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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로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면 단기간이지만 주식 시장은 요동치게 된다.
이 때문에 주식쟁이들 사이에선 북한이 도발하면 '정은이가 숏을 쳤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주가는 내려간다. 이걸로 내가 이득을 볼 방법이라면... 진짜 숏이라도 쳐야 하나?'
숏은 주식 매도, 하락장에 베팅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숏 투자 전략은 풋 옵션, 공매도가 있으나 이건 전문 투자자의 영역이고, 나 같은 일반 투자자는 코스피 인버스 상품을 사면 된다.
'전쟁이 안 나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어. 확실한 수익을 내려면 정확한 하락 타이밍을 알아야 해.'
희미했던 옛 기억을 억지로 끌어올려서 내 나름의 타임라인을 세워본다.
1. 북한군이 DMZ에 목함지뢰를 설치해서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음.
2. 정부는 대북확성기 방송으로 대응.
3. 북한이 확성기를 향해 포격. 한국군의 대응 사격과 전투기 배치, 북한의 으름장으로 전쟁 분위기 고조.
4. 미군 전투태세.
5. 북한 측 꼬리 내리고 양측 합의.
여기서 현재까지 진행된 사건은 1번과 2번이며, 이미 주식 시장에 반영까지 끝났을 거다.
그렇다면 내가 노릴 타이밍은 다음으로 벌어질 3번 사건.
'북한군이 확성기에 포격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해.'
생각이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갑자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신우혁!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깜빡했다. 나, 지금 박태식과 통화 중이었지.
"어? 어어. 듣고 있지."
-듣긴 개뿔. 보나 마나 딴짓하고 있었구만. 뭐 밖에 예쁜 간호사라도 지나갔어?
"내가 넌 줄 아냐."
폰 너머에서 박태식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어쨌거나 오늘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낮에 차트 본다고 농땡이 피웠더니. 쌓인 일이 산더미야. 산더미.
"태식아, 지금 일이 중요한 게 아니야."
-맞아. 일이 중요한 건 아니지. 그보다 폭격 맞은 내 주식이 몇십 배는 더 중요해.
"그거... 내 생각엔 폭격을 더 맞을 거 같은데."
-자꾸 부정 타는 소리 할래?
부정 타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폭격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해준다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병원으로 와라. 진짜 한시가 급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인생이 걸린 문제야."
이 말이 끝나는 순간, 박태식의 목소리가 바뀐다.
-알았어. 거기서 딱 기다려.
* * *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박태식이 들어온다.
옷차림은 엉망인 데다가 숨까지 헐떡거리는 걸 보니, 전화를 끊자마자 달려왔나 보다.
"어, 왔냐."
내가 느긋하게 손을 흔들어주자 박태식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된다.
"뭐야? 왜 그리 멀쩡해?"
"멀쩡하면 안 되냐?"
"아니, 한시가 급하다고 하길래 무슨 큰 수술이라도 들어가는 줄 알았지."
내가 오해를 살 만한 단어를 쓴 건 맞다. 그래야 녀석이 빨리빨리 튀어올 테니까.
"내가 말했잖아. 살짝 뇌진탕 증세만 있다고."
"그럼 아까 했던 말은 뭐였어?"
"아, 그거. 니코틴이 떨어져서 그랬지. 편의점에 내려갔더니 병원이라고 담배를 안 팔지 뭐냐."
"신우혁, 죽인다..."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걸 보니, 진짜 한 대 칠 기세다.
"야, 나 환자다."
"어차피 입원해 있는 거, 다른 곳도 같이 치료하면 되겠네. 어디가 좋냐? 가슴? 복부? 아니면 무난하게 옆구리?"
"장난치지 말고 앉아 봐. 인생이 걸렸다는 말은 진짜니까."
내가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자, 녀석도 일단은 주먹을 거두고 의자를 끌어온다.
"너, 주식에는 얼마 넣었냐?"
"갑자기 그걸 왜 물어?"
"내가 말했던 인생에는 네 인생도 포함된 거니까, 잠자코 대답이나 해."
"그게..."
녀석은 한참이나 우물우물하다가 손가락 4개를 편다.
"4억이나 넣었어? 돈이 어디서 나서?"
"처음엔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물타기 하다 보니까 돈이 모자라서... 대출을 좀 크게 냈다."
박태식은 H은행 창구에서 일한다. 그러니 돈이 필요할 때마다 쉽게 대출을 낼 수 있었을 거다.
그나저나 주식으로 돈을 많이 잃었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도 들었다만, 이렇게 큰돈을 넣었을 줄이야.
"내일 장 열리자마자 전부 털어."
"안 돼. 이미 마이너스 30%가 넘는데 이걸 어떻게 빼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버텨 볼란다."
"그러다 마이너스 60%까지 맞는다."
박태식은 눈을 껌뻑거리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너, 갑자기 왜 이래? 평소에는 주식에 관심도 없던 놈이."
"고급 정보를 하나 받았어. 북한이 이번에 도발한 이유에 관련된 썰이야."
"에이, 국정원도 모르는 북쪽 놈들 생각을 네가 어떻게 아냐?"
녀석은 내가 장난친다고 생각한 건지, 피식거리며 손을 내젓는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정색해서 쳐다보고 있자 그제야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도발한 이유가 뭐래?"
"9월에 예정된 중국의 전승절 행사 때문이라더라."
"전승절?"
"그래, 거기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거든."
박태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소릴 높인다.
"말도 안 돼! 한국과 중국은 전쟁까지 치렀던 나라야. 그런데 대통령이 가서 들러리를 서 준다고?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절대."
"진짜면 어쩔래?"
"우길 걸 좀 우겨라.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해는 한다. 나도 이때 당시엔 한국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이래서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소릴 못 하는 거야. 말을 해줘도 안 믿을 게 뻔하니까.'
박태식은 그 뒤로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지 않을 이유를 6가지나 더 대며 열을 올렸다.
그러다 제풀에 지쳤는지 화제를 다음 단계로 넘긴다.
"좋아. 백번 양보해서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한다고 쳐."
"한다고 치는 게 아니라 참석한다니까."
단순히 참석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석 옆자리에 앉아서 열병식까지 다 보고 올 거다.
"내 말은 그거랑 북한이 도발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냐는 거야."
"관계가 왜 없어?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면 북한은 고립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앞으로도 기를 쓰고 변수를 만들려 할걸."
"무슨 변수? 전쟁?"
"전쟁까진 아니겠지만, 음... 최소한 미군은 움직이게 만들겠지. 그래야 정부에서 친중 정책을 꺼내기 힘들어질 테니까."
실제 사건에 내 추측을 살짝 섞어서 그럴싸한 가설을 만들어 냈다. 이쪽이 내가 회귀자라고 말해주는 것보단 믿기 쉬울 거다.
"..."
박태식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아까보단 현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듯했다.
"못 믿겠으면 그냥 도와주기나 해."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이번 기회에 나도 투자를 좀 해볼까 생각 중이라서."
박태식은 내가 원하는 바를 대번에 파악하고 묻는다.
"얼마가 필요한데?"
"다다익선이지. 네가 끌어 올 수 있는 최대한도로 부탁해."
* * *
다음 날 아침.
은행 전산이 열리는 시간과 거의 동시에 대출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신우혁 고객님, 우대 금리 신용대출이 실행됐습니다. 대출금액 : 120,000,000원]
[신우혁 고객님, VIP 고객 전용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 실행됐습니다. 대출금액 : 82,000,000원]
[신우혁 고객님의 파워카 차량 담보대출이 실행됐습니다. 대출금액 : 34,000,000원]
신용대출 1억2천만 원.
마이너스 통장 8천2백만 원.
차량 담보대출 3천4백만 원.
은행 대출만 2억3600만 원. 여기에 내가 모아뒀던 적금 4천만 원을 더해서 총 2억7600만 원의 실탄이 모였다.
비록 통장에 찍힌 숫자일 뿐이지만 거기서 전해지는 긴장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건 절대 질 수 없는 베팅이야. 내가 보고 온 미래를 믿자.'
장전을 마친 실탄은 전부 주식 시장으로 향했다.
내 원래 계획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에 올인이었다. 그것도 2배의 돈을 굴리는 내는 속칭 '곱버스'에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시기에는 아직 곱버스 상품이 없었고, 인버스 상품은 매매차익을 배당소득으로 판단하기에 세금을 무려 15.4%나 물어야 했다.
높은 세금 부담과 레버리지 없는 상품의 아쉬움.
결국, 나는 방향을 살짝 선회해서 주가 상승에도 절반을 베팅하기로 했다.
북한이 액션을 취하면 주가는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일부 섹터의 주식은 반대로 상승하게 된다.
그 일부란 바로 방위산업 주식이었다.
방산주는 이미 목함지뢰 사건 때 바짝 폭등했다가 다시 주저앉은 상태였다. 나는 이때 등락 폭이 높았던 주식을 순서대로 다섯 종목만 골라 담았다.
"오케이, 좋았어."
반나절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젠 때가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잠시 눈이라도 부칠 생각으로 침대에 누우려는데 아까부터 들리는 소리가 신경 쓰여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달달달달달달.
저 소리는 박태식의 다리 떠는소리였다.
"회사는 안 가봐도 되냐?"
내가 묻자, 박태식은 시선을 그대로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냥 반차 내버렸다. 회사에 앉아 있는데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히더라고."
"여기 와 있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여기 있는 게 덜 불안해."
박태식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금을 넣었다.
물론 나처럼 극단적인 몰빵은 아니고,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투자했다고 한다.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게는 안 보이지만.
"어제는 내 말을 안 믿는다고 하더니. 왜 하룻밤 사이에 생각이 바뀐 거냐?"
"네가 정색을 하고 달려드니까 나도 혹시 한 거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잖아."
"주식 시장에선 친구 따라 한강 간다는 말이 더 유명하지."
"불안하니까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말아줄래?"
녀석은 다시 조그만 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나저나 코스피가 벌써 3%가 넘게 내려갔어. 아직 북한에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러게."
코스피 지수가 내려가서 인버스에선 수익이 났지만, 동시에 방산주도 살짝 내려가서 큰 이득은 아니다.
"우혁아. 너는 안 쫄리냐?"
"뭐가?"
"이대로 북한이 아무것도 안 하고 코스피가 쭉 반등해버리면... 우리는 쫄딱 망하는 거야."
"별수 있냐. 그땐 같이 손잡고 한강 수온 체크하러 가야지."
"아씨, 진짜.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반응이 바로바로 나오니까 놀리는 재미가 있다.
평소였다면 여기서 더 장난치고 낄낄거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다 진짜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건 아니겠지.'
이번 사태에 북한이 2차 도발을 한다는 내 기억은 확실했다. 하지만 미래가 바뀌기라도 했다면?
얕게 깔려있던 불안감이 점점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국내 속보를 살피는 것만으로는 불안해서 괜히 외신 기사까지 쭉 둘러본다.
그러길 10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갑자기 박태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야! 야! 우혁아! 빠진다! 빠져!"
녀석은 내 앞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민다.
코스피 지수가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내려가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수직으로 처박히는 중이다.
'왔구나.'
TV 뉴스 채널에선 이미 빨간색 자막으로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북, DMZ서 포격 도발... 확성기 겨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