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58화 (5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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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KN케미컬에서 판교의 WHTS컴퍼니로.

아침 출근길도, 환경도, 내 직책까지도 달라졌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대표가 되면 더 여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출근 시간을 서두르게 했다.

대표실에 도착하자 향긋한 커피 내음이 나를 반긴다.

안에는 이미 회의 준비를 마친 직원들이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반갑습니다!"

직원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내 몫의 커피를 직접 따라 마시며 잡담을 나눈다.

"대표님 오늘 선보러 가십니까?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완전 멋지게 하고 오셨습니다."

"점심쯤에 방송국 갈 일이 있어서 미리 메이크업까지 하고 왔습니다."

"아하, 이젠 TV에 데뷔하시는군요?"

"그런 건 아니고 업무상 미팅입니다."

본디 아침 회의 시간이지만 우린 타사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뭐든지 자유롭게, 할 말이 있으면 하는 거고, 할 말이 없으면 앉아서 듣고만 있어도 된다.

그렇게 한참 대화가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부동산 이야기가 나온다.

"아 참, 소영 씨. 도토리 코인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을 높인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게 어디서 나온 이야깁니까?"

"이번에 모텔 3곳을 추가 매입했잖아요. 그 일 때문에 소문이 와전된 것 같아요."

모텔 매입.

WHTS컴퍼니가 내 소유의 회사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인 일로 회삿돈을 쓰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모텔은 어머니가 운영하실 한 곳만 있으면 족합니다. 추가 매입 건은 취소하는 게 낫겠군요."

"저는 더 공격적으로 모텔을 매입해야 한다고 봐요. 도토리 코인의 담보 비중에 가상화폐가 너무 많은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WHTS컴퍼니는 도토리 코인의 시세가 9달러를 넘어가는 족족 코인을 추가로 찍어서 시세를 억제하고 있었다.

9달러가 넘어가면 물량을 풀고, 9달러를 밑돌면 물량을 거둬들이고.

여기에 더해서 코인 매각금은 전부 다른 자산을 매입해서 담보로 세우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장 안정적인 가상화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미 회사 지갑에 예치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충분해요. 그러니 앞으로는 부동산과 금, 주식, 채권을 매입해서 담보를 분산 확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여론도 이번 부동산 매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쪽이 많아요."

담보는 도토리 코인의 안정성에 직결된다.

그러니 투자자들은 들쭉날쭉한 가상화폐를 매입하는 것보다 부동산을 매입하는 쪽을 반기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 회사 자산 현황이 어떻게 되죠?"

"가상화폐가 60%, 부동산 16%, 그 외엔 기타 현금성 자산이에요."

여기서 부동산 비중을 높이는 판단은 극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 투자자의 시각이었고, 내년이면 가상화폐가 폭등하는 걸 아는 나로선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이유가 없었다.

"자산에서 가상화폐 비율을 더 끌어올리세요. 가능하면 80%까지, 그 이상도 좋습니다. 부동산 매입은 그 이후입니다."

이소영은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고갤 끄덕인다.

"대표님은 가상화폐 시장의 성장을 확신하시나 보네요."

"소영 씨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십니까?"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아직 가상화폐 생태계는 걸음마를 뗀 수준이니까요. 단지... 대표님처럼 전력으로 베팅할 만한 배짱이 없을 뿐이죠."

가상화폐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투자 상품이다. 그러니 가상화폐를 개발한 개발자마저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직접 보고, 듣지 않았다면 이런 과감한 베팅을 할 순 없었겠지.

* * *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회사를 나선다.

목적지는 상암의 TV플러스 방송국이다.

한창 차가 막히는 시간대였지만, 운전석에 박태식을 태우고 온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지겨울 새가 없다.

"내가 어제 어딜 갔었냐면 말이지. 새로 생긴 멀티 플렉스 홍보 현장을 갔는데, 연예인 누가 와서, 와츠에 영상을 어쩌고 저쩌고..."

같이 틀어둔 라디오 진행자보다 더 말이 많다. 정말 대단한 놈이다.

"아, 맞다. 우혁아, 일본 소식은 확인해봤어? 와츠가 공식적으로 일본에 진출한다는 기사가 올라가니까 그쪽에서 완전 거품을 물었더라."

"거품이라니?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 우리가 소프트포우 투자를 거절했다니까 난리 치던 일본 넷우익 놈들이지."

넷우익은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국수주의 성향의 우파 네티즌을 일컫는 단어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앞세워서 약자를 혐오하는 활동을 즐기며, 최근엔 그 대상이 재일 한국인 혹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되기도 했다.

"우리 기사가 올라간 뉴스 댓글마다 그놈들이 단체로 등장해서 댓글 똥을 싸질러 뒀어."

"원래 그런 인간들이잖아. 신경 쓰지 마."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이번은 상황이 좀 달라."

박태식은 차가 잠시 신호등 앞에서 정차한 동안, 휴대폰을 켜서 내게 넘겨준다.

휴대폰 화면에는 일본 포털 사이트에 걸린 우리 뉴스와 함께 번역된 댓글이 달려 있었다.

-풋. 한국의 SNS? 그딴 서비스가 일본에서 통할 리 있냐고. 멍청한 춍이 돈을 허공에 뿌리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찬성 62011 / 반대 936

-트윗이 독점한 국내 SNS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소비자로서 좋은 일입니다. 찬성 597 / 반대 29096

┗하필이면 지금처럼 여론이 험악한 타이밍에? 찬성 110 / 반대 21

┗한국인은 원래 욕먹는 것을 좋아하는 www. 찬성 3957 / 반대 11

-어째서 일본에 진출하는지 의문이야.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면 한국에서 열심히 하면 되잖아? 너희들이 뭘 하든 보고 싶지 않다고. 찬성 27202 / 반대 1038

-일본의 반한 감정을 부추기기 위한 수작입니다. 어차피 자동차처럼 금방 철수해 버리겠죠. 찬성 7181 / 반대 601

┗사이트 접속해도 아무것도 없는. 찬성 388 / 반대 15

┗아직 서비스하지 않았다. 찬성 10 / 반대 372

-한국에서 만든 인터넷 서비스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정보가 몽땅 북한으로 넘어갈 거예요. 재일 한국인 외엔 아무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찬성 5271 / 반대 251

┗이미 국내에선 라인을 쓰고 있어요. 찬성 362 / 반대 967

-반일 단체가 만든 서비스는 절대 반대다. 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 찬성 4122 / 반대 624

댓글 내용은 특별할 게 없다. 한국에서도 포털 뉴스 댓글은 감정 배설용 쓰레기통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댓글 추천의 숫자였다.

"일본 포털은 댓글 추천이 원래 이렇게 많이 달리냐?"

"아니. 이번이 진짜 특별한 거야. 댓글 추천 6만 개는 손에 꼽는 경우거든. 그만큼 우리가 미운털이 박혔다는 거지."

"반응이 재미있네. 번역된 다른 뉴스는 없어?"

내가 피식거리며 웃고 있자 박태식이 휙 고갤 돌린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잖아. 이대론 일본 서비스 개시도 전에 회사가 불타서 가루가 되게 생겼어."

"인터넷상의 댓글은 전체 여론의 한 줌일 뿐이잖아. 특히 우리가 타겟으로 삼아야 할 젊은 층은 포털 댓글을 달지도 않을걸?"

"그렇긴 한데..."

박태식은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이번에 일본 지사로 직접 가야 했으니 더 그런 것이리라.

"태식아, 네가 항상 말했잖아. 싸이클럽과 와츠는 세계 최고의 SNS라고."

"그랬었지."

"그럼 이번에도 믿고 부딪혀 봐. 일본 시장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서 댓글을 쓴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란 말이야."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그건 평범한 상황일 때 이야기잖아. 지금은 비호감 스택이 천장을 뚫을 만큼 차 버렸어. 이젠 넷우익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본인도 우릴 싫어할걸."

부정적인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부정적인 댓글이 계속 달리다 보면, 사태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 대상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된다.

지금의 와츠가 딱 그런 꼴에 처해 있었다.

"싫어해도 그건 와츠가 싫은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은 거잖아. 그러니 확실한 한 방만 있으면 단번에 여론을 뒤집을 수 있어."

"확실한 한 방? 그게 뭔데?"

"지금 그걸 얻으러 가고 있잖아."

박태식은 네비게이션을 쳐다봤다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본다.

"지금 도토리 콘서트 시즌2 제작 요청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

도토리 콘서트는 국내에서만 먹히는 콘텐츠다.

이번은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게 먹힐 대박 콘텐츠가 나올 차례였다.

* * *

도토리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제작했던 심종모 PD는 6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무려 35%라는 역대급 시청률을 내고도 정직이라니.

사실, 징계는 예상했던 바다. 윗선에서 어떻게든 죽이려고 발악하던 도토리 콘서트를 특집으로 편성해서 2시간이나 내보내는 짓을 했으니까.

"인생 참 주옥같네. 아무리 그래도 6개월 정직은 너무 하잖아."

덕분에 집에서 쉬게 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후회를 반복했다.

적당히 윗분들 비위를 맞춰주며 10분짜리 자투리 영상으로 내보냈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콘서트 기획을 받지 않았다면...

"미치겠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 거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한 달 넘게 이 짓을 하고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때마침 죽은 것 같았던 휴대폰이 울린다.

심종모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야, 심 PD.

타 방송사로 이직한 홍수홍 PD였다. 최근엔 센터장으로 승진했다는 소릴 들었는데, 그 뒤론 연락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심 PD가 요즘 뭐하나 싶어서 전화했지. 시청률 35% 찍고 정직 6개월짜리 먹었다며?

"하... 말도 마십쇼.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습니다."

-그 말 진심이야?

"예?"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는 게 진심으로 한 소리냐고.

상대가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온다. 덕분에 느슨하게 휴대폰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쪽에 새로 기획 들어온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초대형 스폰서가 엮였어. 그런데 그쪽에서 너를 콕 짚어서 원하더라고.

"거기가 어딥니까?"

-WHTS컴퍼니. 너랑 같이 도토리 콘서트 했던 곳.

"도토리 콘서트 시즌2면 안 합니다."

-나도 처음엔 그건 줄 알고 고사할 생각이었어. 이미 소문 쫙 퍼졌잖아. 윗분들이 도토리 알레르기 있다는 거.

시청률 대박을 치고 정직 6개월을 먹었는데 소문이 안 퍼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에 물어온 건은 도토리가 아니라 아예 해외를 노리는 글로벌 콘텐츠야.

"자세히 말해주시죠."

-우리 쪽에 가수 선발 프로그램 있었던 건 알지?

"슈퍼스타M요?"

-그건 타사 프로그램이고.

"..."

-쫄딱 망했으니까 모를 만도 하지. 그쪽 계통이 이젠 시청률도 잘 안 나오고 그러니까 촬영 중인 건도 엎어지기 직전이었거든? 그런데 그걸 글쎄 거기서 어떻게 알아서는...

한껏 차오르던 흥분이 짜게 식어 버렸다.

심종모가 원했던 것은 방송사 메인인 버라이어티 예능이었다. 그런데 단물 다 빠진 가수 육성 프로그램을 하라니.

상대도 그런 낌새를 읽었는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번엔 달라. 확실히 다르니까 끝까지 들어봐.

"뭐가 다르단 겁니까."

-일반 가수를 육성하는 게 아니라 아이돌 연습생을 모아놓고 서바이벌 형식으로 진행하는 거야. 그거 심 PD가 잘했던 거잖아? 편집을 기가 막히게 했던데.

실시간 투표를 반영해서 득표가 많은 쪽은 화면을 더 키우고, 득표가 적은 쪽은 아예 소리까지 꺼버리는 연출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방송 시간이 모자라서 임시방편으로 했던 건데요."

-스폰서가 원하는 게 딱 그런 거란 말이야.

심종모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가수나 아이돌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을 듣는 순간, 이번 기획은 절대 실패하지 않음을 확신하게 된다.

-일본 방송사와 연계해서 아이돌 육성을 공동으로 진행할 생각인가 봐. 그러다 나중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아이돌 투표를 벌이는 거지.

아이돌 투표 한일전.

심종모는 말만 들었음에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홍 PD님, 저 언제부터 출근하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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