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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회원님의 아이디는 보안상의 이유로 이용이 제한 됐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고객 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정지승은 처음 이 메시지를 봤을 때, 단순한 오류 메시지인 줄 알았다.
싸이클럽도 서버에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가끔 이상한 오류가 생길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분을 넘게 재접속해봐도 같은 메시지가 반복 출력될 뿐, 좀처럼 오류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그를 죄어온다. 이러다 싸이캐쉬 코인의 시세가 폭락이라도 해버리면 그땐 정말 끝장이었다.
뚜우... 뚜우... 뚜우...
나민성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계속해서 이어질 뿐이다.
"..."
지금껏 애써 외면하고 있던 싸늘한 감각이 그의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훑고 지나간다.
속이 뒤집히고 젖은 빨래처럼 쥐어 짜이는 느낌까지 밀려온다.
정지승은 마지막 수단으로 나민성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내 아이디로 접속이 안 된다. 거기 무슨 일 있어?]
[전화 좀 해봐. 나 급하다. 아니면 톡이라도 보내줘라. 상황을 알아야 나도 대처를 할 거 아니냐.]
[나민성. 뭐해?]
[야! 뭐라도 대답해 봐! 답답해 죽겠다.]
아깐 바로바로 돌아오던 답장이 이번엔 감감무소식이다. 오류를 수습한다고 바빠서 그런 걸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침착하자. 아직 뒤통수라고 확정된 것도 아니잖아.'
그는 가까스로 멘탈을 다잡고서 다시 마우스를 쥔다.
비회원이라도 코인 차트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일단 싸이캐쉬 시세라도 봐둘 생각이었다.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16854KRW
다행히 싸이캐쉬의 시세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오늘 내에 2만 원대까지 오를 수도 있었다.
'지금 팔면 최소 100억이다. 빨리 팔아야 해.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다시 나민성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던 차에 전화가 울린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정지승은 과장하나 안 보태고 1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 사람 미치는 거 보고 싶어?"
-아유, 형님. 제가 바쁜 거 아시잖습니까.
입에서 씨... 라는 말까지 나왔다가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지금 상대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다.
정지승은 마우스를 부숴버릴 기세로 움켜쥔 채 전화를 이어간다.
"내 아이디 접속이 안 되니까 빨리 어떻게 좀 해봐. 진짜 한시가 급하다."
-저도 오류가 떠대는 바람에 죽겠습니다. 전화가 어찌나 오는지... 아, 전화가 또 들어오네요. 잠시만요.
"야! 더는 못 기다리니까 빨리 내 아이디부터 풀어. 어서!"
-어허. 왜 이렇게 급하실까. 형님도 싸이클럽 운영해봤으니까 알잖아요. 이게 닦달한다고 빨리 되는 게 아닙니다. 진득하게 기다려 보세요.
정지승은 입에서 나오는 쌍소리를 참기 위해 이를 꽉 문 채로 답이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10초 정도가 흘렀을 무렵.
모니터에 띄워뒀던 싸이캐쉬의 차트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한다.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8744KRW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3124KRW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1124KRW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524KRW
[싸이캐쉬 코인(SCC)]
시장가 : 31KRW
푸른색으로 물든 차트는 폭포가 쏟아지듯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처박혔다.
16000원에서 31원까지 내려가는 데는 단 10초면 충분했다.
"..."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멍 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의 정지승이 딱 그런 꼴이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나민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님, 아이디 정지 풀었습니다. 이제 로그인하시면 됩니다.
"지금 풀어주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코인 가격 떨어진 거 안 보여?"
-그걸 왜 저한테 따지십니까?
"야이 개새끼야! 너, 일부러 이런 거지? 내가 코인 못 팔게 하려고 아이디 막아 둔 거 아냐!"
전화기 너머에서 낄낄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리다가 통화가 끊어진다.
정지승은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모니터를 내리찍어버렸다.
"나민성, 이 개 같은 새끼. 죽여 버리겠어."
* * *
정지승은 강남역 인근에 있는 비트힛 사무실로 향했다.
워낙 혼잡한 지역이다 보니 주차할 곳을 찾기도 힘들다.
정지승은 차를 주차장 입구에 그냥 세워버리고 건물로 올라간다. 뒤에서 경비가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비트힛 사무실은 빌딩 8층.
엘리베이터는 먹통이었기에 무작정 8층까지 뛰어 올라간다.
그러나 계단의 6층에서부터 꽉 찬 인파에 의해 발이 묶이고 말았다.
"뭐야 이 사람들은?"
계단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이번 싸이캐쉬 코인의 피해자들이었다.
비트힛은 이런 사태가 있을 줄 알고 미리 용역 깡패를 입구에 배치해뒀다. 그 때문에 피해자들은 8층까지 올라가지도 못하고 계단에 머무르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어디서 봤더라..."
계단에 있던 피해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지승은 본능적으로 여기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그때 위에서 고함이 들린다.
"저, 저 사람, 싸이클럽 대표 정지승입니다! 나민성이랑 같이 사기 친 새끼예요!"
"빨리 잡아요!"
"내 돈 내놔 사기꾼 새끼야!"
위에서 우르르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정지승은 공짜로 받은 코인을 못 팔아서 난리를 쳤지만, 저 사람들은 진짜 돈을 주고 코인을 산 사람들이다.
쌓아둔 분노를 수치화하면 적어도 정지승의 배는 될 터.
여기서 잡혔다간 어떤 꼴을 당할지 몰랐다. 정지승은 죽을 힘을 다해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끼이이익.
다행히 차를 주차장 입구에 대놨기에 잽싸게 몸을 빼낼 수 있었다.
"씨이이이이발... 뭐냐고 이게."
도망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배신당했다는 분노의 눈물이 아니라 삶의 허탈함에서 오는 눈물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의 방향을 한남대교 쪽으로 몰고 있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젠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이대로 다 끝내버리고 싶었다.
바로 그때, 나민성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형님, 잘 먹고 갑니다. 꺼억.]
메시지를 본 순간, 정지승은 차를 반대 방향으로 틀었다.
* * *
정지승이 차를 돌려서 도착한 곳은 판교에 있는 WHTS컴퍼니 사무실이었다.
WHTS컴퍼니는 한때 투자자로서 협력관계였으나, 최근엔 사이가 틀어져 지분 싸움까지 벌였던 적진이었다.
그가 이런 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민성. 그 새끼만 조질 수 있으면 나는 그 어떤 굴욕도 참을 수 있어.'
정지승은 사무실 앞에 서서 각오부터 다졌다. 어떤 푸대접을 받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WHTS컴퍼니 측은 정지승을 손님으로 대접하며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에서 2, 3분 정도를 기다리자 WHTS컴퍼니의 대표인 신우혁이 나타났다.
정지승은 인사도 나누기 전에 벌떡 일어나서 고개부터 숙이고 본다.
"신 대표님,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제발 도와주십시오."
날 선 반응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정지승이 쌓아온 업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신우혁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음료까지 내왔다.
죽일 놈 취급을 받을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평범한 손님 대접을 받으니 적응이 안 된다.
"저... 가상화폐 건 말입니다만...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를 운영한다고 개인 빚이 수억이나 쌓이는 바람에 불가피한 선택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사람이 변명을 랩 하듯이 쏟아낸다.
신우혁은 중간에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정지승 씨가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큰 결심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군요."
속내를 완벽하게 파악 당하고 있었다. 여기서 사과하니 어쩌니 더 주절거려봤자 역효과다.
정지승은 할 수 없이 이곳에 온 목적을 꺼낸다.
"제 용건은 딱 하나입니다. 나민성, 그 개자식을 응징하게 도와주십시오."
"나민성이면 비트힛의 대표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놈만 망하게 할 수 있으면 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래 이쯤 되면 표정에서 감정이 드러나야 정상이다.
조롱하거나, 경멸하거나, 아니면 안타까워한다는 감정이라도 드러나야 할 텐데, 상대는 처음 왔을 때 그대로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전혀 예상을 못 하겠어.'
50분처럼 느껴지는 5초가 지나고, 드디어 상대의 입이 열린다.
"사정이 딱한 건 알겠습니다만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시다시피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소송도 힘듭니다."
"저도 압니다. 개인이 뭉쳐서 승소해봤자 푼돈만 물어주는 선에서 끝날 겁니다."
"그걸 아시는 분이 왜...?"
정지승은 준비해온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꺼내 놓는다.
"이건 제가 싸이클럽 대표였을 때 비트힛과 맺었던 계약서류입니다. 이걸 증거로 싸이클럽 법인이 직접 소송을 넣으면 나민성을 응징할 수 있습니다."
"흠... 일단 한번 봅시다."
신우혁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살펴본다. 어찌나 꼼꼼하게 살피는 지 7장을 다 보는데 1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안타깝지만 이 서류만으로는 소송에서 이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디가 그렇다는 겁니까?"
"비트힛 측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너무 잘 파뒀습니다. 여길 보시면 계약 사항이 전부 노력한다, 협의한다, 할 수 있다, 같은 식의 두루뭉술한 단어로 돼 있잖습니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민성은 처음부터 토사구팽할 생각으로 계약서를 썼다는 뜻이 된다.
그런 속내도 모르고 녀석을 만날 때마다 고맙다고 술을 사줬으니.
지금 생각해도 머리에 열이 올라서 손발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놈만 조질 수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 순간, 포커페이스였던 신우혁의 표정이 살짝 바뀐다.
"정말입니까?"
"예?"
"정말 뭐든 하겠냐고 묻는 겁니다."
"무, 물론입니다. 제가 가진 싸이클럽 지분이 필요하시면 그것도 몽땅 드리겠습니다."
그는 이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싱긋 웃으며 고갤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휴대폰을 먼저 주시죠. 따로 녹음해둔 파일이 있으면 그것도 가져오시고요."
"죄송한데 어떻게 진행하실지를 먼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복잡한 건은 계약 위반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기죄로 넣어야 합니다."
계약 위반은 기껏해야 손해배상청구 정도로 끝나지만, 사기는 범죄라서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번 건으로 사기죄가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사기죄의 성립요건 중 하나가 재산상 이익이거든요. 여기에 코인이라는 유사 화폐로 기망까지 더해졌으니 빼도 박도 못할 겁니다."
정지승은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피해 액수가 커서 특경법으로 처벌 수위도 높일 수 있겠군요."
"특경법이 뭡니까?"
"특정 경제 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참고로 피해액 50억이 넘어가면 최소 5년, 최대 무기징역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전문 법조인 뺨치는 수준의 지식이다.
법조인은 가상화폐가 돌아가는 구조를 모를 테니 어쩌면, 그가 더 전문가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법률 지식을 이리도 잘 아는 거지? 예전에 법 공부라도 했었나? 아니면 전직 변호사 출신이라거나.'
정지승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삽시간에 팔뚝에서부터 목 뒤까지 소름이 쫙 돋아난다.
'내가 그럼... 이런 놈과 소송전을 하려고 했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