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44화 (4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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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가 가득 한 사무실.

이쯤이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법도 했으나, 사무실 주인인 박민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그가 집중해서 보는 화면에는 요즘 자주 올라오는 도토리 코인 기사가 떠 있었다.

내용은 특별한 게 없었다. 도토리 코인 시세가 얼마나 올랐으며, 투자자들이 대박을 터트렸다는 붙여 넣기식 기사였다.

한참이나 기사를 읽어가던 박민교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계좌를 털어갔던 놈도 도토리 코인을 샀다고 했었지."

그때보다 도토리 코인 시세가 4배는 넘게 올랐으니 절도범 역시 그만한 돈을 벌었다는 뜻이 된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걸 털린 것도 모자라서, 투자 대박까지 쳤다니. 배알이 꼴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절도범을 잡아서 죽여버리고 돈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절도범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이상, 놈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 찢어 죽일 놈은 출금하려 들지 않지? 왜? 이유가 뭐야?"

수백억이나 되는 큰돈을 손에 넣었는데 어째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상화폐로 보관하고 있는 걸까?

그의 머리로는 놈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시세가 오른다는 확신이라도 있었나? 그건 너무 무모하잖아. 그러다 예전처럼 대폭락이라도 맞으면...'

그가 한창 중얼거리던 차에, 갑자기 예전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트코인 시세가 떨어지면 직접 물량을 사서 가격을 끌어올리길 반복했던, 그 기억이었다.

"혹시?"

박민교는 급하게 전화를 건다.

통화할 상대는 한 명밖에 없었다. 가상화폐 방면에서 가장 빠삭한 나준석 실장이었다.

뚜우... 뚜우... 뚜우...

나준석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신호가 세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을 텐데.

최근 들어 그가 묘하게 자신을 귀찮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

걱정이 쌓이고 쌓여서 망념이 그를 집어삼키기 직전이 돼서야 통화가 연결됐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샤워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다음엔 씻을 때도 꼭 전화기 가져 다녀. 알겠어?"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를 하신 건지...

박민교는 그제야 더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케이먼 제도 계좌를 털어간 도둑놈 있지? 계속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했잖아."

-그렇습니다.

"그놈이 훔친 돈으로 아무 짓도 안 했던 게 아니라, 가상화폐 시세 조작에 사용한 거 아닐까?"

-어떻게 말입니까?

"훔친 계좌로 가상화폐를 잔뜩 사면 시세가 오를 것 아냐? 그 짓을 몇 번만 반복하면 출금하지 않아도 큰돈을 벌 수 있잖아."

상대가 출금으로 인한 신원 노출이 부담스러웠다면 충분히 시도했을 법한 노림수였다.

박민교는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도난 계좌에서는 지금까지 딱 한 차례의 거래만 발생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걸로 시세를 끌어올렸다면 내 말이 맞잖아? 이번에 도토린지 뭔지 시세가 올랐다며?"

-그 계좌가 도토리 코인을 산 건 맞으나, 도토리 외에도 이더리움, 라이트 코인, 리플 등. 총 8종의 코인을 매수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움직임은 시세 조작보다는 분산투자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기껏 생각해낸 추리가 부정당하자 박민교는 버럭 화부터 내고 본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언제 그 새끼를 잡을 수 있는 거야? 응? 언제 까지냐고!"

-힘드시겠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이런 썅! 그 입 다물어!"

그는 수화기를 땅바닥에다가 내팽개친다. 그걸로는 분이 안 풀리는지, 마구 밟아대기까지 했다.

"헉... 헉... 헉... 씨발. 자기 돈 아니라고 상관없다 이거지? 이젠 됐어. 나 혼자서라도 찾아낼 테니까."

박민교는 도토리 코인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임원 목록을 찾아본다.

만약 도토리 코인을 인위적으로 폭등시킨 거라면, 가장 큰 이득을 본 쪽은 도토리 코인 개발사라고 생각해서였다.

[대표이사 대니얼 신]

홈페이지에는 이름과 직함 한 줄 말고는 그 흔한 사진이나 약력조차 나와있는 게 없었다.

박민교는 그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다. 마침, 잡지사 한 곳에서 인터뷰 예고랍시고 올린 기사가 있었다.

[도토리 코인의 창시자이자 WHTS컴퍼니의 대표이사 대니얼 신. 그와 진행한 특별 인터뷰가 곧 공개됩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대니얼 신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었다.

* * *

도토리 코인은 700만 원짜리 금일봉 기사가 퍼지면서 단기간에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인지도 상승은 곧 도토리 코인 시세 상승을 불러왔고, 시세 상승은 재차 새로운 기사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로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도 덩달아 폭증하게 된다.

지금까진 박태식이 나를 대신에서 얼굴 마담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대표인 나를 직접 찾는 기자들이 많아졌다.

취재 분위기를 이대로 뒀다간 기자들이 회사로 무작정 쳐들어오거나, 주차장까지 따라와서 인터뷰를 따갈 기세였다.

계속 숨는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이쯤에서 내가 한 번은 얼굴을 드러내서 과열된 취재 분위기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곧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WHTS컴퍼니의 응접실에선 '스마트 모어'의 기자와 스탭들이 인터뷰 준비에 한창이다.

스마트 모어는 언론사는 아니지만 IT기기와 자동차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잡지사였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스마트 모어의 김효림입니다."

당찬 인상의 기자가 명함을 내민다. 나도 미리 준비해둔 명함을 꺼내서 맞교환하며 말했다.

"WHTS컴퍼니의 대표 대니얼 신입니다."

"앗!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짧게 잡담이 오가다가, 정식으로 녹음기를 켜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우선은 저희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제가 알기론 대표님은 한 번도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인터뷰 울렁증이 있어서요."

"아하. 그러셨군요. 그럼 저희 인터뷰에 응해주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진짜 이유는 얼굴이 나가지 않고, 인터뷰할 수 있는 매체를 찾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나는 가장 형식적이면서도 듣기 좋은 답변을 내놓는다.

"제가 스마트 모어의 애독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IT 기기와 자동차를 좋아했거든요."

"와! 여기서 독자님을 만나다니!"

"저번 달 전기차 특집 기사,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 특집 기사가 자주 나오면 좋겠더군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후에는 도토리 코인을 만든 목적, 개발 당시의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로 인터뷰가 무난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쯤, 기자가 화제를 홱 전환하고 나섰다.

"지금부터는 독자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Q&A를 진행할 텐데요. 처음부터 민감한 질문이 준비돼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뭐든 물어보시죠."

"그럼 도토리 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의 가상화폐 가치가 너무 고평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이에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자 비트코인 시세는 겨우 60만 원을 넘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 생각엔 가상화폐 시장 전체가 지나치게 저평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선 얼마나 오를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지금보다 100배 정도?"

내가 가볍게 말해서 그런지 기자는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진지하게 비트코인 7000만 원을 떠들어도 믿을 사람은 없을 테니, 나도 씩 웃고 말았다.

그 뒤로 형식적인 질답이 오가다가 약 한 시간 만에 모든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스탭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 기자가 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저... 죄송한 말씀이지만 인터뷰 예약 때 전달받았던 대표님 사진 말인데요."

그녀는 내게 사진을 보여준다. 그 사진 속의 나는 보정을 최대한 먹여서 거친 피부와 짙은 눈썹, 강인한 턱선, 구렛나루까지 넣어서 상남자 카우보이 같은 느낌이었다.

"동일인 맞으시죠? 얼굴이 많이 다르신 것 같아서 여쭙는 거예요."

"최대한 잘 나온 사진을 드린 건데, 실물이 더 나아 보이나요?"

"예, 뭐... 하하..."

기자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내가 장담하는데 날 낳아주신 어머니도 저 사진 만으로는 난 줄 못 알아볼 거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프로필 사진을 챙겨 드리겠습니다."

"아뇨. 사전 인터뷰가 실린 잡지는 벌써 인쇄가 끝났어요. 그래서 사진 교체가 안 될 것 같아요."

알고 있다. 그래서 인터뷰 날짜를 오늘로 잡은 거다.

"그렇군요.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 * *

도토리 코인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와츠는 짧은 영상을 앞세워서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외부에선 싸이클럽이 대박을 쳐서 다시금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나.

정작 사내에선 시간이 갈수록 위기감이 솔솔 피어나고 있었다.

"지금처럼 해서는 와츠의 인기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회의실 전체에 박태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발언은 다소 극단적인 내용이었으나, 회의 참석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거린다.

와츠의 위기.

그건 바로 와츠라는 플랫폼이 처음부터 안고 있었던 약점, 콘텐츠의 고갈이었다.

"이번 주 와츠의 사용자 보고서에 따르면, 영상을 소비하는 쪽이 97%, 영상을 업로드하는 쪽은 3%가 채 안 됩니다."

와츠는 아직 SNS라기보다, 심심풀이 영상을 보는 앱 플레이어 같은 느낌으로 굴러갔다. 그러니 사용자의 3%가 영상을 올린 것도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담당자인 박태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대로 콘텐츠가 고갈되면 사용자는 순식간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짝 늘었던 싸이클럽 사용자도 덩달아 줄어들 거고요. 그러니 당장이라도 미뤘던 도토리 코인 보상 지급을 시작해야 합니다."

박태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옆에서 이소영이 의견을 낸다.

"저는 시기상조라고 봐요. 아직 도토리 코인을 보상으로 얼마나, 어떻게 줄 지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더 시간을 허비했다간 기껏 모은 사용자가 다 떠나고 말 겁니다."

"그렇다고 현금이나 다름없는 재화를 막 뿌릴 순 없잖아요?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돌이킬 수 없어요."

"소량이라도 먼저 지급하면 될 것 아닙니까."

"완벽한 시스템과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오기 전엔 지급 불가예요."

두 사람의 의견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그러다 더는 논쟁해봐야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양쪽 모두 타당한 의견이었기에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애매하다.

와츠의 흥행과 도토리 코인의 안정성.

둘 다 회사에 중요한 건 매 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이소영에게 물었다.

"언제쯤이면 도토리 코인 보상 시스템이 완성되겠습니까?"

"올해 완성은 힘들 것 같고, 적어도 내년 2분기는 돼 봐야 할 것 같아요."

바로 박태식이 발끈하고 끼어든다.

"내년 2분기? 그때까지 우린 손가락만 빨고 있으란 겁니까?"

"일단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됐어? 그동안 유투브 영상만 재탕 삼탕 우려먹다간 우린 끝장이야!"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 붙인다고 제대로 결과가 나오겠어? 다른 방법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 봐."

사실상 이소영 편을 들어준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박태식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왔다.

"말이 쉽지. 영상 콘텐츠가 뚝딱하고 나오면 얼마나 좋겠냐."

"저번엔 연예인 마케팅으로 가입자 끌어 본다며?"

"그건 부작용이 많아서 안 되겠더라. 연예인 팬덤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전멸이야, 전멸."

과거에 서비스했던 투데이ME라는 전례가 있으니, 쉽게 꺼내들 카드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막 지른 말은 아니다.

"그 연예인 팬덤이 지금의 싸이클럽 사용자와 겹치면 상관없잖아."

"어떻게 겹쳐?"

"싸이클럽이 한창 인기 절정일 때,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의 가수를 모아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거지."

박태식도 이젠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그려지는지 입에서 '오!' 하고 감탄사가 나온다.

"괜찮은데? 그 시절 유명 가수들을 스튜디오에 모아서 라이브 시키면 콘텐츠는 뚝딱 나오겠어."

"그냥 라이브만 하면 재미없지. 이왕 할 거 커다랗게 콘서트로 진행해보자."

"콘서트면 더 좋지! 당장 하자!"

싸이클럽의 전성기 노래로 콘텐츠도 확보하고, 그때의 감성을 기억하는 사용자도 확보하고.

꿩 먹고 알 먹기가 가능한 초대형 프로젝트, 일명 도토리 콘서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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