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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한가로 반대매매를 먹기 전에 주식을 전부 던지고 빠질 것이냐. 아니면 협상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며 끝까지 버틸 것이냐.
여기서 우리의 선택은 후자, 속된 말로 '존버'하기로 했다.
북한이 협상에 합의한다는 내 기억을 끝까지 믿기로 한 것이다.
개장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병실에는 긴장감의 밀도가 높아진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반복했다. 나만의 긴장을 풀기 위한 습관이었다. 그러는 동안 박태식은 옆에서 미친 듯이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딸깍.
끝끝내 협상이 진전됐다는 소식 없이 9시가 됐다.
주말 동안 웅크리고 있던 주가는 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튀어나간다.
"어?"
그런데 주가의 방향이 예상했던 아래쪽이 아니다.
장 초반엔 세력이 장난질이라도 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남북경협주 쪽에 미친 듯이 돈이 몰리고 있었다.
'뭐지? 분명히 북한 관련해서 새로 들어온 소식은 없을 텐데.'
나는 당황해서 포털의 뉴스 속보 메뉴를 다 훑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북한과 협상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우혁아, 왜 주가가 오르는 거냐?"
"나도 모르지."
"거참. 이해가 안 되네."
이유가 뭐든 간에 주가가 오르면 된 거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러다 박태식이 말했다.
"이제 다 던지고 빠질 거지?"
"너는 빠지고 싶으면 빠져. 나는 더 버텨볼 생각이니까."
"뭐? 너 미쳤어?"
박태식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의미로 인상을 찌푸린다.
"잘 생각해봐. 아직 호재는 터지지도 않았는데 10%가 넘게 올랐어. 여기에 남북 합의까지 발표되면 어떻게 되겠냐?"
"합의고 나발이고, 어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고도 버틸 생각이 드냐? 너도 진짜 독한 놈이다."
"원래 독해야 돈을 버는 거야."
솔직히 북한이 합의한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버틸 생각을 한 거지, 내가 박태식이었으면 벌써 다 던지고도 남았다.
"아무튼, 오늘 주가가 오른 이유부터 알아보자. 그래야 다음 수를 둘 때 참고할 수 있을 테니까."
* * *
우리는 오전 내내 인터넷을 뒤졌다.
이번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 기사들까지 꼼꼼하게, 이 잡듯이 관련 정보를 살폈다.
그러다 박태식이 우연히 포털의 주식 토론방을 보게 됐는데, 거기 댓글에서 주가 상승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주가가 쭉쭉 올라가네. 다시 반등하는 건가.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죠.
-이미 남북경협주는 흐름 탔어. 오늘 전고점까지 단박에 간다. 꽉 잡아라.
-오늘 주가 왜 오르는 거예요? 뉴스만 보면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던데.
-전쟁이 나겠니?
-정은이 쫄보라서 절대 전쟁 못 합니다. 빨리 방산주 털고 남북경협주 타세요.
한국 투자자들은 북한이란 골칫덩어리에 이골이 나서, 이젠 어지간한 도발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경지가 돼 있었다.
그러니 이번 사태에도 전쟁이 터질 걱정을 하는 이는 극소수였고, 투자자 대부분은 이참에 반등을 받아먹으려고 남북경협주로 몰려든 것이다.
-미국 상전을 등에 업고 삽살개처럼 들까 불던 남조선 괴뢰 군부 깡패들에게 몸서리치는 징벌의 포화를 안길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오후에 들어서자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에서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메시지에는 전쟁을 암시하는 과격한 단어가 다수 포함돼 있었으나 시장의 영향은 미미했다.
이젠 투자자들도 알고 있었다.
북한의 으름장은 겁먹은 개가 짖어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 * *
"대, 대박! 대박 소식!"
시세를 모니터링하던 박태식이 펄쩍펄쩍 뛰면서 다가온다.
"봤어?"
"뭘 봤다는 거야?"
"대현상선 주가 좀 봐! 지금 난리 났어!"
대현상선.
덩치가 큰 대기업 계열사면서 금강산 관광사업권까지 있었기에, 우리가 집중해서 매수한 종목 중 하나였다.
"22%까지 올랐... 아니다. 또 오른다! 25%, 26%! 미쳤네! 주가가 계속 오르는데?"
대현상선 주가는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오르더니 상한가를 뚫어버렸다.
"우혁아, 얼른 다 던지자! 지금 팔면 30%를 먹는 거야!"
"야, 좀 기다려봐. 아직 협상 결과 안 나왔잖아."
"여기 이 우람하고도 아름다운 불기둥을 보고도 참으란 말이야? 난 못 해. 이제 던질 거야."
이날 박태식은 쥐고 있던 대현상선 주식 절반을 매도했다.
주식을 털어내자마자 녀석은 현자타임이라도 온 것처럼 평온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 미소는 바로 다음 날부터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게 된다.
[속보, 남북한 고위급 회담 극적 타결!]
[낮 12시, 우리 측은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 북은 준전시 상태 해제]
['북 리스크 해소' 증시 급반등... 코스닥 5% 폭등]
* * *
8월 25일 화요일.
전쟁 리스크가 사라지자 국내 주식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치솟았다.
당연히 이번 상승세의 중심에는 우리가 사들였던 남북경협주가 있었다.
남북경협주는 오늘만 평균 13%가 넘게 올랐고, 어제 상한가를 쳤던 대현상선도 7%나 추가로 오른 채 장이 마감됐다.
오늘 분위기만 보면 남북경협주는 앞으로도 쭉 오를 일만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더 욕심부리지 않고, 쥐고 있던 주식 전부를 장 마감 전에 처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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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매수금액 0
금일 매도금액 3,068,333,696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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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손익금액 846,513,496원
총 손익률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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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주식계좌가 30억 원을 넘겼다.
여기서 스탁론 15억 원을 털어버린다 해도 절반인 15억이라는 돈이 내 계좌에 남게 된다.
현금 15억 원.
내가 처음에 들고 있던 원금이 4천만 원이었으니, 무려 37배로 불어난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 여기서 은행 대출금을 일부 제해야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성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장이 마감되고 우리는 자축파티도 할 겸, 병원 근처의 한우구이 집으로 향했다.
박태식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고기를 집어 먹었는데,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말이 끊이질 않는다.
"내가 어제는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왜 멀쩡한 주식을 팔았지? 그것도 무려 절반이나!"
"쯧.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아오. 씨... 네 말 듣고 딱 오늘까지만 묵혔으면 돈이 얼마야?"
녀석은 아쉬움을 고기로 달랠 생각인 건지 한우를 서너 점씩 입에 쑤셔 넣는다.
"태식아, 그래서 얼마나 먹었냐?"
"나? 지금 두 접시 째 같은데."
"고기 말고. 이번 건으로 수익 얼마나 났냐고 물은 거다."
"4억 조금 넘을걸. 만약 어제 안 던졌으면 5억이 됐겠지."
내가 13억, 박태식이 4억. 둘이 합쳐서 17억 정도 수익을 낸 셈이다.
예전 같았으면 17억이라는 숫자에 입이 떡 벌어졌겠지만, 지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1800억을 해 먹고 재판 결과까지 주무를 수 있는 놈이다. 이 정도 돈으로 맞서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적당히 많은 수준을 넘어, 아예 돈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만큼의 압도적인 돈.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생각하던 바를 박태식에게 털어놓는다.
"앞으로도 투자할 곳이 있다면 어쩔래? 계속 투자할 생각 있어?"
"나야 끼워만 주면 땡큐지. 혹시..."
박태식은 괜히 주변을 한 번 쓱 둘러보고 목소릴 낮춘다.
"그새 무슨 꿈이라도 꾼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미리 준비를 해둬야겠다 싶어서. 전문적으로 투자할 거면 법인이 낫기도 하고."
"해외법인은 어때? 잘 알아보면 세금도 줄일 수 있고, 공매도나 파생상품 투자에도 유리할걸."
좋은 아이디어긴 했으나, 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분간은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건 자제할 생각이다."
"어째서? 네 능력을 파생상품에 쓰면 엄청난 수익이 날 텐데?"
"너, 주말에 어땠는지 그새 까먹은 거냐?"
주말이라는 말이 나오자 박태식의 얼굴이 단번에 흙빛으로 변한다. 북한 건으로 거의 폐인이 되기 직전까지 몰렸으니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우린 주말 동안 회담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론 어떻게 됐어?"
"이틀이나 딜레이 됐지."
"그러니까 이번은 운이 좋았던 거야. 만약, 월요일에 하한가라도 맞았으면 지금쯤 우리 계좌는 깡통이 됐을 거다."
내가 미래를 안다지만 그건 극히 파편적인 기억일 뿐이다.
날짜나 시간이 틀릴 수도 있고, 장소를 혼동할 수도 있으며, 최악은 아예 기억 자체가 착각인 경우였다.
그런 불확실한 정보에 의존해서 단기 투자를 반복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주식이나 파생이 아니면 앞으로는 어디에 투자할 생각이야?"
"생각해둔 건 많아. 가상화폐 쪽도 있고."
"가상화폐?"
박태식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서너 개씩 떠오른다. 내가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가상화폐는 이름처럼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화폐야. 실물이 없으니 거래가 간편하고, 가치 상승의 기대가 커서 투자 상품으로도 매력적이지."
"실물이 없다면 싸이클럽의 도토리 같은 건가?"
"거의 비슷해. 차이점이라면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고, 현금화가 가능하며, 보안이 철통이라는 것 정도."
"도토리보단 게임 화폐인 아덴 쪽에 더 가깝구나."
"그런 셈이지."
주식과 파생상품은 언제, 어느 종목이, 얼마만큼 오를지 알 수 없지만, 가상화폐는 달랐다.
미래에 가치가 미친 듯이 폭등한다는 것.
이 요소 하나만 알고 있어도 주식과 파생상품보다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했다.
"그... 도토리, 아니지 아덴이라고 했던가?"
"가상화폐."
"그래, 가상화폐. 그놈이 대충 어떤 느낌인 줄은 알겠어. 그런데 그걸로 어떻게 수익을 낸다는 거야?"
"주식이나 금처럼 가치가 오를 거다."
"에이, 사이버머니 가격이 올라 봤자 얼마나 오른다고 그래?"
나도 이 당시엔 가상화폐를 우습게 생각했었다. 실물이 없는 화폐는 단순한 데이터쪼가리일 뿐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묵혀두면 100배는 넘게 오를걸."
"말도 안 돼!"
"내가 대통령 열병식 참석 이야기를 했을 때도 똑같은 소릴 했었지. 그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럴 일은 없다고 했던가?"
"그건... 으음..."
참고로 오늘 오전 속보로 대통령이 중국군 열병식 행사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공식 발표됐다.
"이번에도 꼭 같이하자는 건 아니야. 못 믿겠으면 도와주기만 해."
"아니야, 믿을 게. 내가 한 번은 의심했어도 두 번째는 무조건 믿어야지. 진짜 진심으로 믿는다."
박태식은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믿는다는 말을 수차례 되뇐다.
"내가 뭐부터 도와주면 될까?"
"우선은 법인 설립부터 하자. 네가 아까 말했던 해외법인 쪽도 같이 알아봐 주면 좋고."
"오케이. 내일 바로 진행할 게."
"도중에 확인할 사항 있으면 연락해라."
나는 박태식의 어깨를 툭 친 뒤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벌써 가려고?"
"오늘 꼭 가봐야 할 데가 있어서."
잊지 않고 쇼핑백도 챙긴다. 그 안에는 오만원권 묶음이 뭉텅이로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