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49화 (4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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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콘서트 두 번째 방송은 전무후무한 기획력을 보여줬다.

처음엔 투표 1위 곡과 2위 곡이 동시에 송출되나 싶더니, 잠시 후 2위 곡 화면은 구석으로 조그맣게 줄어들고 오디오도 잘라 버렸다.

여기서 끝났다면 제작진은 2위 곡 투표자들에게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어야 했을 거다.

하지만 방송 도중에 2위 곡인 내 사랑이 근소하게 표를 앞서게 되고, 그때부터 1위였던 소주 원샷의 방송 화면이 쪼그라들며 상황이 반전된다.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투표 결과에 따라 바뀌는 분량 경쟁.

자칫 어느 한쪽의 편의만 봐준다고 여겨질 수 있는 요소를 원천 차단하고, 2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40분 분량을 방영하는 제작진의 묘수였다.

-자, 다음은 어떤 가수분을 찾아뵐지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오늘은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무조건 도전!

방송이 끝난 직후, 방송국 게시판은 물론이고, 커뮤니티, SNS 등. 네티즌이 모일만한 모든 곳에서 도토리 콘서트 이야기가 쏟아진다.

일반 시청자들은 방송 컨셉이 신선하다, 재미있다, 짧아서 아쉬웠다, 같은 평이 다수였다.

하지만 콘서트에 몰입한 가수 팬들은 비상이 걸렸다.

-도토리 콘서트 투표 안 하신 분 있으면 꼭 싸이 접속해서 투표하세요! 이왕이면 국종이 형에 한 표를!

-워너비 1등 밀어줍시다! 1등은 노래 한 곡 더 넣어준답니다!

-뱅뱅 오빠들, 다음 방송에 완전체로 나온대요. 오빠들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으면 꼭 뱅뱅에 투표해주세요.

인터넷 곳곳에서 팬들의 투표 독려 메시지가 쏟아졌다.

여기에 가수들까지 직접 영상을 남기는 일이 잦아지자 인터넷 분위기는 대통령 선거 때를 방불케 했다.

이런 대중의 관심은 고스란히 주최 측인 우리에게 수혜로 돌아오게 된다.

"싸이클럽 접속자는 전일 대비 소폭 하락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번 주가 투표 유입의 피크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와츠의 접속자는 매일 신기록을 경신 중입니다."

눈 아래가 시커먼 공민준 팀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해도 그만한 성과가 따라와 주니 일할 맛이 나는 것이리라.

"와츠의 일일 접속자는 어제 자로 215만 명, 동시 접속자는 방송 직후 63만 명으로, 국내 인터넷 플랫폼에선 포털 사이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일일 접속자로 포털 사이트를 제치는 것은 불가능하니, 사실상 일반 플랫폼에서 1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영상 업로드 현황은 어떻습니까?"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도토리 콘서트 시작 전과 비교하면 업로드 영상 빈도는 3000%나 늘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3000%라는 말이 나오자 같이 회의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에게서 경악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솔직히 나도 잘 될 줄은 알았다만, 이 정도로 강렬한 효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영상이 너무 무분별하게 많이 올라와서 서버에 무리가 갈 정돕니다."

동영상은 길이가 짧아도 용량이 크다. 그러니 사용자가 이번처럼 몰리면 서버가 바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인데, 오래된 영상이나 의미 없는 영상은 삭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냥 두세요. 의미 없는 영상이라도 사용자가 직접 업로드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무슨 일이든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저도 대표님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이대론 데이터 서버 비용이 우려스럽습니다."

"비용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가상화폐 팀에서 열심히 돈을 찍어내고 있으니까요. 그렇죠, 소영 씨?"

호명 받은 이소영은 자신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발언을 시작한다.

"맞아요. 돈을 팍팍 찍어내고 있어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이번은 싸이클럽 개발진 쪽에서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들은 가상화폐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다른 분들이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도토리 코인 시세 안정화를 위해, 시세가 올라가는 족족 코인을 새로 발행해서 시장에 풀고 있어요."

지금 같이 도토리 관련 소식이 쏟아질 땐 코인 값도 같이 폭등하게 된다.

그래서 우린 롤러코스터 같은 등락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시세를 9달러 선에서 묶어두고 있었다.

"어제 48만 개의 도토리 코인을 새로 찍어냈어요. 이로써 이번에 찍어낸 도토리 코인은 총 262만 개. 한화로 환산하면 240억 원에 달하는 양이에요."

듣고 있던 공민준이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너무 비현실적인 액수인지라, 저게 진짜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고갤 끄덕여주고는 말했다.

"이래서 제가 서버 비용 같은 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공 팀장님은 사용자를 늘리는 데만 집중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공민준은 고갤 끄덕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가상화폐를 회사가 마음대로 막 찍어도 되는 겁니까?"

"평소엔 이렇게 찍어내면 절대 안 됩니다. 블록체인 특성상, 우리가 코인을 언제, 얼마나 발행했는지가 전부 공개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도토리 콘서트라는 초강력 호재를 앞둔 특수한 상황이다.

그래서 사전에 시세를 9달러로 관리한다고 알렸음에도 매수세가 끊이질 않았다.

시세가 오르면 코인을 찍어서 팔고, 오르면 또 찍어서 팔고, 이 짓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262만 개를 새로 찍어내게 된 것이다.

공 팀장과 대화가 끝나자 다시 이소영이 보고를 이어간다.

"발행한 코인의 50%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보관 중이고, 나머지 50%는 싱가포르 법인에 달러로 예치해 뒀어요."

"안 그래도 싸이클럽 개발팀이 이사할 곳을 알아봐야 했는데 잘 됐군요."

"이사할 곳이라면 저희 사무실 아래층이 곧 공실로 나온다고 하던데요. 거기로 오시는 건 어떠세요?"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언제까지 남의 집에 세 들어서 살 순 없는 법이다.

이참에 좋은 자리의 건물을 알아봐야겠다.

* * *

서울 상암의 월드컵경기장.

수용인원만 6만 명이 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 전용구장이다.

좌석 규모가 방대한 곳인 만큼, 최고의 인기 행사들만 치러지는 행사장으로도 유명했는데, 이번엔 도토리 콘서트가 치러지게 됐다.

도토리 콘서트는 네 차례의 방송이 나가는 동안, 살 떨리는 곡 선정 투표가 이뤄졌다.

덕분에 화제성은 역대 최대였으나, 과몰입한 팬들의 사건·사고 역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지막 곡 발표 직전, 6팀을 뽑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철회.

총 11팀을 선정하면서 대립했던 팬덤은 일시에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월드컵경기장에 5만 명에 달하는 관중이 모이게 됐다.

"진짜, 어마어마하구나. 레전드야. 레전드."

박태식이 중얼거리는 소릴 듣고 나도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러게. 콘서트 하나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이 모일 수 있는 거구나."

"뭔 소릴 하는 거야?"

나는 객석으로 두고 있던 시선을 뒤로 돌린다.

박태식은 객석에 모인 관중이 아니라, 행사장 팸플릿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 섭외한 가수들이 레전드라는 뜻이었어. 솔직히 다들 단독 콘서트를 열어도 충분했을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거잖아."

녀석은 어깨를 쭉 펴고 잔뜩 거드름 피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걸 내가 다 기획했단 말씀이지."

"얼마 전까지 6팀만 어떻게 뽑냐고 징징댔던 사람이 누구더라."

"그건... 제작진에서 6팀만 뽑는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잖아."

제작진이 총 6팀을 제안했던 이유는 방송 시간 부족과 비용 증가로 인해 우리 눈치를 보느라 그랬던 거다.

하지만 우린 비용을 얼마든지 더 댈 수 있었고, 방송에 나오지 못한 영상은 와츠에서 공개하면 그만이었기에 굳이 6팀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거나 레전드 11팀이 모여서 합동 공연을 한다니, 진짜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즐겨."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셈이었어. 그러니 자리도 여기로 잡았잖아."

우리가 앉은 자리는 무대 바로 옆이다. 가수들이 올라오는 계단이 있고, 무대도 코앞에 보인다.

원래는 스탭들이 앉는 자리지만 박태식이 스스로를 총괄 기획이라고 우겨서 여기에 자리를 만들었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도토리 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를 시작으로 첫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온다.

이번 투표에서 1위를 두고 다퉜던 싸이클럽 대표 배경음악이자, 노래방 뮤직비디오 부동의 1위 곡, 소주 원샷이었다.

-술이 한 잔 생각 나는 날...

곡의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객석에선 우렁찬 목소리가 쏟아진다. 흔히 말하는 떼창이었다.

옆에 있던 박태식도 흥분했는지 벌떡 일어서서 무대를 바라본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누가 보면 헤어졌던 첫사랑이라도 만난 줄 알겠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과몰입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이번 도토리 콘서트는 싸이클럽과 와츠의 인지도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 주최 측인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냉정하게 콘서트를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아아~ 아아아아~

첫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소개되고, 또 다음 곡이 소개되고.

콘서트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나도 어느새 분위기에 취해서 무대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나도 박태식과 같이 일어서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1부 무대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쯤, 주머니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진다.

"음?"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가 6통이나 쌓여 있었다.

주변이 워낙 시끄럽기도 했고, 나도 정신이 딴 데 팔린 상태였기에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나 보다.

뚜우... 뚜우...

발신자인 WHTS컴퍼니 사무실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대표님?

사무실 경리 직원 목소리였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찍혀 있던데요."

-대표님 앞으로 손님이 찾아오셔서요. 투자 관련으로 오신 분이라서 바로 연락드렸던 건데, 계속 안 받으시더라고요.

"주변이 시끄러워서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서랍을 여는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명함 두고 가셨는데, 지금 연락처 불러 드릴까요?

"아뇨. 나중에 회사로 돌아가면 그때 확인하든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WHTS컴퍼니의 대표인 '대니얼 신'은 본사인 싱가포르에 있다고 돼 있다.

그러니 투자 건으로 찾아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박태식을 찾아야 정상일 텐데, 대표인 나를 찾아왔다고?

"아까 찾아왔다는 사람. 소속과 직급,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잠시만요.

다시 서랍 여는 덜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속과 직급은 KN케미컬의 전무시고요. 성함은... 박민교라고 돼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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