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23화 (2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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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이 도미노처럼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테헤란로 거리의 고급 이자카야.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매장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람은 많고 거기에 술까지 곁들여지니 고성방가는 기본이고, 싸우는 소리까지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소란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가게는 원래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싸이클럽의 대표인 정지승도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사무실에서 매번 전화벨 소리와 키보드 소음에 시달리던 그에게 이자카야의 시끌벅적함은 힐링 사운드나 마찬가지였다.

최근엔 마음이 맞는 술친구까지 생겼기에 더더욱 이자카야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형님 먼저 한잔 받으시지요."

"오늘은 아우가 먼저 받아."

"아유, 무슨 말씀입니까.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요. 어서 받으시죠."

정지승과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는 이는 비트힛의 대표 나민성이다.

그는 정지승의 좋은 술 상대이자, 비지니스 파트너임과 동시에 골칫거리를 치워주는 해결사였다.

"크으! 좋다, 좋아.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술이 쭉쭉 들어갑니다."

나민성이 먼저 잔을 비우자, 정지승이 뒤따라 잔을 비우고 말했다.

"오늘은 내가 풀코스로 살 테니까.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보자."

"또 그러신다. 형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큰돈을 벌게 생겼는데, 술값은 당연히 제가 내야지요."

"시작도 전에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냐?"

"김칫국이 아닙니다. 저번에 WHTS컴퍼니가 도토리 코인 한 방으로 돈을 얼마 챙긴 줄 아십니까? 토탈 30억을 넘게 빨았답니다."

도토리 코인의 30억 원 대박.

정지승도 알고 있었다. 한때 모든 언론이 귀가 따갑도록 떠들어 댄 이야기였으니까.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황당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그런 짓을 꾸미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

황당함에 뒤에 찾아온 감정은 질투였다.

그가 싸이클럽 부활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상대는 숟가락 하나 얹어서 수십억을 챙겨 갔다.

속이 쓰린 정도가 아니라 뒤틀리고 갈가리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그가 해왔던 모든 노력이 덧없게 느껴졌다.

그때 타이밍 좋게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 중인 나민성이 찾아왔다.

도토리 코인이 했던 것처럼, 새로운 코인을 만들어 내자는 그의 제안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상념에서 깨어나자, 나민성이 가득 채운 술잔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아니야. 그냥 좀... 걱정돼서 그런다."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형님이 우리 코인을 공식으로 지정해버리면 그놈이 어쩌겠습니까? 방법이 없다니까요."

"음..."

"정 걱정되시면 가상화폐 커뮤니티라도 들어가서 분위기를 보시죠."

"거길 왜?"

"가 보시면 압니다. 아주 가관일 테니까요."

정지승은 얼른 휴대폰을 켜서 가상화폐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도토리 코인을 팔겠다는 게시글 아니면, WTHS컴퍼니를 욕하는 내용으로 도배돼 있었다.

"내일이면 분위기는 더 험악해질 겁니다. 또다른 싸이클럽 공식 코인이 출시된다는 뉴스가 뜰 테니까요."

나민성은 홀로 잔을 비운 뒤, 낄낄거리며 안주를 씹어댄다.

"여기에 다음 주에 오픈하는 싸이온까지 성공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코인 시세가 더 오르는 건가?"

"그냥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불기둥처럼 뻥! 하고 폭등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형님과 저는 돈방석에 앉게 되는 거지요."

* * *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이다.

밤보다 새벽이 더 가까울 정도의 늦은 시각이지만 싸이클럽 사무실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

그러던 건물 안에서도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오고, 마지막으로 사무실 불이 꺼진 뒤에야 건물을 나서는 사내가 있다.

싸이클럽의 개발 팀장인 공민준이다.

부르릉.

나는 차의 시동을 켜고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간다.

그가 자연스럽게 눈치챌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거리를 바짝 붙였다.

뚝.

이내 앞서 걷던 공민준이 멈춰섰고, 나는 창을 내린 채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민준 씨."

공민준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인사보다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는지부터 살피기 시작한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일단 타시죠. 그러다 감기 걸리겠습니다."

"됐습니다. 그냥 갈 길 가세요."

"안 타면 계속 따라갈 생각인데,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공민준은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그러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얼른 조수석에 올라탄다.

"왜 그렇게 눈치를 보십니까? 혹시 저랑 만나는 걸 들키면 곤란할 만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다 알면서 묻지 마십쇼."

그는 초조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선지 창밖으로 고갤 돌려버린다.

"그럼 서론은 건너뛰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정지승 대표가 고약한 장난질을 준비 중이던데, 개발팀은 어디까지 엮여 있습니까?"

"그건 정 대표가 알아서 하는 일이고, 우리는 싸이온 오픈에 신경 쓰기도 벅찹니다."

"그럼 개발팀에서 코인 개발에 관여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외부... 그러니까 비트힛에서 전부 진행할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이번 건에 싸이클럽 개발진까지 엮여 있었다면 수습에 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민준 씨, 내부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면 제게 귀띔 정도는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같이 밥 한 끼 같이 먹었다고, 내부 사정까지 알려드려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오, 공민준 씨는 의리파셨군요. 아니면 정지승 대표와 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신 건가요?"

"..."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도 무작정 믿는 쪽보다는 이런 스타일에 더 믿음이 가니까요."

때마침 신호가 걸려서 차가 멈춰섰다. 공민준은 그 틈에 내릴 생각인지 차 손잡이를 움켜쥔다.

"더 할 이야기 없으면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가시기 전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개발진의 수장으로서 이번에 오픈하는 싸이온이 성공할 것 같습니까?"

내리려던 그가 움찔하고 멈춰섰다.

"그건...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저는 무조건 실패한다고 확신합니다. 만약 돈을 걸라고 하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습니다."

"제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의리를 지킨답시고 가라앉는 배에서 버틸 게 아니라, 얼른 탈출하란 소립니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고서 담배를 내민다.

공민준은 안 받을 것처럼 하다가, 내가 불을 붙여주니까 얼른 담배를 받았다.

"다른 직원분들께 들었습니다. 벌써 급여가 두 달씩이나 밀렸다면서요?"

"후... 두 달만 밀리면 다행이게요. 저는 석 달이 넘도록 월급 구경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번 싸이온 오픈에 기를 쓰고 매달리는 거고요."

"오픈만 하면 밀린 급여가 나올까요? 그보다 사무실 임차료와 서버비, 공과금을 먼저 처리해야 할 텐데요."

"정상적으로 오픈하면 광고도 붙을 테니 그걸로 어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도 확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간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지금의 환경 자체가 답이 안 나오니 자신감부터 떨어진 것이다.

"제가 탈출할 수 있는 구명정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구명정이라면...?"

나는 미리 메모해뒀던 쪽지를 그에게 넘겨준다.

"다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세요."

* * *

싸이클럽 사무실에는 총 17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원래 인원은 30명이 넘었으나 급여를 줄 형편이 못 되다 보니, 일부를 무급휴직 처리해서 절반 정도의 인원만 남게 됐다.

"여러분, 오늘 저녁은 특별 회식입니다. 가볍게 밥만 먹고 가셔도 되니까 다들 빠짐없이 참석해주세요."

토요일 회식은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발팀은 최근 석 달간 회식다운 회식을 못 해봤기에 다들 반기는 분위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회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회식 장소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곳이었기에 따라가던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팀장님 저희 여기서 회식하는 거 맞아요? 비즈니스 호텔이라도 밥값은 엄청 비쌀 텐데요."

"암만 봐도 잘못 오신 것 같은데..."

"빨리 돌아가요, 팀장님."

그러나 인솔자인 공민준은 별다른 대답 없이 호텔의 2층, 식당으로 올라갈 뿐이다.

식당에는 이미 푸짐하게 상차림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먼저 앉아 있는 손님들이 있었는데.

"어? 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먼저 온 손님은 싸이클럽에서 휴직 중이거나 퇴직한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서 직원들을 맞이한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요?"

"저야 집에서 쉬었죠. 너무 쉬어서 주변에서 백순 줄 알더라고요. 그런데 싸이온 개발은 잘 돼 가요?"

"휴, 말도 마세요. 진짜 일을 죽도록 하는데도 끝이 없다니까요."

"내가 회사에 없어서 그런거예요. 호호호."

어색함은 잠시였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다들 회사 사정으로 퇴사나 강제 휴직한 사람들이다 보니,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 대표님이 식사 초대한 거 아니었어요?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해서 나온 건데, 장소가 호텔이라서 깜짝 놀랐네요."

"저희도 잘 몰라요. 그냥 회식한다고만 듣고 온 거라서..."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줄줄이 음식이 나오니 자리에 앉아서 먹기 바쁘다.

식사가 한창일 때, 이곳으로 직원들을 인솔한 공민준이 단상의 마이크를 잡는다.

"여러분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은 식사를 멈추고 단상으로 시선을 향한다. 공민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회사가 많이 어렵습니다. 월급도 많이 밀렸고, 당장 갚아야 할 돈도 제법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 대표도 이번 싸이온 오픈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대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직원들도 싸이온 오픈까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자며 힘을 모으고 있었다.

"싸이온이 흥하면 어떻게든 될 겁니다. 광고도 들어올 거고, 추가 투자도 받을 예정이니까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식당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산발적으로 들려오던 식기 부딪히는 소리도 싹 사라졌다.

"WHTS컴퍼니 측에서 여러분이 보유한 지분 1%당 3천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조용하던 식당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찬다.

싸이클럽은 대기업에서 떨어져 나갈 때, 직원들에게 적게는 3%, 많게는 7%의 지분을 분배했다.

그렇기에 1%당 3천만 원이면 최소 9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 정도면 지분을 팔아야 하는 거 아녜요?"

"팔면 안 돼요. 회사를 지켜야죠!"

"절대 팔면 안 됩니다. 상대가 과반이 되면 우리 정 대표님은 끝장입니다."

"WHTS는 이미 지분 12.99%를 확보했잖아요. 추가로 38%만 확보하면 과반이라구요."

직원들 사이에서도 팔아야 한다는 쪽과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다 누군가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 될만한 사안을 짚어낸다.

"그런데 그쪽에서 51%를 확보하면 나머지 49% 지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WHTS컴퍼니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싸이클럽이라는 회사가 아니라, 싸이클럽 공식 코인이라는 상징성이었다.

"과반만 얻으면 경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 나머지 49% 지분은... 의미 없는 휴짓조각이 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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