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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이목을 끈 도토리 코인은 상장 첫날부터 대폭락을 맞이했다.
국내 거래소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30%를 찍으며 투자자들을 당황하게 했고.
상장 5분 후엔 ?50%로 공포를 보여줬으며, 30분이 됐을 무렵엔 ?70%까지 내려가며 절망을 안겨줬다.
"..."
사무실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직원들 모두가 쭉쭉 내려가는 그래프를 말없이 지켜본다.
이대로는 시세 하락으로 인한 손해는 물론이고, 도토리 코인에 사기 코인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말 거다.
'슬슬 내가 움직여야 할 땐가.'
내 수중엔 비트코인이 13만 개나 들어있는 전자지갑이 있었다. 이걸 쓴다면 판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꾸로 뒤엎어서 탈탈 털어버릴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도토리 코인을 사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이 돈으로 도토리 코인만 잔뜩 사 모은다면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도토리 코인을 살 때 다른 코인도 같이 매수하면 그만이야. 그럼 분산투자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렇다고 아무 코인이나 사면 안 된다. 재수 없게 코인이 상장폐지라도 되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그러니 미래에도 살아남아서 가치가 보존될만한 코인을 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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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피버 실시간 코인 시세]
비트코인 $385.86
이더리움 $0.77
리플 $0.006
라이트코인 $3.97
대쉬 $3.12
도지코인 $0.0001
모네로 $0.54
스텔라 $0.002
...
도토리코인 $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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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가장 확실하게 살만한 코인은 단연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에 버금갈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나 이인자 자리는 유지하는 코인이었다.
[이더리움 50만 개를 $388,000에 매수 했습니다.]
[이더리움 50만 개를 $423,100에 매수 했습니다.]
[이더리움 50만 개를 $617,572에 매수 했습니다.]
내가 이더리움을 매수할 때마다 시세가 가파르게 치솟는다. 아직 코인 판의 규모가 커지기 전이다 보니 백만 달러 수준도 버티질 못한다.
할 수 없이 이더리움 외에 다른 코인으로 눈을 돌린다.
[리플 1300만 개를 $116,570에 매수 했습니다.]
[라이트코인 46만 개를 $211,500에 매수 했습니다.]
[대쉬 100만 개를 $357,741에 매수 했습니다.]
[도지코인 5000만 개를 $11,600에 매수 했습니다.]
코인 이름이 익숙하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사서 모은다. 덕분에 내가 건드리는 코인마다 시세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원래 0.77달러였던 이더리움은 시세가 2.08달러까지 치솟았고, 시가 총액이 얼마 안 되는 도지코인 같은 경우, 순간적으로 가격이 6배나 오르는 미친 상승세를 보였다.
'내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커. 여기서 더 건드렸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나는 기타 코인 매수를 멈추고 원래 목적인 도토리 코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른 코인들이 시세가 미쳐 날뛰는 동안에도 도토리 코인은 여전히 0.5달러 수준의 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정석 투자는 소량씩 분할 매수로 물량을 쌓으면 된다.
하지만 내 목적은 시장의 충격을 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나눠서 매수할 게 아니라 단기간에 화력을 폭발시켜야 했다.
[도토리 코인 500만 개를 $3,937,221에 매수 했습니다.]
코인 500만 개 매수 주문이 들어간 직후, 비트피버 사이트는 한동안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뚝뚝 끊기기 시작한다.
코인 차트 역시 움직임이 멎은 채로 얼어버렸다.
'이거 왜 이래? 내가 한 방에 너무 큰 액수를 주문했나?'
초조하게 화면이 바뀌길 10초 정도 기다렸을 무렵, 갑자기 빨리감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차트가 치솟는다.
-34%, -32%, -28%, -16%, -9%, 14%... 116%.
반 토막 났던 도토리 코인 시세는 1초 만에 시작가 2배를 넘어버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상승세를 탄 코인 시세는 로켓을 쏜 것처럼 끝없이 위로 솟구친다.
127%, 133%, 164%...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코인 투자자는 그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 자체를 즐기는 야수들이다.
야수가 피 냄새에 흥분하듯이, 투자자들은 시세 변동이 크면 클수록 몰려드는 특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동은 더 큰 차트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177%, 186%, 201%... 226%.
2배를 넘어, 3배까지, 이젠 4배까지 넘보며 그래프가 출렁댄다. 이젠 내가 추가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미 시장은 광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 * *
국내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도토리 코인 상장을 맞이해서 많은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게시글은 부정적이었다.
사기 코인이다, 싸이캐쉬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거다, 1시간도 못 버티고 폭락한다 등등.
하지만 이런 여론은 상장하고 30분이 지난 시점부터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도토리 코인이 왜 이러죠? 갑자기 시세가 15%나 올랐어요.
-그래 봤자 600원.
-어? 진짜네요. 지금이 타이밍인가.
-찔끔 반등했다고 속으시면 안 됩니다. 세력이 털고 빠지려고 개미들 유혹하는 거예요.
-그렇다기엔 계속 오르는데요? 이미 20%까지 올랐습니다.
-엥? 해외 거래소에서는 이미 116%까지 올랐다는데요? 그래서 국내 시세도 따라 올라간 듯?
-거짓말 ㄴㄴ. 개 잡코인이라도 이렇게 빨리 2배는 못 오릅니다.
-진짜예요. 못 믿겠으면 직접 비트피버 가서 보세요.
-거래소 오류 난 거 아님?
커뮤니티 전체가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60%까지 폭락했던 코인 시세가 해외엔 2배로 뛰었다고 하면 누가 쉽게 믿겠는가.
그러나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도토리 코인의 시세는 천장을 뚫어버린다.
-미쳤다. 도토리 2800원 돌파!
-아오, 씨... 아까워 죽겠네요. 저점이 400원이었으니까 그때 사뒀으면 7배는 먹었을 텐데요.
-그렇게 따지면 비트코인 초창기에 샀으면 4000배죠. ㅋㅋ
-해외에선 아직도 상승세입니다. 늦기 전에 탑승하세요.
-1000원짜리를 3000원에 사는 건 좀... 이라고 쓰던 도중에 또 500원 올랐네. 진짜 미쳤다.
한 번 폭등을 시작한 도토리 코인의 시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하지만 다들 지켜보기만 할 뿐, 선뜻 사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미 시세가 너무 오르기도 했고 싸이캐쉬라는 선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싸이클럽 프로모션을 언급한다.
-싸이클럽 로그인하면 도토리 코인 4개 주는 이벤트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직 하나요?
-지금도 줍니다. 저는 개당 600원 할 때 다 팔아 먹어서... 흑흑.
-대박! 도토리 코인 4개면 14000원이네요.
-방금 15000원으로 올랐습니다. 싸이클럽 로그인만 하면 누구나 치킨 한 마리가 공짜!
-조금만 더 기다리면 피자 한 판도 시키겠습니다.
-반대로 피자빵이 될 수도 있어요.
-피자빵 되기 전에 못 받은 분 빨리 받아오세요.
-이미 소문 쫙 깔려서 싸이클럽에 사람 미어터진답니다. 로그인 대기열만 2만 명이 넘는 대요.
* * *
가상화폐 거래소에는 장 개장과 장 마감 개념이 없다.
연중무휴 24시간 거래 가능.
이 때문에 한 번 이 판에 발을 들이면 밤새도록 코인 시세만 쳐다보는 게 일상이 된다.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태다.
토요일 도토리 코인을 상장한 뒤로, 밤을 꼬박 새운 것으로 모자라 일요일 아침까지 차트만 쳐다보는 중이다.
"어? 대표님?"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났다.
이소영이었다. 벌써 8시가 됐나 보다.
"소영 씨, 주말인데 좀 천천히 나오지 그러셨습니까."
"매일 이 시간에 나오다 보니 저절로 눈이 떠지더라고요. 그런데 대표님은... 어제 퇴근 안 하고 계속 여기 계셨던 거예요?"
"시세 모니터링 좀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하하하..."
나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더라.
솔직히 코인을 100만 원만 가지고 있어도 계속 시세를 확인하게 되는데, 100억 원대 돈이 오가면 그걸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그래도 밤새도록 멍하니 시세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새벽 시간 동안 시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야금야금 WHTS컴퍼니의 보유 코인을 팔아치웠다.
그 결과 도토리 코인은 여전히 4.2달러라는 시세를 유지하면서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보유 잔고 : $9,612,244]
한화로 계산하면 약 100억 원이다.
아직 코인은 과세가 없기에 이 돈을 싱가포르 법인으로 송금하면 세금 한 푼 안 내고 WHTS컴퍼니의 소유가 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도토리 코인이 안정적으로 메이저 거래소에 상장됐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앞으로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도토리 코인을 찍어서 거래소에 내다 팔 수 있다는 뜻이었다.
"후후후..."
생각만으로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그 뒤로도 한참을 실실 웃다가 뒤늦게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자리로 간 줄 알았던 이소영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흠흠. 소영 씨,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출근하고 나서 계속 여기 있었어요."
"아, 그랬군요..."
이소영은 내 행동이 우스웠는지 한참이나 쿡쿡거리며 웃다가 입을 뗀다.
"모니터링은 제가 이어서 할 테니까, 대표님은 들어가서 쉬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여요. 못 믿으시겠으면 거울 한 번 보고 오세요."
나는 떠밀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쪽으로 간다.
그곳엔 눈 밑 다크서클이 뺨까지 내려와 있고 머리가 잔뜩 떡 진 사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아침부터 거의 24시간을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나.'
이런 꼴로 출근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대충 외투만 챙겨 입고 몸을 일으킨다. 근처 찜질방에 가서 간단히 샤워만 하고 올 생각이었다.
"소영 씨, 저 잠시 나갔다가 옵니다."
"퇴근 안 하시고요?"
"직원들 휴일에 출근시켜두고 혼자 들어가서 쉴 수는 없잖습니까."
"제가 여긴 책임지고 관리 할 테니까, 대표님은 들어가서 쉬세요. 이번 달에 한 번도 안 쉬셨잖아요."
이소영은 내 가방을 가져오더니 억지로 손에 들려준다. 여기서 퇴근 안 하고 버티다간 강제로 내쫓을 기세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버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럼 먼저 들어갑니다."
"수고하셨어요."
가방을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제야 억지로 끌어다 썼던 집중력이 흩어지면서 피로가 쓰나미처럼 쏟아진다.
이젠 피곤해서 그런지 코인 시세 같은 것보다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은 생각뿐이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타자 그대로 자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조금만 잘까...?'
바로 그때,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어댄다.
지잉. 지잉. 지잉...
발신자는 백승태다.
휴일 아침부터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끈질기게 전활 거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받는다.
-야, 신 대리. 어디냐?
"밖에 잠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내일 7시까지 출근해.
언제나처럼 통보부터 하고 그 이후에 불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전무님이 보자고 하신다.
박민교가 월요일 아침 일찍 나를 불러낼 이유가 뭐 있을까?
불안함이 스멀스멀 치솟는다.
"혹시, 어떤 일로 저를 찾으시는 아십니까?"
-와 보면 알아.
"..."
-아침 7시다. 꼭 늦지 말고 그 전에 와서 딱 대기하고 있어. 나는 분명히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