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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방송사에서 도토리 콘서트 특집 제작 허가가 정식으로 떨어졌다.
제작진도 적극적이었기에 기획과 대본, 촬영, 편집까지 모든 절차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완료되고 첫 방영분이 공개됐다.
-시청자 여러분. 우리 무조건 도전 팀이 정말 초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뭐냐면 말이죠.
-형님! 저 알겠어요! 그거 맞죠? 맞죠? 맞죠? 인터넷에서 난리 난 그거! 그거 있잖아요! 도토리! 맞네. 표정 보니까 딱 맞아.
-얘. 진정 좀 해. 나도 멘트 좀 하자.
-입이 근질근질해서 죽겠는데 어떻게 진정을 해요! 누가 나오는 거예요? 장소는요? 섭외는 끝났어요?
-제작진이 먼저 회의를 했는데, 너무 쟁쟁한 노래가 많아서 뽑을 수가 없었다더라.
-아하! 그럼 우리가 섭외하는구나?
-아니지. 시청자분들께서 투표로 곡을 선정해주시면, 그때 우리가 섭외하기로 했다.
도토리 콘서트 첫날 방영분은 예고편 성격의 짧은 영상이었다.
무조건 도전 멤버들이 모여서 도토리 콘서트를 개최 소식을 알리고, 어떤 곡을 뽑을지는 시청자 투표로 진행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럼에도 기대감이 워낙 컸던 사안인지라 네티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토리 콘서트 투표 첫날에 몰린 인원만 무려 50만 명.
이들은 그냥 투표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노래를 틀어두고, 미니홈피와 사진첩을 넘기며 추억에 빠졌다.
그러다 보면 싸이클럽 좌측에 띄워둔 배너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스타의 미니홈피 Ver 도토리 콘서트.]
이번 콘서트에 참가가 유력한 가수들의 미니홈피를 링크해둔 배너였다.
가수라고 해도 미니홈피의 감성은 같았다. 그 시절 특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진과 게시물들.
그리고 한쪽으론 이번에 직접 찍어서 올린 짧은 영상이 있었다.
-저희 워너비! 뽑아만 주시면 정말 멋진 무대를 선보이겠습니다! 이젠 보낼 게 우우~
-저를 아직 기억해주신 팬들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리고요. 아... 눈물 나. 잠시만요. 이거 이대로 올려도 되는 건가?
-그 시절 그때처럼, 우리 멤버가 완전체로 무대에 오를 수 있으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 투표 참여해주세요. 영상도 잊지 마시고요.
미니홈피에 올라온 짧은 영상은 단순한 홍보용이 아니었다.
가수들도 진심으로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영상을 올려서 팬들과 소통하기에 이른다.
"우혁아. 이거 봤어? 워너비가 와츠에 영상 올렸더라. 우리가 홍보 부탁한 것도 아닌데 직접 올렸어."
박태식은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면서 입이 귀까지 걸려 있었다.
학창시절에 팬이었던 가수가, 자신이 기획한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 자신이 운영 중인 서비스로 소통하고 있으니 좋은 게 당연했다.
물론 당사자는 그렇다는 거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겐 마냥 한심하게 보일 뿐이다.
"주최 측인 네가 좋아서 헤벌쭉해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좋은 걸 어떡하냐. 앗! 에픽 타임에서도 영상 올렸어. 얘넨 랩으로 홍보하기로 했나 봐. 와! 랩이 예전 느낌 그대론데? 한 번 들어봐."
박태식은 끼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내게 내민다. 나는 싫다고 손을 저었지만, 녀석은 막무가내였다.
-우린 계속 여기 있었죠. 그대들도 잊지 않았죠. 다시 만나길 기다렸죠.
-이젠 꿈에서라도.
-함께 무대서길 바라죠.
들어보니 호들갑을 떨어댈 만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의 랩은 정말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때? 태블로 랩 좋지? 느낌 있지?"
"나쁘지 않네."
"요놈 또 얌전 떠는 것 봐라. 표정에는 죽여준다고 써 있으면서."
나는 노래가 나오던 이어폰을 얼른 걷어버리고 말했다.
"혹시 해서 말하는 거지만, 섭외 명단에 사심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건 걱정하지 마셔. 나는 모든 곡을 다 좋아하기 때문에 사심이 들어가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직 도토리 콘서트의 섭외 명단은 확정된 게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지에서는 각 가수의 팬들이 투표 독려라는 이름의 전쟁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 가수 섭외가 주최 측 입김이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면 여론은 단번에 부정적인 쪽으로 돌아설 거다.
"와츠 쪽은 어때? 업로드 숫자가 꽤 늘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박태식이 실실 웃으며 일일 보고서를 보여준다.
보고서에는 와츠의 사용자 추이, 사용 시간, 영상 업로드 숫자가 그래프로 표시돼 있었는데, 모든 수치가 기존의 4배가량 치솟아 있었다.
"어때? 대박이지?"
"그러게."
"무도 제작진 쪽에서도 이 정도로 대박 날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시청률도 저번 아이돌 가요제보다 더 높다던데?"
그럴 수밖에 없다. 저번 아이돌 가요제는 특정 팬층, 90년대 말에 대중가요를 즐겼던 이들만 타겟으로 삼았다면.
이번 도토리 콘서트는 2000년대 초반, 중반, 후반을 모두 포함한 넓은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면 분위기가 너무 과열됐다는 것 정도?"
"원래 이런 엔터 행사는 팬들이 과몰입을 해주면 좋은 거야."
"아니, 그런 쪽이 아니라. 이게 팬층을 넘어 성별,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날 조짐이 있더라고."
* * *
무조건 도전 제작팀은 요 며칠간 휴일도 없이 긴급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회의의 주제는 싸이클럽의 도토리 콘서트였다.
도토리 콘서트는 기획단계 때부터 이목이 쏠렸었는데, 곡을 투표로 선정한다고 발표한 이후부터는 연예계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제작한 프로그램이 흥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제작팀 내부에서는 흥해도 너무 흥한 현 상황에 위기감을 느꼈다.
"SNS나 게시판을 둘러보면 전부 도토리 콘서트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이젠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원래 계획대로 가야지."
회의실에선 제작진의 한숨이 쏟아진다.
이들이 이렇게 울상인 이유는 바로, 도토리 콘서트에 배정된 한 주의 방송 시간이 고작 20분이었기 때문이다.
"타 에피소드를 50분 내보내고, 도토리 콘서트는 20분만 방영했다간 항의가 쏟아질 겁니다."
"맞습니다. 20분은 너무 적습니다."
"PD님, 무리해서라도 방영 시간을 조정하는 게 어떠신지... 최소한 반반은 돼야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않겠습니까?"
제작진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진다.
사실, 여기서 가장 방영 시간을 늘리고 싶은 사람은 메인 PD인 심종모였다. 하지만 그가 딱 20분으로 못 박아버린 이유가 있었으니.
"국장님이 그 이상은 안 된다는데 내가 어떡하냐?"
"그래도 20분은 좀..."
"처음엔 어떻게 허가가 떨어진 줄 알아? 코너 속의 코너로 딱 10분만 내보내라고 하더라."
10분은 방대한 콘서트 스토리를 다루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이었다.
특히 노래 부르는 씬은 기본이 4분 이상이었기에, 실제 출연진이 나와서 진행하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됐다.
"그 20분도 내가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얻어 낸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방영 시간으로 토 달지 말도록."
제작진은 고갤 끄덕이긴 했으나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기껏 영상을 잘 뽑아놓고, 외부 요인 때문에 못 쓰게 된 꼴이었으니까.
분위기가 계속 축 처지자 심종모가 책상을 내리치며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자자, 다들 표정 풀고, 이번 주 투표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 아까 싸이클럽에서 보내줬다며?"
막내 스탭이 잽싸게 서류를 가져와서 테이블에 늘어놓는다.
1위는 노래방에서 전 국민이 뮤직비디오와 함께 열창했던 소주 원샷이, 2위는 소몰이 창법으로 유명한 워너비의 내 사랑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표 차이가 얼마 안 나잖아?"
"당시의 인기로는 소주 원샷이 압도적이었습니다만, 워너비의 팬이 투표 독려를 열심히 해서 거의 따라잡은 상황이라고 합니다."
"워너비가 아이돌처럼 열성 팬이 많은 그룹은 아닐 텐데?"
"그게..."
막내 스탭은 말을 하다가 말고, 주변 눈치를 살핀다.
"이게 왜 이렇게 됐냐면, 투표가 세대 간의 대결이 돼서 그렇습니다."
"무슨 세대?"
"소주 원샷은 싸이클럽 초창기에 나온 곡이고, 내 사랑은 중후반기에 나온 곡이잖습니까. 두 시대에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좋아하는 곡도 달라서..."
"고작 그걸로 팬덤이 갈려서 싸운다고?"
"그렇습니다."
심종모가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리는 동안, 다른 제작진들도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아이돌 팬들이 싸우는 거야 매번 그랬으니 이해하겠는데, 노래 시대가 다르다고 싸우는 건 좀..."
"싸이클럽 세대면 전부 성인 아니에요?"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그럴 거예요. 그리고 이번 콘서트에 자리가 딱 6팀 밖에 없잖아요. 치열한 건 어쩔 수 없죠."
그러다 편집팀에서 정식으로 손을 들고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팬들이 싸우는 분위기면 편집으로도 말이 나오는 거 아녜요? 누구는 10분 나왔는데, 누구는 5분 나왔다는 식으로요."
편집 분량에 따라 투표에도 영향이 있을 테니, 팬들의 항의는 무조건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수마다 방영 시간을 칼같이 배분할 수밖에 없겠네요."
"겨우 20분 밖에 없는데 그걸 또 나누라고요? 맙소사."
"고생 좀 하시겠어요."
이때, 심종모가 다시 책상을 '쿵!'하고 내리친다.
"분량 배분은 없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해."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 분량이 쏠리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심종모는 코웃음을 친다.
"내게 아이디어가 있어. 방영 시간도 2배로 늘리고, 여론도 잠재울 만한 굿 아이디어지."
* * *
도토리 콘서트 특집 2화가 방영되는 날.
싸이클럽 개발실에도 본방 사수를 위해 직원들이 회의실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나와 박태식 역시 회의실에 한 자리를 차지한 채, 방송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몇 분이나 나온대?"
내 물음에 박태식이 작게 소곤거린다.
"20분."
"그걸로는 뭘 보여주지도 못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심 PD는 잘 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더라고."
"흠..."
잠시 후, 기다렸던 무조건 도전 본 방송이 시작됐다.
초반에는 메인 에피소드인 국내 투어가 방영됐다.
이것도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으나 이어질 에피소드가 도토리 콘서트였기에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 방송 시작 40분 만에 드디어 도토리 콘서트 차례가 왔다.
"어?"
보자마자 탄식이 먼저 나왔다. 그건 같이 방송을 보고 있던 직원들, 그리고 박태식도 마찬가지였다.
"호언장담했던 게 분할 중계였어?"
정확히 화면 절반을 잘라서, 한쪽으론 소주 원샷 노래가 나오고. 다른 한쪽으론 내 사랑 촬영분이 나온다.
그러다 하단에 개표방송처럼 실시간 투표 현황이 나타나는데.
쓰윽.
실시간 투표에서 소주 원샷이 0.3% 정도 앞서나가자, 내 사랑 쪽 화면이 작게 쪼그라들고 사운드도 꺼져버린다.
'이 사람들, 설마...?'
설마가 아니라 진짜였다. 제작진은 실시간으로 촬영분 2개를 띄워두고 이긴 쪽을 메인으로 방영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이면 20분 동안 40분 분량을 내보낼 수 있겠구나. 대단한데?"
나는 순수한 의미로 감탄하고 있었지만, 옆에 앉은 박태식은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이게 감당될까? 인터넷에서 양쪽 팬들이 활활 불탈 거 같은데."
"불타도 상관없잖아. 그럼 방송은 더 잘 될 테니까."
"아니, 당장은 그렇지만 마지막에 패배한 쪽은 어떻게 되겠어? 몰입이 너무 심하면 안티로 돌아설지도 몰라."
박태식은 심각했지만, 나는 이 사태를 보고도 귀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미래엔 세대, 성별 갈등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대통령 당선을 가를 정도로 심각한 주제로 떠오른다.
그걸 아는 나로선 노래가 유행한 시대별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은 애들 장난으로밖에 안 보였다.
"태식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막판에 봉합하고 위 아더 월드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반반으로 배분하려고?"
"아니지. 치킨을 시킬 때도 반반은 양이 적어서 불만만 많아져."
"그럼?"
"두 마리를 시켜 줘. 그래도 우린 이득이야."
이번 도토리 콘서트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노래가 선정되냐가 아니다.
싸이클럽 사용자의 증대와 와츠의 인지도 확보.
이 둘을 얻게 되면 서비스와 연계된 도토리 코인의 가치가 폭등할 테니, 회사는 엄청난 이득을 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