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60화 (60/174)

< 60 >

과거의 언론사들이 신문 판매 부수로 돈을 벌었다면, 현대 언론사는 클릭 수로 돈을 번다.

그렇기에 클릭 수 확보를 위한 자극적인 제목과 소재는 물론이고, 낚시성 소식을 올리거나, 가끔은 얼토당토않은 오보를 그대로 퍼 나르기도 했다.

미사카 신문 역시 클릭 수에 목을 매는 흔한 중소 언론사 중 하나였다.

주로 극우 성향의 구독자에게 먹히는 기사를 취급했는데, 그들이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 주제는 단연 한국이었다.

"아으, 요즘 왜 이리 기삿거리가 없어? 북쪽으로 미사일이라도 퓩퓩 쏘란 말이야. 젠장."

요시다의 투덜거림에 옆에 있던 동료 기자가 말을 받아준다.

"소프트포우와 한국 SNS업체를 엮어서 특집 기사 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 잘만 쓰면 조회수 좋게 나올 것 같은데요."

소프트포우의 신정의 회장은 한국계 일본인인지라, 극우 성향의 구독자들에게 늘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런 신정의 회장과 건방진 한국 업체의 기사라면 조회수는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좋은 아이템이긴 한데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같은 기사로 재탕 삼탕 우려먹는 것도 이젠 한계라고."

"그래도 조회수는 잘 나올걸요."

"뭐, 그렇긴 하지."

요시다는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참이나 틱틱거리다가 말을 잇는다.

"마코토, 자네는 무슨 기사 준비하고 있어? 슬슬 하나 올리지 않으면 위에서 난리를 칠 텐데."

"저는 제 전분 분야로 쓰고 있습니다."

"북한?"

"예. 그쪽이 다루기 편하잖습니까."

북한 관련 기사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꿀단지로 알려져 있었다.

어떤 망상을 써갈겨도 크로스체크할 방법이 없으니, 최대한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다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소프트포우 쪽은 까딱 잘못하면 고소가 들어오니 막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도 북한 기사나 하나 쓸까?"

"이것도 쉬운 게 아닙니다. 이미 나온 것들이 너무 자극적이라, 어지간한 건 약발이 안 먹히거든요."

"여기나 저기나 전부 개판이구만."

요시다는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어찌 됐든 오후까지는 기사를 하나 써야 했으니, 한국 포털에서 적당한 반일 기사를 하나 긁어올 생각이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포털 인기 급상승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K팝 아이돌, 충격적인 첫 방송에 시청자들 경악!! 비인기 아이돌의 처절한 일상을 날 것 그대로 공개하다.]

K팝 아이돌은 일본에도 같이 방송한 한일 동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미 일본에는 비슷한 포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았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뉴스 댓글을 읽다 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기존 합격자 중에 일본인 멤버는 너무 불쌍하네요. 한국까지 와서 죽도록 고생만 하고 다시 귀국. 저게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씁쓸...

한일 동시 오디션인데 일본인 멤버가 죽도록 고생을 했다? 게다가 그 오디션의 스폰서가 반일 기업이라면.

요시다의 머릿속에 다양한 헤드라인이 주르륵 떠올랐다.

-충격 상황! 아이돌 오디션까지 번진 반일 기업의 일본인 혐오.

-피해자 XXX양. "한국 방송사에 속았다. 오디션 참가한 것을 후회."

-일본인을 들러리로 세우는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실태. 방송 업계가 손잡고 속히 퇴출해야.

요시다의 손가락은 벌써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방송 따윈 보지도 않았다. 방송 내용이 뭐 중요하겠는가. 구독자들은 아이돌 오디션 따위엔 관심도 없을 테니, 그저 한국을 욕할 건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크으, 이번에도 조회수 달달하겠군."

* * *

K팝 아이돌 첫 방송이 나간 직후, 일본의 포털 뉴스에는 단기간에 댓글이 수천 개나 쏟아졌다.

이때 댓글이 어찌나 많이 달렸으면 방송 시청률은 그저 그랬음에도, 포털 뉴스 순위에는 상위권에 올라가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한국 아이돌의 연습량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가혹할 줄은... 조금 무서울지도.

-저건 고문이야. 어떻게 거리에서 6시간 동안이나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지? 그것도 한 겨울에?

┗거짓말입니다. 방송적 과정이에요.

┗행인이 촬영한 영상이 유투부에 올라왔어요.

┗저도 그 영상 봤습니다. 방송은 과장이 아니라 순화시킨 것이었어요. 차마 영상을 끝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저렇게 고생하고 아무런 성과 없이 귀국이라니, 미오 짱이 너무 불쌍해요.

┗한국 방송국이 일본인을 불러다가 이지매한 것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방송하게 둬선 안 됩니다.

┗한국인 참가자들도 똑같이 했어요.

┗넷우익 씨는 방송을 안 보셨군요.

-또 유치한 아이돌 오디션인가. 이런 수준 낮은 프로그램은 이젠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한일 공동? 확실히 전파 낭비다.

┗그런 뉴스를 굳이 클릭해서 댓글을 다는 이유는 무엇인지.

┗유치함을 보고 싶으면 국내 아이돌 무대를 보도록 해. 그쪽은 진짜 학예회 수준이니까.

방송을 비난하러 온 넷우익, 한국 아이돌 데뷔를 꿈꾸던 일본인 연습생, 그리고 순한맛 방송만 봐왔던 일반 시청자까지.

시청자 계층은 제각각이었지만 댓글 내용은 한결같았다.

문화 충격.

한국의 아이돌 연습 방식이 고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가혹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반응의 이유가 어떻든 간에, 프로그램의 인지도는 곧 시청률 상승로 돌아오게 된다.

* * *

-이렇게 많은 분이 무명인 미오를 응원해주시다니... 흑흑... 너무 감사해요. 그러니 저... 포기하지 않고 힘낼 게요.

K팝 아이돌의 두 번째 방송은 첫 방송에서 좌절한 멤버들의 재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자칫 억지 신파극의 느낌이 날 수도 있었으나 첫 방송에서 깔아 둔 스토리와 심종모 PD의 편집이 이야기를 잘 이끌고 있었다.

방송 내용만 놓고 보면 합격이다. 덕분에 번역기를 써서라도 현지 반응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는다.

"그냥 기다리자. 반응이 좋으면 먼저 연락이 오겠지."

부웅-, 부웅-, 부웅-.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온몸을 떨어댄다. 발신자는 일본 지사에 나가 있는 박태식이었다.

"여보세..."

내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쏟아진다.

-우혁아, 방송 보고 있지?

나는 귀가 저릿거려서 휴대폰을 살짝 떨어트린 채 말했다.

"그래, 보고 있어. 방송 끝나기도 전에 연락한 걸 보면, 현지 반응이 좋은 가봐?"

-좋은 정도면 내가 참았지. 대박이다. 그냥 대박 수준이 아니라 완전 초대박! 뉴스 댓글, 관련 커뮤니티, 페북, 트윗 전부 K팝 아이돌 이야기가 톱이야!

박태식은 어찌나 기뻤으면 저 혼자 수다를 5분 가까이 쏟아냈다.

지금껏 기대 이하의 반응과 더불어 넷우익의 행패로 마음고생이 많았을 테니 충분히 이해한다.

-K팝 아이돌에 참여를 주저하던 아이돌 지망생들도 2라운드에 신청이 몰렸어. 이게 다 심종모 PD가 일본 감성을 정확하게 저격한 덕분이다.

"일본 감성이라니?"

-타국에서 고난과 좌절을 겪은 주인공이 주변인의 응원에 힘 입어 재기에 나선다. 키야~ 이거 완전 소년 만화 스타일의 전개 아니냐.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오글거린다는 소릴 듣겠지만 일본은 감성이 또 달랐으니까.

-거기다 지켜만 봐야 하는 소년만화와 달리 K팝 아이돌은 시청자가 직접 스토리에 개입할 수 있잖아.

"스토리 개입이라고 해봤자, 와츠에 가입해서 응원 멤버에게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주는 거? 그 외엔 다를 게 있나?"

-그게 크지. 수치가 매주 방송에 반영되고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까지! 이거 뽕 맛을 한 번 겪으면 못 헤어날 걸? 그리고 결정적인 게 하나 더 있잖아.

"그게 뭔데?"

박태식은 입으로 '두구두구두구' 같은 드럼 소리를 흉내 내며 뜸을 들이다가 답을 내놓는다.

-K팝 아이돌은 이번이 겨우 방송 2화째라는 거.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 나오면 나중엔 인기가 어떻겠어?

K팝 아이돌은 총 12화짜리 기획이다.

종영까지는 약 두 달 반, 그러니 지금보다 더 성장할 포텐은 충분했다.

-심 PD님께 방송 일정 늘려달라고 연락해둬야 하는 거 아냐? 중간중간 특별 편을 넣든가. 아, 아니다, 아예 10편 더 찍어서 22화로 추가 기획을 짜자.

"야, 박태식. 김칫국 좀 그만 마셔라.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러냐."

-네가 현지 상황을 몰라서 그래. 지금 멤버들 섭외 요청으로 지사 전화기에 불이 났다니까? 여기에 본 투표까지 시작되면 진짜 뒤집어질 거다.

아이돌 오디션의 꽃은 본 투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투표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애정으로 지켜보는 것.

여기에 이번은 한일 양국이 동시에 투표하는 만큼, 한일전 양상까지 펼쳐질 테니 열기가 더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준비는 해두라고 할게."

* * *

K팝 아이돌은 일본 현지에서만 지원자가 160만 명에 달했고, 한국과 동남아 지역까지 더하면 지원자가 무려 300만 명이 넘었다.

다른 조건 없이 짧은 영상 하나면 누구나 쉽게 지원할 수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이다.

K팝 아이돌이 방송될 때마다 와츠의 가입자도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이쯤 되자 방송 업계, 아이돌 업계뿐만 아니라 일본의 투자자들도 와츠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투자자 중엔 처음부터 와츠를 주시하고 있었던 소프트포우 역시 포함돼 있었다.

"와츠의 가입자 증가세는 저번 주 대비 7000%로, 가입자의 약 55%가 유효 사용자로 남아서 SNS를 사용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와츠에 대한 보고가 한창이던 소프트포우의 회의실.

평소라면 보고를 끝까지 들어주던 신정의 회장이지만, 이번은 그러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 세운다.

"잠깐만. 방금 7000%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회의실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진다.

아무리 홍보비를 퍼붓더라도 서비스 가입자가 한 주만에 7000%나 폭증하는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의 베테랑인 신정의 회장도 이번 사태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책에 빠져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더라면...'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비슷한 의견을 내놓기 시작한다.

"회장님, 더 늦기 전에 와츠에 투자하셔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저희가 조건을 양보하는 한이 있어도 지금의 와츠는 잡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다른 투자사가 채가기 전에 먼저 수를 써야 합니다."

신정의 회장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와츠는 이미 유니콘이었다. 훨훨 날아서 하늘로 날아 오른 유니콘 말이다.

이젠 잡고 싶어도 그의 손을 필요치 않는 곳까지 날아가 버렸기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와츠 대표의 자신감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신정의 회장은 문득 궁금증이 밀려왔다.

와츠의 대표는 무엇을 보고 성공을 확신했던 걸까?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서 실패를 예상 했었는데 말이다.

"끙..."

회의실의 직원들에게 물어봤자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와츠의 성공 가능성을 1%미만으로 예측했던 헛똑똑이들 아닌가.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를 직접 만나 봐야겠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