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55화 (5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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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원대 자산을 운용하는 일본 최대의 투자사 소프트포우.

그런 거대 투자사의 창립자가 무슨 의도로 WHTS컴퍼니처럼 작은 회사에 연락해온 걸까?

지금이 평상시였다면 우연히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겠지만 만남을 요청한 시기가 신년인지라 너무 공교롭다.

기업인의 신년 첫행보는 주목받는 게 당연했다. 그것도 100조 원대 자산을 굴리는 신정의 회장급이라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전부 보도가 되겠지.

'그런 신년 첫 행보에 나를 만나고 싶다니 대체 무슨 의도지?'

이유를 억지로 떠올려보자면 도토리 콘서트 이후, 와츠는 유명 가수들이 일상 영상과 짧은 라이브를 올리면서 해외 접속자가 많이 늘어난 상태다.

특히 K팝에 강세인 일본과 대만, 태국 쪽 접속자 증가세가 뚜렷했는데, 그래서 와츠가 신정의 회장의 눈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신정의 회장과 만나서 할 이야기라면 투자 건밖에 더 있겠어? 이건 소프트포우가 우릴 인정한 거야!"

옆에서 소식을 가져온 박태식은 혼자서 김칫국을 사발 째 퍼마시고 있었다.

뭐, 솔직히 나도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만큼 '신정의'라는 이름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으니까.

"지분 투자 목적이 아니면 어쩔 거야?"

"투자가 아니면 그쪽에서 굳이 만나자고 할 이유가 있나?"

"아예 인수를 원할 수도 있지. 일본 시장에서 '한국산'이라는 꼬리표는 역프리미엄이니까."

전자제품이든, 자동차든, 심지어 플랫폼 서비스에도 일본인은 한국산이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신 회장이 와츠의 일본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접근했다면, 지분 100%를 사들여서 합병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다.

"투자가 들어오는 건 몰라도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건 좀... 내키지 않네."

박태식은 내 설명을 듣더니 표정이 한껏 심각해졌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고서 말해준다.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소프트포우 같은 대형 투자사라면 제시하는 금액부터 어마어마할 테니까."

"야,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의리 빼면 시체인 거 몰라?"

"네가 가진 지분만 처분해도 최소가 백억 대는 될 텐데도?"

백억이라는 말이 나오자 박태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누구든 저 정도 액수가 나오면 놀랄 수밖에 없다.

"와츠가 계속 잘 나간다는 보장이 없는 건 알지? 이번 흥행은 도토리 콘서트로 인한 일시적인 유행일 수도 있어."

"그건 나도 알지. 하지만..."

"게다가 도토리 코인의 미래도 변수투성이이잖아. 어느 날 갑자기 시세의 99%가 폭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가상화폐 판이야."

실제로 미래엔 이미 비슷한 사례가 존재했다.

개당 10만 원이 넘던 가상화폐가 하루 만에 99.99%가 폭락하며 개당 1원이 된 전설적인 사건.

그러니 냉정하게 이득을 취하려면 지금 타이밍에 회사를 팔고, 그 돈으로 몽땅 안정적인 비트코인을 사두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만약, 지금 타이밍에 백억 대 가상화폐 투자가 가능하다면, 국내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부자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 * *

소프트포우의 신년 미팅에 WHTS컴퍼니가 초대됐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싸이클럽은 토종 SNS라는 꼬리표가 있었기에, 일본 투자사에 인정받았다는 점은 국내 언론사들의 좋은 기삿거리가 됐다.

하지만 이런 투자 소식이 마냥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니, 바로 이번 소식의 당사자가 된 WHTS컴퍼니 직원들이었다.

"그 뉴스가 진짜예요? 소프트포우에서 저희 회사에 투자한다는 뉴스요."

"미팅만 한 대요. 아직 투자 확정 같은 이야기는 없고요."

"신정의 회장의 신년 미팅은 그냥 미팅이 아닙니다. 한 해의 유망 기업들을 초청해서 벌이는 일종의 투자 미팅 같은 거죠. 그러니 거기에 이름만 올리면 기업 가치가 껑충 뛴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두세 명에서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소프트포우라는 단어가 나오자 지나가던 직원들까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온다.

"투자받으면 회사가 더 커지겠네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소프트포우에서 아예 WHTS컴퍼니를 사버릴 수도 있죠."

"회사가 팔리면 대표님은요?"

"아마도... 그만두지 않을까요? 원래 스타트업은 대기업 매각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잖아요."

대표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자 직원들의 동요가 커진다.

"그럼 안 되는데... 지금 대표님만큼 직원들을 잘 챙겨주시는 분이 없잖아요. 이번에 연말 파티도 그렇고요."

"맞아요. 파티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제 친구들도 사진 보고 부러워하더라고요. 으리으리한 호텔 연회장을 살면서 언제 와보겠냐고요. 그런데 회사가 팔리면..."

바로 그때였다. 옆에서 누군가 파티션을 '쿵!' 소리 나게 두드리며 소리친다.

"누가 회사를 판대요?"

직원들이 놀라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본다. 그곳엔 눈을 부릅뜬 이소영이 서 있었다.

"팀장님. 그게, 팔린다는 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저희 대표님이 그러실 분으로 보이세요? 절대 아니니까, 괜한 걱정하지 말고 일하러 가세요."

평소 같았으면 딱 여기서 상황이 종료됐을 거다. 하지만 이번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누군가 용감하게 질문을 던진다.

"팀장님은 결과를 알고 계시는 건가요?"

순간적으로 이소영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도 이번 투자 건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욱해서 질러버리긴 했는데, 여기서 나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고...'

때마침 이쪽으로 박태식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이소영에게 그는 구원의 천사처럼 보였다.

"박 이사님! 잠시만요!"

박태식은 영문도 모른 채, 이소영에게 붙잡혀서 직원들 앞으로 끌려간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소영은 어쩔까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직구를 던져버린다.

"저희가 이번 소프트포우의 신년 행사에 참석한다고 했죠?"

"제의가 들어왔었죠."

"대규모 투자 건이라고 하던데, 경영진 방침은 정해진 건가요?"

"음... 그게..."

박태식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이소영은 물론이고 모여 있던 직원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운다.

"캔슬입니다."

"왜요? 그쪽에서 무슨 조건이 안 맞다고 하던가요?"

"아뇨. 그 반대죠."

박태식은 직원들을 한 번 돌아보고는 히쭉 웃으며 말을 잇는다.

"우리가 소프트포우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 * *

소프트포우 그룹의 신정의 회장은 매년 새해가 되면 자사의 회의실에서 신년 인터뷰를 해왔다.

그런 관례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저희 소프트포우가 투자하는 회사 중 이익을 내는 곳은 5%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이익을 못 내는 적자 회사들입니다. 제가 이런 회사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의 신년 인터뷰는 한해 전망을 발표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보다 인터뷰장에 어떤 기업이 초청받았는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찰칵. 찰칵.

인터뷰 장소 옆에 마련된 초청 기업 자리에는 벌써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끊이질 않는다.

그에게 초청받은 기업 중에서 흔히 대박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유니콘 기업'이 자주 나왔기에,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자연히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 소프트포우는 이동 통신 가입자 10억 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계획을 완성 시키기 위해, 올해는 IT 플랫폼 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신정의 회장의 시선이 단상 아래의 초대 기업들 쪽으로 향한다.

"먼저 동남아지역에 많은 가입자를 확보한 업체, 플레이 고우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초대한 9곳의 기업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어떤 비전이 있고, 어떻게 같이 성장할 것인가를 발표했다.

그렇게 모든 기업의 소개가 끝나고, 드디어 기자들에게 개인 질문 시간이 찾아왔다.

"회장님께서는 일본의 현 정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변국과의 관계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에 더 많은 투자를 하실지 궁금합니다."

"회장님! 작년엔 국내 투자액이 줄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올해도 같은 기조입니까?"

기자들이 어떤 방면의 질문을 하든, 신정의 회장은 막힘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그 과정이 어찌나 능숙한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미리 짜고 하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미사카 신문의 요시다 카즈오입니다. 이번 신년 행사에 초대받은 기업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독 체구가 커다란 기자의 차례가 되자,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진다. 평소에도 곤란한 질문을 던지기로 유명한 기자였다.

신정의 회장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허리를 곧게 편 채로 고갤 끄덕인다.

"제가 알기론 오늘 행사에 총 10곳의 기업을 초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선지 행사장엔 업체가 9곳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사정상 업체 한 곳이 불참해서 그렇습니다."

신정의 회장의 발언이 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린다.

초대받는 것만으로 기업의 가치가 치솟는다는 소프트포우 그룹의 신년 행사를, 대체 어떤 기업이 거절한단 말인가?

기자는 미리 알고 있었는지, 더 민감한 주제로 대화를 끌고 간다.

"초대를 거절한 기업이 한국의 SNS 기업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웅성거림이 더 커진다. 신년 행사 참여 거부만 해도 특종감인데 그곳이 한국 기업이라니!

이대로라면 내일 신문 1면은 확정이었다.

"어떤 곳이길래 소프트포우의 신년 초청을 거절한 걸까요? 이 자리가 얼마나 큰 기횐데요."

"한국인들의 그 같잖은 반일 기질이 나온 거겠죠."

"쯧쯧, 그깟 자존심 때문에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차 버렸군요. 지극히 그쪽 다운 행동입니다."

"먼저 선의를 베풀면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죠. 한국인들은 항상 그런 식이라니까요."

사방에서 부정적인 말들이 쏟아진다. 그러자 뒤늦게 수행비서가 수습성 발언을 내놓았다.

"불참한 업체 측에서는 아주 정중히 불참 의사를 밝혔음을 알립니다."

그러나 비서의 해명에도 분위기의 반전은 없었다.

이미 불참 기업은 천하의 무례한, 안하무인 기업으로 낙인찍은 뒤였고, 기자들도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러분. 사실과 다른 언급은 자제해 주십시오."

비서가 재차 해명에 나서려 하자, 지켜보던 신정의 회장이 손을 내젓는다.

"됐네. 그냥 두게나."

"하, 하지만 회장님."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을 게야. 저 기자는 내게 질문하기 전부터 어떤 기사를 낼지, 이미 다 짜놓고 있었을 테지."

신정의 회장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신년 행사가 끝난 뒤, 10분도 안 돼서 포털 뉴스란에는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속보로 쏟아져 나왔다.

[단독! 신정의 회장의 신년 행사에 불참한 업체가 나오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행사장이 술렁.]

[신정의 회장의 신년 초청을 거절한 업체의 정체는 한국의 SNS 기업!]

처음엔 그나마 사실에 기반을 둔 기사들이 나왔지만, 점점 추측성이 되더니, 종국엔 극우 성향의 자극적인 쪽으로 흘러간다.

[소프트포우의 투자를 거부한 업체의 속내는? 일본인의 투자는 받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한국 SNS에서 제공한 지도에서 다케시마를 독도라고 표기한 정황이...]

[신년 행사를 거절한 한국의 SNS 업체는 반일 단체를 후원한다는 익명의 제보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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