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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상을 내세운 와츠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서비스 오픈과 동시에 최대 접속자 30만 명이 꽉 차 버렸고, 대기열도 꾸준히 15만 명 수준을 유지했다.
여기서 더 긍정적인 소식은 도토리 코인의 지급을 정식 버전 이후로 미뤘는데도 이런 인파가 몰렸다는 점이다.
신규 서비스의 대흥행, 불확실성 해소.
여기에 대량으로 풀릴 줄 알았던 도토리 코인의 배포 일정이 밀리게 되자, 2달러 중반대에서 횡보하던 도토리 코인 시세는 폭발적인 상승을 맞이했다.
신규 서비스 오픈 직후에 2.8달러까지 살짝 올랐다가, 이후에 본격적인 입소문을 탄 뒤에는 순식간에 50% 가까이 치솟아서 4달러를 뚫어버렸다.
그리고 와츠 오픈 나흘째인 오늘.
"도토리 코인이 개당 5달러 선을 넘어서 가상화폐 시가총액 6위에 등극하게 됐습니다. 모두 박수! 와아아아!"
박태식이 먼저 소리치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따라서 박수와 환호, 휘파람 소리를 낸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도토리 코인이 세계 6위라니 실감이 안 나네요."
"대박! 앞으로도 쭉 이렇게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들은 한동안 자축과 함께 덕담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좋은 날엔 원래 오너가 금일봉이라는 걸 준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표님?"
박태식이 바람을 잡자, 다른 직원들도 호들갑을 떨며 호응하고 나섰다.
"오오! 진짭니까?"
"생각지도 못 했는데...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한 말씀해주시죠, 대표님!"
이때 이소영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마이크까지 내 손에 쥐어준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걸 보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몰아간 것 같다.
나는 할 수 없이 마이크를 들고 직원들 앞에 섰다.
"여러분, 우선 일정이 많이 촉박했을 텐데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WHTS컴퍼니는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며..."
감사인사와 함께 의례적인 이야기를 먼저 내놓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직원들의 눈은 기대감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가 나왔던 금일봉, 그러니까 현금 봉투는 따로 준비된 게 없습니다."
이 말이 나옴과 동시에 직원들의 눈에 깃들었던 총기가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저희 WHTS컴퍼니는 가상화폐 개발사인 만큼 앞으로도 현금 보너스는 일체 드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 대신, 도토리 코인이 담긴 USB를 인센티브로 지급하겠습니다."
도토리 코인을 준다는 말에 직원들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가상화폐 사용이 능숙한 이들에게 도토리 코인은 사실상 현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제가 인센티브로 준비한 도토리 코인은 1200개, 한화로 약 300만 원 정도입니다."
300만 원.
금일봉치곤 많은 돈이다. 그래서인지 USB가 담긴 선물상자를 받아가는 직원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선물상자를 거의 다 나눠줬을 때쯤, 누군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질문을 던졌다.
"저기... 대표님, 도토리 코인 1200개면 한화로 300만 원이 넘을 것 같은데요? 대충 계산해도 배는 많아 보입니다."
"그건 인센티브 USB를 와츠 개발이 한창일 때 준비해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시세가 올랐으니 금액도 당연히 늘었겠죠."
대화를 듣고 있던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토리 코인 1200개를 오늘자 시세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오늘 개당 5달러라고 했으니까 1200개면... 650만 원 가까이 되는데요?"
"이런 행운이!"
"아니에요! 그 사이에 0.2달러가 더 올라서 5.2달러예요. 이젠 700만 원이 넘어요!"
직원들 시선이 일제히 내쪽으로 향한다. 7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금일봉으로 가져가도 되냐는 뜻이었다.
나는 옅은 웃음을 머금고서 말했다.
"도토리 코인의 시세가 오른 것은 여러분의 노력 덕분입니다. 그러니 시세가 오른 만큼 인센티브를 더 가져가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봅니다."
지극히 원론적인 말을 한 것뿐이건만,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쏟아내는 사람, 기뻐서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는 사람, 보너스 700만 원을 연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뿌듯함에 벅차오른다.
단순히 돈을 벌어서 좋다는 것을 넘어, 같이 노력하고, 같이 고생해서, 같이 나누고, 같이 즐거워하며 느껴지는 뿌듯함.
'예전처럼 회사와 사회의 부품처럼 살았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겠지.'
앞으로 이런 뿌듯함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더 크게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WHTS컴퍼니가 입주한 빌딩의 최상층에는 명판 하나 달려 있지 않은 임시 사무실이 존재했다.
깜깜한 사무실 내부에 보이는 거라곤 모니터의 불빛과 렉에서 내뿜는 LED 뿐.
이소영이 전등 스위치를 켜자, 안에 있던 시커먼 무언가가 '끼엑!' 하고 소리를 내지른다.
"불 꺼. 눈 부셔!"
어둠과 함께 있던 이는 얼마 전 보안팀으로 스카웃된 넬라였다.
그녀가 소리치든 말든 이소영은 사무실 창을 가리고 있던 암막 커튼까지 몽땅 치워버린다.
"왜 사무실 불을 다 끄고 있는 거야? 이러면 눈 나빠져."
"어두워야 화면이 잘 보여."
"안 돼. 회사에서 불 끄기는 금지야. 나라서 다행이지, 모르는 사람이 여길 들어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넬라는 귀찮음이 한 껏 묻어난 표정으로 툴툴거린다.
"소영, 여긴 왜 왔어."
"선물 주려고 왔지."
"선물?"
"자, 받아. 회사에서 주는 거야."
이소영은 그녀에게 선물상자를 내민다. 포장을 풀어보니 상자 안에는 작은 USB가 들어있었다.
"뭐야? 해독해야 할 보안 파일이라도 들었어?"
"아니, 도토리 코인 1200갠데. 이번 신규 프로젝트 성공 인센티브야."
넬라는 관심 없다는 듯 상자를 컴퓨터 옆에 휙 던져버린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저기압이야?"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네 얼굴에 오늘 기분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거든?"
넬라는 휴대폰 셀카를 켜서 자신의 얼굴을 살핀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확실히 '굿' 보다는 '배드' 쪽으로 표정이 기울어 있었다.
"대체 이유가 뭐야?"
"아마도... 우혁 때문일 거야."
"우혁? 대표님이 왜? 혹시 싸우기라도 했어?"
"응, 싸워서 내가 졌어."
이소영 머리 위에 물음표가 주르륵 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 사람이 싸울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때문에? 무슨 일로 싸운 거야? 누가 먼저 화냈어?"
"화는 나 혼자 났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 악플 사건에서 내가 완벽하게 졌거든. 그래서 화가 났어."
이소영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넬라를 쳐다본다.
그제야 그녀가 진짜 설명다운 설명을 내놓는다.
"나는 악플 사건의 범인을 직접 잡을 생각으로 그들이 자주 작업하는 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뒀었지."
VPN으로 국가를 우회하고 익명 브라우저를 쓰더라도,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되면 진짜 위치가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성과는 있었어. 두목은 아니지만 말단의 컴퓨터를 다수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으니까."
"그런데 왜 화가 났다는 거야?"
"전부 쓸모없게 됐으니까."
넬라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모니터를 잠시 응시하다가 입을 뗀다.
"그들의 대화 내용을 보니까 말단들은 이번 주 내에 자수할 것 같아."
"자수? 어째서?"
"두목이 돈을 안 주고 잠적했대. 도토리 시세가 폭등했으니 파산한 거겠지. 그런데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까 겁이 난 모양이야."
말단이 자수하면 두목의 신원 확인은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쓸모없게 됐다고 했구나."
"맞아. 너무 분해. 내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지다니."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린 거니까 따지고 보면 진 건 아니잖아. 그러니 좋게 생각해."
회사 전체로 따지면 이소영의 말이 맞다. 하지만 이번 일로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넬라로선 다 잡은 물고기를 빼앗긴 셈이었다.
"여기서 더 분한 건... 내 예측이 전부 빗나갔다는 거야."
처음 도토리 코인 시세가 폭등했을 때, 그녀는 횡령 비트코인으로 도토리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횡령 비트코인은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지갑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도토리 코인 시세를 끌어올려서 이런 결과를 만들었어. 왜 편한 길을 두고 이런 선택을 한 거지?"
"그만한 자신이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
이소영은 크게 고갤 끄덕거리며 말을 받는다.
"대표님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잖아. 그리고 이번에도 그랬을 테니, 굳이 다른 곳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신규 서비스가 성공해서 도토리 코인 시세가 폭등한다고 확신한단 말이야? 나라면 못해... 안 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
"맞아. 대표님은 우리와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 그분 앞에선 누구든 평범한 사람이 되지."
"..."
넬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껏 천재라고 여겼던 이소영이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인정하고 우러러보다니.
그래서 신우혁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지금보다 더 많이, 더 깊게, 더 은밀한 곳까지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 * *
언론은 가능하면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쓰고자 한다.
종이 신문 시절일 때도 그랬지만, 인터넷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요즘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다.
WHTS컴퍼니의 기사도 기자가 클릭 수를 노리고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서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금일봉으로 받은 가상화폐가 일주일 만에 700만 원으로? WHTS컴퍼니 직원들에게 찾아온 행운.]
금일봉 300만 원이 700만 원으로 오른 이야기였지만, 기자가 300만 원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켜서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한 기사가 완성됐다.
파렴치한 어그로성 기사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게시 시작부터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더니 기사가 네이보 뉴스 메인에 3시간이나 걸리게 된다.
한 명이 제목 장사로 성공을 거두자 이후부터 카피성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올라온다.
[도토리 코인으로 금일봉 받은 직원들, 자고 일어나니 800만 원이 됐다!]
[직원들 월급을 도토리 코인으로 받았으면 지금은 얼마? IT 업종 평균 연봉을 계산해보니... 무려 2억?]
[금일봉이 무려 1000만 원! 장안의 화제인 도토리 코인 개발진에게 앞으로의 전망을 물었다. "우리도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지 몰라요."]
기사가 새로 올라올 때마다 기사의 금일봉 가격이 계속 올라간다.
허위 기사는 아니었다.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올릴 때마다 사람이 몰려서 도토리 코인 시세가 올라갔으니까.
도토리 코인의 가격이 치솟을수록 WHTS컴퍼니의 보유 자본과 가치 또한 덩달아 로켓처럼 치솟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유명세로 인해 알려지지 말아야 할 누군가에게도 도토리 코인 소식이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