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6화 (1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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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커뮤니티의 관심을 모았던 도토리 코인은 공개 5분 만에 완판되는 깜짝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30분 뒤, 해외 거래소인 비트체크에 풀렸던 코인마저 완판 메시지가 떴고.

이 소식은 커뮤니티 이슈를 넘어, 메이저 언론사와 외신에서도 앞다퉈서 보도하기에 이른다.

[수익률 5000배의 기적 일으키나? 가상화폐 도토리 코인, 공개 5분 만에 국내서 매진! 공개 초기엔 접속자 폭주로 거래소 서버가 마비되기도 해...]

[한국형 가상화폐의 반전 성과. 해외 거래소에서 도토리 코인 30분 만에 솔드 아웃!]

[대박 터진 도토리 코인. 잇단 매진 행렬로 투자자들 발만 동동, 일부 개인 간 거래에서는 벌써 웃돈을 얹어주고 거래되기도.]

[가상화폐 전문지 '이슈 코인'에서 이달의 주목할 가상화폐로 도토리 코인 선정.]

도토리 코인은 공개 직전부터 워낙 이슈 몰이를 했었기에, 국내 거래소에서 완판됐다는 소식은 큰 뉴스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해외 거래소인 비트체크에서도 30분 만에 전량 매진됐다는 소식은 파급력의 급이 달랐다.

단순히 싸이클럽이라는 이름값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 코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 *

KN케미컬의 여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탕비실로 향한다.

식사 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은 노곤한 오후를 버티기 위해서라도 필수였다. 여기에 함께 나누는 뒷담화는 회사 생활의 몇 안 되는 활력소이기도 했다.

"올해 초에 결혼식까지 했던 유 주임 있잖아. 아니, 글쎄 벌써 법원에 들락날락하더라니까."

"어머? 벌써 도장 찍는 거예요?"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 그런데 4주 간격으로 월차까지 내가며 법원에 다녀올 일이 뭐겠어?"

"유 주임도 안 됐네. 신랑 인물이 좋던데..."

"그러니까 이런 사달이 난 거지. 자고로 남편은 인물 좋아봤자 하나도 좋을 게 없다니까."

이야기는 이혼에서 남편 외모 쪽으로 갔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월차가 메인 주제가 된다.

"우리 부서는 월차가 있어도 그림의 떡이에요. 경조사가 아니면 윗선에서 칼같이 잘라버린다니까요."

"그거 진짜 황당하지 않아요? 우리 월차를 우리 맘대로 쓰겠다는데, 왜 그리 꼬치꼬치 캐물어 대는지."

"그런 거 보면, 눈치 안 보고 월차 팍팍 쓰고 다니는 신 대리가 부럽다니까요."

신 대리라는 말이 나오자 커피를 홀짝이던 여직원들 눈이 반짝거린다.

"통관부의 신우혁 대리 말하는 거죠? 그분 정체가 뭐예요? 사장 조카라는 썰도 있던데."

"에이, 그냥 우리 같은 평사원이야."

"그런데 그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예요? 맨날 칼퇴근에다가, 회식도 다 빠지고. 저번엔 찌질이 하 과장도 대놓고 들이 받아버렸다면서요?"

"얼마 전에 크게 다친 뒤로는 마이웨이더라. 분위기도 좀 바뀐 것 같고..."

같은 사무실을 쓰는 회계팀 직원들이 맞장구를 친다.

"분위기만 바뀐 게 아니라 행동도 많이 달라졌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회사에 미련이 없는 거 아닐까요?"

"그건 모르죠. 아무튼, 신우혁 대리가 변하고 나서부터는 되려 상사들이 눈치를 보던데요."

"당연히 눈치 봐야지. 여차하면 들이받아 버리는데 어쩌겠어."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솔직히 멋있는 거 같아요. 저도 앞으로는 신우혁 대리처럼 막 들이댈까요?"

그때 눈치 없이 여사원들 수다에 끼어드는 사내가 있었다.

"어허. 여기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많군요."

신우혁과 입사 동기인 회계팀 홍만원 주임이었다.

"이미 윗선에서는 신우혁을 쳐내려고 바짝 벼르고 있습니다. 저러다 건수 하나 잡힌다? 바로 모가집니다, 모가지. 아시겠습니까?"

모여있던 여직원들은 때아닌 불청객에 대놓고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홍만원은 눈치도 없이 험담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놈 저거, 쥐뿔도 없으면서 허세만 떠는 겁니다. 내가 웬만해선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바로 그때, 탕비실로 통합관리부의 백승태 부장이 들어온다.

그가 탕비실에 적막을 몰고 왔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꾹 닫았고, 여직원들은 쪼르르 탕비실 나가버린다.

홍만원도 급히 여길 떠나려 했다. 그러나 나가기 직전에 백승태가 그를 잡아 세운다.

"자네, 신우혁을 잘 알지?"

"예? 아, 예예. 맞습니다. 입사 동기라서 잘 아는 편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니까 잠시 앉아 봐."

홍만원은 어정쩡한 자세로 탕비실 의자에 앉는다. 그 짧은 순간에도 속으로는 별별 걱정이 다 밀려오고 있었다.

'혹시 내가 험담하던 걸 듣고 저러는 건가?'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백승태는 전혀 엉뚱한 질문을 해온다.

"요즘 신우혁 하는 행동이 어떤 것 같아? 뭔가 이상한 것 같지 않든?"

"여러모로 이상하긴 합니다. 매번 일찍 퇴근해서 사무실 분위기를 흐린다거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회식도 빠져 버리고..."

홍만원이 말을 하다가 말고 눈치를 살피자 백승태가 재촉하고 나섰다.

"그것 말곤? 다른 특이사항은 없고?"

"그 외엔 타부서 직원들을 못 알아본다거나, 중요한 업무도 까먹는 일이 잦아서 같이 일하면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아, 그리고 또 하나. 자주 멍하니 있거나 꾸벅꾸벅 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백승태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홍만원의 어깨를 토닥거린다.

"이후에도 신우혁 행동에 이상한 낌새가 있다 싶으면 바로 와서 보고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래, 가 봐."

홍만원은 탕비실을 나서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눈엣가시 같던 신우혁을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 아닌가.

'신우혁, 앞으로는 너의 흠결을 더 철저히 찾아서 보고해주마.'

그러나 홍만원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보고한 내용이 실제로는 신우혁을 도와준 꼴이라는 것을.

* * *

KN케미컬 본사 옥상에 마련된 흡연장.

말이 좋아서 흡연장이지 커다란 항아리를 중간에 가져다 둔 게 전부다. 햇빛을 막아줄 가림막은 물론이고, 앉아서 쉴 만한 의자조차 없다.

이렇다 보니 직원들은 수고스럽게 옥상까지 올라와서 담배를 태우기보다, 1층의 간이 흡연장을 사용했다.

"후..."

나 역시 예전에는 1층에서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오게 되더라.

탁.

반쯤 탄 꽁초를 털어내고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든다.

"어, 태식아. 바쁘냐?"

-당연히 바쁘지. 죽겠다. 진짜 이러다 쓰러지겠어.

"엄살 그만 떨고, 비트체크에서 보내준다던 비트코인 내역 확인해 줘. 오전 중에 메일로 보내 준다고 하더니 아직 소식이 없네."

-잠깐 기다려 봐.

수화기 너머로 한참이나 사락사락하는 서류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비트체크에서 팩스 들어와 있네.

"이메일이 아니라 팩스?"

-응, 팩스. 우리 지갑에 비트코인 1271개를 전송했대. 이게 다 도착하면... 우리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총 9031개야.

비트코인 9031개.

오늘 자 시세인 288,700원으로 환산하면 총 2,607,249,700원이 된다.

-와. 이게 26억이나 된다고? 실체도 없는 도토리를 팔아서 그만큼을 벌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우린 이제 걸음마를 뗀 거야. 해외 거래소까지 진출하면 지금보다 판이 수십 배는 더 커질걸."

-아, 맞다.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났는데. 오전에 해외 거래소 몇 군데서 입질이 왔어. 우리와 미팅하고 싶다던데?

나는 담배를 비벼끄고, 휴대폰을 바로 고쳐 잡는다.

"거래소 이름이 뭐야?"

-미국의 코인피버, 스위스의 비트파이퍼, 그리고 비트G? 거긴 말투 보니까 러시아 거래소 같더라.

다른 곳은 몰라도 코인피버는 세계 3대 거래소에 꼽힐 만큼, 규모가 큰 거래소였다.

그런 메이저 거래소와 정식 계약을 맺는다면, 전 세계에서 투자금을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우혁아, 그런데 그 발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무슨 발상?"

-우리가 팔겠다고 내놓은 도토리를 우리가 다시 되사서 매진시킨 작전 말이야.

"아, 그거."

-공개 30분 만에 전량 매진된 코인이라고 해외까지 소문이 쫙 퍼졌다더라. 그것 때문에 요즘 인터뷰 요청이 어찌나 많이 들어오는지.

각종 잡코인이 범람하는 미래엔 자전거래로 시장을 흔드는 트릭쯤은 흔한 일이었다.

다만, 이번 도토리 코인은 수량과 가격이 고정돼 있었기에, 시세조작보다는 품귀 마케팅을 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이번에 물이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저어봐. 언론 노출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 인생에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다닌 적이 없을 정도다.

"장하다. 박태식. 내 몫까지 팔이 빠지도록 노를 저어보렴."

-아주 고오맙다. 이 악덕 사장 놈아.

실없는 농담을 몇 차례 더 주고 받다가 통화를 끝낸다.

"휴..."

휴대폰을 내려놓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본래라면 대표인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터뷰와 방송을 소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직 횡령 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내 얼굴이 노출되는 것은 부담이 컸기에 박태식이 대신 스케줄을 뛰고 있었다.

'빨리 횡령 증거를 찾아서 진범을 처넣어야 내가 움직이기 편해질 텐데... 씁.'

급한 것만 따지면 큰돈을 빼돌려야 하는 쪽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러니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상대가 먼저 움직임을 보일 것이고, 나는 그때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생각이었다.

* * *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갔더니 백 부장이 내 자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어이, 신우혁이. 근무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얼마 전까진 저 쌍판만 봐도 이가 갈렸으나, 이젠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쌓였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왔습니다."

"쯧, 업무 시간에 담배는 무슨 담배야. 정 피우고 싶으면 점심 먹고 휴식 시간에 나가서 피든가."

정작 본인은 하루에 대여섯 번도 넘게 담배를 피우러 들락날락거리면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는 인간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셨습니까?"

"어, 별건 아니고. 저번에 내가 말했었지? 미국에 출장 갈 일 있을 거라고."

미국 출장이라면 라스베이거스행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침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한 번 적시고 입을 뗀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거 일정 다음 주 월요일로 정해졌으니까 네가 비행기 표 좀 뽑아놔라."

"일반석 2개로 예약하면 되겠습니까?"

"그거 예약하고, 박 전무님도 가신다니까 일등석 중에서 자리 좋은 데로 하나 구해 놔."

박민교 전무라면 KN케미컬 사장 박철순의 동생이다.

그런 회사의 실세가 라스베이거스 출장에 동행한다면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돈세탁.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본인이 직접 움직일 정도면, 이번에 세탁하는 돈의 액수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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