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42화 (4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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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TS컴퍼니의 기자회견 이후, 가상화폐 커뮤니티의 댓글은 놀라울 정도로 깨끗해졌다.

정확한 표현으론 깨끗보다 조심스러워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WHTS컴퍼니 대응이 너무 강경했고, 그들이 계약한 법무법인이 국내에서 악플 대응으로 손꼽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운영진 공지사항입니다. 게시판 댓글 달 때 무조건 조심하세요. 일단 '그 회사' 이름 들어간 글은 절대 쓰면 안 됩니다. '그 코인'도 언급은 자제하시고요.

-아니,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 코인 이름을 언급 못 하면 뭘 하란 겁니까?

-그쪽이 계약한 법무법인이 국내에서 악플러 제일 잘 잡는 곳이에요. 잘 못 엮여서 고소장이라도 날아오면 피곤해집니다.

-우리 입에 재갈을 물린다고 떨어지던 시세가 다시 오를까?

-이번 일로 역풍 씨게 맞을 듯.

부정적인 댓글이 주를 이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껏 악플러들의 집단 린치로 의견을 낼 수 없던 투자자들도 조금씩 의견을 내기 시작한다.

-그동안 얼마나 악플에 시달렸으면 이런 극약처방까지 내렸겠어요?

-회사에서 참을 만큼 참았죠.

-나도 동의. 그냥 욕만 하면 몰라도 출처도 없는 가짜 뉴스를 가져와서 우르르 까기 바빴으면서.

-애초에 악플을 안 달면 걱정할 일도 없어요.

-초창기에 악플 단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세력이라고 하던데요.

┗증거 있음?

이때 누군가 타이밍 좋게 스크린샷을 업로드한다.

이미 커뮤니티 일대에 많이 퍼진, 초창기 악플 모음 리스트였다.

-엥? 댓글 단 사람 중에 절반이 해외 접속 아이피라는데 진짜예요?

-확인해봤는데 진짜예요. 세력이 VPN 써서 댓글 달았나 봐요.

-VPN 쓰는 일반인일 수도 있지. 아니면 진짜 해외에서 접속했거나.

-한두 명이면 몰라도 한 페이지 절반이 그러면 빼박 조작이죠. 그리고 이미 저 아이디가 쓴 댓글은 전부 삭제하고 빤스런 쳤대요.

┗대박. 세력이 조작질했다더니 진짜였네요.

-조작 같은 소리 하네. ㅋㅋㅋ 코인이 쓰레기라서 시세 떨어지는걸 어그로 돌리는 거 보소.

┗이 사람 해외 아이피입니다. 접속 지역이 스페인이네요.

┗나 스페인 사는데?

┗스페인 지금 몇 시임?

┗7시 20분.

┗댓글 1분 넘게 걸린 거 보면 네이보에서 검색하고 왔쥬? 빼박 VPN이쥬?

┗잡았다 요놈.

기자회견 이후부터 악플이 달리기만 하면 작전 세력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일반인도 세력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악플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퍼졌다.

"이 개불알짝 같은 것들이, 무슨 말 만하면 세력이 어떻고 염병을 떨어대네."

지금과 같은 커뮤니티 분위기는 나민성에게 족쇄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VPN과 익명 브라우저를 같이 쓰고 있었는데, 이젠 댓글만 달면 해외 접속자라고 십자포화를 맞고 있었다.

"이 단세포 새끼들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잖아. 젠장!"

야금야금 떨어지던 도토리 코인의 시세는 2달러 직전에서 살짝 반등해서 2.3달러를 유지 중이다.

시세를 하루라도 빨리 1.8달러까지 내려야 하는 나민성으로선 답답해서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젠 어쩌지? 무리해서라도 거래소 시세를 조작해서 충격을 줄까? 아니면 얼간이들이 떠드는 걸 무시하고 계속 댓글 조작을 해?'

2.3달러에서 1.8달러까지는 20%만 시세를 떨어트리면 된다.

하루에 90%가 폭락한 전례가 있는 코인 판에서 20%는 그리 큰 낙폭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다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갈 것도 없어. 딱 한 타이밍만 잡아서 털고 나오면 돼."

나민성은 책상 옆에 세워둔 달력으로 시선을 돌린다.

공매도 상품의 계약 기간은 앞으로 4일.

그전에 도토리 코인의 큰 이벤트가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신규 서비스 와츠 베타 오픈]

신규 서비스 오픈 첫날은 시세 변동이 가장 클 타이밍이었다.

저 때 모든 댓글 부대를 투입해서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거래소 시세 조작까지 동반한다면 -20%쯤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제 나름의 계산을 끝낸 나민성은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작업은 사흘 뒤에 있을 신규 서비스 출시 당일로 변경한다. 그때까지 도토리 코인 최대한 모아 둬.]

빠르게 답장이 돌아온다.

[형님, 오늘까지 저희 거래소에만 총 80만 개 모였습니다.]

[잘했다. 미리 해외 거래소로 옮겨. 앞으로 도토리 거래는 전부 장부 거래로 처리하고.]

장부 거래란, 거래소에 존재하지 않는 코인을 사고파는 것을 뜻한다.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질 땐 숫자만 올려주면 그만이라 상관없지만, 실제 코인이 없기에 출금이나 이체는 불가능했다.

[그동안 도토리 코인을 출금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은행 전산이나 서버 핑계를 대면서 버텨 봐. 어차피 하루 이틀이면 승부가 나게 돼 있어.]

* * *

기자회견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먼저 인터넷에 퍼지던 가짜 뉴스와 악플이 싹 사라졌고, 여론도 잠잠해졌으며, 도토리 코인의 시세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여기서 신규 서비스가 실패하고 도토리 코인의 시세가 곤두박질친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될 것이다.

팀원들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자발적인 야근과 철야로 신규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혁아! 와츠 베타버전 최종본 버그 픽스 파이널 검수 완료 판 나왔다!"

흥분한 목소리의 박태식이 대표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에는 와츠 개발진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거리를 둔 채 쪼르르 따라 들어왔다.

"이름이... 뭐라고?"

"와츠 베타버전 최종본 버그 픽스 파이널 검수 완료 판."

"이름부터 사연이 많아 보이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하나하나 말하다 보면 오늘 밤을 새워도 모자랄 거야."

나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는 것보다 완성된 와츠 베타버전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삑.

첫 접속과 동시에 와츠의 로고와 옆에 간단하게 싸이클럽의 아바타가 등장한다.

그리고는 다른 준비과정 없이, 바로 짧은 영상이 재생된다.

-여러분, 오늘은 화장의 기술을 알려드릴 거예요. 제가 지금 쌩얼인데요. 여기서 화장을 딱 반쪽만 해볼게요. 어떻게 되나 보세요.

처음 영상은 뷰티 유투버의 영상을 1분으로 편집한 영상이었다.

나는 영상을 반쯤 보다가 옆으로 드래그한다. 그러자 지연 시간 없이 곧장 다음 영상이 재생된다.

-자, 오늘은 길거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볼 거예유. 중요한 건 요놈, 설탕을 쬐끔만, 어이쿠, 너무 많이 넣어버렸네. 괜찮아유. 이래야 더 맛있어유.

-안녕하세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생활 꿀팁은 하얀 옷에 찌든 때를 간단히 제거하는 법입니다. 먼저 아무 치약을 준비해주시고, 이렇게 문지르면...

-이번 게임은 메탈슬럭3입니다. 여기서 점프! 폭탄 3개 던지고 팍팍팍! 다음으로 넘어가서 바로 앉아서 쏴! 그리고 H 먹어주시고 달리세요! 참 쉽죠?

내가 영상을 몇 차례 살피는 동안, 바로 앞에서는 박태식이, 그 뒤로는 와츠 개발진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 입에서 어떤 평가가 나올지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음..."

나는 일부러 뜸을 살짝 들였다가 평가를 내놓는다.

"멍하니 머리 비우고 보기는 좋네."

다소 애매한 뉘앙스의 단어라서 그런지 개발진들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답답했는지 박태식이 묻고 나선다.

"머리 비우고 보기 좋다는 게 무슨 뜻이야? 좋다는 거야, 아니면 안 좋다는 거야?"

"칭찬이야. 그것도 최상급 칭찬이지."

짧은 영상 서비스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짬이 났을 때, 가벼운 이슈를 보는 용도였다.

그러니 멍하니 머릴 비우고 보기 좋다는 말은 당연히 칭찬이었다.

"영상의 재생 방식과 전환 속도는 합격. UI도 몇 차례나 고쳐서 깔끔하게 뽑힌 것 같고, 결정적으로 영상 외에 다른 군더더기가 없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

내 입에서 칭찬이 줄줄이 나오자 그제야 개발진 쪽에서 안도의 한숨이 소리 들린다.

"싸이클럽 개발진에서 하단에 미니홈피 연동 버튼을 넣어달라고 하던데, 넣지 말까?"

"관심 있는 사람은 어차피 상세 설정 들어가서 볼 테니까, 필요 없는 메뉴는 전부 빼버려."

"오케이. 접수했어."

나는 말하는 동안에도 영상을 휙휙 넘겨서 살펴본다.

"다만, 영상의 종류가 유투브 편집본에 편중된 건 조금 아쉬운데?"

"준비 기간이 짧아서 어쩔 수 없었어. 유투버 쪽도 구독자 늘려준다고 꼬셔서 간신히 받아낸 거야."

이해한다. 뭐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니까.

"나중에 콘텐츠 팀을 따로 꾸리든지 해서 보완해봐."

"어디서 영상을 퍼오게?"

"퍼오는 게 아니라 우리 오리지널 콘텐츠를 발굴해야지.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사용자가 많아지면 쓸만한 영상이 많이 올라올 거다."

나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다시 박태식에게 돌려준다.

그리고는 뒤에서 눈 빠지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개발팀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UI와 영상 알고리즘 쪽만 서너 번 정도 수정해서 출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순간적으로 대표실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나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입니다. 이번 버전으로 라이브 서버에 올리세요."

* * *

싸이클럽의 새로운 서비스 '와츠'가 오픈하는 디데이가 찾아왔다.

출시 전부터 워낙 구설수가 많았던 서비스인지라, 궁금해서 이날을 기다린 사람도 많았고.

한편으론 출시 당일의 분위기를 보고 도토리 코인에 투자를 결정하려는 투자자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오전 10시.

오픈 시간과 동시에 접속한 이들이 마주한 것은 와츠의 첫 화면이 아니라 접속 대기열이었다.

[접속자가 너무 많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대기 번호 100,000+]

대기열은 싸이클럽 재개장 때도 겪었기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대기 번호가 줄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 새끼들, 서버 안 열어 놓고 사기 치는 거 아냐?"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나민성은 멈춰있는 대기열을 보고 욕이란 욕은 다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와츠 앱을 꺼 버리고 키보드를 붙잡는다.

[기다릴 필요 없다. 작전 시작해라.]

그가 익명 채팅방에서 지시를 내리기가 무섭게, 가상화폐 커뮤니티 곳곳에서 악성 게시글이 쏟아진다.

-싸이클럽 신규 서비스 접속되는 사람? 그냥 서버 뻗은 거 아님?

-축) 도토리 코인 사망.

-열심히 여론몰이만 해대더니 막상 오픈 날엔 서버 접속도 안 돼버리죠? 완전히 개망했죠?

-반전은 없었다. 이대로 한강까지 가즈아!

가끔 접속됐다는 댓글과 조작 세력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지만, 댓글 물량과 비추천 테러로 찍어 눌러 버렸다.

점점 커뮤니티에는 도토리 코인의 부정적인 글이 메인을 차지했고.

그 흐름을 흡족하게 지켜보던 나민성은 콧노래까지 흥얼대며 시세를 확인한다.

"뭐야? 2.5달러?"

이해할 수 없었다. 인터넷엔 온통 도토리 코인을 욕하는 글밖에 없는데, 여론은 무조건 이긴 거나 다름없었는데, 어째서 가격이 올라간단 말인가.

나민성은 급히 임기태에게 전화를 넣는다.

-여보세요.

"야, 임기태! 뭐 하고 있어? 빨리 시세 다운시켜!"

-형님, 시세 다운도 분위기를 보면서 해야죠. 다른 거래소는 다 오르는데 저희만 내리면 어떡합니까?

"인마! 커뮤니티 분위기 못 봤어? 이제 꼬라박을 일만 남았다니까 그러네."

-어휴...

한심하다는 듯한 한숨 소리다.

-가상화폐 커뮤니티만 들락거리지 말고, 다른 종합 커뮤니티도 한 번 들어가 보십쇼.

"뭔 소리야?"

-이만 끊습니다.

"야! 야! 임기태! 끊으면 뒤질 줄..."

그가 소리쳤을 땐 이미 전화가 끊긴 뒤였다.

나민성은 한 손으론 다시 전화를 걸면서 다른 한 손으론 마우스를 움직여서 종합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종합 커뮤니티에도 싸이클럽 이야기가 메인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가상화폐 커뮤니티와는 정반대였다.

-와츠 접속하신 분 있나요? 처음부터 접속이 안 되네요. 대기열도 안 줄어요.

-그거 먼저 접속한 사람이 안 빠져서 그럴 거예요. 영상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요. ㅋㅋㅋ

-솔직히 별 재미는 없는데 계속 보게 됨.

-킬링타임용으로 딱 좋은 듯?

-도토리 준다고 해서 깔았는데 이런 앱이면 안 지우고 가끔 볼 것 같아요.

와츠의 반응이 너무 호평 일색인지라 나민성은 오히려 의심이 먼저들 지경이었다.

"이 새끼들도 댓글 알바를 풀었나?"

그는 다른 커뮤니티도 둘러보기로 했다. 댓글 알바를 풀었어도 인터넷의 모든 커뮤니티를 먹진 못했을 테니까.

자동차 커뮤니티, 화장품 커뮤니티, 가구 커뮤니티, 알뜰 커뮤니티, 음악 커뮤니티, 휴대기기 커뮤니티 등.

나민성이 알고 있는 모든 커뮤니티를 둘러봤으나, 반응은 짜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한결같았다.

나쁘지 않다. 심심풀이로 좋다. 재미있다. 킬링타임 용으로 딱이다.

이쯤 되자 나민성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급하게 휴대폰을 찾는다. 여기서 더 손해를 보기 전에 공매도 친 물량을 전부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래소에 접속했을 땐 이미 경고 메시지가 뜬 뒤였다.

[고객님이 구매하신 도토리 코인 공매도 레버리지 x8 상품의 보증 잔고가 부족합니다.]

[1시간 이내에 추가 입금이 없을 경우 강제 청산 절차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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