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39화 (3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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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클럽 부활을 위한 짧은 영상 서비스의 첫 단추.

카메라 앱 윙클은 투자 제휴가 아니라 흡수 합병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일요일 늦은 오후.

싸이클럽 개발실엔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된 윙클 팀원들이 부지런히 짐을 옮겨 오는 중이다.

짐이라고 해봐야 개인 물품과 컴퓨터가 전부다.

나머지 책상이나 의자, 비품은 이미 싸이클럽 사무실에도 있었기에 이사는 금세 마무리됐다.

"얼추 정리가 끝난 것 같군요."

나는 파티션과 자리 배치까지 완벽하게 끝난 사무실을 쓱 둘러본다.

그때, 누구보다 열심히 짐을 옮기던 김준표 전 사장이 다가온다.

"대표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정말 편하게 이사를 끝냈습니다."

"이젠 한 팀인데 당연히 신경 써 드려야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핫."

그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김 팀장님, 이사를 왜 이리 급하게 오셨습니까? 평일에 천천히 하셔도 됐을 텐데요."

"이왕 오게 된 거, 빨리빨리 해버리는 게 낫습니다. 직원들도 옛 사무실에선 마음이 붕 떠 있어서 일에 집중이 안 될 거고요."

맞는 말이다. 앞으로 싸이클럽 개발팀과 협업까지 하려면 빨리 이사 오는 쪽이 여러모로 편할 거다.

"그나저나 팀장이라는 소리를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말이죠."

"윙클을 만들기 전엔 LT그룹 소프트웨어 팀에 계셨다고 했죠?"

"예, 팀장으로 있다가 창업하려고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까 회사를 운영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김준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대며 말을 계속했다.

"어휴, 직장에 다닐 땐 일이 안 풀려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는데, 사장이 되니까 한 달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월급날만 다가오면 숨이 막힐 정돕니다."

"그래서 이번에 투자가 아니라 합병을 선택하셨군요."

"맞습니다. 대표님께 제안을 딱 받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확실히 김준표는 처음 만났을 때와 표정부터 달라져 있었다. 풍겨오는 분위기마저 여유와 평안함이 느껴질 정도다.

"아, 그렇다고 일을 대충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압니다. 애초에 열심히 할 생각이 없으면 휴일에 사무실 짐을 싸서 넘어오지도 않았겠죠."

"하핫.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에도 김준표는 자기가 윙클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내게 털어놨다.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결국은 돈이었다. 윙클이 무료 앱이다 보니 수익이 나올 곳이 마땅치 않았던 탓이겠지.

그러다 대화 주제가 저절로 업무 쪽으로 넘어갔는데.

"대표님은 싸이클럽에 윙클 앱을 넣겠다고 하셨지요?"

"그럴 계획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부터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감이 안 잡히더군요."

박태식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지금껏 유투브나 팝캐스트 같은 영상 서비스는 있었어도, 영상을 메인으로 삼는 SNS는 없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그가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시를 들어주기로 했다.

"말 그대로 영상을 업로드하고, 그 영상을 토대로 다수의 사용자가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소통이면 BJ가 있는 파프리카 같은 플랫폼입니까?"

"싸이클럽은 인터넷 방송이 아니라 SNS입니다. 기존에는 텍스트와 사진으로 올라오던 게시글을 짧은 영상으로 대체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준표도 이젠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무릎을 '탁!' 소리 나게 친다.

"싸이클럽에 윙클이 필요했던 이유가 사용자 활성화 때문이었군요."

"맞습니다. 그냥 영상만 찍어서 올리라고 하는 것보다, 움직이는 스티커의 상호작용이 있으면 업로드 빈도가 훨씬 늘어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얼굴을 코믹하게 변형해주거나, 동물이 나오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배경을 클럽, 연극 무대, 목욕탕으로 바꿔주는 등.

이처럼 신기한 카메라 필터를 처음 접하면 찍어 보고 싶고, 더 나아가 어딘가에 올려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였다.

"그런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지금의 윙클보다 더 다양한 스티커가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이 말입니까?"

"이럴 때 필요한 말이 다다익선이라고 하죠."

김준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만 표정에는 난처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저... 대표님, 스티커 중 영상에 쓰이는 라이브 스티커는 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움직이는 이미지라서 그런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고, 사람 얼굴을 인식해서 추적해야 되기에 작업량이 일반 스티커의 대여섯 배는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라이브 스티커는 주 4개 정도만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하죠."

그는 주 4개라는 말을 듣고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쳐다본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팀에 인력 충원은 당연히 해드릴 테니까요."

"아무리 인력 충원을 해주셔도 라이브 스티커를 주마다 4개씩 새로 만들려면..."

"힘듭니까?"

"날림으로 만드는 게 아닌 이상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니면 개발팀 규모가 지금의 4배쯤 늘어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윙클 개발팀은 사장인 김준표를 포함해서 7명이다.

여기에 4배면 28명.

싸이클럽 개발팀보다 카메라 필터 개발팀이 더 많아지는 셈이다.

"필요하다면 그만큼 사람을 더 뽑을 수밖에요."

김준표의 입이 다시 떡 벌어진다. 아까보다 배는 더 크게 벌어진 것 같다.

"노, 농담이시죠?"

"방금 김 팀장님께서 그만큼 필요하다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긴 한데, 카메라 필터 앱에 그만한 개발팀을 꾸리는 게 맞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다 그는 뒤늦게 뭔가 떠오른 듯 제 입을 툭툭 때린다.

"아이고,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이젠 사장도 아닌데 주제넘게...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습니까. 충분히 걱정할 만 일인데요."

카메라 필터 쪽은 앞으로 영상 서비스가 커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분야다.

그러니 싸이클럽이 망한다 해도, 윙클 자체의 가치는 내가 투자한 곱절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개발 인력은 필요한 만큼 보충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김 팀장님은 결과에만 집중해주십시오."

* * *

KN케미컬에 출근해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멍하니 컴퓨터를 보는 게 전부다.

일이 너무 많으면 괴롭지만, 일이 너무 없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무슨 말년 병장도 아니고,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외근 핑계를 대고 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옥상 흡연장으로 향한다.

"후... 춥다. 추워."

이런 날씨에 가림막도 없이 흡연장이랍시고 만들어두면, 누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담배를 피우겠는가.

덕분에 나는 조용히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좋지만, 그래도 욕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천막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치익.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담뱃불을 붙인다. 그리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임과 동시에 진동이 왔다.

지잉-, 지잉-, 지잉-.

내가 추워도 옥상에 올라오는 이유.

바로 이걸 위해서였다.

-대표님, 통화 가능하세요?

휴대폰 화면 너머에서 웃는 상의 미녀가 내게 손을 흔든다.

가상화폐 개발팀의 이소영이다.

요즘은 회의할 일이 있으면 이렇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이야기하곤 했다.

"준비됐습니다. 말씀하시죠."

나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얼른 비벼끄고 화면을 똑바로 세웠다.

-다름이 아니라요. 도토리 코인의 보상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보상? 어떤 보상을 말하는 겁니까?"

-도토리 코인 보유자들에게 주는 보상이에요.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최근 도토리 코인 시세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잖아요.

내가 일으킨 비트코인 폭락 사태 이후, 도토리 코인은 좀처럼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싸이클럽의 성적이 발목을 잡은 듯한데, 그래서 보상 이야기까지 나온 것 같다.

-일전에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도토리 코인의 발행은 채굴 방식이 되면 안 된다고요.

여기서 채굴은 암호화폐를 광물 캐듯이 채굴하는 행위를 뜻한다.

주로 컴퓨터의 CPU나 그래픽카드, 혹은 전문 채굴 기기를 이용해서 작업하는데, 투자된 컴퓨팅 자원에 따라 일정량의 코인을 보상하는 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이런 채굴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지분 증명 방식의 스테이킹(Staking)으로 보상도 주면서 코인 발행도 할까 하는데,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테이킹이면 은행의 적금 같은 시스템이죠?"

-비슷해요. 일정량의 코인을 묶어두면 이자처럼 코인을 보상으로 주는 형태예요.

도토리 코인에 이자 시스템이 생기면, 코인 이자를 받기 위한 구매자가 늘 것이고, 도토리 시세는 자연히 오르게 된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시세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을까요?"

-요즘 투자자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다른 코인 시세는 쭉쭉 올라가는데, 도토리 코인만 시세가 그대로라고요.

스테이킹으로 이자를 준다고 해도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근본적 원인인 싸이클럽이 흥하지 않는 이상, 도토리 코인의 가치는 계속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스테이킹으로 우리 쪽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도토리 코인은 채굴로 캐는 방식이 아니라서 이렇게라도 신규 코인을 발행해주는 게 좋아요.

"소영 씨가 이쪽 방면엔 전문가니, 잘 판단해서 진행해주세요. 대신에 외부 발표는 하지 마시고요."

-호재는 빨리 알리는 게 낫지 않나요?

나는 고개를 크게 가로 저은 뒤에 입을 연다.

"같이 발표할 중대 사안이 있습니다."

* * *

얼마 전부터 가상화폐 투자 토론방에는 도토리 코인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도토리 코인 시세가 꾸준히 바닥을 치고 있자, 그에 대응해서 스테이킹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돌아서였다.

-아으 씨, 요즘 코인 시세가 미친 듯이 오르네요. 내가 산 코인 빼고는 다 오르는 거 같습니다.

-도토리 사셨나 봐요.

-어떻게 아셨어요?

-최근에 안 오른 코인이 도토리밖에 없잖아요. 나머지는 훨훨 날고 있고.

도토리 이야기가 나오자 토론방에는 어김없이 거친 말들이 쏟아진다.

-개 같은 도토리 코인! 완전 사기 아닙니까? 이놈만 왜 안 오르는 거예요?

-싸이클럽 꼬라지 보세요. 오르게 생겼나. 그냥 팔고 다른 코인으로 갈아타는 게 속 편합니다.

-내가 도토리 대신 이더리움 샀으면 지금쯤 30%는 먹었음. 진짜 개밥에 도토리도 아니고. 혼자 안 올라.

-WHTS컴퍼니에 항의라도 합시다.

-싸이클럽이 인기 없는 걸 항의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스테이킹이라도 되게 해달라고 해야죠. 이러다 큰손 투자자들이 지쳐서 떠나면 가격 더 내려갑니다.

-도토리 코인 스테이킹 열릴 때까지 숨 참고 존버합니다. 꼬르르륵...

토론방에는 도토리 코인 개발사를 향한 욕과 원망만이 가득했다.

한국에는 도토리 코인 투자자가 유독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풍경이었다.

-도토리, 일단 홀드만 하고 계세요. 이번에 호재도 있고 악재도 있습니다.

누군가 툭 던진 한마디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평소에 내부자 썰을 풀고 다니던 아이디였다.

-아니, 악재요? 여기서 가격이 더 내려가면 어쩌려고 그러지. 어이가 없네.

-호재는 스테이킹 열어주는 건가요?

-뭔지 힌트라도 주세요. 그래야 전부 던지든 풀매수를 하든 하죠.

-호재는 스테이킹 열어주는 거 맞습니다. 그리고 악재는...

한동안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던 토론방이 조용해졌다.

다들 이어질 악재에 긴장한 탓이다.

-싸이클럽에서 곧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는데요. 거기 참여하면 보상으로 도토리를 주려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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