
이게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도저히 정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단상에 올라야 했다.
발표는 무난하게 진행됐고, 별다른 사건이나 사고 없이 행사가 마무리됐다.
우리는 찜찜함을 간직한 채, 늦은 저녁을 먹으러 행사장 근처의 초밥집에 들렀다.
"이상하네요. 정부에서 규제 명분을 얻으려면 더 강경한 발언을 해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긍정적인 면을 발언해 달라니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마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죠."
"에이, 설마요."
가상화폐는 기본적으로 탈 중앙화를 목표하는 만큼, 국가로선 눈엣가시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가상화폐를 국가에서 장려할 이유를 굳이 만들어 보자면...
'대통령이 코인이라도 사뒀나?'
너무 말도 안 되는 가정인지라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다 8시가 되고 저녁 뉴스가 나오는데.
"어? 대표님 나왔네요."
뉴스 첫 꼭지에서 가상화폐 행사가 언급된다. 자료화면은 내가 단상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가상화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뉴스에선 내가 연설에서 언급했던 다른 내용은 다 잘라버리고, 가상화폐를 옹호하는 발언만 살짝 보도된다.
이래서 언론이 내보내는 것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 거다.
-미래창조부에선 다가올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고자, 창조경제를 이끌 가상화폐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진짜 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를 장려할 줄이야. 기사를 보고 나서야 민정수석의 행동이 이해된다.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출시할 예정이며, 이는 전 세계 최초의 국가 주도 가상화폐 발행입니다.
옆에서 이소영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왜 저런 세금 낭비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말처럼 정부 기관에서 만들어낸 물건은 세금만 낭비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뉴스에 신경을 끄고 먹던 초밥에 시선을 돌린다.
톡.
간장에 초밥 끝을 찍어서 입으로 가져가려던 차에 옆에서 '왁!' 하고 비명이 나온다.
"콜록. 콜록. 소영 씨, 뭡니까."
"포털 뉴스에요. 정부가 발표한 코인의 자세한 사항까지 올라왔어요. 이름은 아리랑 코인인데, 이게 너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이소영은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며, 뉴스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나간다.
"아리랑 코인은 기존 가상화폐의 예치 시스템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율은 기존 가상화폐보다 높은 20%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예? 정부가 내놓는 코인의 이자가 연 20%가 넘는다고요?"
"그러니까요. 이건 불가능하잖아요."
도토리 코인이 이율 15.9%를 보장할 수 있는 이유는 싸이클럽과 와츠에서 나오는 수익과 담보로 잡은 비트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도 가상화폐가 하락세에 접어들면 이율을 낮춰야 할 판인데, 어찌 수익 하나 없는 정부 코인이 이자를 20% 넘게 준단 말인가.
"저 아리랑 코인, 이율 20%면 1년도 못 버틸 거예요."
이소영의 말이 맞을 거다. 그녀는 도토리 코인으로 수백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을 테니까.
정부에서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손해를 세금으로 다 메꿀 생각인 걸까? 아니면 대놓고 한탕 치고 빠지는 폰지 사기?
"아리랑 코인이라는 거, 정부가 직접 발행한 가상화폐가 맞습니까?"
"직접 발행은 아닌 것 같아요. 정부는 인증만 하고 개발과 운용은 외부 업체에서 한다는 것 같은데요?"
저게 사실이라면 나중에 외부 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게 쉽지 않겠지만, 문득 현 정부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대표님. 지금 저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뭡니까?"
이소영은 휴대폰 화면을 돌려서 내게 보여준다.
그 화면에는 도토리 코인의 차트가 떠 있었는데, 정확히 뉴스가 나온 직후부터 시세가 50% 넘게 치솟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