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61화 (61/174)

< 61 >

일본에서 K팝 아이돌이 흥하자 덩달아 현지의 와츠 가입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첫 주 가입자 40만 명, 둘째 주 가입자 310만 명, 셋째 주 가입자 760만 명.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앱 사용자의 실사용률이 무려 55%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이었다.

와츠는 소통이 필요한 타 SNS와 달리, 특별한 행위 없어도 영상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1분 간격으로 사용자에게 맞는 연예, 코믹, 이성, 취미 등의 영상이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구조였으니.

일단 사용자를 앱 설치까지만 유도하면 그다음은 잡은 물고기나 마찬가지였다.

방송의 인기와 짧은 영상의 중독성.

분석가들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와츠의 성공 요인으로 꼽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것들이 빛을 보게 만든 진짜 요인은 따로 있었다.

"어서 와! 우혁!"

허름한 캠핑카의 문을 열자 안에서 제시가 토끼처럼 폴짝 뛰어서 내 옆에 들러붙는다.

남미의 드넓은 풍성함과 탄력을 느끼기도 전에 수장인 넬라가 그녀를 잡아다가 저 뒤로 떼어낸다.

"넬라, 이거 놔. 왜 방해하는 거야!"

"우혁이 싫어하잖아."

"드라마 못 봤어? 원래 한국 남자들은 내숭쟁이야! 사실은 좋으면서 마음 표현을 서툴러 한다고."

"그건 드라마잖아. 현실엔 도민준 씨가 없어."

투덕거리던 두 사람 입에서 드라마와 한국 남자 이야기가 나오자, 안에 있던 다른 멤버들도 가세해서 떠들기 시작한다.

"드라마와 비슷하지 않아? 적어도 내가 만난 한국 남자들은 전부 드라마처럼 자상했어."

"맞아. 너무 친절해. 말을 끝까지 들어 줘."

"하얀 피부에 귀여운 외모지만 실제론 전문 훈련을 받은 군인이잖아. 그 갭이 너무 멋진 것 같아."

"그래도 도민준 씨가 더 잘생겼어."

"그는 배우잖아."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처음엔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나도 반쯤은 즐기고 있었다.

"넬라? 보고 사항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리더인 넬라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때 멤버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제시가 다시 펄쩍 뛰어서 앞으로 뛰쳐나온다.

"내가 보고 올렸어! 소탕 작전이 끝나서 이젠 작전을 종료한다고 올린 거야."

그녀가 언급한 '소탕 작전'이란 뉴스 댓글, SNS, 커뮤니티 등지에서 활동하는 넷우익을 저격하는 행위를 뜻했다.

"넷우익 쪽에서 백기라도 들었습니까?"

"그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 쪽에 우호적 팬들이 단단해져서 그들이 힘을 못 쓰는 상황까지 왔어."

나는 휴대폰을 켜서 일본 포털의 K팝 아이돌 뉴스를 검색했다.

뉴스의 상위 댓글은 특정 멤버를 응원하는 댓글, 다음 화가 기대된다는 긍정적인 댓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댓글이 몰라보게 깨끗해졌군요."

혹시 싶어서 댓글을 쭉쭉 내려봐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저번 주만 해도 댓글의 절반이 악플이었는데 이 정도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추천 조작이라도 했습니까?"

"노우! 그랬다간 바로 차단당해서 소중한 포털 아이디를 못 쓰게 돼."

"그럼...?"

"내가 전에 말했던 격리 전략을 쓴 거야."

격리 전략이란 넷우익이 악플을 달면 빠르게 신고를 누적시켜서 막아버리거나, 새로운 댓글을 대량으로 달아서 악플 자체를 뒤로 밀어 버리는 작업을 뜻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 댓글을 아무리 써도 반응이 없기에, 대상은 빠르게 흥미를 잃게 된다.

"뉴스 댓글은 이만하면 된 것 같고, 트윗이나 페북 쪽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거긴 초반부터 휘어잡았지. 이젠 넷우익이 K팝 아이돌 이슈는 일부러 피해 다닐 정도야. 잘못 걸렸다간 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물어뜯어 버리거든."

집요하기로 소문난 넷우익이 꼬리를 말고 내뺄 정도면, 일반 악플러는 아예 숨도 못 쉰다고 보면 된다.

"어때? 이쯤이면 깐깐한 우혁이라도 오케이를 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마지막까지 경과는 더 지켜봐야죠."

"너무해! 우리 사이에 진짜 그러기야?"

나는 툴툴거리는 제시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성공 보수에 보너스까지 넣어서 오늘 내에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예이! 우혁, 최고야!"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시와 멤버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어찌나 폴짝거렸으면 캠핑카가 들썩거릴 정도다.

'인터넷 여론 관리의 효과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클 줄이야.'

이번 일의 성과를 생각하면 보너스를 억대로 퍼줘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앞으로 와츠가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억이 아니라 조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을 테니까.

'이번처럼 은밀하게 작업하는 것으론 활동 영역의 한계가 명확해. 이런 시스템을 양지로 끌어 올릴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 * *

[K팝 아이돌의 무서운 상승세! 최고 시청률 19.8%! 역대 아이돌 오디션 중 최고치!]

[와츠 베타버전으로 가입자 1000만 명 달성하나? 이번 주 내에 1000만 명 넘길 것으로 보여.]

[페북의 아성을 위협하는 와츠. 가입자는 적지만 실 사용시간은 이미 역전했다.]

일본에서 와츠의 성장세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부정적인 기사만 쏟아내던 언론사들의 논조가 바뀔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할까?

이렇게 와츠의 인기가 커질수록 덩달아 기업들의 러브콜도 격렬해진다.

직접 투자를 원하는 투자사는 물론이고 제휴나 협업을 원하는 일반 기업, 심지어 홍보를 목적으로 지자체에서 직접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전혀 의외의 업체가 우리 측에 접촉해왔다.

소프트포우.

이미 투자 제안을 파투낸 적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후폭풍까지 겪었던 우리로선 절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업체였다.

하지만 이번은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어째서냐고? 소프트포우의 창립자, 신정의 회장이 직접 한국으로 넘어와서 WHTS컴퍼니 사무실까지 찾아와버렸으니까.

"예고도 없이 찾아오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그 소식을 접했을 땐, 이미 신정의 회장이 우리 건물 입구에 도착한 뒤였다.

그가 있는 응접실로 향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가 직접 찾아온 목적이 뭐지? 투자인가? 아니야, 투자는 저번에 확실히 거절했잖아. 그렇다면... 제휴?'

생각에 빠져서 걷다 보니 어느새 응접실이 코앞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창 너머로 슬쩍 안을 살핀다.

응접실의 중앙 테이블엔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일반인에게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저 사람이 맨바닥에서 일본 최고의 부호가 된 희대의 사업가, 신정의 회장인가.'

나는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서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릴 듣고 신정의 회장이 일어선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외국인의 어색한 억양이 듬뿍 담긴 한국어였다.

"안녕하세요. 신정의입니다."

나는 어찌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같은 한국어로 인사를 받았다.

"WHTS컴퍼니의 대니얼 신입니다."

"만, 나, 서, 반, 갑, 습, 니, 다."

이번은 아예 발음을 따라서 이어 붙인 듯한 한국어가 나온다.

"한국어가 힘드시면 영어를 쓰셔도 됩니다."

그제야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영어를 내뱉는다.

"그래도 될까?"

"회장님께서 편하신 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만약 일본어 통역이 필요하면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아니야. 통역이 붙으면 번역은 확실할지 몰라도, 진심이 통하지 않는 법이지."

신정의 회장은 앞에 놓인 차를 한번 홀짝거리고는 본격적인 이야길 꺼낸다.

"내가 너무 갑자기 찾아왔나?"

"놀라게 할 생각으로 이러셨다면 확실히 성공입니다."

"하하핫. 내가 직원들을 통해서 몇 번이나 자릴 만들려고 했는데, 전부 빠꾸를 맞았지 뭔가."

"아무래도 저번 일이 저희에겐 부담이다 보니..."

그는 이해한다는 뜻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때의 일은 내가 정식으로 사과함세."

"사과라뇨. 회장님께서 좋은 일로 제안해주신 것 아닙니까."

"아니야. 사과할 일은 확실히 사과해야지. 의도는 좋았을지라도 결과적으론 자네에게 피해를 준 셈이 됐으니 말이야."

"언론사 쪽에서 받아야 할 사과를 회장님께 받는군요."

언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신정의 회장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다.

"언론? 혐오로 대중을 선동해서 돈을 버는 자들을 어찌 언론이라 부르겠나. 그 치들을 언론이라 부르면 언론이라는 단어가 오염될 게야."

"쌓인 게 많으셨나 봅니다."

"나야 당한 게 어디 한 둘인가. 이젠 그놈들 꼬락서니를 보면 헛구역질이 나와."

이후에도 신정의 회장은 극우 언론사, 정치인과 어떤 악연을 맺었는지 설명해준다. 참고로 말하는 동안 절반이 욕이었다.

"아, 미안하게 됐구먼. 늙은이가 신이 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놔 버렸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는 살짝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나와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드디어 본론이 나오려나 보다.

"내가 한국에 찾아온 이유는 투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넬 만나보고 싶어서였어."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내 기준에선 충분히 특별해. 내 투자를 거절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던 청년 사업가. 그리고 그 자신감처럼 가볍게 사업을 성공시킨 청년 사업가. 내가 50년이 넘도록 사업을 해오면서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일세."

신정의 회장은 내 얼굴을 뚫어버릴 기세로 빤히 쳐다본다.

"자넨 언제 성공을 확신했나? 무엇을, 어떻게 보고? 조짐이 있었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거짓말 말게. 자넨 이미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어. 그게 아니라면 망망대해를 떠돌던 와중에 다가온 구조선을 그냥 보낼 리가 없지."

맞는 말이다. 만약 내게 일본 시장의 확신이 없었다면 무조건 소프트포우와 손을 잡았을 거다.

자본이 충분하더라도 소프트포우가 보유한 통신사와 포털, 금융 서비스가 연계된다면 와츠의 흥행에 엄청난 도움이 됐을 테니까.

신정의 회장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같은 말을 내뱉는다.

"정말 아깝더군. 자네가 투자를 받았다면 와츠는 소프트포우의 막강한 지원을 바탕으로 일본 제1의 SNS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회장님께서 지원해주신다면 와츠는 언제든 1위를 노릴 수 있습니다."

"지분은 내주지 않으면서 지원만 받겠단 소린가?"

나는 그가 오해하기 전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다른 방면의 투자를 받겠다고요."

"다른 방면의 투자? 혹시 가상화폐?"

"예, 저희 도토리 코인에 투자하시죠. 그거라면 저도, 회장님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신정의 회장은 그 말을 들은 직후부터 한참을 껄껄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목소릴 높인다.

"언제 가치가 0원이 될지도 모르는 디지털 쪼가리를, 나더러 돈 주고 사란 소린가?"

"도토리 코인은 일반 디지털 쪼가리와는 핵심적인 부분이 다릅니다."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제가 보증하는 디지털 쪼가리거든요."

나는 일부러 뻔뻔하게 보이려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정의 회장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가 이내 김빠진 웃음이 터져 버린다.

"허허... 자넨 당돌한 걸 넘어서, 자신감 과잉?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무튼, 말로 표현이 안 되는구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래. 칭찬이 맞지. 맞아. 내게 이런 소릴 듣는 사람은 자네가 최초이자 마지막일 테니까."

그는 졌다는 듯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서 자네가 보증하는 디지털 쪼가리를 사면, 나는 뭘 얻게 되나?"

"아까 회장님께서 물으셨잖습니까. 망망대해에서 다가온 구조선을 그냥 보낸 이유가 뭐였냐고요."

"그랬었지."

"저와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실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