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
다다다다닥! 다다닥!
귀가 아릴 정도의 소음이 울려 퍼진다.
바로 앞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으면 이쪽으로 다가오던 차들도 깜짝 놀라서 멀찍이 돌아서 갈 정도였다.
모두가 공사현장을 피해가기 바쁜 가운데, 홀로 그 앞을 지키는 이가 있다. 공사현장 바로 맞은편 모텔의 주인 김문주였다.
"염병할. 안에서 뭔 짓거리를 하길래 소리가 이렇게 큰 거야?"
저 공사가 시작된 이후로 모텔을 찾는 손님이 반의반 토막이 났다.
당연했다. 소리가 이렇게나 큰데 어떻게 무드를 잡고, 어떻게 거사를 치른단 말인가.
게다가 공사현장은 모텔 주차장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모텔 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까지 내 걸었을까.
"썅. 사람이 참는 데 한계가 있지."
공사장은 임시 비계를 세워두고 거적때기 같은 천막이 처져 있었다.
김문주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장 앞에서 소릴 지른다.
"이봐요! 좀 나와 보쇼!"
소리를 너덧 번 정도 지린 뒤에야 공사장 안에서 누군가 설렁설렁 걸어 나온다.
험악한 인상에 2미터는 될법한 덩치, 그리고 턱 끝에서부터 팔뚝까지 휘감은 문신까지. 누가 봐도 공사장 인부로는 보이지 않는다.
"뉘슈?"
덩치가 눈을 부라린다. 일반인은 감당할 수 없는 위압감이었다.
당차게 찾아왔던 김문주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저... 앞에 모텔 사장인데요."
"그런데?"
"공사가 언제쯤 끝나나 싶어서요. 이게 저희 쪽 영업에 방해가 되다 보니..."
덩치는 한 걸음 더 다가와서 김문주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는 옆으로 손을 쭉 뻗는다.
"저기 안 보여?"
"예?"
"저기에 써진 거 안 보이냐고."
그가 가리킨 곳에는 공사장 안내문이 널브러져 있었다. 공사 중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형씨, 앞에 죄송하다고 써 놨으면 이해를 해 줘야 할 거 아냐. 우리가 불법으로 공사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끝나는 지라도 알려주시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귀찮으니까 빨리 꺼져!"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김문주는 괜히 갔다가 본전도 못 챙기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모텔로 돌아가자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저 오늘 오후까지만 하고 그만둡니다. 남은 월급은 계좌로 넣어주세요."
미화원으로 3년 넘게 일한 송 씨 아주머니가 대뜸 사직서를 내밀었다.
"아니, 갑자기 이러면 어떡합니까?"
"뭐가 갑자기예요. 저번 주부터 계속 그만둔다고 했잖아요."
"안 됩니다. 이번 달만 미화원이 셋이나 그만뒀는데, 송 씨 아줌마까지 그만두면 청소는 누가 해요?"
"저야 모르죠. 사람이 없으면 사장님이 하세요."
송 씨 아줌마는 말릴 새도 없이 짐을 챙겨서 가 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카운터 직원 하나, 미화원 넷.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직원이 그만두는 게 가능한 일일까?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어차피 올 손님도 없겠다, 김문주는 조심조심 송 씨 아줌마의 뒤를 밟았다.
그녀는 평소에 이용하던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큰길을 건너더니, 맞은편 신축 모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 은영아 왔구나! 빨리 들어와."
모텔 입구에는 얼마 전에 그만뒀던 직원들이 우르르 나와서 그녀를 맞이했다.
"김 사장한테는 그만둔다고 했지?"
"방금 사직서 주고 왔어. 나 없으면 청소할 사람 없다고 어찌나 앓는 소릴 하던지."
"그러게, 그만둔다고 할 때 사람을 미리 구했으면 서로 좋을 것 아냐. 쯧쯧."
"요즘 장사 안되니까 인건비 줄이려고 제 딴엔 머리 굴린 거지. 나 혼자 일한다고 힘들어 죽겠는데, 아예 도울 생각도 안 하더라니까."
단체로 일을 그만둔 이유가 경쟁 업체로 이직하기 위해서였다니.
김문주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꽥!' 소릴 질렀다.
"야! 내가 지금껏 얼마나 챙겨 줬는데, 이 잡것들은 은혜도 모르고!"
깜짝 놀란 미화원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미 남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지난 몇 년간 사장과 직원 관계였기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든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모텔 안에서 시커먼 차림의 사내가 걸어 나온다.
"누구십니까?"
사내는 아까 공사장에서 만났던 덩치와 달랐다.
공사장 덩치가 동네 깡패 같았다면, 이번은 체계적으로 단련한 군인 같은 분위기였다.
평소의 김문주였으면 여기서 꼬리를 말고 물러섰겠지만, 검은 옷 사내의 뒤에 따라오는 여인을 보고 눈이 홱 돌아간다.
"김 씨 아줌마?"
그제야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촉이 왔다.
가장 먼저 일을 그만둔 김 씨 아줌마가 다른 직원들까지 꼬셔서 데려간 게 분명했다.
"아니, 김 씨 아줌마!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그만둘 거면 곱게 그만둘 것이지, 사람을 다 빼가면 어쩌자는 거요? 영업 방해로 진짜 신고를 먹어 봐야..."
김문주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도중에 검은 옷 사내에게 가로막히고 만다.
"누구시냐고 물었을 텐데요."
"나는 저 아줌마와 같이 일하던 사람입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비켜주십쇼."
검은 옷 사내는 김 씨 아줌마를 돌아본다. 그녀가 고갤 가로 젓자, 사내가 김문주를 툭 쳐서 밀어낸다.
"사모님께서 내보내라고 하십니다."
"사모님? 누가 사모님이요? 설마, 저 청소 아줌마가?"
김문주는 콧방귀를 끼며 손가락질을 한다.
"아이고, 김 씨 아줌마. 일자리 옮기더니 출세했네? 그래서 다른 아줌마들도 다 데려온 거요?"
"그런 거 아니에요... 다들, 원해서 옮긴 거예요."
"흥!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지. 아줌마, 이런 짓거릴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빨리 여기 사장 불러와! 사장 불러오라고!"
김문주는 강제로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문을 붙잡고 버텼다.
그러나 사내의 힘이 어찌나 센지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간단히 제압당해버렸다.
"이거, 놔! 너희들 전부 신고할 거야! 대한민국 법이 우스워?"
그가 붙잡혀서 소릴 질러대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미화원들이 우르르 다가온다.
"법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사장님이겠죠."
"맞아요! 노동법 위반에다가 주차장도 불법으로 넓혔잖아요!"
"밤에 술집 아가씨도 연결해주고 그랬었는데, 그게 뭐더라..."
"윤락행위 알선!"
"맞다. 그거 영업 정지 6개월이래요! 그거 말고도 미성년자도 그냥 받으라고 했었죠? 전부 신고할 거예요!"
영업 정지 6개월이라는 말에, 김문주는 납작 고개부터 숙이고 본다.
모텔에서 수년간 일해온 미화원들이 합심해서 신고를 퍼부으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사님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한 번만 넘어가 주면 안 될까? 퇴직금도 더 얹어 줄 게. 응?"
그는 어떻게든 이번 한 번만 무마해볼 생각으로 손을 싹싹 빌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모텔 앞 뜬금없는 공사, 근처에 생긴 신축 모텔, 직원들의 대거 이직, 불법행위 신고, 영업 정지.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고, 그 계획 속엔 처음부터 용서라는 선택지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 * *
아침 6시.
소프트포우 본사 회의실은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가득해진다.
회의를 열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지만 참석자 중엔 누구도 졸린 기색을 보이는 이가 없다.
오히려 밤사이에 미국 장을 지켜보느라 눈이 퀭하게 들어간 이는 몇몇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분이 지나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선다.
끼익.
자로 잰 듯한 타이밍에 문이 열리고, 회의실 안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이 들어선다.
소프트포우의 창립자인 신정의 회장이었다.
"다들, 앉게나."
그가 상석에 앉음과 동시에 브리핑이 시작된다.
밤사이에 있었던 증시 보고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국내외 뉴스, 그리고 신정의 회장이 직접 챙겨보는 분야는 상세 보고서까지 따로 제공된다.
"해외 정치 소식입니다. 대만의 선거 결과로는 차이잉원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 됐으며..."
이 자리에 참석한 직원은 일본 제일의 엘리트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축약하고 가공해서 신정의 회장에게 전달할 뿐이다.
모든 투자의 최종 결정은 신정의 회장이 직접 내렸다.
비대한 조직에 걸맞지 않은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었으나 누구도 딴지를 걸 순 없었다.
소프트포우는 쭉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어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초대형 투자사 소프트포우였다.
"잠깐."
보고를 듣고만 있던 신정의 회장이 처음으로 입을 뗀다.
"여기 신규 투자처 보고서를 누가 올려뒀나?"
수십 명의 참석자 중,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직원이 손을 들어 올린다.
"제가 올려뒀습니다, 회장님."
"신규 투자처 선정은 신년에 발표하고 끝났을 텐데, 어째서 리스트를 새로 올렸지?"
"원래는 그래야 했지만, 이번엔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해 업체 한 곳이 빠져버렸잖습니까."
그가 말한 불미스러운 사태란 한국의 SNS 개발사가 신년 초청을 거절한 일을 뜻했다.
"9라는 숫자는 부족함의 상징이니 10을 꽉 채워서 길하게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뭐라? 고작 그딴 미신으로 투자처를 추가로 받으란 말인가?"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시끄럽다!"
신정의 회장은 호통을 치고서 회의 참석자들을 한 번씩 쭉 쳐다본다.
"앞으로 투자에 미신 따위를 엮는 사람이 있으면, 그 즉시 퇴출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평소에 화내는 일이 드문 신정의 회장이었기에, 회의장 분위기는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언론사 그것들도 문제야. 쓸데없는 일을 어떻게든 자극적으로 키울 생각만 하고. 쯧쯧..."
언론사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신년 초청을 거절했던 업체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의 정보를 분석하는 직원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리 초청을 거절했던 업체, 거기는 지금 어떻게 됐나?"
"여전히 극우계통 언론과 우익 진영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명분을 그쪽에서 만든 셈이니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 내에서 서비스하는 업체니 큰 타격은 없겠군."
"최근에 그 업체에서 의아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뭐가 의아하다는 게야?"
"며칠 전, 그... 일본 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신정의 회장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직원을 다시 쳐다본다. 그는 얼른 일어나서 기사를 프린트해둔 서류를 가져왔다.
[한국 토종 SNS 싸이클럽과 와츠, 일본 시장 진출 공식화! 논란을 실력으로 정면 돌파하겠다.]
기사를 본 신정의 회장은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이미 난리가 난 벌통에 다시 대가리를 들이밀겠다니. 이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논란을 일으켜서 자국 시장 홍보에 이용할 셈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미 도쿄에 지사까지 설립을 마쳤습니다. 정식으로 해볼 생각인 듯합니다."
"허허..."
신정의 회장은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나 싶어서, 국내 IT 전문팀에게 질문을 던진다.
"일본에서 성공 가능성은?"
"트윗이 SNS 점유율 과반을 차지한 국내에서, 그것도 논란이 많은 한국 SNS가 흥행할 가능성은... 1% 미만으로 봅니다."
1% 미만이면 사실상 제로라는 소릴 돌려서 말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상대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 어째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그러고 보니 그 업체의 대표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회장님의 투자 제안은 감사하나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럼에도 투자를 원하신다면 저희가 발행한 도토리 코인을 사주십시오.
그땐 대표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여기고 말았다. 그건 젊은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이 숱하게 겪는 실수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본 진출 소식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 어떤 얼간이도 1% 미만의 확률에 베팅하진 않아. 그렇다면 이번 건이 단순한 만용은 아니라는 뜻인데...'
신정의 회장은 일단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것은 투자자로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 의해 내린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