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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코인을 예치시키면 보상 코인을 지급하는 일명 '스테이킹'은 투자자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었다.
주식이 배당금을 주는 것처럼, 가상화폐도 시세차익 외에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리트였다.
하지만 스테이킹 발표 이후에도 도토리 코인은 쭉쭉 하락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같이 발표된 싸이클럽의 신규 서비스 때문이었다.
[싸이클럽의 짧은 영상 서비스 '와츠' Beta 버전 출시 예고.]
신규 서비스 와츠는 소통을 중시하는 SNS에 짧은 영상을 접목한 서비스다.
여기까지만 보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구나 싶겠지만, 문제가 된 사안은 바로 와츠와 딸려온 프로모션이었다.
"이번에 싸이에서 런칭하는 영상 서비스, 도토리 코인이랑 연동한다는 소식 들으셨어요?"
"들었어요. 휴... 그 이야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난리잖아요."
"진짜 큰일이네요."
아침부터 모여서 한숨을 내쉬는 이들은 WHTS컴퍼니의 가상화폐 개발팀이다.
스테이킹으로 시세 안정화만 기대하고 있던 이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와츠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코인을 얼마나 뿌리려나요? 보상으로 나가는 물량이 많으면 도토리 시세가 박살 날 텐데요."
"그러게요. 이번 건은 일시적인 프로모션도 아니라는데..."
"시세 박살 나면 또 투자자들이 와서 난리를 쳐 댈 텐데.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요."
모두가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만 더해가던 가운데, 개발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목소릴 낸다.
"그런데 대표님은 무슨 생각으로 와츠 연동을 같이 진행하시는 걸까요?"
"무슨 생각이긴요. 도토리 코인으로 신규 서비스 사용자 펌핑 시키려는 거죠."
"상장할 땐 우리가 싸이클럽 이름값으로 성공했잖아요. 그러니 이번엔 그 반대로 돌려주는 거예요."
"그럴 거라면 가입 시에만 뿌려도 되는 거잖아요. 계속 뿌리다가 신규 프로젝트가 망하기라도 하는 날엔..."
바로 그때. 그들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도토리 코인이 만들어진 이유가 뭔지, 벌써 까먹으셨나요?"
개발팀 직원들이 놀라서 뒤를 홱 돌아본다. 그곳엔 가상화폐 개발팀의 수장인 이소영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티, 팀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제가 언제 왔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께서 도토리 코인이 만들어진 이유를 망각했다는 게 중요하죠."
도토리 코인은 일반인에게 친숙한 싸이클럽에 가상화폐를 접목해서 접근성을 높이고자 개발됐다.
개발팀도 다 아는 내용이었으나 최근엔 가상화폐의 투자적인 부분에만 관심이 쏠린 터라, 초창기의 계획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싸이클럽 서비스와 도토리 코인의 연계는 처음부터 계획돼 있었어요. 코인의 본래 목적대로 된다고 가치가 떨어진다? 너무 우스운 일 아닌가요."
이소영의 발언은 코인 본연의 활용 측면에서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개발진의 부정적인 인식을 돌리기 역부족이었다.
"팀장님 말이 맞습니다만... 그래도 검증되지 않은 신규 서비스와 연동은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신중한 게 나을 것 같아요. 자칫 잘 못 해서 코인이 대량으로 풀리기라도 하는 날엔..."
"신규 서비스부터 오픈해서 반응을 보고, 코인 지급은 그 후에 하는 게 어떻습니까?"
팀원들의 입에선 여전히 우려하는 반응들이 쏟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도토리 코인 시세가 떨어지면 인터넷에선 욕이 쏟아졌고, 뉴스에선 코인 개발사를 비난하며, 개중엔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고 해도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면 이미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러한 일들을 반복해서 겪다 보니, 개발진 모두가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방어적으로 변한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릴 향한 비난의 강도가 세졌어. 이상하게 허위 뉴스도 부쩍 많아졌고.'
팀원을 다독이고, 격려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런 환경에선 개발팀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없었다.
이소영은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던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 * *
최근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도토리 코인을 비난하는 글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처음엔 푸념하는 정도의 글이었지만, 며칠 사이에 수위가 대폭 높아지더니, 오늘은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들이 게시판에 쏟아졌다.
-싸이클럽 신규 서비스? 얘들 머리에 총 맞음? 영상만 올리면 코인을 준다는데?
-채굴 업자들만 노났네요.
-채굴 업자만 오면 다행이지 게임 작업장들도 도토리 작업 준비 중이라는 썰이 있음.
-매크로 돌려서 영상 올리고 코인 쭉쭉 채굴하면 꿀이네요. 개꿀!
-아, 진짜 개떡 같네. 회사는 도토리로 공짜 홍보하니까 좋지. 우리 같은 개미들은 무슨 죄냐.
-회사에 찾아가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님?
-도토리 쥐고 있는 흑우가 아직 있냐? 빨리 던져. 출시하면 진짜 개떡락이다.
-그래도 그냥 채굴하는 것보다 싸이 관련 서비스 참여 보상으로 주는 건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어이가 없네. 괜찮다고? 이게? 어깨 위에 얹은 거 장식임?
┗무조건 떡락 확정이지. 지금껏 싸이에서 뭐 출시해서 제대로 성공한 거 있음?
┗제발 생각 좀 하고 글 씁시다.
┗옘병. 싸이는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그게 도와주는 거야.
┗노답이네.
가끔은 싸이클럽을 옹호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런 글은 악플이 주르륵 달리거나 비추천 폭탄을 맞고 내려가 버렸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열된 분위기.
사실 이런 인터넷 반응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 쉽다. 쉬워. 개돼지 새끼들. 떡밥 조금 던져주면 오지게 선동당해서 짖어대는 꼬라지 하곤."
모니터를 보며 낄낄거리는 버섯 머리 사내는 비트힛의 전 대표인 나민성이다.
그는 열흘 전까지만 해도 사기죄로 구치소에 갇혔다가 보석 허가를 받고 간신히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
'보석 한 번 받아볼 거라고 쓴 돈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군.'
나민성은 구치소에 수감 된 동안 어떻게 복수할까만 생각하며 밤낮을 보냈다.
보석으로 나온 것이었기에 직접적인 복수는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사이버상의 공격이었다.
딸깍. 딸깍. 딸깍.
나민성은 차명으로 바이럴마케팅 업체를 사서 전방위적 인터넷 여론 조작질을 했다.
부정적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긍정적 글은 조직적으로 테러했다.
인터넷상에 가상화폐 커뮤니티는 몇 안 됐기에 부정적 분위기를 퍼트리는 데는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얼마나 먹었으려나."
한참이나 댓글을 싸 갈기던 나민성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로 접속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정보는 그가 방금까지 악플을 쏟아붓던 도토리 코인의 시세였다.
도토리 코인 $2.605 (▼11%)
반나절 만에 시세가 11%나 내려갔다. 추세를 확인한 나민성의 입꼬리가 치솟는다.
"하루도 안 돼서 3억이라. 후후. 짭짤하구만."
단순히 가상화폐를 사고팔기만 할 수 있는 국내 거래소와 달리, 해외 거래소는 가상화폐로 다양한 상품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그 중 나민성이 베팅한 곳은 코인 공매도.
쉽게 설명하자면 코인 가격이 내려갈수록 돈는 버는 상품이었다.
'도토리 코인 개발자 놈들도 괴롭히면서 돈도 벌고, 이게 바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지.'
계획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으나, 이것만으로 만족할 나민성이 아니었다. 그는 더 확실하면서도 더 강렬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민성은 의자를 뒤로 쭉 빼고 책상 위에 발을 얹는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뚜우... 뚜우...
철컥.
신호음 두 번이 채 지나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됐다.
-헙! 형님, 언제 나오셨습니까.
"좀 됐다."
-마중 나가게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야, 임기태, 이 새끼야. 내가 연락하는 게 아니라 네가 알아서 마중 나왔어야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이야. 농담이다, 농담."
나민성은 입으로 낄낄거리고 있었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시퍼렇게 떠져 있었다.
"그나저나 네가 운영 중인 거래소 이름이 뭐였더라?"
-코인플러스입니다.
"아, 맞아. 코인플러스. 요즘 거기 잘 나간다며? 비트힛 몫을 쪽쪽 빨아 먹고 컸다던데."
통화 상대인 임기태가 운영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는 본디 국내 5위에도 못 드는 작은 거래소였다.
하지만 비트힛이 폐쇄될 때 공격적으로 가입자를 유치했고, 그 결과 지금은 국내 3위 거래소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얘가 농담을 모르네. 네가 잘 되니까 내가 좋아서 농담한 거야. 농담."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나민성은 더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건 목적을 꺼낸다.
"기태야. 같이 일 하나만 하자."
-무슨 일 말입니까?
"어려운 건 아니고. 코인 시세 작업 하나만 해주면 돼."
-형님, 그건 좀...
"이미 너희 거래소에서 자잘한 코인으로 시세 작업하고 있잖아. 내가 모를 거 같냐?"
가상화폐 거래소는 거래를 중계만 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 당시의 가상화폐 거래소는 법적 감시 밖에 있었기에, 암암리에 코인 시세를 조작하거나 물량을 조절해서 거래소가 직접 시세차익을 내고 있었다.
-어떤 코인을 해드리면 됩니까.
"도토리 코인."
-도토리는 저희 수준에서는 무립니다. 자잘한 잡코인과는 덩치부터 다르잖습니까.
"이 새끼가 해보지도 않고 무리라네. 이번 주에 도토리 코인 시세 30% 내려간 거, 나 혼자 작업한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헛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린다.
-거래소도 없이 어떻게 30%나 떨궜습니까?
"영업 비밀이야."
-...
"아무튼, 여기에 네가 거래소 가격만 만져주면 하루 만에 마이너스 50%까지 박는 건 일도 아니다."
-형님, 혹시 도토리 공매도 치셨습니까?
나민성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동요는 아주 잠시였을 뿐,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와서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이 새끼가 눈치 하나는 빠르네. 그래서 같이할 거야 말 거야?"
* * *
내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소영이 대표실로 찾아왔다.
손에는 서류를 한 묶음이나 집어 든 채다.
"그러니까... 변호사를 고용해서 악플러를 싹 잡아내자는 겁니까?"
내 말을 들은 이소영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린다.
"제가 웬만해선 참으려고 했는데요. 팀원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안 되겠어요. 요즘은 그냥 욕만 하는 게 아니라, 회사로 쳐들어가자고 선동까지 하더라니까요."
지금껏 쌓인 게 많았는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응축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일단은 어떤 내용인지 한 번 봅시다."
그녀는 가져온 서류 뭉치를 잽싸게 넘겨준다.
서류는 첫 페이지부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욕설 게시물과 저질 댓글이 넘쳐났다.
사락. 사락.
나는 그녀가 가져온 서류를 꼼꼼하게 읽어간다. 한 장도 그냥 넘김 없이, 완벽하게 살폈다.
솔직히 말해서 고소장만 접수하면 무조건 승소할 정도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악플을 쭉 읽다 보니 어째선지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영 씨, 이거 일부러 악플을 분류대로 모아둔 겁니까?"
"아뇨. 같은 페이지에 있던 글을 순서대로 긁어 온 거예요."
"그렇다고 하기엔 이게... 좀 규칙성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랑, 여기, 여기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어? 그러네요. 분명히 아이디가 다 다른 데 말투가 비슷한 것 같아요. 띄어쓰기도 그렇고요."
이럴 땐 둘 중 하나다. 할 짓 없는 놈이 아이디를 여러 개 돌려가면서 다중이 짓을 했던가. 아니면 전문 댓글 부대의 작업이 들어왔거나.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어떻게요?"
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단축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우리 쪽엔 이 방면의 전문가가 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