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불온한 징조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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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불온한 징조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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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불온한 징조들 (2)
2022.11.24.
‘집’이라기보다는 ‘헛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텅 빈 실내에 여성이 한 명 쓰러져 있었다. 유리아는 작게 숨을 삼켰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다행히 단순히 의식을 잃은 것에 불과했다.
유리아가 안도하는 사이, 남은 둘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주 희미하지만…… 마물 냄새가 남아있어요. 마물이 얼마 전까지 여기 있던 게 확실해요.”
띄엄띄엄 추측을 말하면서도 자이안은 쉬이 확신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부터 느꼈던 위화감은 마물의 뒤를 쫓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응? 그렇다면 좀 이상한 이상한데? 저 애, 멀쩡하잖아.”
유리아의 의문에 자이안도 공감했다. 무언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물과 직접 마주치는 것이다.
“저 여성…… 아마 여관의 남자가 찾고 있는 딸인 것 같습니다.”
“어? 진짜다. 질 좋은 보라색 이어커프를 하고 있을 거라더니.”
“제가 여성분을 부축할게요. 위험할지도 모르니 두 분은 주변을 경계해주세요.”
조심스럽게 당부한 자이안이 천천히 여성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접근한 순간, 도시 바깥으로부터 이질적인 마물의 냄새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쓰러진 여성의 주위에 이변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일견 낭패했다는 심정과, 차라리 잘 됐다는 심정이 교차했다.
“무언가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소아레스가 두 번째로 이변을 파악했다. 반면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유리아의 색적 능력은 좁은 건물 안에서는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잠깐만. 이게 마물…… 마물인가? 뭐가 좀 이상한데?」
이어서 마물의 접근을 감지한 프레이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이안은 장검으로 변형시킨 스펙트럼을 쥐고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든 대응할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그르르륵……!
짐승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가 들린 직후, 뻥 뚫려있던 맞은편 창문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안으로 들어왔다. 자이안은 검을 휘두르기 위해 온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적의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인간을 닮았다. 몇몇 부위는 인간 그 자체였다. 허름한 옷을 걸친 상체와 하체, 팔다리가 인간과 완전히 똑같았고 대신 한 쌍의 팔 아래에 곤충의 것처럼 보이는 다리가 두 쌍 추가로 돋아나 있었다.
등에는 와이번의 것을 그대로 뜯어온 것 같은 피막이 돋은 날개가 있었고, 머리는 늑대였다.
‘마물…… 이 맞나?’
뭐라 형용하기 힘든 불쾌감에 자이안은 인상을 썼다. 아무렇게나 조립된 기괴한 형태의 장난감을 보는 것 같았다.
-으르르릉……!
거리를 벌리며, 겁을 먹은 채 경계하고 있다. 마물의 생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이상한 광경인지 바로 알 수 있으리라.
마물의 제1 행동 원리는 인간에 대한 적의다. 아사 직전의 상황에서도 눈앞에 인간이 나타나면 자신의 생존마저 등한시하고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마물이란 존재다.
마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눈앞의 생물은 마치 일반적인 야생동물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천천히 접근하자 움찔거리며 물러나면서도 이를 드러내며 경계하고, 반대로 한 걸음 물러나자 저쪽도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온다.
‘그렇다면…….’
자이안이 쓰러진 여성에게 손을 뻗으려 한 순간이었다. 눈앞의 생물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더니, 조금 전까지의 경계심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자이안은 침착하게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각도에서 스펙트럼을 휘둘렀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곤충의 다리 두 개가 잘려 나가고 옆구리가 길게 베인 적이 옆으로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깨갱!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적이 자이안과 여성을 연달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커지는 위화감에 자이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저히 마물과 싸운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영역을 침범당하고 새끼를 지키려는 죄 없는 야생동물을 마주한 듯했다.
“자이안 님, 현혹되지 마십시오.”
소아레스의 냉정한 말에 자이안은 작게 숨을 삼켰다. 여성의 부모는 눈앞의 생물 따위가 아니다. 진짜 아비는 도시의 여관에서 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저는 자이안의 망설임도 충분히 이해되는데요. 솔직히 마물이 저런 식으로 움직이면 저라도 한 번씩은 고민할 것 같습니다.」
「아니. 저게 어떻게 행동하든 마물이 마물이다.」
「프레이 형은 죽이는 게 좋다는 말씀이시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약한 마음을 먹으면 쓸데없이 화를 키울 뿐이다. 너도 알잖냐.」
「하하, 그건 그렇죠. 그런 식으로 사고 낸 친구들 덕분에 고생한 적도 많았고.」
자세를 바짝 낮춘 마물이 여성의 근처로 기듯이 다가왔다. 킁킁거리기를 잠시, 마물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자이안이 당장이라도 팔을 벨 수 있도록 자세를 잡자, 이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라 다시 멀어진다.
그러면서도 여성을 향해 바닥을 긁으며 연신 불안한 듯 낑낑거린다.
주변의 의견은 죽이자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으나 자이안은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소아레스, 그리고 각성자들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떨까.
자이안은 아주 잠깐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조했다.
“……후우.”
판단을 마친 자이안이 눈을 뜨고 적을 노려보았다. 적의를 정면으로 받은 적이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자이안이 땅을 박찼다.
“하앗!”
칼날이 적의 배에 깊이 꽂혔다. 자이안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상대를 밀어붙이며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공중으로 점프, 근처 빈집의 지붕을 밟고, 온 힘을 모아 한 번 더.
발판으로 삼은 집이 힘을 이기지 못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졌으나 지금은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몇 번 더 빈집을 무너뜨리며 도시를 벗어난 뒤, 그대로 10분 정도 달려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멈췄다. 상대는 겉보기로는 만신창이였으나, 칼에 관통당한 배는 이미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마물다운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끼잉, 낑…….
자이안이 천천히 칼을 뽑았다. 상대는 슬쩍 불안한 눈으로 자이안을 올려다보고는 조심스럽게 파르곤이 있는 방향을 향하려 했다.
“가지 마세요.”
그 앞을 막아서며 자이안이 칼끝을 겨눴다.
“도시로 가봤자 당신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해요.”
-끄르릉…….
상대는 고개를 움츠리며 주춤주춤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시선은 자이안이 아니라 그 뒤 파르곤 쪽으로 향해 있었다. 자이안은 인상을 쓰며 한 걸음 다가갔다.
칼을 휘두르면 언제든 목을 벨 수 있는 거리다.
“전 당신을…… 죽여야만 해요.”
-…….
“당신이 평생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는 이상, 그게 최선이에요.”
-……끼잉.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 자이안의 표정은 자기 손가락이라도 잘라내는 듯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직 피가 흐르는 뱃가죽을 한 손으로 누르며, 상대가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자이안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얼어붙은 듯한 대치가 얼마간 이어지다가, 한순간 섬광이 번뜩였다.
“……하아아아.”
목이 잘려 쓰러지는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자이안은 힘들게 탄식했다.
“제가 잘한 걸까요?”
「잘한 거다.」
프레이는 짐짓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한 말이 맞다. 마물이 당장 마물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생 그러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냐. 그 마물이 언젠가 사람을 습격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죽이는 게 맞다.」
그러나 정작 그리 말하는 그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평범한 마물에 비해 아주 느린 속도로 말라붙고 있는 시체를 보며 프레이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 뭐, 이상하긴 하군. 저게 대체 무슨 생물이지? 저걸 진짜 마물이라고 부르는 게 맞긴 한가?」
「신종 마물 아닐까요……?」
「글쎄다. 저쯤 되면 마물이 아니라 다른 카테고리로 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그래서 더 이상했다. 자이안의 후각도, 프레이의 마안도, 아르스의 계측기도 모두 상대를 마물이라 인식했다.
「그래봤자 마물 한 마리고…… 별거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구만.」
한숨을 내쉰 프레이가 절절하게 중얼거렸다. 그 자리의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 * *
유리아는 도시 출입구 부근에서 자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이안이 다가가자, 그의 표정으로부터 많은 것을 헤아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죽였어요.”
얼핏 담담한, 그러나 미처 숨기지 못한 불안함이 느껴지는 대답에 유리아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는 밝은 목소리로 화제를 바꿨다.
“그 아가씨는 아빠한테 데려다줬어. 소아레스가 진찰해봤는데, 큰 이상은 없고 그냥 잠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소아레스는 지금 어디 있어요?”
“마차 지키고 있지. 아무튼, 덕분에 여기서 지낼 동안 숙소는 구했네. 별것도 아닌 일인데 되게 지친 것 같다. 그치?”
자이안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파르곤에서 지내는 동안 그런 이상한 일은 더 벌어지지 않았다. 3일 정도 쉬며 보존식과 식재료, 기타 여행용품을 보충한 뒤 일행은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차 여행이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날씨가…….”
가장 먼저 차이를 알아차린 이는 소아레스였다. 파르곤,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보석탑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꽤 북쪽 지방이었고, 기온이 낮은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기온이 갑자기 온화해지기 시작했다.
보석탑을 중심으로 하는,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뒤덮은 거대한 결계의 영향이다.
통칭 ‘대결계’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결계는 내부를 사람이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으로 유지하는 기능을 하며, 실질적인 보석탑의 영토를 의미하기도 했다.
“어라? 저런 탑이 조금 전까지 있었나……?”
지붕 위에서의 훈련을 일단락하고 잠시 쉬고 있던 유리아가 먼 북쪽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제야 자이안은 아침부터 줄곧 붙잡고 있던 아티팩트 공학 중급과정 교재에서 눈을 떼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다들 무슨 일이세요?”
“보석탑의 영토에 진입했습니다. 아직 탑까지는 거리가 조금 남았습니다만, 그래도 머지않았네요.”
“자이안, 저것 좀 봐봐!”
유리아의 들뜬 목소리에 자이안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며 저도 모르게 낮게 탄성을 터뜨렸다.
마차가 향하고 있는 북쪽 방향,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원근감이 이상해질 정도로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었다. 좋게 말하면 전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기괴한 형상의 탑이었다.
탑의 중심을 지탱해야 할 밑동 부분이 탑에서 가장 가느다란 부분이었고, 가장 두꺼운 부분인 중간 부근은 눈으로 대충 가늠해 봐도 두께가 밑동의 스무 배에 이르렀다.
그나마도 제대로 된 형상을 이루고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중간부터 윗부분은 정사각, 원형, 막대처럼 기다란 형태, 누가 대충 주물럭거리다가 내다 버린 찰흙 같은 형태를 비롯해 통일감 없는 온갖 블록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모양새였다.
심지어 어떤 블록은 저게 왜 추락하지 않고 붙어있나 싶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상층부를 지나고 나면 최상부에 반듯한 원반 형태의 구조물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태양처럼 밝은 빛의 구체가 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이질적인 족속. 마법사들의 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