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인천의 달동네에서도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있는 회백색 건물.
우리 집이다. 정확히 7년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우리 집을 보고 있으니 세월이 그때 그 시절에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론 세월이 멈춘 게 아니라 내가 뒤로 돌아온 거였지만.
창문틀 사이에 숨겨둔 열쇠를 찾아서 문을 딴다.
끼릭. 끼릭. 끼리릭.
찰칵.
현관문 잠금장치가 낡아서 잘 안 돌아가는 것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가자 반갑고도, 어딘지 정겨운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방 하나에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인 작은 집이지만 나와 어머니에겐 정말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내가 취직해서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 들어간 이후에도 어머니는 쭉 이 집에서 혼자서 생활하셨다.
'아버지가 없던 이후부터 쭉 여기서 살았으니까... 벌써 20년이 넘었었구나.'
누렇게 빛바랜 냉장고와 낡았지만 깨끗하게 관리된 전기밥솥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 중이다.
구석에 놓인 접이형 밥상 위에는 보자기가 씌워져 있었다.
보자기를 치워내자 그 안에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반찬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들, 가스레인지 위에 김치찌개 있으니까 데워 먹어. 밥은 밥솥에 있는 거 알지? 아플 땐 입맛이 없어도 밥은 꼭 먹어라.]
내가 오늘 퇴원한다고 밥까지 해두시고 나가셨나 보다. 고기를 적게 먹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남긴 메모대로 김치찌개를 데우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한가득 퍼서 상에 앉았다.
깻잎을 얹은 밥을 떠먹고, 찌개를 한 숟갈 입에 넣는다.
"..."
밥이 잘 안 넘어간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좀 울컥해서 그런 것 같다.
코끝도 찡한 것이 괜히 눈앞이 흐려진다.
'이 밥을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더 감상에 젖기 전에 고갤 흔들어서 생각을 털어낸다. 계속 이러다간 목이 메서 밥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
달칵.
밥은 물론이고 반찬까지 깨끗하게 비운 뒤 설거지까지 끝냈다.
물을 꺼내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안에 김치 말고는 제대로된 음식이 하나도 안 보인다.
혹시 싶어서 찬장을 뒤져도 나오는 게 없다.
'어머니는 평소에 뭘 드셨던 걸까? 내가 집에 없으니까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드셨던 건가.'
맨밥에 물을 말아서 김치로 끼니를 때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말 바보 같다. 힘들게 번 돈을 다 어디 썼기에 이리도 미련하게 산단 말인가.
"어디 썼긴. 나 같은 못난 자식새끼 하나 키워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오신 거지."
어머니가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후회스럽고, 너무 죄송하고, 내가 너무 한심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행운아다.
과거의 쌓았던 잘못과 후회스러운 일들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었으니까.
* * *
서울 외곽에 있는 한 허름한 모텔.
여기가 어머니의 일터다. 젊으셨을 땐 더 괜찮은 호텔에서 근무하셨었는데 나이 문제로 퇴직한 뒤로는 쭉 이곳에서 일하셨다.
모텔 외관만 보면 장사가 될까 싶지만 타 모텔보다 숙박비가 저렴해서 단골손님이 많다고 한다.
끼이이이익.
주차장 입구로 들어서자 오래된 차단막이 덜덜거리며 올라간다.
차를 대충 세워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카운터가 나를 맞이한다.
요즘 모텔은 카운터를 무인으로 돌리고 청소에만 사람을 쓴다더니, 이곳도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는 듯했다.
"막상 찾아오긴 했는데, 이젠 어디로 가야 하지?"
한 번도 어머니 일터까지 찾아온 적이 없다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전화라도 받으시면 좋을 텐데, 그마저 받지 않으신다.
할 수 없이 1층부터 찬찬히 살펴보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이, 씨! 빨리 안 찾아놔? 진짜 뒤지고 싶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저절로 걸음이 빨라져서 한달음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2층까지 달려간다.
"내가 침대 위에다가 시계를 벗어 둔 걸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게 어디로 사라졌냔 말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손님."
"죄송? 나도 죽빵 한 대 갈기고 죄송하다고 하면 되냐? 어? 빨리 대답 안 해?"
웬 문신으로 도배한 돼지 한 놈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면, 그 앞에 비쩍 마른 중년인이 연신 고갤 숙인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정말 면목이 없어서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둥아리로 하는 사과는 필요 없어. 내 시계값을 물어내든지, 아니면 죽빵 한 대 맞자."
"자, 잠시만요. 손님."
중년인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그곳엔 고갤 푹 숙인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어머니가 서 있었다.
"김 씨 아줌마. 청소하다가 시계 못 봤습니까?"
"방에 시계 같은 건 없었어요."
"그 시간에 방에 들어간 사람이 김 씨 아줌마잖아요. 그러니 아줌마가 물어주든 어쩌든 해결해보세요."
"제, 제가요?"
딱 보니 객실에서 물건이 없어져서 저러는 거 같은데, 알아보지도 않고 물건값을 직원에게 물어내라 한다고?
더는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곧장 그들이 모여 있는 객실 앞까지 다가간다.
"넌 뭐야?"
문신남이 날 보고 눈을 부라린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뒤늦게 깜짝 놀라신다.
"혀, 혁아. 네가 여긴 어떻게 온 거니?"
"집에 모셔다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해결할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듣고 있던 문신남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대화에 끼어든다.
"오호라. 네가 이 청소 아줌마 아들이었어? 잘됐네. 네가 대신 시계값 물어내. 그럼 조용히 끝날 테니까."
"우리 쪽에 과실이 있다면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확인부터 하는 게 먼저겠네요."
나는 휴대폰을 켜 들고 통화를 시작한다.
"거기 경찰서죠? 여기 꿈드림 모텔 2층인데요. 도난 사고가 있어서..."
"이 새끼가 미쳤나!"
문신남의 우악스러운 손이 휴대폰을 빼앗으려 한다. 나는 재빨리 상체를 뒤로 빼서 손을 흘려냈다.
"누구 맘대로 짭새를 부르래? 뒤지고 싶어?"
"경찰을 불러서 도난 신고부터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리고 CCTV를 확인하면 그 시간에 객실로 들어간 사람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씨팔. 요즘 애새끼들은 말로 하면 알아 처먹질 않는다니까."
문신남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으드득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살덩어리를 실룩거리며 다가와서 나를 똑바로 노려본다.
놈이 하는 꼴을 보니 속으로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7년이 넘는 감옥살이를 하며 소위 '진짜배기'들을 수두룩하게 봐왔다.
조직 폭력배, 살인자, 마약사범 등등.
그런 악질 범죄자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내게 동네 양아치는 길거리에 널린 개똥만도 못한 존재였다.
"눈 안 깔아? 하, 이 새끼 봐라.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문신남은 손을 치켜들어서 칠 것처럼 위협했다.
그러나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노려보고 있자, 놈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했다.
"에라이. 오늘은 내가 일이 급해서 그냥 간다. 다음에 만나면 재미없을 줄 알아."
놈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허겁지겁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하는 짓을 보니 동네 양아치가 아니라 그냥 돈 뜯으러 다니는 사기꾼이었나 보다.
문신남이 내빼고 나니 모텔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 왔다.
그제야 아까부터 눈치를 보던 모텔 주인이 내게 슬며시 다가온다.
"저... 그쪽이 김 씨 아줌마 아들 맞어? 뭐 하는 사람인지 좀 물어봐도 될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나는 모텔 주인에게 바짝 다가가서 시선을 마주한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까 듣자 하니 저희 어머니께 변상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더군요."
"아니,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일이 있을 때는..."
"그쪽이 하는 변명을 들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내일까지 어머니 몫의 급여와 4대 보험 미지급금, 퇴직금까지 전부 입금하세요."
모텔 주인은 당황한 얼굴이 되어 어머니를 돌아본다.
나는 두 손으로 그의 머리통을 붙잡고 강제로 내 눈을 마주하게 했다.
"내일까지 입금이 안 되면 제 동생들이 돈을 받으러 올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어머니는 한동안 창밖만 내다보실 뿐, 말이 없으셨다. 아들의 돌발행동에 많이 놀라신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뗀다.
"저... 많이 놀라셨죠? 제가 너무 과하게 대응한 것 같네요."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놀란 게 아니라 감동했어. 우리 아들이 이렇게 듬직하게 컸구나 싶어서. 네 아빠가 봤어도 똑같이 생각했을 거야."
"..."
"깡패가 도망갈 때는 내 속이 다 후련하더라."
이런 말을 들으니 불편했던 마음이 좀 편해진다. 일부러 그러라고 말씀하신 거겠지만.
"얘, 그래도 월급 챙겨 달라고 한 건 너무 했어. 그렇게 말해버리면 내일부터 일하러 어떻게 나가니."
"안 나가셔도 돼요. 이참에 좀 쉬면서 친구분들과 등산도 다니고 하세요."
"또, 또 그런 식으로 말한다. 청소일은 내가 좋아서 나가는 거라고 했지?"
고된 청소일을 하고 싶어서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조수석 쪽의 수납장을 열며 말했다.
"여기 쇼핑백 받으세요."
"이게 뭐니? 선물?"
"선물은 아니고... 보면 아실 거예요."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쇼핑백을 열다가 깜짝 놀라서 '어메!'하고 소릴 지르셨다.
쇼핑백 안에는 은행에서 뽑아온 빳빳한 오만원권 뭉치가 10개 담겨있었다.
"아버지가 집 나갔을 때, 이모에게 돈 빌리셨죠? 그거 갚으려고 계속 일 하러 나가신 거 알아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나도 이때 당시엔 빚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끝까지 숨기고 계셨으니까.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걸로 빚 해결하시고 남은 돈은 생활비에 보태 쓰세요."
운전하면서 슬쩍 어머니의 표정을 살핀다.
말은 안 하셨지만 불안해하고 계신 게 느껴졌다. 아들이 갑자기 돈뭉치를 들고 나타났으니 당연했다.
"제 친구 태식이 아시죠? 걔가 H은행에서 일하거든요."
"어머, 그랬어?"
"다닌 지 꽤 됐어요. 올해로 3년 됐던가? 아무튼, 태식이랑 같이 작은 사업을 하나 했는데 그게 이번에 잘 풀려서 돈을 꽤 많이 벌었어요."
주식 투자라고 하면 걱정하실까 봐 두루뭉술하게 사업이라 말했고, 일부러 박태식과 H은행까지 언급했다.
원래 이 나이대 분들에겐 은행이 주는 신뢰감이 큰 법이니까.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어머니 표정이 아까보단 한결 풀어진 모습이다.
"그리고 올해 안에 이사도 할 거니까, 마음에 드는 곳 있으면 미리 말씀해주시고요."
"이사라니?"
"지금 집에서 20년도 넘게 살았잖아요. 이제 옮길 때도 됐죠."
"아니야, 나는 지금 집도 괜찮아."
나는 손사래를 치는 어머니의 손을 움켜쥐었다. 오랜 청소일로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고 갈라진, 그런 손이었다.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울컥한 감정을 억지로 참아내며 말을 잇는다.
"이제 돈은 아들이 벌 테니까, 어머니는 하고 싶었던 일만 하고 사세요."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셨다.
그 뒤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모른 척 운전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