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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코인 재벌-28화 (28/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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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이 밀집한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뷔페식 식당.

한 끼에 9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그만큼 메뉴가 잘 나왔기에, 점심시간만 되면 직장인들로 붐비는 핫플레이스였다.

그 식당 중앙에 놓인 TV에서는 언제나처럼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비트힛의 대표 나모 씨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뉴스는 얼마 전에 상장한 싸이캐쉬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도 했고 젊은 층에선 투자한 사람도 많았던 터라, 식당 손님들의 시선이 전부 TV 쪽으로 쏠렸다.

-나모 씨는 싸이클럽 전 대표인 정모 씨와 함께 가상화폐를 판매했으나, 실제로는 거래소 시세를 조작하고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검찰은 사기 외에 다른 혐의가 있는지를 파악 중이며...

뉴스가 나오는 동안 식당 곳곳에서는 격양된 목소리들이 쏟아진다.

"어후, 저 죽일 놈들. 처음부터 해먹을 생각으로 상장했던 게 맞았네."

"옆 사무실 김 실장님은 2억인가 넣어서 회사 찾아가고 난리 쳤잖아요. 요즘은 출근도 안 하시는 것 같던데..."

"제 친구는 저기 투자했다가 지금 이혼을 하니 마니 하는 중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말했잖습니까. 저거 딱 봐도 사기라고요. 가상화폐니 뭐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홍보 기사 써준 기자들도 같이 사기죄로 잡아넣어야 하는 거 아녜요?"

한참이나 피해 사례와 구수한 욕이 오가던 도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경찰이 웬일로 이렇게 빨리 움직였대요? 원래 이런 사건은 어영부영 시간만 끌다가 쫑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소문으론 범인이 자수해서 그렇대요. 비트힛 대표가 혼자서 꿀꺽하려고 수 쓰니까 공범이 물귀신 작전을 썼다나 봐요."

"와. 진짜 쓰레기다. 못해도 수십억은 챙겼을 텐데 그걸 더 먹겠다고 배신해요?"

"그러니까 사기나 치고 다니는 거죠."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사기꾼과 거래소, 가상화폐를 욕하기 바쁘다.

그러나 단 한 곳, 구석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만은 조용히 밥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는다.

그들은 WHTS컴퍼니의 가상화폐 개발자들이었다.

"아우... 하필이면 딱 우리가 밥 먹으러 왔을 때 저런 뉴스가 나오냐."

"빨리 먹고 가요."

"그냥 일어나죠. 이러다 체할 거 같아요."

다들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개발자 한 명이 발끈하고 나섰다.

"아니, 우리가 왜 죄인처럼 눈치를 봐야 합니까? 잘못한 건 비트힛인데요. 까놓고 말해서 누가 주식으로 사기쳤다고 주식을 발행한 모든 기업이 죄인은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요. 사람들이 가상화폐가 뭔지 모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저는 떳떳하니까 끝까지 먹고 일어나겠습니다. 먼저들 가시죠."

평소에도 그의 고집은 대단했기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그러던 도중, TV에서 앞선 보도가 끝나고 화면이 홱 전환된다. 카메라가 비춘 곳은 굉장히 익숙한 모습의 사무실 앞이었다.

"저, 저기. 우리 사무실 아녜요?"

"헙! 맞아요."

그랬다. TV 속 사무실은 이들이 근무하는 WHTS컴퍼니 앞이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가상화폐 투자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가운데, 또 다른 가상화폐의 상장 소식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이번에 상장되는 가상화폐는 싸이클럽에 사용되던 도토리를 모티브 삼는 도토리 코인으로...

뉴스 진행자 입에서 싸이클럽과 가상화폐라는 말이 나오자 사방에서 날카로운 반응이 쏟아진다.

"싸이클럽? 저것들 또 돈 먹고 튀려는 거 아녜요? 사고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저런데요."

"뻔하죠. 법으로 막히기 전에 빨리 털어먹겠다는 겁니다."

"아주 개새끼들이구만."

"사람들이 한 번은 속아줘도, 두 번은 절대 안 속죠."

이쯤 되자 WHTS컴퍼니 직원들은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소속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몰매라도 맞을 분위기였다.

모두가 도망치듯 식당을 나갔고, 자신은 떳떳하다고 버티던 직원까지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는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회사에 다녀야 하나."

* * *

싸이캐쉬 사기 사건에 이어 도토리 코인 상장 소식, 여기에 싸이온 출시 연기까지 발표되자 여론은 극도로 험악해졌다.

언론에서 때려대는 것은 물론이고, 가상화폐에 우호적이던 인터넷 커뮤니티까지 도토리 코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고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꼭 이런 타이밍에 상장을 해야겠냐고, 내년으로 미루는 게 낫지 않겠냐는 소릴 회의 때마다 들어야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원래 의혹이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나쁜 쪽만 기억될 뿐이다.

나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도토리 코인의 상장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상장 전 최종 점검을 위해 미국의 코인피버에서 사람이 도착했다.

담당자는 처음에 화상통화를 했던 제인이었다.

"상장을 내년으로 미루면 투자금은 더 모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도토리 코인은 영영 사기 코인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마주 앉은 금발 여인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심각한 표정을 거두지 못한다.

"와츠의 입장은 이해해요. 하지만 같이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우리 입장도 이해해주시면 좋겠네요."

"당연히 코인피버 측의 입장도 고려해서 낸 결정입니다."

제인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하고자 했던 말을 계속 이어간다.

"코인피버 트윗에 이미 100번째 코인이라고 홍보까지 다 내셨던데, 이제 와서 물리는 건 모양 빠지는 일 아닙니까."

"지금 모양 빠지고 어쩌고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미국에서도 도토리 코인의 부정적인 소식이 쫙 퍼졌어요. 이럴 때 상장하면 재앙적 결과가 나올 거라고요!"

"그렇다면 코인피버 측은 상장을 언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나는 그녀가 답을 내놓기 전에, 한 발 빨리 말을 쏟아낸다.

"앞으로 싸이캐쉬 같은 스캠 코인은 끊임없이 등장할 겁니다. 그럼 그럴 때마다 우리가 상장을 미뤄야 할까요?"

"억지 좀 부리지 마요. 이번 케이스는 특별하잖아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비슷한 스캠 코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우리 이미지는 나빠지면 나빠졌지, 절대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제인도 그 점에는 동의하는지, 반박하지 않고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저는 도토리 코인의 성공적인 상장으로 이번 논란을 정면돌파할 생각입니다. 성공만 한다면 스캠 같은 뜬소문은 자연히 사라질 겁니다."

"실패하면요? 그땐 어떻게 할지 생각해두셨어요?"

"아뇨."

그녀는 두 손을 들어서 황당하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다.

"도대체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확실한 근거에 기반한 자신감입니다. 저는 이번 상장에 써먹을 수 있는 필승 카드를 2장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첫 번째 카드는 에어드랍입니다."

에어드랍은 가상화폐 시장에서 코인을 무상으로 뿌리는 것을 뜻한다. 보통 신규 코인을 상장할 때 마케팅 용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초의 에어드랍은 가상화폐가 폭등한 2017년도 후반기에나 등장한다. 그러니 2015년인 지금이라면 획기적인 마케팅 수단이 될 거다.'

나는 제인에게 에어드랍에 대한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부정적인 의견부터 내놓는다.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녜요? 안 그래도 스캠 의혹이 있는 상태에서 공짜로 뿌리기까지 한다면 인식이 더 안 좋아 질텐데요."

"모든 일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음, 너무 생소한 방식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미 도토리 코인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서 무료로 뿌리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처럼 가상화폐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도토리 코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게 안 좋은 쪽이라서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니 가상화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끌어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이 쉽죠. 제가 거래소를 운영해서 아는데요. 신규 가입자를 모으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는 싸이클럽 사용자 전원에게 도토리 코인을 지급할 생각입니다."

싸이클럽의 가입자는 3200만 명.

이번 에어드랍은 대한민국 국민 절반에게 진행하는 초대규모 마케팅인 셈이다.

"아하, 도토리 코인은 싸이클럽과 연동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그거라면 무료 배포의 명분도 확실히 챙길 수 있겠군요."

"그리고 스캠 코인인 싸이캐쉬와 차별성도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예요!"

처음으로 제인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왔다. 이쯤이면 상장 설득은 성공한 것 같다.

"잠깐만요."

제인은 잠시 방심하고 있던 내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두 번째 카드도 말씀해주셔야죠. 필승카드가 2장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었죠."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대에 찬 눈빛이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웃으며 말을 돌린다.

"그건 상장 당일 날 확인해보시죠."

* * *

도토리 코인의 상장 날짜가 잡힌 이후부터 회사 전체가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간다.

코인 상장 준비만 해도 벅찬데, 거기에 싸이클럽까지 동시 오픈해야 했기에 할 일이 배로 늘었다.

"싸이클럽 오픈 날이 되면 무조건 접속자가 폭주합니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미리 서버를 증설시켜두세요. 우리 서버 만으로는 턱도 없으니까 외부 업체를 계약하시고, 대기열 프로그램도 미리 점검하세요."

싸이클럽 개발실을 찾아가서 필연적으로 찾아올 서버와 비용 문제를 해결해주고.

"미국의 비트피버만으로는 한국 사용자를 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국내 거래소인 코인업에도 같이 상장하겠습니다."

에어드랍에 필요한 절차도 차근차근 준비한다.

"싸이클럽 앱에서 불 필요한 요소는 다 빼고 출시할 겁니다. 단, 오랜만에 방문한 사용자가 2000년대 감성은 느낄 수 있게 해 주시고요."

여기에 싸이클럽 자체 개발에도 내가 참여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된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따라와 준 덕분에 일은 순탄히 진행됐다는 거다.

특히 핵심인 가상화폐 개발진은 자발적 주 7일 출근까지 해가며 열정을 불태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코인 개발진은 외부에서 욕이란 욕은 다 듣고 다녀서, 어떻게든 이번 건을 성공시키겠다고 악에 차 있었다고 한다.

'다들 마음고생이 많았구나. 이번 상장이 마무리되면 직원들부터 제대로 챙겨줘야겠어.'

매일 일에 빠져서 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4주가 훌쩍 흘러갔고, 어느덧 도토리 코인의 상장 디데이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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