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46화 (4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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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클럽 전성기를 이끈 주역은 단연 미니홈피와 그 시절 감성이 듬뿍 담긴 게시글이었다.

하지만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라고 했던가.

다시 돌아본 미니홈피는 귀엽지만 조금은 아쉬운 커스텀 페이지였고, 게시글도 지금 살펴보면 추억보다는 흑역사에 더 가까웠다.

-ㄴr는 ㄱㅏ끔 눈물을 흘린다...

-이 헤드폰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사나이는 피하지도 숨지도 않는다. 부평고 1학년, 보고 싶으면 형을 찾아와라.

-내 나이 18세. 눈에 거슬리는 건 뭐든지 파, 괴, 한, 다.

어릴 적 쓰던 일기장처럼 남에게 보여주긴 부끄러운 그 시절의 감성.

실제로 싸이에 복귀한 회원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결같았다.

바로 미니홈피에 썼던 자신의 과거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숨김 처리하는 것이었다.

글을 전부 정리한 회원이 다음으로 찾는 곳은 친구와 지인의 흔적이 남은 방명록과 사진첩이다.

그 옛 추억을 하나씩 되짚다 보면 자연스럽게 귓가엔 그 시절의 노래가 흘러들어온다.

-My baby I love you so much forever you and I...

노래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추억에 잠겨서 가사를 흥얼거리고 어깰 들썩이게 된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헤어나올 수 없다. 다른 노래를 찾아보고, 가수의 근황을 검색하고, 가수의 신곡도 들어본다. 그러나 신곡은 느낌이 살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아쉬워하던 차에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다.

도토리 콘서트.

그 시절 감성의 노래를 그때의 가수들이 모여서 부른다.

이와 동시에 방영 기간 사이사이에 와츠로 짧은 맛보기 영상과 가수의 일상, 소통 영상이 올라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실패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 이미 성공한 전례도 있었고. 그래서 무조건 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 야심찬 계획은 시작도 전에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섭외 거절이라니? 미팅 일정까지 다 잡았잖아?"

너무 의외의 결과였기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일을 의욕적으로 진행하던 박태식도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며 설명을 내놓는다.

"그게 말이지... 제작진은 바로 오케이가 나왔는데, 윗선에서 제동을 걸었대."

"윗선이면 누구? 사장?"

"그건 나도 모르지. 아무튼,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 오후에 예정된 미팅도 취소해달라고 하더라."

그 윗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태식아. 너, 방송국 쪽에 인맥 뚫어 뒀다고 했지?"

"응. 방송 3사 어디든 말만 해. 내가 방송국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한 일이 그거니까."

"그럼 이번 기획을 막은 윗선이 누군지 알아 봐줘. 거부한 이유도 같이."

"무조건 도전 쪽이랑 계속 진행하려고?"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박태식은 의외라는 반응을 내보인다.

"한 번 까였는데도 계속 붙잡으면 모양새가 안 좋지 않아? 차라리 다른 방송국을 뚫자. 우리가 아쉬울 것도 없잖아."

"아니, 꼭 거기서 해야 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바로 알아보고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밖으로 나갔던 박태식은 30분 정도가 지나서 돌아왔다.

휴대폰을 꽉 말아쥔 녀석의 표정만 봐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왜? 뭐가 잘 안 됐어?"

"잘 안 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답이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완전히 똥 밟았어."

"누가 막았길래 그래?"

박태식은 내 앞자리에 앉더니 대뜸 한숨부터 내뱉는다.

"후우... 반대한 윗선은 예능국장인데 사유가 정치권에서 우리 이름이 나오는 걸 막고 있어서 그렇단다."

"정치권이면 여당?"

"몰라. 확실한 건 그쪽에서 우리가 방송에 노출되는 게 불편하시대. 썩을."

이해가 안 된다. 지금껏 우린 정치권과 그 어떤 접점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방송 노출을 막아버린단 말인가.

"혹시, 우리 직원 중 정치권에 밉보인 사람이 있는 거 아닐까?"

"음... 그럴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있다 해도 그런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하진 않을 것 아냐."

"하고도 남지. 아예 방송 출연 금지 리스트를 만들어 뒀을걸."

"에이. 장난치지 마.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입장을 바꿔서, 내가 박태식이었어도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겼을 거다.

하지만 나는 정치권 블랙리스트가 실존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쪽으로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젠 어쩌지? 정치권에서 막은 게 사실이라면 KBC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에서도 우릴 받아주지 않을 텐데."

이번 도토리 콘서트는 지상파 방송사와 연계가 필수였다.

그래야 영상 서비스인 와츠에서 미방영분과 가수 개인의 영상까지 다루며 깔끔한 연계가 이어질 테니까.

"어쩔 수 있나. 안 되면 되게 만들어야지."

"어떻게?"

나는 안 주머니에서 USB를 3개 꺼내서 박태식에게 넘겨준다.

"이게 뭐야? 설마 코인 지갑?"

"맞아. USB 하나당 도토리 코인 2500개가 들어 있어."

오늘 자 도토리 코인 시세는 약 8800원이다.

즉, 내가 건넨 USB엔 총 6억6천만 원이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받아도 탈 날 걱정 없는 안전한 뒷돈이 6억이면 방송국 윗선 정도는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을 거다."

* * *

도심 외곽의 오래된 호텔.

허름한 시설에 어울리지 않게 잘 차려입은 두 사내가 마주 서 있다.

키가 작은 사내는 긴장한 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고, 키가 큰 사내는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본다.

그러다 키가 큰 쪽, 나준석이 치켜든 주먹을 꽉 말아쥔다.

"턱 들어."

키가 작은 사내, 나민성은 순순히 턱을 위로 쳐들었다. 그는 이어질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눈을 질끈 감고, 이빨도 꽉 깨문다.

"버텨라. 뼈 상한다."

억센 주먹이 나민성의 길게 뻗은 목을 후려친다.

빡!

나민성의 몸이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엎어졌으나, 그는 얼른 일어나서 다시 목을 쳐든다.

빡!

다시 한번.

빡!

다시 한번.

빡! 빡! 빡!

나민성은 버티고 버텼으나 결국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은 복부로 발길질이 날아든다.

"컥!"

입에서 위액이 쏟아진다. 이걸 보고 나민성은 고통보다 미리 속을 비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뒤지기 싫으면 다시 일어나서 턱 들어."

"혀, 형... 진짜 잘못했어. 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줘."

"저번에도 내가 도와준 거 알아 몰라? 너 새끼 보석으로 꺼내주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새 또 사고를 쳐?"

나민성은 얼마 전 WHTS컴퍼니에서 진행한 악플 고소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아직 신원이 들키진 않았다만, 증거가 너무 많은 상황인지라 잡혀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진짜 미안! 형!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니까,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고 딱 한 번만 더 도와줘. 응?"

"그냥 얌전히 잡혀 들어가."

"절대 안 돼! 이번에 또 잡히면 난 평생 감옥에서 썩을 거야."

나민성은 아예 무릎까지 꿇고서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냉랭하다.

"그럼 평생 빵에서 썩으면 되겠네."

"형, 진짜 그러기야?"

"네가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어. 보석에서 나온 놈이 또 사고를 쳤는데, 그걸 어떻게 꺼내줘?"

"형이라면 방법이 있을 거 아냐. 대기업 회장님들 뒤처리 전문이니까 검찰총장이나 그런 사람도 가끔 만났을 거고..."

나준석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동생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야이 새끼야. 너 같은 케이스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검찰총장 할애비가 와도 구제가 안 돼.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냐?"

"그럼... 그냥 해외로 떠야 해?"

"해외로 뜨는 게 장난인 줄 알아? 돈 없으면 거긴 지옥이야, 지옥. 차라리 감빵에 들어가는 게 나을 거다."

나민성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마지막 비빌 곳인 형이 도움을 못 준다고 했으니 이젠 진짜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 저걸 진짜. 여기서 패 죽일 수도 없고."

방금까지 실컷 두들겨 패던 나준석은 동생의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네가 살아날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해."

"아깐 검찰총장 할애비가 와도 구제가 안 된다며?"

"이 짜식아. 검찰총장 할애비보다 더 높은 사람이니까 소개해주는 거잖아."

나준석은 빳빳한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름도 없이 전화번호 하나가 전부인 무지 명함이었다.

"최대한 빨리 연락해 봐. 그쪽에서 마음 바뀌기 전에."

* * *

한국에서 검찰총장보다 더 높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민성은 명함의 주인과 약속한 장소까지 가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법무부 장관? 여야 대표? 국무총리? 설마 대통령은 아니겠지.'

누가 나올지 전혀 예측이 안 되니, 대응 방법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결국은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걸음을 재촉하기로 한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가상화폐 전문가를 찾는다면 이유야 뻔했다.

돈세탁.

가상화폐 돈세탁은 최근 재벌가와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차명 계좌나 조세 피난처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비자금을 한방에 달러로 환전하는 수단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못 왔나?"

약속 장소는 재건축을 앞두고 폐건물만 가득한 도로변 앞이었다.

나민성이 다시 장소를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확인하던 차에, 그의 앞에 새카만 세단이 멈춰선다.

"나민성 씨 맞으십니까."

새카만 세단에서 새카만 정장과 새카만 선글라스를 낀 사내들이 그에게 물어온다.

"맞습니다만."

"타시죠."

"이 차가 어디로 가는 겁니까?"

검은 사내들은 말없이 타라고 손짓만 반복했다.

나민성은 저기에 타면 큰일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선택지가 없는 그였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차에 올라탔다.

세단의 내부는 재벌가 회장님들이나 탈법한 고급 리무진 형태로 개조돼 있었다. 그리고 차 문을 톡톡 두들겨 보는데.

'이 차, 뭐야? 방탄처리가 돼 있잖아.'

대한민국에서 검찰총장보다 높으면서 방탄차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

적어도 명함의 주인이 평범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나민성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을 속으로 계속 되뇌며, 초조하게 도착을 기다렸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드디어 차가 멈추고 뒷좌석 문이 열린다.

철컥.

차 안으로 들어온 이는 드세 보이는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다.

솔직히 김이 팍 샜다. 어디 조직의 보스 같은 사람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기껏해야 부녀회 회장 같은 아줌마가 나타났으니까.

'차라리 잘 됐군. 이런 사람이면 적당히 구워삶을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오산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검은 사내들이 넘겨준 서류철을 펼친다. 그곳엔 나민성의 상세 프로필과 지난 범죄 행각, 심지어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수사 경과보고서까지 첨부돼 있었다.

툭.

그녀는 서류를 대충 훑은 뒤 앞 좌석으로 휙 던져버리고 말했다.

"너,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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