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에필로그
(207/210)
207화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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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화 에필로그
2023.04.28.
동녘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
왕도에 사는 평범한 시민, 자이안 알코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자이안은 단단히 얼어 있던 의식이 조금씩 녹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끝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감각을 되돌리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본다.
“시간이…….”
잠에서 깨어난 자이안이 잠긴 목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새벽과 아침에 걸쳐 있는 희푸른 빛이다.
자이안은 단정한 자세로 침대에서 내려오고는 가볍게 몸을 늘리며 뭉쳐진 근육을 풀었다.
부엌에서 통통통, 식칼이 도마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식욕을 돋우는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자이안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간소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마계에서 돌아온 뒤로 9년. 자이안은 29세의 청년이 되었다.
마물과 마족의 습격으로 일리움 왕국이 멸망한 뒤, 그 유지를 이어 건국된 알레프 왕국. 왕도 레프이온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거주구, 평범한 가정집이 자이안의 거처였다.
“유리아, 이렇게 매번 아침마다 챙겨주셔서 고마…….”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몸가짐을 정리한 뒤 방을 나선 자이안이,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에게 인사를 건네다가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보글보글 끓는 솥 앞에 서서 음식을 맛보고 있는 이는 자이안의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벌써 일어났냐? 아직 해도 제대로 안 떴구만.”
“……유리아는 어디 가고 왜 삼촌이 여기 계십니까?”
프레이가 슬쩍 고개를 돌려 심드렁한 시선을 향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귀여운 디자인의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
이제 50대 중반이 꺾인,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 그러나 그의 외모는 과거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유리아 걔는 한동안 웨코스에 가 있을 거랬잖아. 벌써 까먹었냐?”
“아, 그랬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삼촌이 왜 제 집에서 요리를 하고 계세요?”
“여기가 네 집이냐? 우리 모두의 집이지.”
그럴듯한 말로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는 프레이를 빤히 바라보며, 자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삼촌 또 쫓겨났어요?”
“뭐, 인마!”
국자를 탁, 내려놓은 프레이가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쫓겨나다니, 말을 해도 꼭! 쫓겨난 게 아니라 의견 충돌 때문에 내가 제 발로 나온 거야!”
과하게 역정을 내는 꼴을 보니 정말로 쫓겨난 모양이다.
“내 얘기는 신경 쓸 거 없고. 자이안, 이거 봐라. 내가 직접 빚은 벌꿀주다.”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프레이가 식탁 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고는 히죽 웃으며 자랑했다.
자이안은 프레이가 아침 댓바람부터 자기 집에서 쫓겨나 여기서 궁상맞게 이러고 있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술병이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나도 잘 몰랐는데, 내가 술을 빚는 거에 의외로 재능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 한 번 맛이라도 봐라.”
선반에서 술잔을 하나 집어 든 프레이가 자연스럽게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 잔을 닦고는 술을 조금 따랐다.
훅, 하고 끼쳐오는 달콤한 향에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작게 탄성을 뱉었다. 잔에 담긴 벌꿀주는 황금을 녹여낸 듯 밝은 황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맛있네요.”
“그치? 걔도 이걸 한 모금만 먹어 봤으면 나한테 그런 소릴 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여기서 궁상맞게 이러고 있을 일도 없었을 거고.”
“스스로가 궁상맞게 굴고 있다는 건 아시는군요. 고집부리지 말고 돌아가서 바로 머리 박고 사과하세요. 더 늦기 전에.”
“끄응…… 고민 좀 해 보고.”
이마를 짚으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지은 프레이가 근심을 털어내려는 듯 벌꿀주를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언제 침통했냐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안은 어린아이처럼 감정이 휙휙 바뀌는 프레이를 보며 쓴웃음을 터뜨렸다.
평화로운 어느 아침의 일상이었다.
* * *
9년.
많은 것이 변하는 시간이다. 마계로부터 돌아온 자이안 일행에게도 물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스가 죽었다.
병상에 누워 그들의 귀환을 기다리던 신스는 마지막으로 자이안의 얼굴을 보고는 편안히 숨을 거뒀다. 자이안은 스승의 상태도 알아차리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결코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인연의 끝은 이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녀의 죽음을 무의미하지 않게 하고자 했다.
알레프 저택이 있던 자리에 신스의 무덤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자리는 왕가의 손에 엄중히 관리되고 있다.
일리움 왕국이 멸망하고 알레프 왕국이 건국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왕조가 바뀌고 국명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부의 위협은 물론이고, 내부로부터도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혔다.
자칫 거대한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불씨를 꺼트린 이는 페르지오 알레프 백작과 바란드 알레프였다.
물론 자이안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력에 비하면 그저 아주 살짝 등을 밀어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애초에 자이안 역시도 알레프 왕국 반대파였다. 정확히는, 이런 식의 급진적인 건국은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란드는 왕의 그릇을 가졌으나 너무 어렸고, 나라가 건국되면 필연적으로 섭정을 맡게 될 백작의 정치적 역량도 신뢰할 수 없었다.
자이안은 백작이 권력욕에 취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어느 깊은 밤 그를 불러, 단둘이 술잔을 나누며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는 시간을 가졌다.
만약 그가 자신의 예상대로 권력욕에 타락한 것이 맞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칠 각오까지 하며.
“그렇게 의심할 수도 있겠지. 믿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말뿐인 신뢰만큼 가볍고 공허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그저 결과뿐이다.”
그리 말하는 백작은 어딘가 많은 것을 내려놓은 듯 초연한 표정이었다.
“만약 나나 바란드가 네가 보기에 잘못된 길로 향하는 것 같다면, 가차 없이 우리를 베어라. 자이안 네게는 그럴 힘도 있고, 그럴 자격도 있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고, 결코 원망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마.”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목숨을 천칭에 거는 그 태도에, 자이안은 우선 한 발 물러나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옳은 것처럼 보였다.
백작은 마치 숨어있던 잠재력이 깨어난 듯 뛰어난 정치적 역량으로 섭정의 자리에서 국정을 운영했고, 이제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른 바란드 역시 날카로운 통찰력과 판단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왕으로서 책무를 짊어질 날을 앞당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프레이의 폭탄선언이 터지기도 했다. 지금 몸이 아바타가 아니라 진짜 자신의 몸이며, 그 때문에 평범한 수단으로는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됐음을 어렵게 밝힌 것이다.
안 그래도 급변하는 정세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던 자이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펜던트가 정상이기라도 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봤을 텐데, 설상가상으로 펜던트는 크게 파손된 상태였다.
소환을 비롯한 모든 기능이 완전히 먹통이 된 상태. 아르스를 부르거나 그녀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으니 언제 최소한의 기능을 할 만큼 고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어차피 지구엔 별로 미련도 없는데 뭘. 남은 인생은 그냥 여기 눌러앉아 살란다.”
충격을 받은 자이안과 달리 프레이는 이미 현실을 받아들인 듯 태평한 태도였다.
프레이는 다른 일행들과도 친하고 자이안의 세계에도 익숙한 터라 금세 현지인인 양 생활에 녹아들었다. 호들갑을 떨며 걱정한 자이안이 허탈해질 정도였다.
유리아와 소아레스는 알레프 왕국의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듯하자 아예 왕도에 눌러앉았다. 지금은 유리아와 자이안이, 소아레스와 프레이가 각각 반쯤 동거에 가까운 상태다.
그렇다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인가 하면 그것도 좀 애매했다. 잘 모르는 타인에게 서로 그런 관계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부정을 하지는 않지만, 유리아도 자이안도 실제로는 조금 다른 관계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서로의 온기를 겹치기도 하지만, 이성애와는 다른,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였다.
소아레스와 프레이는 그보다는 좀 더 명확한 관계였다. 프레이는 소아레스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도 될 여성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성애를 느끼지는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고, 소아레스 역시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프레이는 이를 강한 각성자가 겪게 되는 정신적 승화와 비슷한 과정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별다른 근거는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자이안은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그의 추측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각성자인 그들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 애매한 관계라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명확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자이안 일행은 아직도 각성자였다.
자이안이 마계에서 돌아오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균열. 이를 통해 마계를 재탄생시키고도 남은 대량의 순수 MP가 자이안의 세계로 쏟아져 들어왔다.
찬탈자의 그것과는 달리 세계를 침식하고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힘이 아니라, 생명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힘이 말이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소모되어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자이안 일행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게 프레이의 전망이었다.
케이는 한곳에 머무르는 일 없이 세계 곳곳을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의 말로는 별의 화신에게는 자연의 균형을 다스릴 의무가 있다고 한다.
케이는 현재 유일한 별의 화신이고. 의무를 저버려도 세계가 멸망하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자신이 의무를 이행할수록 세계가 더욱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몇 달에 한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본신으로 찾아오는 케이 덕분에 알레프 왕국은 알게 모르게 주변 나라들에 용의 나라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프레이 오빠! 오빠 또 여기로 도망쳤지! 내가 못 찾을 줄 알아?!”
현관문이 벌컥 열리며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식사를 모두 마친 뒤, 뒷정리를 잠시 미루고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벌꿀주를 마시던 프레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절박한 눈빛으로 자이안을 돌아보며 도움을 구걸했다.
“그러니까 제가 더 늦기 전에 가서 머리 박고 사과하랬잖아요.”
자이안은 냉정하게 그의 애원을 떨쳐냈다. 도망칠 길이 없음을 깨닫고 프레이가 좌절하며 고개를 푹 숙인 사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감정이 잔뜩 실린 발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어린 여자아이였다.
키는 자이안의 명치 즈음에 정수리가 겨우 닿을 정도. 자라나면 얼마나 미인이 될지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또렷한 이목구비에, 한 갈래로 모아 묶은 머리카락은 은빛인 듯도, 잿빛인 듯도 보이는 기묘한 색이다.
훤히 드러난 귀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끝부분이 마치 화살촉처럼 뾰족했다. 인간이 아니라 엘프라는 숨길 수 없는 증거다.
아이가 자이안과 프레이를 찾아온 것은 6년 전. 그때에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와. 너 정말 자이안이니? 세상에, 진짜 많이 변했다.”
“누구…… 잠깐, 엘프?”
“아하하. 전혀 못 알아보겠지? 이해해. 나도 이 모습이 된 걸 깨닫고 깜짝 놀랐는걸.”
마침 오랜만에 자이안의 집에 모두 모여 가벼운 연회를 벌이고 있던 그들에게, 아이는 믿을 수 없는 말을 꺼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야. 나이아 알코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자신의 혼이 윤회하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겨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하게 된 것 같다고, 자신을 나이아라 밝힌 아이는 태연하게도 설명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신과 자이안만이 아는 일, 자신과 프레이만이 아는 일을 몇 가지 얘기하자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저게 정말 환생한 나이아인지, 아니면 어떤 연유로 나이아의 기억을 가지게 된 생판 타인인지는 솔직히 판단이 안 된다.”
프레이는 그렇게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도.
“정말로 나이아가 환생해서 돌아온 거라고 믿는 편이, 훨씬 멋지지 않겠냐?”
누구보다도 먼저 나이아의 귀환을 받아들였다.
“너어는 진짜!”
성큼성큼 부엌을 가로지른 어린 나이아가 짜악, 프레이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프레이는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참았다.
“동생이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서 고생하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망나니처럼 술이나 처먹고 있고! 그러고도 오빠야? 이럴 거면 오빠 딱지 떼!”
“아니…… 네가 난 도와줄 일 없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구석에 안 보이게 처박혀 있으라며.”
“방해 안 되게 처박혀 있으랬지, 누가 맛있는 술 만들었다면서 놀려대랬냐고! 안 그래도 이 몸으론 술도 못 먹는데!”
자이안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근엄한 얼굴로 프레이를 돌아보았다.
“삼촌이 잘못한 게 맞네요. 얼른 어머니한테 사과하세요.”
“빌어먹을. 세상 내 편이 하나도 없네.”
절절하게 한탄한 프레이가 나이아의 앞에 머리를 박았다.
“앞으로 또 그럴 거야 안 그럴 거야?”
“다시는 안 그럴게.”
“약속 어기면 한 달 동안 밥도 안 만들어줄 줄 알아.”
“밥 만들어주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소아레…….”
나이아가 말없이 프레이의 정강이를 발로 퍽 찼다. 프레이는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입을 곧장 닫았다.
“아하하. 미안, 자이안. 오빠가 영 칠칠치 못해서 매번 못난 모습만 보여주게 되네.”
화를 추스른 나이아가 그제야 자이안의 존재를 눈치채고 멋쩍게 웃었다. 한두 번 보는 일도 아닌지라 자이안은 가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성격이 좀 다르긴 하네.’
추억 속에 남은 어머니로서의 나이아와도, 마계에서 만난 젊은 시절의 나이아와도 달랐다.
지금의 나이아는 그때보다 더 밝고, 훨씬 더 감정적이었다. 나이아 본인의 말로는 어린 몸에 정신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 같다.
자이안으로서는 나이아가 어떤 모습이든 크게 중요치 않았다. 설령 비관적인 예상대로 그녀가 어쩌다 보니 나이아의 기억을 가지게 됐을 뿐인 타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인연은 이어졌고, 이 인연 역시 소중히 여길 것이다.
“자, 자이안. 선물이야.”
나이아가 한 손을 등 뒤로 돌리고 감추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펜던트를 보며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6년 전 찾아온 뒤로, 나이아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 펜던트의 수복을 시도했다. 프레이도 자이안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던 그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6년 동안 계속해서.
“몇 달 전부터 마무리 공정이었거든. 여기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얘가 좀 예민해졌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얘가 예민해서 쫓겨난 거야.”
그 와중에 슬금슬금 다가온 프레이가 나이아는 들리지 않도록 귓속말을 했다. 자이안은 터질 뻔한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표정을 유지하며 펜던트를 건네받았다.
“다…… 끝난 건가요?”
“응. 완벽해! ……아마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나이아의 표정이 뒤에 가서 삽시간에 흐려졌다.
“아직 시험 기동은 안 해봤어. 막상 해보려니까 좀 무서워서. 혹시 내가 잡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을지도…….”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하신 일이잖아요.”
“전부터 생각한 건데 말이다. 자이안 네가 저 꼬맹이한테 꼬박꼬박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 엄청 이상한 그림인 거…….”
“삼촌은 그만 좀 깐족거리고 가만히 계세요. 그러니까 어머니한테 혼나고 쫓겨났지.”
프레이가 빈정 상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분을 풀려는 듯 남은 벌꿀주를 병째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자이안은 다시 펜던트에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MP를 끌어올리며 펜던트의 기능을 하나둘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음. 기동 자체는 문제없는 것 같네. 소유자 강화나 교신, 소환 같은 복잡한 기능이 멀쩡하냐가 문젠데. 뭐부터 시험해볼래?”
“가장 먼저 시험해 볼 기능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자이안의 뇌리에 흐릿하게 이곳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호화롭지는 않지만 아주 넓은 방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 아르스와 유민, 크룩스의 모습이 보였다. 세 각성자는 초조한 듯, 경악한 듯, 또 어찌 보면 기쁨에 겨운 듯 온갖 감정이 흘러넘치는 표정이었다.
교신에 집중하기 위해 자이안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뇌리에 떠오른 광경이 더욱 선명해지며 낮게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나이아 알코스의 아들, 자이안 알코스입니다.”
자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지구의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