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29화 (2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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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른 시간부터 WHTS컴퍼니 사무실에는 관리자급 4명이 모였다.

여기서 관리자급이란 박태식과 이소영, 그리고 싸이클럽 개발팀 공민준을 뜻했다.

다들 눈이 퀭하다. 특히 개발팀 소속 두 사람은 어제 새벽까지 테스트 작업을 돌렸으니, 잠도 거의 못 자고 나왔을 거다.

나는 회의 참가자들의 얼굴을 쭉 둘러보고는 입을 뗀다.

"상장까지 앞으로 2시간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부서 간 특이사항만 전달하고 마칩시다."

여기서 그나마 멀쩡한 얼굴인 박태식을 지목했다.

"아침 뉴스를 쭉 훑어봤는데, 도토리 코인 홍보 기사가 안 보이더라. 저번 주에 언론사 돌아다녔던 거 아니었어?"

"열심히 돌아다니긴 했지. 그런데 돈을 준대도 기사를 안 써준다는데 어쩌겠냐."

"기사를 왜 안 써줘?"

"왜겠냐 여론 때문이지. 할 수 없이 인터넷 언론이랑 지방신문사 쪽에만 간신히 올렸다."

이때 옆에서 눈치를 보던 공민준도 슬그머니 말을 덧붙인다.

"저기... 저희 쪽에도 메인에 도토리 코인 소식을 걸었더니 항의 전화가 무지하게 옵니다."

"싸이클럽 홈페이지에 올린 소식이면 에어드랍 안내문이었죠?"

"맞습니다. 저번 싸이캐쉬 때 크게 덴 영향인지, 프로모션에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이 많습니다."

옆에서 박태식이 '공짜로 퍼준다고 해도 지랄이네.'라며 중얼거린다.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는 방법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봅시다."

직원들 모두가 의욕을 불태우며 눈빛을 교환한다. 피곤으로 눈이 퀭하던 이소영과 공민준도 이번만큼은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 회의실 앞으로 다급한 발소리가 다가온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개발실 직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회사 앞에... 저, 저쪽 창문 밖을 한 번 보십시오."

직원을 따라서 창문을 내다본다.

그곳엔 붉은색 조끼를 입은 십여 명이 피켓과 현수막, 띠를 매고서 모여 있었다.

[같은 사기 수법을 또 쓰려는 철면피 WHTS컴퍼니는 각성하라!]

[싸이클럽 사기 화폐로 입은 피해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라!]

[가정 파탄 내는 사기 코인 퇴출! 도토리 코인 상장 절대 반대!]

건물 입구에 몰려있는 이들은 싸이캐쉬 사기 피해자들이었다.

피켓과 현수막, 거기에 마이크와 앰프까지 준비해 온 걸 보면 적당히 떠들다가 갈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뒤늦게 창가로 온 박태식이 울분에 찬 목소리를 토해낸다.

"아니, 저런 짓을 할 거면 비트힛 앞에 가서 해야지. 왜 애꿎은 우리한테 와서 저러는 거야?"

"비트힛은 영업 정지 먹었잖아. 그러니 찾아가서 시위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기서 시위하는 건 의미가 있고?"

가상화폐의 개념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저 시위가 생트집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가상화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우혁아, 내가 내려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해볼 게. 오해가 풀리면 저 사람들도 시위를 멈출 거야."

"헛수고하지 마. 저 사람들은 우리가 싸이캐쉬와 관계없다는 걸 알고 온 거다."

"안다고? 알면 왜 저러는 거야?"

"그건... 저길 봐."

시위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방송국 차량이 줄줄이 도착한다.

거기서 촬영 장비가 내리고 방송 세팅이 진행되는 동안, 시위대는 본격적인 시위를 시작했다.

-WHTS컴퍼니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사기코인 상장이 웬 말이냐! 웬 말이냐!

시위대가 모인 시간과 방송국 차량의 도착, 그리고 시위 시작 타이밍까지,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상장을 앞두고 이런 시위 모습이 방송을 타면 우리 이미지는 나락이야. 그러니 그게 싫으면 떡이라도 내놓으라고 저러는 거다."

"와, 진짜 짐승 새끼들이네."

"내가 장담하는데 짐승보다 사람이 더 지독할걸."

박태식은 이런 상황이 억울해서 미치겠는지 혼자서 오랑우탄처럼 씩씩거렸다.

그러는 동안 옆으로 공민준이 다가온다.

"대표님, 더럽고 치사해도 보상을 주고 해산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싸이캐쉬는 우리와 무관하지만 도의상 책임진다는 식으로 발표하면 여론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보상을 주는 순간, 우리는 싸이캐쉬와 엮이게 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래도 곧 상장이 시작되는데 회사 앞에서 계속 시위하게 둘 수는 없잖습니까."

공민준의 의견은 지극히 정석이다. 만약 일반 기업이었으면 이미지 관리 때문이라도 보상을 주고 돌려보내는 선택을 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아는 코인 판은 일반 기업처럼 접근해선 답이 없는 곳이다.

'이 판에서 이미지는 전혀 중요치 않아. 핵심은 인간의 탐욕을 자극할 수 있냐 없냐지.'

* * *

도토리 코인의 여론 흐름을 지켜보는 곳은 WHTS컴퍼니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피버 역시 세계 곳곳에서 도토리 코인의 여론을 취합하고 있었다.

"한국 포털 사이트에서는 부정적인 뉴스만 연달아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방송국에는 스캠 코인 피해자들이 WHTS컴퍼니 앞에서 시위하는 영상도 올라왔는데요?"

"한국 커뮤니티 쪽도 마찬가집니다. 상장과 동시에 도토리 코인을 다 팔겠다고 벼르는 글만 수십 페이진데... 제인, 이거 괜찮은 겁니까?"

괜찮을 리가 있나. 부정적인 소식이 융단폭격처럼 쏟아지고 있으니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이다.

"후우..."

제인은 이번 도토리 코인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걸 후회 중이다. 아니, 후회는 이미 한 달 전부터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상장을 취소하지 않았을까.'

왜 그랬냐는 의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만큼 도토리 코인 상장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었다.

제인은 지구 반대편까지 소식이 퍼지지 않았길 기도하며 미국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미국 커뮤니티 쪽에도 도토리 코인의 부정적인 뉴스가 쫙 깔려있었다.

특히 싸이클럽 회원에게만 무료 코인을 지급한다는 소식은 미국 커뮤니티의 큰 반발을 사고 있었다.

-코인을 한국의 SNS 가입자에게만 뿌린다고? 정말 엿 같은 발상이네.

-싸이클럽이라는 SNS 가입자가 3200만 명이래. 그 사람들이 전부 도토리 코인을 받고 던진다면... 어떻게 될지 설명 안 해도 되겠지?

-상장과 동시에 폭락하겠군. 바이바이 도토리.

-한국 언론에서는 도토리를 이미 스캠이라고 판단한 것 같더라. 너희도 검색해봐. #싸이클럽 #가상화폐

한국과 미국, 그 외의 가상화폐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녀가 연달아 한숨을 쉬는 동안에도 시간은 묵묵히 흘러, 어느덧 도토리 코인의 상장 시간이 다가왔다.

"상장 10초 전입니다."

이미 비트피버 사무실 분위기는 더 내려앉을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오죽했으면 신규 코인 상장 때마다 해오던 카운트다운을 해주는 사람도 없다.

"도토리 코인... 상장 완료. 정상적으로 서버에 올라갔습니다."

상장이 완료되기가 무섭게 상황실 모니터에 띄워둔 그래프가 출렁거린다.

도토리 코인의 시작가는 1달러.

그러나 상장 직후부터 30%가 떨어진 가격으로 거래가 시작된다.

"가격이 계속 빠집니다. 이런 추세라면 1분 내에 -50%까지는 내려갈 것 같습니다."

"접속자는 많지만 거래량이 예상에 못 미칩니다. 구매자가 적어서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듯합니다."

제인은 콧잔등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떨어질 줄은 몰랐다.

"한국 거래소 쪽은 어때요?"

"그쪽도 썩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코인업에는 기존 IPO 때 도토리 코인을 샀던 사람들과 이번 에어드랍으로 도토리 코인을 무료로 받은 사람들.

두 부류가 한꺼번에 몰려서 미친 듯이 코인을 팔아 재끼고 있었다.

그 결과, 코인피버에서는 시세가 ?30%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었지만, 한국 시세는 이미 ?50%까지 떨어졌다.

"한국 거래소 시세가 저 지경이면 미국도 곧 같은 꼴이 될 거예요. 벌써 ?38%까지 왔어요!"

"한국 쪽 시세가 계속 내려갑니다. -56%, -58%, 곧 ?60%까지 진입합니다!"

"제인,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결정을!"

코인피버는 이번 상장 보수로 도토리 코인 30만 개를 받아뒀다. 그러니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금이라도 보유한 도토리 코인을 전부 팔아치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급락장에서 30만 개나 되는 코인이 시장에 풀려버린다면.

'그땐 정말 도토리 코인은 끝장이야.'

제인은 장고에 들어갔다. 코인피버의 신뢰가 걸린 문제였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차트가 점점 내려갈수록 명분보다는 실리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도 매도할 준비하세요."

제인은 지시를 내린 뒤, 전화를 집어 들었다. 사업 파트너로서 최소한의 매너를 지킬 생각이었다.

뚜우... 뚜우...

신호음이 열 번 넘게 흐른 뒤에야 전화가 연결된다.

-여보세요.

"저예요. 도토리 코인 시세 보고 있죠?"

-지켜보고 있습니다. 살짝 부침이 있는 것 같군요.

"살짝 수준이 아닐 텐데요. 한국 쪽은 이미 ?60%예요. 이런 추세라면 오늘 내에 ?90%까지 내려갈 지도 몰라요."

-음... 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매도 통보를 하려고 연락했어요."

-저 같으면 더 기다릴 겁니다.

핀치까지 몰렸음에도 그의 목소리에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자신감이 깃들어 매력적으로 들리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젠 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리라.

"미안해요. 너무 무리한 부탁이네요."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제발 팔지 말라고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제인은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제인은 통화만 마치면 코인을 전량 매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묘한 행동이 오히려 그녀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느낌이 이상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렇게 30분 정도가 더 흘렀을 때쯤.

계속 흘러내리기만 하던 차트에 변화가 생겼다. 미세하지만 그래프가 고갤 빼꼼 치켜든 것이다.

제인 말고는 신경 쓰는 사람도 없을 정도의 작은 변화였다.

그러다 그래프의 흔들리는 진폭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34%, -32%, -28%, -16%, -9%...

-38%까지 내려갔던 시세가 ?9%까지 역주행했다.

여기서 멈칫거리다가 다시 내려가나 싶더니.

-11%, 0%, 14%, 36%, 55%... 116%.

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두배가 넘게 치솟았다.

너무 놀라서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상장 코인 중 이토록 단기간에, 극단적으로 반등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어떻게 된 건지 상황 파악해봐요! 얼른요!"

충격에서 벗어난 제인이 지시를 내리기가 무섭게 모니터링 직원이 소리친다.

"귀, 귀신고래가 움직였습니다!"

귀신고래는 두 달전 갑자기 나타나서 4000만 달러나 되는 비트코인을 쓸어 담고 사라진 큰손을 뜻하는 은어였다.

"그가 도토리 코인 500만 개를 쓸어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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