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출소 후 코인 재벌-3화 (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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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왔다. 그것도 내가 1800억 횡령 누명을 쓰고 구속되기 딱 1년 전의 시점으로 회귀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생각해보라. 화물차에 치이고 눈을 떴더니 갑자기 8년 전이라는 말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웃기게도 나란 놈은 너무 쉽게 현 상황을 받아들이더라.

이게 한번 겪었던 과거이기도 했고, 내가 후회했던 일들을 다잡을 기회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환희의 전율이 일 정도였다.

'이건 기회다. 신이 내 억울함을 알고 내려준 두 번째 기회.'

나는 응급실에서 모든 처치를 받은 뒤, 일반 병실로 자릴 옮겼다.

병실은 공간이 넓진 않지만 침대와 TV가 달린 1인실이었다.

입원비가 부담이긴 하지만 지금의 난 조용히 생각할 공간이 필요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삑.

병실이 너무 적적해서 TV를 틀었더니 마침 올림픽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2022년 동계 올림픽이 베이징으로 확정됐습니다. 이로써 한국의 평창, 일본의 도쿄, 중국의 베이징, 3개의 올림픽 대회가 연속으로...

평창, 도쿄, 베이징.

세 번의 올림픽을 다 겪은 나로선 묘한 기분이 드는 뉴스였다.

특히 일본 총리가 도쿄 올림픽에 관한 장밋빛 전망을 읊고 있을 땐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땐 누구도 예상 못 했었지. 도쿄 올림픽이 전염병 때문에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1년이나 뒤에 무관중으로 치러질 줄은...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도 여러 문제가 끊이질 않았었고.'

만약 현시점에서 내가 이런 사실을 말한다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미친놈 취급이나 받고 말겠지. 그만큼 미래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는 게 좋겠어. 그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잠시 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서 옷가지와 소지품을 가져다준다.

들은 바로는 내가 회사 사무실에서 갑자기 넘어지고 구급차에 실려 왔다던데, 그때 입고 있던 옷인 것 같다.

옷을 정리해서 옷장에 넣던 도중, 주머니에서 지갑이 툭 떨어진다.

"음?"

누가 봐도 알아볼 법한 샤널 사의 명품 지갑이다. 저 지갑을 봤더니 반사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하... 미치겠네."

이 샤널 지갑은 홍콩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백 부장이 선물로 준 짝퉁이다.

회사에서 챙겨준 출장비가 남아서 사주는 거라고 했는데, 그 당시엔 아무 생각도 없이 덥썩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철저히 계산된 함정인 줄도 모르고.

나는 휴대폰의 달력 앱을 불러왔다. 앱에는 회사 측 거래처와 출장지가 몽땅 기록돼 있었다.

[마카오 ? 인천 6시 백부장 픽업]

[싱가포르 ? 크루즈선 - 선상 파티장 바이어 미팅]

[정선 ? 리조트 예약 필수]

최근에 다녀온 출장지의 목록만 봐도 두통이 밀려온다. 하나 같이 구린내가 풀풀 풍기는 곳들 아닌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다음으로 잡힌 출장지는 무려 라스베이거스였다.

'횡령 사건과 과소비, 도박장 출입은 바늘과 실 같은 사이지.'

횡령범은 이미 이 시기부터 내게 누명을 씌우려고 차근차근 빌드업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의 나는 그런 검은 속내도 모르고 해외 출장을 나간다고 마냥 좋아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분해서 이가 갈릴 지경이다.

'당장 퇴사해버려?'

나를 횡령범으로 만드는 작업이 끝났다면 지금 타이밍의 퇴사는 딱 돈을 들고 도망가는 그림이 된다.

재수 없으면 내년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구속될 수 있다.

'무조건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해. 증거를 모을 때도 내부에서 모으는 편이 유리할 테니까.'

그 이후에도 어떻게 횡령범 혐의를 벗어날까로 머릴 쥐어짜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병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혁아! 괜찮은 거니?"

병실로 들어온 이를 보고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재판 결과를 듣고 충격으로 돌아가셨던 우리 어머니, 다신 못 볼 줄 알았던 어머니가 내 앞에 서 계셨다.

"어, 어머니!"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나 같은 멍청한 놈 때문에, 평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다시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펑펑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감동의 재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얘, 잠깐만."

어머니는 달라붙은 나를 강제로 떼어내고서 얼굴을 살핀다.

"어디 상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많이 안 좋대?"

"예?"

아차 싶어서 얼른 환자복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어머니를 7년 만에 만났지만 지금의 어머니, 그러니까 2015년 당시의 어머니는 매주 나를 봐오셨을 거다.

그런데 자식 놈이 갑자기 끌어안고 오열을 해대니 당황스러우셨겠지.

"그냥 간단한 뇌진탕이래요."

"휴, 천만다행이네. 네가 갑자기 울길래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잖니."

"하하..."

"그래도 아들이 오랜만에 안아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어머니를 다시 껴안는다.

"앞으로도 자주 안아 드릴게요."

"얘도 참, 저리 가. 징그러워."

어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을 때, 나는 구속 집행정지를 받지 못해서 장례식도 참석할 수 없었다.

세상에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때 당시엔 정말 목이라도 메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어머니. 이번 생은 아들이 성공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 꼭 입니다. 꼭.'

* * *

어머니는 병원 밥은 맛이 없다며 저녁밥까지 챙겨주고 떠나셨다.

밤늦게까지 옆에 있어 주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 미안해하시더라.

"일이라..."

어머니는 10년이 넘도록 모텔 청소 일을 하셨다.

이 당시에도 내가 몇 번이나 그만두라고 했었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일을 나가시곤 했다.

'이때도 고혈압을 앓고 계셨었지.'

나는 병원 편의점에서 사 온 수첩을 펴들고 그 위로 글을 끄적거린다.

[어머니가 편히 지낼 방법을 찾을 것]

그러다 줄을 쫙 그어버리고는 아래에 문장을 추가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드려도 누명을 벗지 못하면 어머니는 또 쓰러진다]

그렇다면 누명을 벗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직은 명확한 계획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계획이 없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돈이 필요해.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탐정을 고용하고 싶어도,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할 때도, 심지어 증인을 세울 때도 돈이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돈이라는 일차적인 목표가 세워지니 머릿속이 한결 정리된 느낌이다.

나는 거침없이 수첩에 글을 써나간다.

[미래 정보가 있을 때 돈을 크게 버는 방법은 세 가지]

[로또] [가상화폐] [주식]

먼저 로또에 'X'를 표시한다.

로또는 가장 쉽고 빠른 돈벌이지만 미리 번호를 외워오지 않는 이상, 당첨될 방법이 없었다.

다음으로 가상화폐 위로 볼펜이 움직인다.

'지금 가상화폐가 어떤 상태더라?'

한국에서 가상화폐 투자 붐이 일기 시작한 시기는 2017년 후반기부터다.

지금은 그보다 2년이나 앞선 2015년이니 가상화폐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흔치 않을 거다.

톡.

스마트폰을 켜서 가상화폐를 검색했다. 일단 국내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자체가 없었고, 거래하려면 무조건 해외 거래소로 접속해야 했다.

"어디 보자. 오늘 기준으로 비트코인의 가격이 262달러면... 코인 하나에 30만 원밖에 안 해?"

비트코인은 미래에 개당 8000만 원을 훌쩍 넘길 정도로 폭등하게 된다.

이 말은 즉, 오늘 30만 원에 비트코인을 잔뜩 사뒀다가 고점에 팔면 무려 266배의 수익을 내게 된다.

'비트코인을 천만 원만 사둬도 26억, 오천만 원을 사두면 133억이 되는 건가.'

오늘 투자하면 100억이 넘는 돈이 된다는 생각에 눈이 크게 떠졌으나, 내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비트코인이 급등하는 시기는 2018년 즈음인데, 나는 당장 내년이면 1800억 횡령범으로 몰려서 감옥에 가 있을 거다.

비트코인 급등을 기다리기엔 내게 시간이 없었다.

단기간에 먹고 빠질 생각도 해봤지만 최근엔 오히려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추세였다.

'정확한 반등 시기를 모르면 비트코인으로 돈을 버는 건 쉽지 않아.'

비트코인 위에도 'X'를 표시한다. 이젠 남은 돈벌이 수단이 주식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식으로 돈을 벌자니 마땅한 소스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시기의 나는 회사에 다니느라 뉴스를 거의 안 보고 살았던 탓이다.

"휴... 쉬운 일이 없네."

그래도 뭔가 투자할 건수를 떠올려보려고 열심히 머릴 굴려본다.

그렇게 시간이 십여 분 정도 흘렀을 때쯤, 탁자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힘껏 몸을 떨어댄다.

지잉. 지잉. 지잉.

발신자는 박태식.

나는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짜식아. 다쳐서 입원했다며? 어머니께 들었다. 무슨 일 있으면 이 형님에게 먼저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평소처럼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다. 진하게 밀려오는 반가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형님은 무슨 형님이야. 내가 생일도 두 달이나 빠른 거 모르냐?"

-또, 또 그 레퍼토리.

"알면 너도 패턴 좀 바꿔봐라."

수화기 너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넘어온다.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뒤통수 깨졌다더니 좀 어때?

"별거 아냐. 살짝 뇌진탕 증세가 있어서 좀 쉬면 된다더라."

-그래, 피 안 났으면 괜찮은 거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오기나 해. 오랜만에 한잔하자."

지금껏 농담 같은 대화만 오가다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어... 음...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서 좀 힘들 것 같고, 주말쯤에나 보자.

"무슨 일이기에 네가 술을 마다하냐?"

이어지는 깊은 한숨.

한 박자 뒤에 박태식의 말이 이어진다.

-내가 최근에 주식을 좀 많이 넣었거든. 그런데 씁, 망할 북쪽 돼지 새끼 때문에 아주 난리가 났다.

"북쪽 돼지면 북한?"

-맞아, 그 돼지 새끼 때문에 주식 전체가 파란 불이야. 하... 지금 너무 빠져서 손절도 못 하고 미칠 지경이다.

이맘때쯤에 북한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일 거다.

비무장 지대를 수색하던 부사관 2명이 목함지뢰에 중상을 입은 사건.

당시에 정부는 대응으로 초대형 확성기를 설치해서 북으로 방송했는데, 북한이 보복으로 재차 도발하면서 남북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북한에서 저러는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정부에서 확성기를 튼 이후로 북한에서 진짜 개거품을 물더라니까.

내가 이 시기에 신문을 보지 않았어도 확성기 사건은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 측이 확성기에 과잉 대응했다가, 그 후엔 미군까지 전투태세에 돌입하면서 황급히 꼬릴 내리게 된다.

'어? 이거?'

이번 북한 사태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다.

그렇다면 이걸 이용해서 돈을 벌 방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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