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54화 (5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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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케미컬은 초대형 악재로 회사 전체가 휘청이게 됐다.

사장의 친족인 전무가 회삿돈을 횡령한 것부터 시작해서, 공범인 부장이 그 돈을 노리고 살해시도를 했으며, 그 과정에선 조직폭력배까지 연루됐다.

눈알과 손가락을 자른다는 끔찍한 음성파일과 1800억 원이라는 역대급 횡령금.

사측에선 뒤늦게 보도를 막아보려 했으나 이렇게 자극적인 기사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언론사마다 이번 횡령 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도주 중인 백승태의 예상 위치와 수사 진행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기에 이른다.

[충격! KN케미컬 횡령 사건의 전말. 그의 뒤에는 폭력조직인 범수파가 있었다.]

[중견 기업의 허술한 관리 체계. 3년 동안 1800억 원을 빼돌리는 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다.]

[사상 초유의 횡령 사건으로 KN케미컬 거래 정지. 경영진 "횡령금 최대한 회수할 것." 주주들은 단체 소송 움직임도...]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다 보니, 주요 관계자인 내게도 사측에서 몇 차례나 대면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만 응했을 뿐, KN케미컬 측 요청은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신우혁 과장님, 회사로 잠시만 나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니면 찾아뵙겠습니다. 저희도 일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돼야 대응을 할 것 아닙니까.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요양 중입니다."

-그래도 시간을 조금만 내주십시오.

"아픈 사람을 자꾸 연락해서 괴롭히는 게 무슨 경웁니까? 저는 이미 그쪽 회사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잠시만이라도...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이만."

나는 사정 봐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바로 벨소리가 다시 울려댄다.

"귀찮게 하네. 번호를 바꾸든지 해야지."

이번은 아예 휴대폰 전원 자체를 꺼 버렸다. 그러자 옆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있던 박태식이 묻는다.

"너, 진짜 안 가봐도 되는 거냐?"

"갈 필요 없어. 나올 때 사직서까지 다 던지고 왔으니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계속 피하기만 하면 더 물고 늘어질 수도 있다는 거지. 차라리 한두 번은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주는 게 어때?"

"나는 기회를 줬어. 걷어찬 건 그쪽이지."

박태식은 처음 듣는 소리였는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그쪽이랑 사건 터지고 만났었어?"

"부사장이 직접 찾아왔길래 잠시 이야길 했었어. 그런데 그놈이 은근 나도 공범이 아니냐고 떠보더라."

"개새끼네."

"아주 개새끼지. 내가 지금껏 횡령 누명을 피하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하... 그 자리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려다가 간신히 참았다는 거 아니냐."

나는 치솟는 짜증을 꾹꾹 눌러 담으며 도시락을 퍼먹는다.

호텔에서 주는 도시락이라 반찬 구성이 제법 알차다. 하지만 이것도 일주일 째 먹다 보니 슬슬 물리는 느낌이다.

갈비만 몇 개 빼먹고는 도시락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때? 다들 잘 지내지?"

"나쁘지 않아. 도토리 콘서트가 끝난 이후부터 사용자가 확 늘었거든. 여기에 공연했던 가수들도 영상을 꾸준히 올려준 덕분에 해외 접속자도 꽤 생겼더라."

박태식은 이야기를 하다가 말고 가방을 꺼낸다. 은행에 다닐 때부터 매번 가지고 다니던 오래된 가죽 가방이었다.

"네가 궁금해할 봐 월말 가입자 보고서랑 회계 자료를 전부 챙겨 왔다."

"오! 역시 쓸만하다니까."

"어허, 쓸만한 게 아니라 유능한 거지. 자, 이 몸을 더 칭찬해라. 어서."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놔."

회사 보고서를 받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기자들 때문에 요양한답시고 호텔에 처박혀 있다 보니, 이젠 회사 업무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 다 반갑다.

"우혁아, 그런데 말이야. 네가 우리 회사 오너라는 게 밝혀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지지 않을까?"

"뭐가?"

"아니, 그렇잖아. 수천 억대 횡령 사건의 관련자가 자기 회사를 단기간에 설립했다면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냐."

평범한 경우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케이스가 달랐다.

"내가 회사를 빠르게 키운 건 맞지만, 자본금의 출처가 너무 명확해서 캐낼 건수도 안 나올걸?"

"명확하긴 해. 방법이 이상해서 그렇지."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렇잖아.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스탁론을 풀로 땡겨서 대북 테마주를 살 생각을 하겠어?"

대출과 주식, 그리고 싸이클럽 지분 매입.

내가 돈을 벌어온 모든 절차는 제도권 내에서 떳떳하게 이뤄졌기에, 위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젠 내년에 횡령범으로 몰려서 구속되는 경우의 수가 사라졌다.'

그리고 비트코인도 잔뜩 확보해뒀고, 싸이클럽, 와츠, 도토리 코인도 무난하게 성장 중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후년엔 가상화폐 폭등기가 찾아올 테니, 앞으로는 느긋하게 기다리고만 있어도 내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했길래 혼자서 히쭉거리고 있냐? 나도 같이 좀 히쭉거려 보자."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싶어서. 투자부터 회사 설립까지, 정말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그게 고작 반년 전이라니."

박태식도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는지 한참이나 먼 곳을 응시하다가 입을 뗀다.

"그나저나 급한 불은 거의 다 끈 것 같은데, 앞으론 어쩔 생각이야?"

"글쎄다."

당장 앞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생각만 했을 뿐, 피한 뒤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남은 자축이라도 할까?"

* * *

거리에 울리는 캐롤송과 함께 연말이 찾아왔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송년회와 각종 기념일, 가족 모임, 미뤄둔 약속들이 쏟아지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12월 23일.

WHTS컴퍼니 역시 연말 행사라는 명목하에 전 직원을 모아서 파티를 열었다.

장소는 서울 5성급 호텔의 그랜드홀로, 보통 대기업 임원급이나 재벌가의 파티장으로 쓰이는 곳이지만, 우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파티를 준비했다.

"와, 파티장이 정말 화려하네요. 제가 호텔은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이렇게 멋진 곳은 영화나 드라마 안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솔직히 연말에 회사 파티라고 해서 오기 싫었는데, 그런 생각이 싹 가시네요."

"음식 퀄리티 좀 보세요. 이번 파티를 준비하는데 돈을 얼마 썼을까요? 대관료부터 억은 기본일 텐데..."

파티장 곳곳에서 직원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식을 하나씩 맛보는 사람, 파티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감탄하는 사람, 바쁘게 사진을 찍으러 다는 사람.

공통점은 모두가 이번 파티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들 즐거워 보이네.'

나는 파티장의 가장자리에서 흐뭇하게 직원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번 파티는 내 자축무대임과 동시에 지금껏 고생한 직원들을 위한 자리인 만큼, 모두가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대표님!"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정장을 빼입은 공민준 팀장이 다가온다.

옆에는 부모님처럼 보이는 두 분이 함께였다.

"이분이 저희 대표님이세요. 젊지만 사업 수단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갤 숙인다.

"신우혁이라고 합니다."

"아유, 반가워요. 민준이 애미 되는 사람이에요. 멋진 행사에 초대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앞으로도 우리 민준이 잘 좀 부탁드릴게요."

"부탁은 제가 해야죠. 공 팀장님 같은 유능한 분이 계시기에 회사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겸손하기도 하셔라. 호호호."

이번 연말 파티는 직원들만 초대한 것이 아니라, 직원의 가족, 혹은 애인, 친구도 동반 참여를 독려했다.

WHTS컴퍼니라는 회사가 아직은 무명에 가까운 만큼, 직원들의 자존감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런 대규모 행사는 꼭 필요했다.

이후에도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직원들이 하나하나 내게 찾아와서 인사를 나눈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갔기에, 팀장급이 아니라도 부담 없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파티장 내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홱 쏠린다.

"어?"

나 역시 반사적으로 그쪽을 돌아봤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옆으로 살짝 트인 검은 원피스에 목 부분만 포인트를 준 주얼리, 그리고 킬힐이 필요 없는 우월한 비율까지.

파티장에 할리우드 배우가 나타난 줄 알았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파티에 참석한 모두를 사로잡은 미녀가 내게 다가와서 인사한다.

그 미녀의 정체는 이소영이었다.

"소영 씨. 잘 오셨습니다."

나는 턱 끝에서 넘어오려는 감탄사를 억지로 꾹꾹 밀어 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소영의 옆에는 그녀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내가 눈에 잔뜩 힘을 주고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저희 아버지세요."

이소영의 소개가 나옴과 동시에 나는 고갤 숙인다.

"반갑습니다. WHTS컴퍼니의 신우혁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반갑네."

그는 품평이라도 하려는 건지, 눈에 힘을 풀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살핀다.

그러자 이소영이 저지하고 나선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네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 사람이니, 얼마나 특별한지 살펴보고 있었다. 혹시 그쪽은 어느 학교 출신이요?"

"아이, 참. 실례잖아요!"

"뭐가 실례야.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

그녀는 내게 연신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며, 아버지를 끌고 가 버린다.

이소영의 아버지가 딸이 하는 일을 반대한다는 소린 들었다.

그녀 정도의 실력자라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모셔갈 수준일 텐데,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내가 부모라도 좋게 보진 않을 것 같다.

"..."

이소영은 내가 없었어도 크게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억지로 데려와 놓고, 이대로 능력을 썩혀 버린다면 그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사람이다. 그녀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직원들 모두가.'

나는 눈앞의 위기를 하나 해결했다는 것만으로 잠시 고삐를 늦춰도 된다는 착각을 해버렸다. 이젠 나 혼자만의 인생이 아닌데 말이다.

입술을 꽉 깨물어서 안일했던 내 정신을 다그친다.

'정신 차려. 앞으로 가상화폐 대박이 기다리고 있다지만, 내가 이 판에 들어온 이상, 더는 확정된 미래가 아니잖아.'

이미 가상화폐는 도토리 코인이라는 변수로 인해 폭등세로 접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가 까딱 잘못해서 상승도 전에 고꾸라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너무 빠른 폭등으로 미 정부의 제재를 맞을 수도 있었다.

'가상화폐는 굉장히 불안한 자산이야. 한 번 폭락이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가 흔들릴 거다.'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회사를 지켜낼 수 있는 체급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가상화폐가 아닌 다른 사업으로도 회사를 성장시켜야 했다.

싸이클럽, 와츠, 아니면 다른 무언가?

진지한 고민에 빠졌더니 파티는 어느새 뒷전이 됐다. 주변의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파티장에서 연주되던 음악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서 누군가가 툭툭 두드리는 것이 느껴진다.

"우혁아. 야, 신우혁. 내 말 안 들려?"

어느새 박태식이 옆에 와서 헐떡헐떡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응?"

"아니, 왜 전화를 안 받냐고! 휴대폰 잊어버렸어?"

휴대폰은 주머니에 잘 들어 있었다. 화면을 켜보니 박태식에게 찍힌 부재중 전화가 8통이나 와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어?"

"그래, 터졌지. 아주 대박 사건이 펑! 하고 터졌지!"

"또 호들갑 떤다."

"야이, 씨! 진짜 호들갑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너, 일본의 소프트포우 알지?"

모를 리가 있나. 소프트포우는 일본의 대형 통신사이자, 시가 총액만 100조 원이 넘어가는 초거대 투자회사다.

"거기 신정의 사장이 우리 회사로 직접 연락을 했어! 신년에 너랑 직접 만나고 싶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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