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62화 (6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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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도 없이 찾아온 소프트포우의 창립자이자 일본 최고의 부호 신정의 회장.

그는 WHTS컴퍼니의 응접실에서 약 2시간가량 이야길 나누고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후..."

그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 때문에, 같이 앉아서 대화만 했음에도 정신적 피로가 장난 아니다.

"신정의 회장.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

그런 사람이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내게 접근해왔다.

이건 기회였다. 세계적인 투자사의 오너를 내가 서 있는 영역으로 끌어당길 천재일우의 기회.

나는 그 기회를 살리고자 그가 가장 흥미를 느낄만한 방식으로 제안을 던졌다.

'상대가 거대한 고래라고 이끌려 다녀선 안 돼. 이곳은 내 전문 영역이다. 내가 주도하도록 판을 짜야 해.'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던 상체를 바로 세우고 응접실 인터폰을 들었다.

"사내에 있는 팀장들, 응접실로 올려보내 주세요."

내 말이 떨어지고 5분도 안 돼서 팀장급 모두가 응접실에 모였다.

그들도 신정의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을 테니, 내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다들 아시겠지만 방금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그중에 여러분이 아셔야 할 부분은... 투자 건입니다."

모두가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다. 세계적인 투자사 회장이 한국까지 찾아와서 할 이야기라곤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이때, 가상화폐 개발팀 이소영이 질문을 던진다.

"대표님, 저희가 외부에서 투자받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도토리 코인 발급으로 사내 자금은 충분하잖아요."

그녀에 이어 공민준 팀장도 한 마디를 내놓는다.

"소프트포우는 일본의 통신사, 금융사, 보험사, 포털 사이트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연계를 생각하면 손을 잡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와츠는 이미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면서요? 그런데 제휴가 필요한가요?"

"쉬운 길을 앞에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저는 외부의 개입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 회사를 운영했으면 좋겠어요."

공민준이 당황스럽다는 듯 내게 도움의 시선을 보낸다. 이소영이 이렇게 강경히 반대하고 나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신정의 회장님과 투자 이야길 했던 건 사실입니다. 이미 한 차례 거절했었지만, 여전히 아쉬워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도토리 코인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요청했습니다."

팀장들 사이에서 깜짝 놀란 반응이 튀어나온다. 돈이나 주식도 아닌 코인 투자는 지금껏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놀란 사람은 당연히 도토리 코인을 총괄하는 이소영이었다.

"자, 잠깐만요. 신정의 회장님처럼 거물 투자자가 도토리 코인을 산다고요? 농담하시는 거죠?"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만 저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꽤 크다고 봅니다."

"말도 안 돼요. 이런 날이 찾아올 줄이야..."

이소영은 아까보다 더 흥분했는지 입을 뻐끔거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그걸 본 공민준이 의아하다는 듯 물어온다.

"도토리 코인으로 투자받는 게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내가 말할 새도 없었다. 이소영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대단한 일이죠! 세계적인 투자사인 소프트포우가 도토리 코인을 사는 행위는, 가상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인정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쪽에서 인정하면 뭐가 달라지죠?"

"가상화폐를 투자 상품으로 다루는 금융사들이 늘어날 거예요. 그 말은... 이 판으로 엄청난 자본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뜻이에요."

금융계의 엄청난 자본.

다른 팀장들은 이소영의 설명을 듣고도 감이 안 잡히는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데이터 쪼가리에 돈이 들어와봤자 얼마나 들어오겠냐고 생각 중이겠지.

나도 직접 '코인 광풍'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다.

"이번 투자 건으로 가상화폐 시세가 요동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토리 코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메뉴얼이 짜여 있으니까요."

이소영은 자신 있다는 듯 목소릴 높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준비해주십시오. 이번 일은 규격 외의 쓰나미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가상화폐 폭등기가 찾아오면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인이 가상화폐라는 광기의 축제에 빠져서 미쳐 날뛰게 될 거다.

그 축제는 본디 2017년 하반기부터였지만 이번 같은 대형 이슈가 터진다면, 시기가 1년 이상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 * *

"이번 결정으로 중국 인민은행은 예금지급준비율을 소폭 인하할 조짐이 보입니다. 이에 컨센선스를 재조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언제나 같은 시각에 같은 주제로 진행되는 소프트포우의 아침 회의 시간.

평소라면 어떤 주제의 브리핑이라도 끝까지 들어주는 신정의 회장이었으나, 오늘은 이례적으로 도중에 손을 들어서 브리핑을 멈춰 세운다.

"중국 소식은 이만하면 됐어. 다음은 내가 어제 주문했던 가상화폐 관련 보고를 듣고 싶네만."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난다. 모두가 일본 내에서 초엘리트로 불리는 유명 IT 전문가였다.

"말씀하셨던 가상화폐의 기본 원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상화폐는 실물이 없고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자산을 일컫는 말로, 도토리 코인은 암호화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암호화폐란..."

가상화폐의 개념을 보고서 몇 쪽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명은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듣고 있던 신정의 회장의 표정에 점차 지친 기색이 짙어진다.

"여기서 암호화 기술은 P2P 네트워크에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듣다 못 한 신정의 회장이 책상을 툭툭 두드린다.

"이보게. 내가 원하는 것은 기술적인 이해가 아니라, 투자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냐는 거야."

"그... 온라인에서 거래는 되고 있으니 상품의 범주엔 들어간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큰 문제는 없겠군."

신정의 회장은 간단하게 결론을 내버렸다. 그러자 이번은 투자사 쪽 임원들이 목소릴 높인다.

"회장님,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상화폐는 굉장히 불완전한 화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이걸 화폐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불안정하고 외부 공격에도 취약합니다."

"일부 소유자들이 너무 많은 물량을 보유한 것도 문제입니다."

신정의 회장은 쏟아지는 반대를 묵묵히 듣고 있다가 조용해진 뒤에야 입을 연다.

"도토리 코인에는 은행 예금처럼 예치하면 이자를 주는 시스템이 있더군. 그런데 거기 이율이 얼만 줄 아나?"

그는 혼자서 히쭉거리면서 웃다가 한 마디를 툭 던진다.

"11.9%"

두 자릿수 수치가 공개되자 곳곳에서 코웃음이 터져 나온다. 일본의 은행 이자는 많아야 0.5%였고, 선진국도 대부분이 5% 이내의 이자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은행도 아닌 일개 디지털 화폐 업자가 11.9%라는 높은 이자를 준다고 하니 기가 찰 수밖에.

"자네들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진다.

"말도 안 됩니다. 두 자릿수 이자는 리스크가 큰 남미 지역의 은행이나 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런 이자를 줬다간 2, 3년 안에 자금이 바닥날 겁니다."

"그 정도면 폰지 사기나 마찬가집니다."

폰지 사기는 높은 이자를 미끼로 끊임없이 새로운 가입자를 모집한 뒤, 그 돈으로 초창기 투자자의 이자를 주면서 버티다가 한순간 잠적하는 사기를 뜻했다.

"나도 가상화폐를 접하고 비슷한 생각을 했었네. 구조가 폰지 사기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그런데 투자하시겠단 말씀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와츠라는 서비스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와츠가 아무리 유망하다 해도 11.9%의 이자를 계속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정의 회장은 기억을 더듬듯, 허공을 응시한 채로 중얼거린다.

"와츠가 일본 시장에 들어올 때도 모두가 입을 모아서 실패할 거라고 했었지. 그런데 결과는 어찌 됐나?"

"이번 건은 다릅니다. 11.9%라는 무리한 이자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한 일이잖습니까."

"자네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나?"

"그건...

방금까지 열변을 토해내던 임원이 말을 흐린다. 열에 아홉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주저하게 한 것이다.

"자네와 달리 그는 이번에도 확신에 차 있었어. 만약 성패를 물었다면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성공한다고 했겠지."

사실, 신정의 회장은 회의 전에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도토리 코인의 개념이나 가능성보다, 투자를 요청한 대니얼 신의 자신감을 보고 베팅을 결정한 것이다.

* * *

손정의 회장이 한국에 찾아와서 WHTS컴퍼니에 방문했다는 소식은 가상화폐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700달러 선에서 횡보하던 비트코인이 하루 만에 1000달러를 뚫었고, 이더리움과 라이트 코인도 80%가 넘는 상승을 이어갔다.

미친 듯한 폭등으로 가상화폐 투자자 모두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 바쁜 가운데, 유일하게 이런 흐름에 끼지 못 하는 그룹이 있었다.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이슈의 중심인 도토리 코인 투자자들이었다.

-진짜 너무하네요. 비트나 이더, 심지어 개 잡코인인 도지도 쭉쭉 올라가는데 도토리는 언제까지 이대로 있어야 합니까?

-옳소! 참으면 안 됩니다. WHTS컴퍼니에 찾아갑시다.

-도토리 코인에 자유를!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어딜 가더라도 도토리 코인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다른 코인들이 50%에서 80%까지 치솟을 때, 도토리 코인만 끝까지 9달러에서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어요. 꼬박꼬박 이자 나오는 거로 만족하세요.

-아니, 한두 푼이면 모르겠는데 이더는 80% 올랐다고요!

-원래 도토리는 안정성 보고 사는 겁니다. 시세 차익 먹으려면 도토리 말고 이더리움이나 도지 코인을 샀었어야죠.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언제까지 9달러 유지 시킬 겁니까? 회사 찾아가서 시위라도 해야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죠. 스트레스 받아서 안 되겠네요.

-오오! 힘을 합쳐 봅시다!

회사에 쳐들어가니 마니를 놓고, 한껏 시끌시끌하던 와중에 누군가 시세 차트를 가져온다.

-어? 도토리 9달러 깨졌는데요? 10.2달러예요.

-뭐지? 거래소 오류인가?

-예전에도 거래소 오류로 10달러 갔었어요. 30분 만에 도로 9달러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도 똑같을 듯?

-코인피버에서도 10.2달러예요.

도토리 코인은 9달러가 넘으면 자동으로 새로운 코인을 찍어냈기에, 구조적으로 9달러를 넘길 수 없었다.

그런데 시세가 갑자기 9달러를 넘어 11달러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혹시 대형 호재라도 떴나요? 그래서 시세가 폭등하는 거라면.

-호재로 폭등해도 무한으로 코인을 새로 찍어내면 가격은 다시 내려가는 거 아녜요?

-이론상 도토리 코인을 새로 찍어내는 속도보다 시장에 매수자가 더 많으면 시세는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에이,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그때, 누군가가 방금 갓 올라온 뉴스 속보를 긁어 온다.

[소프트포우의 과감한 행보. 가상화폐 도토리 코인에 직접 투자한다. 투자액은 3000만 달러를 넘길 것으로 보여.]

모두가 기다렸던 초대형 호재의 등장이었다.

속보 등장을 기점으로 10달러 초반이던 도토리 코인의 시세는 폭등을 넘어, 계단식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헙! 10.6달러! 가격 고정 깨진 게 맞아요.

-국내는 10.8달러요. 이대로 11달러 가겠는데요?

-돈이 너무 몰리니까 회사에서 손 놔버렸나 봐요. 아니면 이렇게 오를 리가 없습니다.

-12달러. 12.6달러...

-아니, 내가 파니까 더 오르네.

속보가 뜬 이 날.

단 하루 만에 도토리 코인은 9달러에서 20.6달러까지 130%의 폭등을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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