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33화 (3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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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나른한 오후.

직장인들은 한창 일에 열중할 시간이지만 박민교는 일찍이 회사를 나서서 인근 호텔로 향했다.

그가 호텔에 도착하면 직원 셋이 달려 나온다.

한 명은 대리주차, 다른 한 명은 짐 운반, 다른 한 명은 안내를 맡는다.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박민교는 느긋하게 호텔 VIP 시설로 들어가서 마사지를 받는다.

"전무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평소에 하던 대로."

마사지가 시작되자 몸이 노곤해지면서 축 늘어진다. 그에 따라 마음마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음... 좋군."

박민교는 수백억짜리 계좌가 털린 이후로 매일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 외에 불면증 증세도 있었고,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이유 모를 근육통까지 찾아왔다.

그나마 마사지를 받으면 상태가 조금은 호전됐기에 이틀에 한 번꼴로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다.

"미스 서."

박민교가 난데없이 마사지사 엉덩이에 손을 뻗는다.

마사지사는 몸을 틀어서 피했지만 박민교의 손은 뱀처럼 그녀의 둔부 안쪽을 따라간다.

"저, 전무님, 이러시면 안 돼요."

"앙탈 부리기는."

"앙탈부리는 게 아니라..."

마사지사는 허리를 뒤로 빼면서 박민교의 눈치를 살핀다.

평소 같았으면 이럴 때 말을 안 듣는다고 난리를 쳤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히쭉 웃고는 장난을 멈췄다.

"그...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봐요?"

"그래. 좋지. 아주 좋아. 흐흐흐."

박민교가 이렇게 히쭉댈 정도로 기분이 좋은 이유.

그건 바로 해외에 묵혀둔 막대한 횡령금을 쉽게 가져올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1. KN케미컬 계좌의 돈을 야금야금 빼내고 장부상으론 멀쩡하게 조작해둔다.

2. 횡령금을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옮긴다.

3.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가상화폐를 매수한다.

4. 매수한 가상화폐를 몇 차례 세탁 돌린 뒤, 홍콩에 만들어둔 법인명의 계좌로 출금한다.

5. 홍콩 법인과 가짜 무역거래를 진행. 정식 세금신고까지 마친 깨끗한 돈이 한국으로 돌아온다.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횡령 ? 돈세탁 루트였다.

여기서 작업이 끝나고 홍콩 법인까지 터트리면 증거는 완벽히 사라질 테고, 만약 수사가 들어온다 해도 최종적으로 걸려드는 쪽은 법인 선에서 정리된다.

"후후후. 아주 완벽해."

여기서 핵심은 3번과 4번 단계에서 쓰이는 가상화폐였다.

가상화폐는 관련 법이 없기에 국경을 넘는데 제약이 없었고, 덕분에 조세피난처 계좌의 돈을 완벽하게 옮겨올 수 있었다.

톡. 톡. 톡.

박민교는 마사지 배드에 누운 채로 휴대폰을 조작한다.

휴대폰의 앱 하나면 간단히 가상화폐 거래소에 접근할 수 있고, 다시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는 것으로 사고팔았다가, 국내 계좌로 송금까지 한방에 가능했다.

이 얼마나 혁신적인 화폐란 말인가.

그동안 이 좋은 걸 모르고 해외 계좌를 몇 번씩 갈아타거나, 번거로운 미술품 매입에, 해외로 직접 나가서 개고생까지 하고 다녔으니.

아직도 그때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주식 하시나 봐요?"

마사지사가 말을 툭 던진다. 박민교가 보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 앱이 주식 앱과 비슷해서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

박민교는 기분이 들뜬 상태였기에 친절히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건 주식 같은 구닥다리가 아니라, 가상화폐라는 거야."

"가상화폐가 뭔가요?"

"실물이 없는 사이버 세상의 돈이지. 그래서 국경이나 법의 제약 없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엄청난 놈이야."

마사지사는 별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이었기에 고개만 끄덕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박민교는 아까부터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상태였기에,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내뱉는다.

"자, 봐봐. 여기 한번 터치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여기까지 돈을 가져올 수 있다니까?"

"은행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은행이랑은 다르지. 그놈들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그리고 나랏놈들이 국경만 넘으면 세금을 뜯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잖아."

세금이 없다는 말이 나오자 그제야 마사지사도 관심을 보인다.

"어머. 그거라면 저번에 전무님이 말씀하셨던 해외 투자금을 세금 없이 가져올 수 있겠네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직 한국은 제대로 된 업체가 없어서 푼돈밖에 송금이 안 돼."

"푼돈이면 얼마를 말하는 거예요?"

"글쎄. 한 10억 정도?"

"엥? 10억이 푼돈이에요?"

마사지사가 놀라서 멈칫거리고 있는 동안 박민교는 잽싸게 그녀의 가슴골 안에 손을 넣는다.

"미스 서, 나 글로벌 사업가야. 해외에서 돈을 굴리려면 최소 천억대는 굴려야지 사업한다는 소릴 들어."

"백억이든 천억이든 저랑은 너무 먼 이야기에요."

"미스 서가 우리 집에 와서 마사지를 해주면, 그땐 천억이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대답도 전에 박민교의 손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주무르고 있었다.

저항은 없었다. 이젠 누가 마사지를 받는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 그런데 전무님... 사이버 화폐면 해킹 같은 걸 당하지는 않을까요?"

"이건 블록체인 기술이라는 걸 써서 절대적으로 안전한 화폐야. 그러니 돈 대신 쓸 수 있는 거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네요."

"맞아, 대단한 물건이야.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돈을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으니까. 흐흐흐흐."

* * *

내가 아는 KN케미컬은 굉장히 보수적인 회사다.

기존의 절차를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누군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도 책임질 거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나마 무언가 변화가 생길 땐 임원급이 직접 진행한 일일 때가 많았다.

그마저도 회의에 몇 주, 진행 보고에 몇 주, 타당성 검토까지 하다 보면 반년은 우스웠다.

박민교가 홍콩 법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KN케미컬 특유의 느릿느릿한 일 처리가 이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그가 홍콩 법인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바로 다음 날.

해외 출장 일자는 물론이고 비행기 표, 호텔 예약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신 과장, 일정 확인했으면 준비 단단히 해놔. 알겠어?"

"알겠습니다."

"말만 알겠다고 하지 말고. 진짜 정신 단디 챙겨야 한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너나, 나나 끝장나는 거야."

백승태 역시 이번 홍콩 출장을 앞두고 날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그의 계획은 박민교의 홍콩 법인과 흡사한 법인을 하나 더 만들어서 입금처를 바꿔치기하는 것.

법인 이름만 비슷하면 모르겠지만, 거기에 서류 조작까지 동시에 들어가면 한국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그거야 백승태 생각이고, 까딱 잘못해서 걸리면 뒤가 없었기에 목숨을 건 줄타기나 마찬가지였다.

'내 목숨을 백승태 따위에게 맡길 순 없지.'

그가 일을 저지르기 전에 나도 내 나름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나는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선다. 원래라면 퇴근 즉시 판교로 갔겠지만, 오늘은 고속도로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고속도로 휴게실에 딸린 작은 커피숍.

여기가 오늘의 약속 장소다.

굳이 이런 곳을 고른 이유는 혹시 모를 미행을 의식해서였다. 요즘 들어 누군가 뒤에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행동을 조심하는 중이다.

카페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리자 두 여인이 이쪽 테이블로 다가온다.

"빨리 오셨네요. 저희가 먼저 도착할 줄 알았는데요."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넨 여인은 이소영이다. 회사가 아니라 그런지 오늘은 잔뜩 멋을 부리고 왔다.

나는 반갑게 그녀와 인사를 나눈 뒤, 뒤에 따라오는 여인에게 시선을 돌린다.

"반갑습니다, 신우혁입니다."

"저는 넬라 싱. 소영에게 말 많이 들었어요. 만나고 싶었어요."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넬라는 인도 출신 유학생이다.

이소영처럼 한국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실력이었다.

"앉으시죠. 커피 먼저 마시면서 이야기합시다."

"저, 커피 안 마셔요. 바로 용건부터. 그게 일이 빨라요."

인도인은 느긋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나 보다.

아무튼, 나도 시간 끌 생각은 없었으니 바로 원하는 바를 내놓는다.

"제가 소영 씨에게 보안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넬라 씨 이름이 나오더군요."

넬라는 고개를 까딱거린다.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력을 살펴봤더니 꽤 놀라웠습니다. 국제 해킹대회인 플랜B에서 우승, 또 해킹대회인 알파콘 준우승, 그리고 해커 사이트인 프레딧핵 스피드런 대회에서 1등. 전부 해킹과 관련된 것들이던데..."

"당연해요. 보안을 잘하려면 해킹을 이해하는 게 필수예요."

"아뇨.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제가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는 뜻이었습니다."

넬라는 물론이고 옆에서 사탕을 까먹고 있던 이소영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는 보안 전문가가 아니라 해커가 필요해서 넬라 씨를 부른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넬라는 더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겁니다."

"저는 범죄를 싫어해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범죄를 막기 위해서 넬라 씨의 힘이 필요합니다."

넬라가 그냥 가려는 것을 옆에서 이소영이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자리에 앉힌다.

"흠... 넬라 씨가 오해하지 않으려면 먼저 제 상황을 설명해 드리는 게 먼저겠군요."

"무슨 일이든 범죄는 하지 않아요."

"알겠으니까 일단 듣고 판단하시죠."

나는 그녀에게 KN케미컬에서 진행 중인 횡령 사건을 설명해줬다.

당연히 전부 알려준 건 아니고, 누군가 회삿돈을 빼돌렸고 내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것까지만 말해준다.

"그럴 땐 저를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신고해야 해요."

"지금 신고하면 저만 잡혀들어갑니다. 그러는 동안 진범은 빼돌린 돈을 들고 도망가겠죠."

"그럼..."

"범인이 빼돌린 돈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넬라 씨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거고요."

넬라는 옆에 앉은 이소영을 쳐다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넬라가 얕게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뛰어난 해커라도 해외 은행에 넣어둔 돈은 못 빼 와요."

"은행이 아니라 가상화폐라면요?"

"가상화폐..."

그녀가 해커라면 가상화폐를 모를 수 없었다.

비트코인은 이미 해커나 사이버 범죄자들의 화폐로 활발히 쓰이고 있었으니까.

"범인은 해외에 은닉했던 자산을 가상화폐로 세탁하려고 시도 중입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돈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될 겁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공격하려면 저 한 명으론 힘들어요. 적어도 팀 단위로 서너 팀이 동시에 움직여야 해요."

2014년에 있었던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는 보안에 극도로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니 해커가 팀 단위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 허언은 아닐 거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가상화폐 거래소를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아니라 범인만 딱 짚어서 공격하면 어떻습니까?"

"범인만?"

"예를 들면 범인의 컴퓨터나 휴대폰 정보를 빼내는 식으로, 해커가 게임 머니 빼돌릴 때 그렇게들 하잖아요."

지금껏 쭉 무표정이던 넬라가 처음으로 배시시 미소 짓는다.

"그건 너무 쉬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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