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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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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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3)
2022.11.15.
바로 등 뒤에서 칼날과 바윗덩이가 부딪치는 것이라곤 믿기 힘든 격렬한 소음이 들려왔다. 소아레스는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불안과 의혹을 떨쳐내며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했다.
맞은 편, 마인이 3명. 유리아는 그것이 인간이 마물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1:1로 상대한다면 쓰러뜨리기 어려운 적은 아니었다. 문제는 통로가 좁아 소아레즈의 특기인 기동성을 살리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적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
하나를 쓰러뜨렸을 즈음 둘이 나타났고, 그 둘 중 하나를 겨우 쓰러뜨리니 다시 둘이 또 나타났다.
혹시 3분이라는 게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의 단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닐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마저 들었다.
“유리아 님!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
“괜찮아! 거의 다 됐어!”
강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도 유리아의 시선은 바위에 고정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섬. 칼날이 바위를 두부처럼 가르며 표면에 길고 깊은 상흔을 남긴다.
단검으로 바위를 베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유리아가 원한 것은 아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깊게?’
다시 일격. 바위 표면에 재차 상흔이 새겨진다. 단검의 날이 통째로 들어갈 만큼 깊었지만, 유리아는 희미하게 인상을 썼다.
‘아냐. 이래서는 베고 깎을 뿐이야.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을 침투시켜야 해. 충돌?’
다시 단검을, 이번에는 몽둥이라도 다루듯 투박하게 휘두른다. 칼날은 반절도 박히지 않았고, 칼자루를 쥔 손이 반동으로 찌르르 울렸다.
유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 걸음 물러나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몇 번 더 해 보자.’
거센 힘으로 바위를 두드릴 때마다 파편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고, 강한 반탄력이 두 팔을 사정없이 때렸다. 충격이 팔을 타고 넘어와 내장까지 뒤흔드는 듯했다.
팔이 저릴 때까지 사정없이 바위를 두드린 다음, 유리아는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진동?’
유리아가 다시 단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바위와 충돌하기 직전, 유리아의 손이 기묘한 움직임을 그리며 잔상을 일으켰다.
두 눈에 보랏빛 불꽃을 켠 채 유리아는 자신의 손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했다.
터어엉! 요란한 소리가 좁은 통로를 뒤흔들었다. 거칠게 튕겨 나간 두 팔이 떨어질 듯 아팠다.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유리아는 작게 웃었다.
‘각도, 방향, 세기, 모든 게 틀렸어. 하지만, 방법은 맞아.’
깊이 심호흡을 한 유리아가 한 차례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약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시행착오야. 될 때까지 해 보자.’
두 자루의 단검이 바위를 쉴 새 없이 두드렸다. 그때마다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비밀통로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정작 유리아의 귀에 그런 아무래도 좋은 것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좀 더 세밀하게. 좀 더 좁고 빠르게. 그러니까…… 이렇게.’
돌연, 유리아는 직감적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하는 칼날이 좌우 각각 5번, 총 10번 연달아 바위를 때렸다.
지금까지 거센 반발력을 느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팔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웅! 바위 안쪽으로부터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한 차례 울리고, 이윽고 거대한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무너져내렸다.
“소아레스! 가자!”
“……!”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다급하게 숨을 삼키는 소리였다.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마인이 어느새 다섯 명. 중과부적이었다.
목소리를 낼 여유도 없을 정도로 열세에 몰린 소아레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내버려 두고…… 유리아 님 먼저!”
간신히 틈을 찾아 비장하게 외친 순간, 한 줄기 바람이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났다. 산들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마인들 앞에 선 유리아가 재빠르게 단검을 두 차례 휘둘렀다.
파앙! 공기가 파열음을 내며 폭발하고, 마인들의 전신이 칼에 베인 듯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이제 더 없는 것 같은데? 시간 끌지 말고 얼른 가자. 이러다 또 몰려오겠네.”
마안을 통해 자연스럽게 MP의 흐름을 읽어 색적을 마친 유리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유리아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망연히 입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던 소아레스는 그냥 이해를 포기했다.
* * *
어지간한 소도시 하나만큼이나 넓은 황궁은 섬뜩하리만치 조용했다. 어렴풋하게나마 MP의 흐름을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게 된 유리아의 색적도 통하지 않았다.
제국 여정 초기 과민하게 마물을 경계하던 자이안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나쟈는 황주궁에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소아레스는 믿음직한 길잡이였다. 만일 유리아 혼자서 황궁에 침투했더라면 나쟈를 찾기 위해 적잖은 수고를 들여야 했으리라.
“와, 저거 봐. 엄청 크고 화려하다. 소아레스, 저거 아닐까?”
“저건 황비궁입니다. 다행히 얼마 남지 않았네요. 황주궁은 황비궁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도중 몇 번이나 마인과 마주칠 뻔했으나, 좁은 통로라면 모를까 넓고 장애물도 많은 곳에서 몸을 숨기며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몇 개의 궁을 지나치고, 관리되지 않아 울창하게 자란 숲을 가로지른 둘은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 안에 나쟈가 있습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황주궁을 올려다보며 소아레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아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로 침투해야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을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매정한 그 모습에 소아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자. 저쪽 벽을 타고, 첨탑을 이렇게 경유해서 4층 창문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확실한 것 같아.”
“저 방에 누군가 머물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마인이면 죽일 거고, 마인이 아니면 몰래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난폭한 의견이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소아레스가 보기에도 유리아가 말한 침투경로가 가장 확실해 보였다.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조용하네. 꼭 우리가 올 걸 알고 일부러 사람들을 치워놓은 것처럼.”
소아레스는 뭐라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그 말에 동의했다. 설령 나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고 해도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되든 안 되든, 오늘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복도를 가로지르던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희미하게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황주궁의 내부 구조를 머릿속에 펼친 소아레스가 장소를 특정하고 앞장섰다.
5년 사이 구조가 바뀐 게 아니라면 소리가 들린 곳은 알현용 홀이었다.
“이건……!”
층과 층 사이, 오직 근위부만이 알고 있는 좁은 틈을 기어가 홀의 바로 위 천장에 도착한 소아레스는 벌어진 틈 사이로 보이는 모습에 탄식을 터뜨렸다.
광란 그 자체를 그려낸 듯한 광경이었다.
짐승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할퀴며 싸우는 집단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서는 나체의 남녀 수십 명이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옥좌에, 그 모든 광경을 권태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
도무지 인간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움. 유리아의 행동은 빨랐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천장을 열어젖히고 그대로 옥좌의 여인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소아레스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들이 맡은 일이 바로 나쟈의 암살이었으니까.
“유리아 님, 안 됩니다!”
그러나 옥좌에 앉은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한 순간, 소아레스는 뭔가가 크게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 여자는 나쟈가 아닙니다!”
다급한 외침보다 한 걸음 먼저, 단검 두 자루가 교차하며 여인의 잘린 목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 *
“……음?”
시계탑의 옥상. 유리아와 소아레스의 성공 보고를 기다리고 있던 자이안은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후훗. 아무래도 저희가 괜한 일은 한 건 아닌 모양이네요.”
“갑자기 뭔 개소리야?”
“저희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다는 소리죠. 일어나세요, 클라비수스 씨. 아무래도 지금부터 꽤 바빠질 것 같아요.”
바로 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불길한 웅성임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유리아가 그랬던가요. 비밀통로에서 마인과 마주쳤다고.”
늪에 가라앉은 침전물 같던 MP의 흐름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흡사 강대한 마물이 근처에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자이안의 후각은 아무런 마물의 존재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 대신, 마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물이 아닌 것도 아닌 어정쩡한 무언가의 냄새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어디보자. 흐음. ……호오. 아하하핫.”
난간 끄트머리에서 몸을 내밀고 주변을 살핀 자이안이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텅 비어있던 거리가 삽시간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파로 뒤덮였다.
그들 모두가 허옇게 말라붙은 침을 흘리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마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팔다리가 기괴하게 뒤틀린 이들도 있었다. 아직은 되돌릴 수 있는 상태이지만, 남은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정말이지 악취미라니까.”
자이안은 망설임 없이 아티팩트의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황궁에 잠입한 유리아가 가져가 설치한 아티팩트가 하나. 황궁, 즉 제도 중앙을 기점으로 8방위에 각각 아티팩트가 하나씩.
총 9개의 아티팩트가 드넓은 제도 전역을 커버하며 황궁으로부터 거미줄처럼 뻗어 있던 정신간섭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아르스의 도움까지 아낌없이 빌린,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완성도를 가진 아티팩트였다.
정신간섭으로부터 해방된 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부작용도 거의 없고, 마인화 억제와 정화 작용까지 욱여넣었다. 노파심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유비무환이 되었다.
“어, 어라……?”
“뭐지? 난 대체…… 꿈을, 꾼 건가……?”
“으, 으윽, 머리가……. 대체 뭐야? 어제 술이라도 진탕 마셨나? 기억이 하나도 안 나잖아…….”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는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의 광기와 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까지 실컷 사람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면서 얼마나 재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이안은 어둠 속에 파묻혀 웅크린 황궁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한 번쯤은 자기가 당해보는 것도 분명 즐거운 경험일 거다. 이 망할 마족아.”
「……잠깐. 저거 설마 내 말버릇이 옮은 거야? 아, 아니겠지?」
팝콘을 준비하고 구경하던 프레이가 제 발이 저려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