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27화 (2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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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일요일 아침부터 포털 사이트에는 가상화폐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허무하게 사라진 대박의 꿈. 싸이캐쉬 30분 동안 1440% 급등했다가 10초 만에 -99.3%까지 폭락.]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 수면 위로. 싸이캐쉬 대폭락에 투자자들 망연자실.]

[거래소 마비로 판매 타이밍 놓쳤다. 싸이캐쉬 투자자들 비트힛에 단체 소송 움직임. 전문가들 "가상화폐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라서 법적인 구제 힘들어."]

[경찰, 가상화폐 거래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는지 확인 중.]

기존에는 IT 섹션에만 올라오던 가상화폐 뉴스가 이번에는 포털 메인에 떡하니 자릴 차지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WHTS컴퍼니도 비슷한 도토리 코인을 개발했다는 이유로 유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저희는 이번에 상장된 싸이캐쉬와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입니다. 도토리 코인은 아직 상장도 안 했고요."

"죄송하지만 싸이캐쉬 관련 문의는 여기서 안 받습니다. 개발사인 비트힛에 연락을 해보세요. 예? 연락이 안 돼서 여기에 전화했다고요?"

"선생님, 맥도버거 햄버거에 문제가 있다고 버거왕에 연락하진 않으실 거 아녜요."

사무실에는 각지에서 걸려온 항의 전화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평소 같았으면 진즉에 전화선을 뽑아 버렸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도토리 코인 개발사가 도망갔다는 헛소문이라도 나면 수습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전화 폭격을 받는 동안, 사무실 밖 계단에서도 이번 사태로 골치 아픈 일을 겪는 사람이 있었다.

"걱정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우리 회사랑 진짜 상관없는 일이에요. 하... 왜 저를 못 믿으시는 거예요!"

개발팀의 수장인 이소영은 휴대폰을 붙잡고 벌써 30분이 넘도록 씨름 중이다.

통화 상대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네가 가상화폐인지 뭔지를 배우겠다고 한국으로 간 것까진 이해하마. 그렇게 보내줬으면 얌전히 대학을 다녔어야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이미 다 습득했어요. 제겐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구요."

-그래서 나간 곳이 투자자들 돈 빼먹는 악성 회사였니?

"그런 곳 아니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뉴스에 나온 곳은 우리 회사와 전혀, 1%도 관계없는 회사예요."

이소영이 시간을 들여서 해명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그녀의 아버지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조앤, 너는 내가 조사도 안 해보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뭘 보고 오셨길래 그러시는 거예요?"

-두 회사가 가상화폐를 내놓는 목적과 자금 수급 방식, 그리고 싸이클럽이라는 한국의 SNS를 이용한다는 것까지 완벽하게 같더구나.

"당연하죠. 비트힛이라는 곳이 우리 회사를 카피한 거니까요."

-그러니 결국 결과도 마찬가지로 나오지 않겠니?

"우리 회사는 달라요. 일단 대표님부터 뛰어난 분이시고..."

전화 너머에서 피식거리며 웃는 소리가 넘어온다.

-기껏 다르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회사의 기술이나 결과물이 아니라 대표라고?

"제가 이런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에요. 아빠도 직접 대표님을 만나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그 대표라는 놈이 사이비종교 교주처럼 사람 홀리는 재주는 탁월한가 보구나.

"그런 소리 하실 거면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이소영은 홧김에 소릴 꽥 내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

통화 후에 한숨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자신을 못 믿어주는 가족이 답답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몇 번이고 더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

'해결할 방법은 딱 하나야. 빨리 도토리 코인을 완성 시켜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해.'

하지만 도토리 코인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었다. 여기에 싸이클럽 개발진과 협업까지 해야 했으니.

대중이 납득할 결과물이 나오려면 적어도 1년, 길게 잡으면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세상엔 제2, 제3의 싸이캐쉬 코인이 등장할 것이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언론과 대중은 도토리 코인까지 싸잡아 비난할 게 뻔했다.

'사기꾼들에게 이용만 당할 바엔, 차라리 개발을 포기하는 것도...'

이소영이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올리던 차에, 뺨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냉기가 느껴진다.

"앗!"

뺨에 닿은 차가운 감촉의 정체는 아이스커피였다.

커피를 들고 나타난 신우혁이 씩 웃는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요?"

그녀는 얼떨결에 커피를 받아들고 말했다.

"언제... 오셨어요?"

"좀 전에요."

"오늘은 출근 안 하시는 줄 알았어요."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직원들이 힘들다고 앓는 소릴 해서 나왔습니다."

그는 이소영이 쪼그려 앉은 계단 옆으로 바짝 붙어 앉으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소영 씨가 저기압이니까 봐 달라는 소리도 하더군요."

"제, 제가 언제 그랬다고..."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세상의 모든 걱정거리를 혼자 다 끌어안고서 끙끙 앓고 있는 표정입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소영은 고개까지 흔들어대며 부정했다. 그러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오히려 속내를 더 드러내는 꼴이 됐다.

"소영 씨의 걱정거리를 제가 해결해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는 법이죠."

두 사람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단순한 잡담만 오가는 정도였는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주제가 싸이캐쉬 쪽으로 넘어갔고, 어느새 그녀가 앓고 있던 걱정과 고민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있었다.

"아! 정말 후련하네요.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이런 말을 남한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소영 씨 성격이라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제 성격이 어떤데요?"

"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이죠. 일은 곧잘 해내지만 그만큼 혼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고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에 이소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대표님, 혹시 종교 단체 같은 곳에서 일한 적 있으세요?"

"전혀요."

"그럼 그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그는 씩 웃기만 할 뿐,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소영 씨의 고민은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요?"

"우리가 사기꾼들과 도매금으로 엮여서 비난받지 않으려면, 결과를 빨리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건 알지만 도토리 코인을 완성 시키려면 시간이..."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도토리 코인의 투자적인 부분을 먼저 인정받을 생각입니다."

가상화폐를 투자 자산으로 인정받으려면 정식 상장으로 좋은 성과를 내면 된다.

하지만 분위기가 최악인 지금 같은 시기에, 도토리 코인을 상장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저 때문에 도토리 코인의 상장을 무리하게 진행하실 필요는 없어요."

"소영 씨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상장을 미룰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싸이캐쉬처럼 가격이 폭락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최소한 올해는 넘기고 상장하셔야 해요."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소리였으나, 그는 오히려 이소영을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관심도가 높을 때가 상장하기 적기일지도 모르죠."

하나부터 열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호재는 하나도 없고 악재만 가득한데 어떻게 상장 적기가 된단 말인가.

그러나 그에게서 뿜어나오는 자신감이 혹시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 *

비트힛의 대표, 나민성은 불 꺼진 사무실에 홀로 앉아서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가 웃는 이유는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글 때문이었다.

이번 사태로 돈을 잃었다고 하소연을 하는 게시글도 있고, 소송을 걸겠다거나, 몇몇 게시글을 돈 잃은 사람을 조롱하기도 했다.

"쯧쯧, 이 병신들. 자기들도 눈먼 돈 한 번 먹어보겠다고 들어왔으면서."

비트힛의 싸이캐쉬 상장은 처음부터 한탕을 노린 사기였다.

코인의 개발부터 사기임은 물론이고, 언론 기사도 돈으로 만든 사기, 시세 상승도 자전거래로 만든 사기, 마지막 서버 오류 역시 사기였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두 발 뻗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사기행각에 쓰인 것이 가상화폐라서 그렇다.

가상화폐는 역사가 짧아서 관련 법 자체가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나서서 수사한다 해도, 가상화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수사한단 말인가?

"아, 쉽다. 쉬워. 인생이 이렇게 쉽게 갈 수도 있는데, 뭐하러 아등바등 사는지 모르겠다니까."

나민성은 의자에 누워서 책상 위에 다리를 턱 하니 올려놓는다.

이번 한탕으로 먹은 돈만 70억이다.

그는 이 돈으로 어디서, 어떻게 펑펑 쓸까를 생각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빰. 빠라밤밤밤. 빰빰빰빰. 둠칫!

그때 책상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린다. 그는 그대로 의자에 누운 채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나민성 씨 되시죠? 여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입니다.

경찰에서 연락이 오면 화들짝 놀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나민성의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목소리가 낯이 익네요. 혹시 저번에 뵀던 박 형사님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이고, 저번에는 욕보셨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일로 신고니 뭐니 해서는 바쁘신 분들 귀찮게만 하고 말이죠."

나민성은 이미 저번 주에 싸이캐쉬 피해자들이 낸 고소 건으로 경찰청에 다녀왔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일개 경찰이 이번 건의 내막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조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별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그런데 형사님께서 또 연락을 주신 걸 보니까, 저번에 조사를 다 못하셨나 봅니다?"

-아뇨, 이번에는 다른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다른 건이라뇨?"

-싸이클럽 법인에서 고소장을 냈습니다.

그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싸이클럽 법인이라면 보나 마나 계약 건으로 걸고넘어지려는 것일 터.

이미 완벽하게 대비해둔 사안이었기에, 느긋이 가서 조사만 받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책상에 올린 다리를 내린다.

-이번은 죄명이 사기라서 빨리 조사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기죄라뇨? 제가 한 거라곤 그쪽에서 위탁한 가상화폐를 거래소에 올려준 것뿐입니다. 서버 마비는 전에도 말했듯이 접속자가 너무 몰려서 그런 거고요."

-음... 자세한 사항은 오셔서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민성은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경찰청으로 향했다.

사기죄라는 말에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철저한 준비를 해뒀으니까.

그렇게 한달음에 도착한 경찰청에는 나민성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경찰청엔 정지승이 와 있었다. 그는 나민성을 보더니 양쪽 입꼬리를 조커처럼 말아 올린다.

"이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네. 밥은 잘 먹고 다녔냐?"

"..."

"야, 형님이 안부를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나민성은 그를 무시하고, 곧장 형사에게 찾아가서 따지듯 묻는다.

"형사님,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습니까? 신고 당사자라고 마음대로 막 대질시켜도 되는 겁니까?"

형사는 뭔 소릴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정지승 씨는 신고 당사자가 아니라, 이번 사기 건으로 자수하러 오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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