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37화 (3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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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교의 사무실 난동 사건 이후, KN케미컬 내에서 횡령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초창기에는 박민교가 직접 나서서 소문을 막아보려 했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놈은 틀어막을수록 더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추측성이던 소문은 점점 살이 붙어서 이젠 감당이 안 될 수준으로 커져 버렸다.

-백승태가 회삿돈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망갔다. 거기엔 박민교가 빼돌린 돈도 있었다더라.

본디 내년에 터졌어야 할 횡령 사건이 앞당겨서 터지는 것은 내게도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은밀히 여직원들에게 다른 소문을 퍼트렸다.

-백승태가 박민교 여자를 건드리고 해외로 도망갔다.

다소 황당한 소문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단 하루 만에 회사에 돌던 '횡령'이라는 단어가 싹 사라졌고, 그 대신 '치정 싸움', '사랑의 도피' 같은 단어만이 남게 됐다.

* * *

요즘 회사 옥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기 올라와서 내가 하는 거라곤 담배를 태우거나, 휴대폰이나 만지작거리는 게 전부다.

일을 왜 안 하냐고?

놀랍게도 할 일이 없어서 못 하는 거다.

업무 지시를 해야 할 백승태는 해외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고, 상관인 박민교도 최근 전무실에 처박혀서 아예 나오지를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일 출근해서 도장만 찍을 뿐, 그 외의 시간은 월급 도둑으로 지내고 있었다.

'애초에 통합관리부 자체가 횡령을 위해 만들어진 부서니, 내가 일하지 않는 쪽이 회사에는 더 이득일지도 모르지.'

퇴근 시간에 맞춰서 옥상을 내려온다.

사무실에 들를 필요도 없다. 정확히 6시가 되면 게이트에 사원증만 찍고 회사를 나선다.

차를 몰고 향한 곳은 WHTS컴퍼니 사무실이 아니라 판교의 번화가다.

길바닥엔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사람이 많다. 그 옆으로 수많은 네온사인이 서로 경쟁하듯 빛을 번쩍인다.

나는 여기서 유독 조용하고 어두컴컴한 업장으로 발을 들인다.

[황금캐슬 성인 오락실]

문을 열자마자 응축된 소음과 매캐한 담배 연기가 쏟아진다.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 바카라 패 돌아가는 소리, 거기에 걸쭉한 욕설과 탄식까지 섞여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삑.

계산대에서 카드를 충전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중앙에는 슬롯머신 게임이 깔려있고, 안쪽으론 칸막이가 쳐져 있어서 조용히 게임을 즐길 수도 있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있는 기기에 카드를 꽃은 뒤, 버튼 위에 재떨이를 얹었다.

삐리릭. 삐리릭. 삐리릭. 삐리릭.

시작 버튼이 눌러져 있기에 계속 슬롯머신이 돌아간다.

이대로 두면 앞으로 대여섯 시간은 알아서 베팅하고, 자동으로 슬롯머신이 돌아갈 거다.

툭.

기계 위에 작은 가방 하나만 던져두고 오락실을 빠져나간다.

당연히 정문이 아니라 작은 쪽문으로 나간다. 단속이 떴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문이기에 외부에선 절대 알 수 없다.

'미행이 안 붙은 지는 꽤 됐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오락실 건물 뒤편으로 나간 뒤, 에어컨 실외기가 잔뜩 놓인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드디어 최종 목적지가 나온다.

[WHTS컴퍼니]

처음엔 이 빌딩에서 사무실 하나를 빌려다 쓰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젠 2개 층을 전부 우리가 임대해서 쓰고 있었기에 외부에도 당당히 명판이 걸려 있었다.

"좋네."

나는 명판을 보고 흐뭇하게 한 번 웃어주고는 빌딩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고, 우리 대표님 얼굴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셔."

사무실 입구에는 박태식이 삐딱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KN캐미컬 쪽 일이 바빠서 회사에 신경을 못 썼더니, 나를 보자마자 주둥이가 길쭉하게 튀어나온다.

"내 사정 뻔히 알면서 그러기냐."

"나는 이해하지. 그런데 직원들은 이해를 못 하니까 문제 아니겠냐."

"무슨 소리야?"

"네가 회사에 얼굴을 안 비치니까 직원들 사기가 완전히 바닥이야. 오죽했으면 싸이클럽 쪽은 아예 버림받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니까."

지금까지는 싸이클럽이 도토리 코인 상장을 위한 수단처럼 쓰였다.

그렇기에 개발 현장에선 이어지는 액션이 없으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번에 상여금 다 돌리지 않았어? 밀린 급여도 전부 해결하고 기본급도 올려 줬다고 들었는데."

"돈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지."

"그럼?"

"지금의 싸이클럽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잖아. 앞으로 싸이클럽이 무엇을 해내겠다는 명확한 비전이 필요해."

나는 싸이클럽이 망하는 걸 안다. 인기가 없어서 망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서비스가 종료되며 망한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현상 유지를 해낸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건만.

'그런 미래를 모르면 현 상황에 만족 못 하는 게 당연하겠지.'

흘깃 시계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쪽 직원들은 퇴근했고?"

"당연히 안 했지. 요즘 이 시간에 퇴근하는 IT 회사가 어디 있냐."

맞는 말이긴 하다만, 앞으로 회사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기도 했다.

"일단 가자."

"어딜?"

"싸이클럽 개발실, 네가 얼굴 비추라며."

* * *

저녁 7시.

퇴근할 사람은 떠나고, 야근할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막 업무에 들어갈 시간이다. 싸이클럽 개발팀은 대부분 후자에 속했다.

"여러분, 밤늦게까지 수고가 많으십니다."

내가 먼저 인사말을 건네자, 애매한 목소리의 인사가 돌아온다.

오랜만에 들린 싸이클럽 개발실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나를 보고 놀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그늘져 보이는, 적어도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태식아, 개발실 분위기가 원래 이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네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유독 다운됐네."

우리가 속닥거리는 동안 저 뒤편에서 후덕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개발팀의 수장인 공민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그나마 공민준의 표정은 좀 나아 보인다. 여기서 낫다는 것은 다른 직원들보다 낫다는 거지, 그도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우리는 개발실 안쪽의 휴게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공 팀장님, 요즘 개발실 분위기는 좀 어떻습니까?"

"괜찮은 편입니다. 급여 따박따박 나오고, 사무실 환경도 좋아졌고, 그 외에 특별한 트러블도 없으니, 사실 이것만 해도 기존보단 훨씬 나아진 셈이죠."

"제가 들은 말과는 좀 다른데요?"

공민준은 옆에 앉은 박태식의 눈치를 살짝 살피고는 입을 연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이번 재오픈에 실망한 팀원들이 많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실망했다는 걸까요?"

"아무래도 접속자나 매출, 화제성, 여러 가지 면에서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과잖습니까."

공민준은 미리 준비해둔 보고서를 잽싸게 내민다.

보고서는 싸이클럽의 매출과 수익, 그리고 접속자 추이와 실사용자 변동 사항 등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현재까지의 매출과 수익은 예상을 밑돌고 있지만 그래도 실사용자가 많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 이런 흐름이 쭉 이어진다면 광고 수익으로 일정 매출을 유지할 수 있으며..."

공민준은 열심히 싸이클럽의 긍정적인 면을 어필한다.

솔직히 보고서를 보고 놀랐다.

싸이클럽 재오픈이라고 해봐야 기존 버전으로 되돌린 것이 고작이고, 오픈 초에 반짝 접속자가 늘어난 것은 도토리 코인을 무료로 뿌린 효과 아닌가.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시점인 지금.

'아직도 싸이클럽 일일 접속자가 20만 명이나 된다고?'

싸이클럽은 인기가 꺾인 2013년 이후부터 하루에 3만 명의 접속자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오픈만 했다고 하루에 20만 명이 꼬박꼬박 접속할 줄이야.

"여기, 접속자가 20만 명이라고 돼 있는 부분. 외부 블로그 같은 곳에서 접속한 인원까지 포함된 겁니까?"

"아닙니다. 외부링크가 아니라 순수 싸이클럽에 접속한 회원님들만 카운팅한 수치입니다."

"왜죠?"

공민준이 눈을 껌뻑거린다. 내가 직설적으로 왜냐고 물으니까 당황한 모양이다.

대답은 옆에 있던 박태식의 입에서 나왔다.

"접속자 대부분이 음악을 들으려고 온 회원이야."

"무슨 음악?"

"네가 전에 말했잖아. 추억팔이를 하려면 음악이 최고라고. 그래서 싸이클럽 접속하면 그 시절 음악을 자동으로 재생되게 만들었지."

싸이클럽 전성기는 2000년도 중반이다.

지금 그 시절 노래를 모아서 들을 곳이 흔치 않았으니, 접속자 대부분은 노래 때문에 싸이클럽에 접속한 것이다.

'결국, 20만 명은 SNS가 아니라 노래를 틀어두려고 접속한 숫자라는 건가.'

이렇게라도 살아남았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노래 하나만으로 싸이클럽의 장기적인 생존은 불가능했다.

공민준도 그걸 아는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핀다.

"공 팀장님, 괜찮으니까 하실 말이 있으면 하세요."

그는 다시 한번 내 눈치를 살피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는 갑자기 90도로 고개를 숙이는데.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싸이클럽을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한 번 대세에서 밀려난 SNS가 재기하기 힘들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전 국민의 추억이 담긴 싸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순 없습니다."

공민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게실 밖에서 개발팀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싸이에는 저희의 인생과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한 번 만 더 기회를..."

"부탁드릴게요. 저희, 아직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서비스를 끝내버리면 슬퍼하는 회원님들이 많을 거예요. 대표님도 학창 시절에 싸이 하셨다면서요."

"대표님, 싸이를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나로선 그만큼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박태식이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나선다.

"여러분이 무슨 착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서비스 안 접습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러나 직원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이대로 휴게실 앞에 드러누울 기세다.

끼익.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른 개의 강렬한 눈빛이 따라온다.

"박태식 이사가 말했듯이, 저는 싸이 서비스를 접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어디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는지 모르겠군요."

헛소문이라는 말에 웅성거림이 커진다.

"공 팀장님, 싸이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정보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 최근에 가상화폐 가격이 크게 휘청거렸잖습니까. 그런데 그중에 도토리 코인 가격이 가장 많이 떨어져서..."

그건 이번에 비트코인 시세를 폭락시키느라 쥐고 있던 도토리 코인을 많이 팔아 치웠으니까 그렇지.

"가상화폐 시세랑 싸이 서비스 종료가 무슨 상관이죠?"

"커뮤니티에서 폭락의 이유가 싸이 성적 때문이라고... 차라리 싸이를 닫아버리는 쪽이 도토리 코인에 호재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싸이 서비스 종료의 근거가 인터넷 찌라시였습니까?"

공민준은 할 말이 없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나는 천천히 직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싸이클럽 서비스 종료는 없습니다. 인터넷을 믿지 말고, 대표인 저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휴게실 입구에 몰려있던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다들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것 같지만 아까보단 한결 나아진 표정이다.

"하... 거참, 무슨 생각인지."

"그만큼 여기 공 팀장님과 다른 팀원들이 싸이클럽에 진심으로 애정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나 역시 싸이클럽에 진심이고."

"야, 박태식. 너는 여기에 왜 껴?"

평소 같았으면 이쯤에서 피식 웃었을 텐데, 녀석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간다.

"우혁아, 나도 진심으로 부탁할 게. 우리 싸이클럽 제대로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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