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14화 (1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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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탁. 탁. 탁.

딸깍. 딸깍.

리드미컬한 키보드 소리가 사무실을 채운다. 가끔 섞이는 마우스 버튼 소리는 추임새를 넣는 것 같다.

이소영이 노트북을 붙잡고 작업을 시작한 지도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러는 동안  나와 뒤늦게 도착한 박태식은 연주를 관람하듯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혁아, 원래 가상화폐라는 게 몇 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거였어?"

"기존에 있던 가상화폐의 소스 코드를 그대로 가져와서 수정하는 식이면 10분 만에 찍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뭐? 10분?"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예 백지상태에서 코드를 짜기 시작하더니 벌써 수십 페이지가 넘는 코드를 즉석에서 짜냈다.

여기서 새로 만들겠다던 말은 허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소영 씨, 지금 짜낸 코드는 이더리움 기반으로 발행되는 토큰입니까?"

"맞아요. 작업난이도와 범용성에서 여러모로 그쪽이 유리하거든요. 만약 메인넷을 지닌 가상화폐를 개발하려면 못 해도 반년은 개발해야 할거예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태식의 눈썹이 S자 모양으로 꿈틀거린다. 자기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는 뜻이었다.

"토큰은 정식 가상화폐가 출시하기 전에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돼. 나중에 정식 출시가 이뤄지면 토큰 1개에 가상화폐 1개 같은 방식으로 투자자들에게 교환해주는 거지."

"아하. 일종의 어음이구나."

"개념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장은 그 정도만 이해하면 될 거다."

"거 참, 가상화폐는 구조가 너무 어렵단 말이지. 이래서 제대로 투자하는 사람이나 있을까 모르겠어."

그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던 이소영이 홱 상체를 돌린다.

"그래서 대표님의 발상이 대단하신 거예요. 복잡한 가상화폐를 도토리라는 단어 하나로 일반인에게 이해시키신 거잖아요. 그죠 대표님?"

"그게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대단하신 거 맞아요. 제 안목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저건 내가 그녀에게 해줬던 말이다. 그걸 그대로 돌려받게 될 줄이야.

내가 먼저 픽하고 웃음을 흘리자 그녀도 같이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뭐야? 두 사람, 왜 웃는 거야? 벌써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중간에 박태식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소영이 정색하고 부정해버려서 상황은 금방 일단락됐다.

그리고 10분 정도가 더 흐른 뒤.

이소영이 작업하던 노트북을 우리 테이블 쪽으로 가져온다.

"작업 끝났으니까 한 번 보세요. 토큰 생성과 기본 설정, 밸류까지 테스트할 수 있게 해뒀어요."

2시간이 걸린다던 작업은 1시간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완성됐다.

그것도 바로 작업을 시작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부터 설치부터 했으니 실제 작업은 1시간도 안 걸린 셈이다.

엄청난 작업 속도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작업물의 직관성이었다. 이 방면의 문외한인 박태식이 구조를 이해할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할까.

"어때요? 이 정도면 제 실력은 확인이 되셨나요?"

나는 대답하는 대신에 미리 준비해뒀던 계약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급여뿐만 아니라 차후에 지급할 인센티브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거기 써진 금액을 보더니 이소영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기... 계약서에 이 부분은 잘못 쓰신 거 같은데요."

"왜요? 금액이 너무 적습니까?"

이소영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댄다.

"적은 게 아니라, 너무 많아요. 연봉이 7000만 원이면 대기업의 시니어 개발자급이잖아요!"

"연봉 7000만 원이 아닐 텐데요. 계약서를 자세히 안 보셨군요."

"제가 어딜 잘못 봤다는 건지..."

다시 계약서를 살펴보던 이소영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뭐, 뭐예요? 이거 연봉이 아니라 계약금 7000만 원이라고요?"

"맞습니다. 계약금만 7000만 원에 연봉은 한 해 실적을 정리해서 연말에 따로 지급됩니다."

"아니, 이게 무슨... 꿈은 아니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부터는 꿈이 아니게 되겠죠."

그녀는 냉큼 옆에 놓인 인주를 가져다가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다.

"이렇게 하면 된 거죠?"

"예, 됐습니다."

나는 미리 제작해둔 회사의 첫 사원증을 그녀의 목에 걸어주며 말을 잇는다.

"WHTS컴퍼니에 합류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 *

팀에 이소영이 합류한 뒤로, 우리는 거의 열흘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먼저 신규 가상화폐의 개발 완성도를 올리면서 한편으론 ICO에 필요한 백서(white paper)를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소영을 도울 개발자를 세 명 추가로 구했으며, 그럴싸한 홈페이지도 같이 개설했다.

가상화폐의 내실을 다지는 동안,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화폐 홍보에도 속도를 냈다.

[새롭게 태어나는 싸이클럽 플러스,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인 결제수단 선봬.]

[미니홈피 꾸미기에 쓰이던 도토리가 투자 상품으로? 무궁무진한 성장 가능성에 전문 투자자들 대거 몰려들어.]

[투자 5년 만에 5000배 올랐다. 가상화폐가 된 도토리가 꿈꾸는 미래.]

언론사에 가상화폐 홍보 자료를 뿌리고, 커뮤니티 마케팅을 하면서, 동시에 박태식이 직접 주식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부지런히 뛰어다닌 효과는 굉장했다. 국내 업계에선 도토리 코인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그 결과, 오늘은 가상화폐 거래소의 대표들이 직접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오기에 이른다.

"국내 최초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업의 대표 송백호입니다. 저희는 인지도부터 근본 없는 다른 거래소와 급이 다릅니다."

"일일 거래량 최고치를 자랑하는 비트힛의 나민성입니다. 국내 최초니 뭐니 하는데, 일단 거래량이 많아야 IPO의 효과가 좋지 않겠습니까?"

응접실에 마주 앉은 두 거래소 대표들은 시작부터 신경전을 펼친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도토리 코인의 IPO 권한을 거래소에 위탁해 달라는 것.

서로가 자신들의 거래소가 더 좋다고 우기는 중이지만, 내 눈엔 도토리 키재기로 보일 뿐이었다.

'국내에 거래소가 2개나 있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로군'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엔 가상화폐 거래소가 하나도 없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거래소는 홈페이지 상태부터 엉성했고, 관리나 UI도 엉망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차트 거래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허접했으면 가상화폐를 노리는 피싱 사이트인 줄 알았다.

'어설픈 거래소라도 우리가 자체적으로 투자자를 모으는 것보다 나을 거다. 편의성과 접근성 면에서 상대가 안 될 테니까.'

나는 일부러 의자 바퀴 소리를 내서 두 사람의 시선을 내 쪽으로 모은다.

"저희는 거래소 위탁 판매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조건을 들어보고 어떤 거래소에 위탁할지를 결정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상화폐 대표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저희 코인업은 이미 여러 차례의 IPO 대행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비트힛은 국내 최대 거래량을 기록한 거래소입니다. 수수료도 업계 최저이지요."

"당장의 수수료보다는 보안을 중시하셔야 합니다."

"코인업 따위보다 우리 쪽에 맡기시면 배 이상의 투자금이 모일 겁니다."

"뭐? 따위? 당신 말 다 했어?"

"먼저 근본이 없다는 소릴 했던 쪽이 누구더라?"

다시 응접실이 소란스러워진다. 이번엔 말싸움만 하고 마는 게 아니라, 서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눈까지 부라리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언쟁이 한참 더 이어지던 도중, 응접실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표님, 비트체크에서 나카지마 씨가 찾아오셨습니다."

비트체크는 일본에서 서비스 중인 가상화폐 거래소다.

일본은 이미 비트코인 투자가 활발한 만큼, 영세한 한국 거래소와는 체급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런 업체에서 찾아왔고 하니, 싸우던 두 거래소 대표들이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신 대표님, 비트체크에서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한국에서 도토리 코인이 유명해지다 보니, 그 소문이 일본 커뮤니티까지 넘어간 모양이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두 거래소 대표에게 형식적인 양해를 구한 뒤, 일본에서 온 손님을 맞이했다.

"비트체크의 나카지마 이치로입니다."

"WHTS컴퍼니의 신우혁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그런데..."

그는 먼저 응접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여기 이분 들은 누구신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대표분들이십니다. 나카지마 씨와 같은 목적으로 저희 사무실을 방문하셨죠."

"아하, 그러셨군요."

나카지마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낸다.

"저희 비트체크는 일본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가상화폐 거래소입니다. 일일 거래량만 해도 10억 엔에 달할 정도지요."

이 당시에 국내 거래소의 일일 평균 거래량은 고작 12억 원 남짓이었다.

그런데 그 8배에 달하는 10억 엔이라는 거래량이 나와버리니, 한국 거래소 측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간다.

"게다가 해외의 유수 거래소들과 코인 스왑 제휴도 맺고 있기에, 믿고 위탁을 맡기실 수 있습니다."

나카지마는 이미 계약을 따낸 사람처럼 목소리에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러나 국내 거래소 대표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진 않았다.

"일본 거래소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번역도 안 돼 있을뿐더러, 한국 계좌 등록도 제한적인데 거래량이 많아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백번 옳은 말씀이지요. 그리고 일본은 정부에서 가상화폐에 세금을 먹인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잖습니까."

방금까지 서로 싸우기 바빴던 국내 거래소 대표들이 의기투합해서 일본 거래소를 공격한다.

"아닛! 저건 허위입니다. 비트체크는 이미 한국어 번역 페이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엉뚱한 세금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나카지마는 흥분했는지 유창하던 한국어 발음까지 꼬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국내 거래소 측은 합심해서 더 집요하게 일본 거래소의 약점을 물어뜯는다.

"일본 거래소는 기술적으로도 믿을 수 없지요. 해킹 사건으로 파산한 마운트 곡스가 어느 나라 거래소였습니까?"

"아, 맞아. 거기가 일본 거래소였죠?"

"국내 거래소는 전문 보안업체와 제휴해서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합니다. 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보안 프로그램을 쓰고 있거든요."

"맞습니다. 보안 면에서는 사실상 은행과 동급이라고 봐야지요."

잘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의 연속이었으나, 두 명에서 계속 두들겨 대니 혼자인 나카지마는 정신을 못 차린다.

그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내가 그들의 언쟁에 끼어든다.

"잠시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시겠습니까?"

잠시 소란이 잦아들고,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가 됐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가장 많은 투자자를 모을 수 있는 거래소와 위탁 계약을 맺을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서 거래량이 가장 큰 거래소는 일본의 비트체크다. 그렇다 보니 나카지마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하지만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래소마다 일장일단이 있어서, 어느 곳이 가장 많은 투자자를 모을지 알 수 없겠더군요."

"그래서 신 대표 생각이 뭡니까?"

"저는 도토리 코인의 위탁 계약을 거래소 세 곳 모두와 맺고 싶습니다."

기가 찬다는 반응이 앞섰고, 아예 대놓고 인상을 구기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아무런 어드밴티지도 없이 모두와 계약을 맺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거래소에게, 차후 도토리 코인의 독점 상장 권한을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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