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36화 (3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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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총 8곳의 가상화폐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옮겨 두는 것으로 시작됐다.

내 목표는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비트코인을 풀어서 시세를 폭락시키는 것.

가상화폐는 거래소마다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의 한계가 있었기에, 이처럼 다수의 거래소로 분산해서 물량을 털어야 했다.

작전 시작은 한국 시각 20시 30분.

나는 총 8만3천 개의 비트코인을 거래소 8곳에서 동시에 시장가로 매도했다.

물량 폭탄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480달러를 유지하던 비트코인은 단 1분 만에 ?30% 폭락하며 330달러 선까지 내려앉았다.

원래 가상화폐는 등락이 큰 투자 상품이지만 지금처럼 순식간에 ?30%가 넘게 빠지는 사태는 드물었다.

혼란에 빠진 투자자들은 '왜?'라는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과 SNS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러다 그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비트코인을 2개로 쪼갠다는 하드포크 소식이었다.

"-37%까지 내려왔어요. 당분간은 여기 지지선에서 가격이 오르내릴 것 같아요."

루머는 한껏 끌어내린 비트코인 시세를 붙들고 있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했지만 아직 축배를 들 때는 아니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박민교가 가상화폐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

그때 제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혁! 큰일이야! 큰손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 이런 흐름이면 얼마지 않아 루머 효과가 사라질 거야."

이대로 루머가 거짓임이 밝혀지면 비트코인 시세는 다시 반등할 터. 그 전에 박민교가 가상화폐 지갑을 열어야 했다.

시세가 반등이 먼저냐, 아니면 박민교 인내심의 고갈이 먼저냐.

초조하게 박민교 휴대폰과 시세 창을 번갈아 가며 살핀다. 입술이 바싹 말라서 침을 몇 번이나 다시 발랐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7, 8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지갑! 열렸어요!"

넬라의 컴퓨터 쪽으로 모두가 우르르 몰려간다.

그러다 지갑의 비트코인 개수가 공개되자 다들 기겁하며 소릴 지른다.

"비, 비트코인 14만 개?"

"맙소사. 맙소사. 저게 다 얼마야?"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인데 코인이 이렇게 많은 거예요? 혹시 비트코인 개발자는 아니죠?"

그녀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폭락 전 비트코인 시세가 480달러였으니까 14만 개면 총 6700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약 700억 원이 된다.

'기껏해야 1, 200억 정도를 넣어 뒀을 줄 알았는데, 700억? 박민교... 얼마나 강심장인 거냐.'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잽싸게 넬라 옆으로 다가간다.

"넬라! 빨리 비트코인을 다른 지갑으로 옮기세요."

"잠시. 접근 제한부터요."

넬라는 비트코인 지갑에 락을 걸어서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한 지갑으로 14만 개의 비트코인을 몽땅 송금시킨다.

송금까지 실행시켰으면 사실상 작전은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끝난 건가."

어느새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도 긴장을 많이 했나 보다.

잠시 바람이라도 쐴 겸 컨테이너 밖으로 나간다.

그런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넬라가 따라 나왔다.

"우혁. 어쩔 생각이에요."

숨 돌릴 틈도 없이 질문이 날아든다.

저 질문의 의미는 방금 빼돌린 비트코인을 어쩌겠냐는 뜻이었다.

"당분간은 비트코인 상태로 보관할 생각입니다."

"회사에 반환 안 해요?"

바로 날 선 반응이 돌아온다. 이해한다. 그녀가 날 도운 이유는 횡령을 막기 위해서였으니까.

"지금은 안 됩니다. 횡령범이 아직 회사 금고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빨리 신고부터. 구속해야 해요."

"대한민국은 횡령과 배임에 관대한 나라입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도 46%만 구속되고 나머지는 전부 집행유예로 풀려났죠."

"그래도 신고는 하는 게..."

나는 그녀가 말을 맺기 전에 자르고 들어간다.

"자, 여기서 깜짝 퀴즈. 최근 500억 원 이상을 횡령한 범인은 몇 명이나 구속됐을까요?"

"뭐예요. 갑자기."

"한번 맞춰보세요. 어서요."

내가 재촉하자 넬라는 어쩔 수 없이 퀴즈를 풀기 시작한다.

"아깐 전체 횡령범 중 46%가 구속됐다고 했어요. 죄질이 나쁜 500억 이상은... 70%? 아니면 그보다 더 높나요? 80%?"

"정답은 0%입니다. 500억 원 이상의 횡령범은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참고로 2017년이 돼서야 500억 원 이상의 횡령범이 한 명 구속되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거짓말. 거짓말이죠?"

넬라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본다.

"저도 거짓말이면 좋겠군요. 하지만 그게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실입니다."

"그럼... 어떡해야..."

"횡령범이 횡령한 돈은 총 1800억 원입니다. 저는 먼저 그 돈을 최대한 회수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놈이 출소한 이후에도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 말은, 돈을 회수할 때까지 비트코인을 우혁이 가지고 있겠다는 뜻?"

"아마 그렇게 되겠죠?"

넬라가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했다.

"약속해요. 회수한 비트코인을 사익에 쓰지 않겠다고요."

"미안하지만 저는 그런 약속을 지킬 사람이 아닙니다. 굉장히 속물적인 놈이거든요."

"무슨 말?"

넬라는 처음에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나중엔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화를 낸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뻔뻔하게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 돈으로 개인 별장을 세우고, 수영장을 최고급 와인으로 가득 채운 뒤, 한우 투쁠 안심으로 숲을 꾸리면 어떻습니까."

"바보같이! 세상에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습니까. 장담하는데 누가 옆에서 감시하지 않으면 저는 순식간에 돈을 다 써버릴 겁니다."

그녀는 그제야 내 말의 속뜻을 이해하고는 '풉!'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이상한 사람."

* * *

가상화폐 지갑 해킹 사건이 있고 바로 다음 날 아침.

KN케미컬엔 매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책상만 뒤지지 말고, 근처에 서랍이나 캐비닛도 싹 찾아봐!"

"알겠습니다!"

폭풍의 중심엔 박민교가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사람을 잔뜩 끌고 와서 사무실을 뒤집어엎고 있었다.

시커멓게 뜬 얼굴색, 엉망으로 뒤집힌 머리카락, 핏발이 선 눈알까지.

필시 어젯밤 내내 해킹당한 비트코인을 찾으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녔으리라.

'네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소용없어. 다른 지갑으로 넘어간 비트코인을 찾을 방법은 없으니까.'

박민교는 백승태 자리를 다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모자라서, 이젠 주변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까뒤집는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사무실 직원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 했다.

"증거가 될만한 물건은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싹싹 긁어서 모아둬라. 그리고!"

소릴 빽빽 지르던 박민교는 갑자기 눈이 홱 돌아서 직원들을 둘러본다.

"여기서 백승태랑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누구야?"

다들 눈치만 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가 없다. 어찌나 분위기가 심각했으면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바로 그때였다. 평소 오지랖 넓기로 소문난 하승찬 과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저... 백승태 부장과 친한 사람은 같은 부서였던 신우혁 과장입니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내게 쏠린다. 당연히 그 시선 중엔 박민교의 것도 포함돼 있었다.

"너... 신우혁..."

박민교의 소름 끼치는 2개의 눈깔이 나를 훑는다.

과거의 나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타조처럼 고갤 처박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나를 어쩌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백승태가 해외로 도망간 상황에서, 나까지 어떻게 되면 횡령 누명을 씌울 사람이 없어지거든.'

내 예상대로 박민교는 나를 못 본 척 그냥 지나쳐 버리고는 하승찬 과장 쪽으로 다가간다.

"신 과장은 같은 부서니까 당연히 같이 다녔겠지. 자넨, 내가 그것도 모르는 병신으로 보이나?"

"예?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물었잖아!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고!"

박민교는 옆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다가 하승찬의 뺨을 후려친다.

퍽! 퍽! 퍽!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마지막으로 정강이까지 걷어찼다.

"악!"

하승찬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가 몸을 부르르 떤다.

"전무님, 그만하시지요.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습니다."

"놔! 이거 놔라고!"

"거기, 뭐 하고 있어? 전무님 잡아!"

박민교와 함께 왔던 똘마니들이 강제로 그를 뜯어말린다.

그 뒤에도 박민교는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책상을 걷어차거나, 서류철을 집어 던지다가 사무실을 떠났다.

* * *

박민교라는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사무실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꼴이 됐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평소라면 과장인 하승찬 나서서 정리하자고 설쳐댔겠지만, 지금은 그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마음이 복잡할 수밖에.

'그러게 오지랖 좀 적당히 부릴 것이지.'

담배라도 태울 생각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그러다 탕비실 옆을 지나가던 도중, 직원들의 속닥속닥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전무님은 아침부터 왜 이러신 거예요? 백 부장님이 무슨 죄라도 지으셨대요?"

"그러게요. 말도 없이 결근하신 것도 이상하고..."

"백 부장님이 회삿돈에 손을 댄 게 아닐까요?"

"에이, 백 부장님이 그럴 분은 아니잖아요."

"그게 아니면 전무님이 저럴 이유가 없잖아요. 평소 회삿일에 관심도 없는 분인데."

탕비실에선 실시간으로 소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꽤 진실에 가까운 소문이었다.

'박민교. 저 멍청한 놈 때문에.'

소문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면 회사에서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들 거다.

그때가 되면 박민교는 모든 증거를 쏟아부어서 나와 백승태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들겠지.

"시간이 별로 안 남았어."

성큼성큼 걸어서 옥상 흡연실로 올라간다. 날이 제법 쌀쌀해진 터라,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두 번, 세 번,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야 휴대폰 앱을 실행시켰다.

웨이씬.

중국의 메시지 앱이다. 마카오와 홍콩에서 비상연락용으로 깔아뒀었는데, 여기엔 당연히 백승태의 프로필도 남아 있었다.

[부장님, 신우혁입니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연락이 닿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고 1분이 채 안 돼서 해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혹시 부장님입니까?"

한참 뒤에야 목소리가 넘어온다.

-그래, 무슨 일이야.

"지금 어디 계십니까? 혹시 해외로 나가셨습니까?"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는 거야?

백승태의 목소리엔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대로 전화가 끊겨버리면 안 됐기에 나는 최대한 빠르게 본론을 내놓는다.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장님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쫙 깔렸습니다."

-갑자기 그런 소문이 왜 돌아?

"아무래도 박민교 전무가 부장님을 횡령범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습니다. 저도 거기에 같이 엮일 것 같고요."

-개 쌍놈의 양아치 새끼가.

'빠드득' 하고 이가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린다.

"계속 해외에 계시다간 꼼짝없이 박민교 전무 뜻대로 될 겁니다.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박민교가 보낸 놈들이 나를 쫓고 있어.

"해외까지 사람을 보냈단 말입니까?"

-한국인은 아니야. 현지 깡패를 고용한 건지 이쪽 지리를 너무 잘 알아.

"저런..."

여기서 잠시 대화가 끊어진다.

내가 다음 주제를 내놓으려던 차에 백승태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신 과장아. 진짜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한국으로 넘어가는 배편이 필요해. 홍콩에서 출발하는 거 말고, 가능하면 연태나 청도 쪽으로.

"최대한 빠르게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망설임 없이 수락하자, 그의 목소리가 단박에 호의적으로 변한다.

-고맙다, 신 과장.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전에 부장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우린 한배를 탄 거라고요."

-그래. 맞아. 한 배를 탔었지. 어쨌든, 지금은 내가 급히 어딜 가봐야 하니까, 내일 밤에 다시 연락하마.

"알겠습니다."

전화가 딱 끊기자마자 참았던 비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 얼른 들어와서 박민교를 물어뜯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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