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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라니? 무슨 뜻이야?"
방금까지 헤벌쭉해서 폰을 보고 있던 박태식의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간다.
"말 그대로야. 이번은 반대로 매수하자."
"야. 신우혁. 네가 예지몽 같은 걸 꿨다고 해도 이번은 좀 아닌 것 같다. 리스크가 너무 커!"
박태식이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 주식 시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아닌가.
기껏 전쟁터를 빠져 나왔더니 다시 돌아가자고 한다면 누구든 저렇게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을 거다.
"너, 이번에 얼마나 먹었냐?"
"기존에 잃었던 거 다 메꾸고도 3천 정도 벌었지."
3천만 원.
절대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수백, 수천억이 오가는 주식 시장에선 한 줌이나 다름없는 돈이기도 했다.
"잘 생각해봐. 이번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에게 실탄이 많았다면 어떻게 됐겠어? 예를 들어 시드머니가 100억 정도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100억이 있었으면 레버리지 땡겨서 2, 300억은 벌었겠지."
"그러니까 너무 아쉽다는 거야. 우린 지금 엄청난 정보가 있음에도 고작 몇천, 몇억 정도의 짤짤이만 하고 끝냈잖아? 천하제일의 명검을 두부 자르는 데 쓰고 만 셈이라고."
나는 어깨동무했던 팔에 힘을 줘서 박태식 머리통을 가까이 끌어온다.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또 두부만 썰다가 끝날 거다."
"나도 기회가 있을 때 돈을 불려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 하지만 지금 시장 꼴을 한 번 보라니까."
박태식은 폰을 조작해서 주가 차트를 보여준다.
차트에는 국내 코스피지수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 선전 종합지수, 일본 닛케이, 호주 S&P까지 표시됐는데 전부 푸른색으로 도배돼 있었다.
"이런 데도 들어가고 싶냐?"
"이러니까 더 들어가야지. 탐욕에 팔고, 공포에 사라는 말 몰라? 유명한 격언이잖아."
박태식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숨을 토해낸다.
"휴... 네가 고집을 꺾으면 신우혁이 아니지. 그래서 정확히 뭘 어떻게 하려고?"
"간단해. 우리가 했던 짓을 정확히 반대로 할 생각이다."
"코스피 롱 포지션을 잡겠다는 거야?"
롱 포지션은 숏 포지션의 반대말로, 주가가 상승하길 기대하고 매수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번 투자 수익률을 보니 코스피보다는 방산주 쪽의 수익이 압도적으로 높더라."
"그렇긴 한데, 방산주를 다시 건드리기엔 주가가 너무 올랐어."
"이번은 방산주를 사는 게 아니야. 방산주가 오르는 동안 반대로 막대한 손실을 낸 주식을 사는 거지."
"막대한 손실이면... 남북경협주?"
남북경협주는 북한과 관계가 개선될 때 오르는 주식을 뜻한다.
주로 금강산 관광 관련 업체나 개성공단, 그리고 철도, 송전 관련 업체가 수혜주로 꼽힌다.
박태식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남북경협주를 찾아서 차트를 확인한다.
내 예상대로 남북경협주는 북한의 포격이 시작된 뒤로, 하락에 하락을 거듭하며 역대 최저치를 찍고 있었다.
"여긴 완전히 초상집인데? 고점 대비 60%도 넘게 빠진 종목이 수두룩해."
"그러니까 지금이 딱 들어갈 때라는 거지."
"도발을 멈춘다는 확신이 있으면 네 말이 맞긴 한데... 그것도 시기가 안 맞으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어."
"시기라면 예측할 방법이 있지."
나는 뉴스 속보 메뉴에 들어가서 어제 올라온 뉴스를 불러온다.
[북한의 최후통첩 "대북심리전 48시간 내 중지하라"]
뉴스가 어제 17시에 올라왔으니 북한이 지정한 최후통첩 시간은 토요일 17시가 된다.
"이때 언급한 최후통첩 시간은 우리보다 북한 쪽에 더 큰 부담이야. 이 시간까지 남북의 협의가 안 되면 북한은 도발이든 뭐든 추가 액션을 해야 자존심이 설 테니까."
"북한의 선택이 추가 도발이면 남북경협주는 끝장이잖아."
"미군의 전투기까지 개입한 이상, 북한은 그럴 만한 배짱이 없어."
전방 포사격은 군인 몇 명 죽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미군의 전투기는 북한 수뇌부를 직접 공격하고도 남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북한은 토요일 17시가 되기 전에 협상을 시도할 거야."
"토요일에 뉴스가 뜨면 월요일 주식 장이 열리자마자 남북경협주는 폭등이겠네."
"그러니 최소한 오늘, 금요일 장 마감 전까지는 매수를 끝내야지."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박태식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어휴,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네 덕분에 딴 돈이니까 잃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련다."
"잘 생각했어. 장 끝나기 전에 후딱 끝내자."
내가 다시 노트북 쪽으로 가려는 것을 박태식이 잡아 세운다.
"우혁아, 잠시만. 이왕 저질러 버릴 거. 각 잡고 제대로 한 번 해볼래?"
"뭘 하려고?"
"우리 계좌에 현금이 늘었잖아. 이러면 실탄을 더 챙길 수 있어."
* * *
박태식은 병실 밖으로 나가서 한참 동안 통화를 주고받았다.
말로는 돈을 더 구해오겠다고 했는데, 얼마를 빌려오려고 저렇게 열심히 통화하는 걸까?
밖에서 박태식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쯤 내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신우혁 고객님, 플래티넘 고객 전용 스탁론 대출이 실행됐습니다. 대출금액 1,500,000,000원]
"뭐야 이게? 15억?"
내가 문자를 잘못 봤나 싶어서 금액에 붙은 0의 개수를 다시 세본다. 정확히 15억 원이 맞았다.
주식계좌를 다시 확인해봤더니 기존에 7억2천만 원이 있던 주식계좌 잔고가 22억2천만 원으로 늘어 있었다.
"..."
입술이 바짝 말라온다. 몇억을 굴릴 때도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돈의 단위가 그 이상이 돼버렸다.
게다가 여기서 실제 내 소유의 돈은 5억이 고작 아닌가.
'이제 이 돈을 몽땅 하락장에 밀어 넣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로군.'
잠시 후 통화를 마친 박태식이 병실로 돌아왔다.
"계좌에 돈 들어온 거 확인했어?"
"어... 들어오긴 했는데, 이거 정상적으로 은행에서 빌린 게 맞는 거야?"
"당연하지. 스탁론이라고 주식계좌를 담보로 잡고 대출 낸 거야."
"나도 스탁론이 뭔 줄은 알지. 그런데 이건 액수가 너무 크잖아. 내가 알기론 한도가 3억 정도라고 하던데."
"그건 메이저 증권사만 그렇고, 캐피탈이나 저축은행 낀 업체는 한도가 고무줄이야. 방법만 알면 한도 증액시키는 건 일도 아니지."
어쩐지 박태식이 통화를 끝내고 들어오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더라니,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아, 참고로 스탁론은 주식계좌 잔고가 120% 이하로 내려가면 반대매매 먹으니까 진짜 조심해야 한다."
반대매매는 담보유지비율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주식을 강제로 매도하는 청산 시스템이다.
그날의 주식 가격이 얼마든 매도해버리기에, 반대매매를 당하면 원금 전액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담보의 120%면 잔고가 18억까지는 내려가도 괜찮다는 뜻이지? 의외로 널널하네."
"하한가 한 방 맞으면 절대 그런 생각 못 할걸."
한국 주식 시장에서 하한가는 ?30%다.
대형주는 하한가까지 떨어지는 일이 드물지만, 테마주는 큰 악재가 터지면 심심찮게 하한가를 보곤 했다.
"괜찮아. 거기까지 갈 일은 없을 테니까."
* * *
우리는 금요일 장 마감 직전까지 천천히 나눠서 주식을 매집했다.
투자 방향은 기존 방산주 매입 때와 흡사했다. 남북경협주에서 하락폭이 큰 종목 위주로 대여섯 종목을 나눠서 매수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이번은 투자금이 저번보다 컸기에 가능한 대형주를 우선해서 매수했다.
정신없이 바빴던 금요일이 가고, 토요일이 찾아왔다.
나와 박태식은 온종일 인터넷 창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면서 북한 관련 속보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북한이 통지했던 최후통첩 시간을 2시간 앞두고.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속보가 도착했다.
[긴급, 청와대 "오후 6시 판문점서 남북 고위급접촉"]
나와 박태식은 뉴스를 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말했잖아. 저것들, 주말 안에 무조건 합의한다니까."
"좋았어. 이제 월요일 되면 급등이다!"
이대로 북한과 협상이 끝나고 남북이 합의안을 발표하면 이번 사태는 깔끔하게 마무리될 거다.
벌써 머릿속에선 월요일 장이 열리면 펼쳐질 장밋빛 미래가 그려진다. 이미 상상 속의 나는 돈다발을 욕조에 풀어서 헤엄까지 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건지 하루가 흐르고, 일요일 아침이 될 때까지도 추가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어째서 아무런 발표도 없는 거야? 지금쯤이면 결과가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잖아."
"후... 낸들 아냐."
"혹시 결렬이라도 된 건 아니겠지?"
박태식은 계속 혼잣말을 중얼중얼하면서 병실을 돌아다닌다.
보다 못한 내가 한소릴 했다.
"좀 앉아라.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여기가 딱 막혀서 숨이 안 쉬어져서 그래. 진짜 이러다가 골로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박태식은 이번 건에 스탁론을 한도까지 끌어와서 9억을 투자했다.
내가 투자한 22억보단 적은 액수지만 녀석은 미래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나보다 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북한과 합의를 했던 건 확실히 기억나. 문제는 그게 정확히 언제 이뤄지냐는 건데.'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습관적으로 주식계좌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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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매입 2,221,820,200원
대현상선 ?60,921,500원(▼5.08%)
대현엘리베이터 ?5,755,300원(▼4.17%)
영재솔루텍 ?3,080,175(▼2.97%)
에머앤햄스 ?2,981,59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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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장 마감 직전까지의 하락으로 이미 1억 원에 가까운 돈이 증발했다.
지금처럼 북한이 시간만 질질 끌게 되면 남북경협주는 월요일에 폭락이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여기서 하한가까지 터지면 손실액은 약 7억4천만 원.
그땐 내 원금을 다 까먹고도 3억 원의 빚을 추가로 지게 된다.
'그 전에 협상 결과가 나오길 비는 수밖에 없나.'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속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나오라는 회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북한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악재들만 연이어 보도된다.
[속보, 북한군 전선 지역 사격준비 포병 2배 증가]
[속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북한의 접경지역으로 이동하는 징후 포착]
[속보, 북 잠수함 전력 70%가 기지 이탈 후 잠적한 것으로 보고돼]
[접경지 서해5도, 강원도 동부 주민 1만5천 명 긴급 대피]
호재는 없고 악재만 가득한 상황.
피가 마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이날 처음으로 알게 됐다.
"후..."
우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애꿎은 담배만 연달아 태워댔다. 둘이서 이틀 동안 못 해도 한 보루는 넘게 피운 것 같다.
그러다 흡연실을 가득 메운 담배 연기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벌써 월요일 아침이네."
"그러게."
"회사는 안 가봐도 되냐? 너 금요일도 쉬었잖아."
"지금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녀석의 말이 맞다. 오늘은 월요일, 곧 주식 장이 열릴 거다.
우린 그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한가로 반대매매를 먹기 전에 주식을 전부 던지고 빠질 것이냐. 아니면 협상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며 끝까지 버틸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