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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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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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마족 토벌 작전 - 암습 (1)
2022.11.13.
음욕은 옥좌에 앉아 따분한 표정으로 눈앞의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음욕에게 있어 삶이란 의외성 따위는 없는 따분한 것이었다. 같은 마족조차 저항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정신간섭 능력 탓이었다.
말 한마디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들어왔다. 다른 칠종주들도 그녀와의 독대는 은근히 피했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그런 생활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은 것은 결국 지독한 권태감뿐이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음욕은 많은 것을 시도했다.
그런 그녀의 관심이 중간계로 향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리라.
마계는 정체된 세계다. 정확히는, 마계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찬탈자가 먹어 치운 수많은 세계가 그랬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먹지 못하면 굶어죽는 것과 같은 당연한 이치다. 중간계는 그 당연한 이치에서 벗어난 혼란스러운 세계였다.
음욕은 중간계를, 통일된 질서 따위는 없이 저마다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저들의 자유의지를 꺾어 누르는 건…… 분명 아주 황홀할 거야.’
음욕은 본능에서 비롯된 충동을 거스르지 않았다. 중간계의 시간으로 수백 년에 걸쳐 그녀는 중간계의 정세에 개입해 자신의 입맛대로 그 흐름을 조종했다.
때로는 그녀 자신이 직접, 때로는 나쟈와 같은 부하들을 수족으로 부려서.
그렇게 대륙의 역사를 자기 뜻대로 주물러 온 음욕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정한 철칙 하나만은 반드시 지켰다. 바로 모든 일에 ‘변수’를 놔두는 것이었다.
마족과 비교할 수도 없이 열등한 인간 중에서, 마치 돌연변이처럼 음욕의 정신지배에 강하게 저항하는 인간이 간혹 나타났다.
음욕은 그 돌연변이를 처리하는 대신 통제되지 않는 변수로 존재하도록 놔뒀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감칠맛을 살리기 위한 자극적인 조미료 같은 것이었다.
음욕은 그런 이에게 갖은 시련을 내리고,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한다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 맞서 싸웠다. 영웅과 마왕이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처럼. 차이점은 결말 정도였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도착한 상대를 음욕은 압도적인 힘으로 가차 없이 찍어 눌렀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짓눌려 절망하며 쓰러지는 모습은 음욕에게 상상도 못 한 쾌감을 선물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하고 너. 다섯은 남으렴. 나머지는 돌아가.”
흥분으로 달아오른 채 입술을 핥은 음욕이 한 번 더 주위를 슥 둘러보고 대충 아무나 다섯을 골랐다. 선택받지 못한 이들이 탄식을 터뜨렸고, 선택된 다섯은 천국에라도 오를 듯 기뻐했다.
“규칙을 정해줄게. 둘이 남을 때까지 너희 다섯이서 싸우렴. 무기는 없단다. 옷도 입지 말고. 셋이 죽고 둘이 살아남을 때까지 짐승처럼 야만스럽게 싸우는 거야. 살아남은 두 명은 특별히 지켜봐 줄게. 어때? 행복하니?”
다섯 명이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의 비명을 터뜨렸다. 곧 음욕의 눈앞에서 맨몸을 드러낸 인간 다섯 명의 살육전이 펼쳐졌다.
정작 음욕은 그 광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번 영웅은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우후후후.’
머지않아 찾아올 절정의 순간을 기다리며 음욕은 소녀처럼 볼을 붉혔다. 스스로의 승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 * *
일주일. 처한 상황에 따라, 관점에 따라 길다고도 짧다고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지금 자이안에게 지난 일주일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그는 분명 이렇게 답할 것이라.
“정말…… 정말 멋져요!”
제도 근교, 제국의 심장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고원 위. 가슴 깊은 곳에서 샘솟는 박애를 숨기지 않으며 자이안이 힘차게 외쳤다.
“맞아! 자이안이 최고야!”
“하핫. 유리아 양도 참.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멋진 건 제가 아니에요. 이리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세계죠. 그에 비하면 저는 바람 앞의 등불, 태양 앞의 반딧불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아닌데. 자이안이 최곤데.”
“후훗, 미안해요 유리아 양. 물론 저도 삼라만상만큼이나 유리아 양을 사랑해요.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고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랍니다. 이해해주길 바라요, 유리아 양.”
유아퇴행이라도 해버린 듯한 유리아와, 진리를 깨달은 현자 같은 표정으로 헛소리를 내뱉는 자이안을 보며 황자는 끔찍한 악몽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가장 슬픈 사실은 눈앞의 이런 광경이 나름 이성을 유지한 채 지켜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는 점이었다. 하긴, 일주일 내내 이런 꼴을 봤으면 싫어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시부럴. 막판에 와서 이게 웬 날벼락이야. 일단은 철수하고, 제도 침입은 둘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다음에 생각하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클라비수스 씨? 제도는 지금 당장 침입할 겁니다.”
소아레스에게 은밀하게 전하는 말을 날카롭게 포착한 자이안이 즉시 반론했다. 본래 자이안은 이런 식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듣지 못하는 척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는 옳은 것을 옳다고,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있었다.
「왜냐면…… 푸흡, 그게, 바로, 크흐흡……! ‘자이안 님’이니까!」
장엄하게 소리친 프레이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지러지며 침대 위에 쓰러졌다.
옆에 앉은 아르스는 좀 깬다는 표정이었다. 프레이가 자이안이 무슨 말만 꺼낼 때마다 미친 것처럼 웃다 보니, 아르스는 반대로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레이, 너…… 진짜 성격 나쁘다.」
「뭐? 아니, 내가 왜? 저건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 자연, 스러운…… 크흡. 푸하하하하!」
또 뭐가 떠올랐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프레이를 지그시 쳐다보며 아르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근데 자이안은 되게 오래 가는 편이네. 유리아야 이번이 첫 과포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거야, 저놈 지금까지 과포화가 올 만하다 싶으면 억지로 눌러 가며 참았으니까. 그동안 참았던 만큼 반동이 크게 돌아온 거지.」
「에엑……? 그렇게까지 참아 보통?」
「그건 네가 저놈 처음 과포화됐을 때를 못 봐서 그래. 나였으면 그때 혀 깨물고 한 번 죽었다.」
지구에서는 MP 과포화가 찾아온 각성자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따로 장소를 마련해주는 게 암묵적인 매너다.
다른 사람과 엮이지 않고 혼자서 지내면 똑같이 흑역사를 만들어도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
자이안이 알았다면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며 성을 내겠지만, 솔직히 프레이도 ‘자이안 님’이 된 그를 말로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힘으로라도 끌고 가려면 일단 소환이 되어야 하는데 소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이안이다.
「그리고 뭐, 웃기기는 한데 지금 자이안의 정신 상태는 내가 보기에 상당히 이상적이다. 유리아도 전에 말했지만 자이안의 자기비하는 제 힘으로는 어쩌기 힘들 만큼 뿌리 깊고,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 말하자면 ‘자이안 님’은 바로 그 유일한 약점이 사라지는 완전무결한 상태인 거지.」
「자기비하 대신 더 큰 약점이 생긴 것 같은데에.」
「흐하하하! 글쎄다. 그게 약점일지 강점일지는 곧 알게 되겠지.」
나쟈라는 강적과의 결전을 코앞에 둔 지금 저런 상태가 돼버린 것은, 프레이가 보기에는 신이 내린 듯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사실 지구에서는 과포화 상태의 각성자가 전장에 나서는 것이 금기시되지만, 프레이는 신기하게도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자이안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름대로 그를 신뢰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으으으,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 나 잠깐 연구소에 갔다 올게. 특별 예산 편성해서 소재라도 잔뜩 뜯어 와야지. 언제든지 저쪽으로 갖고 넘어가서 만들 수 있게.」
「거 너무 과보호 하지 마라.」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진 않거든?!」
아르스가 날개까지 꺼내들어 서둘러 떠나고, 방에는 프레이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적막을 즐기던 프레이는 옅은 미소를 띠며 자이안의 행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클라비수스 씨, 설마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시간을 끌면 희생이 늘어날 뿐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쟈가 제도에 어떤 함정을 만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 시라도 빠르게 행동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클라비수스 씨가 한 말이잖아요. 잊어버렸을 리가 없을 텐데요?”
“빠르게 행동하는 건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대책도 없이 부딪쳤다가 실패라도 하면 어쩔 셈인데? 나쟈가 우리 보고 불쌍하다며 재도전 기회라도 줄 것 같냐?”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쟈는 제가 쓰러뜨릴 겁니다.”
“나쟈를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대체 무슨 자신감이냐?”
“이유 따윈 없습니다. 그런 건 필요치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나쟈는 제게 쓰러질 거라는 진실뿐입니다.”
기어이 황자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지금 상태의 자이안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클라비수스 씨. 한 가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저는 당신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에요.”
“……뭐?”
“당신 의사가 어떻든 저는 제도로 갈 겁니다. 당신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혼자서 갈 거예요.”
“나도 갈래! 자이안, 나 버리고 가면 안 돼?”
“후훗. 유리아 양이 원한다면, 물론 그래야죠.”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유리아를 소름 돋을 정도로 원숙한 동작으로 쓰다듬으며 자이안은 황자를 바라보았다. 황자는 엉망진창으로 쓰인 각본의 연극을 코앞에서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저는 당신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려는 겁니다.”
“……또 무슨 개소리냐?”
“제가 나쟈를 쓰러뜨리고 제국이 정상화됐을 때 그곳에 함께하고 있을 기회. 자신의 손으로 제국을 돌려놓았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는 기회.”
“…….”
황자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빠르게 상황을 가늠해보았다. 판단을 내리는 것은 빨랐다.
“……큰소리쳐 놓고 맥없이 당하기만 해 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평생 괴롭혀줄 거다.”
“불안하면 클라비수스 씨도 좀 도와주세요. 전에 보니까 작전 잘 짜시던데.”
“그건, 그…… 젠장! 이렇게 대책 없이 들이박는데 작전이고 뭐고 있겠냐!”
“하하핫. 그런 상황에서도 최적의 작전을 세우고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게 명군의 자질 아닌가요? 전 클라비수스 씨가 잘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돌겠네 진짜. 말이라도 안 하면 얄밉지나 않지.”
이를 악물고 치밀어 오르는 갖은 욕설을 삼키며 황자는 자이안에게 업혔다. 둘의 만담을 지켜보던 소아레스는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잠시 뒤 달이 구름 뒤에 가려질 겁니다. 그때에 맞춰 출발하도록 하지요.”
“그거 좋네요. 야음을 틈타 행동하는 영웅이라, 마치 의적 같아서 흥분되는걸요.”
잠시 뒤 소아레스의 말대로 달이 구름에 가려지며 사위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행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