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상인, 벤야 알즈레드 (1)
(19/210)
19화 상인, 벤야 알즈레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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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상인, 벤야 알즈레드 (1)
2022.10.22.
코르니카는 몹시 크고 소란스러운 도시였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중앙 가도에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은 대부분 2층 이상의 석조였다.
일리움 왕도에도 석조 건물이 이 정도로 많지는 않으리라. 건축기술의 격차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한 웨코스는 그 특징 덕분인지 기술자와 학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고 해요.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기는 했지만…….’
「기술의 도시! 멋지네에. 한 번 직접 가보고 싶다아.」
말을 탄 채 상단의 선두에 선 유리아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다. 유리아도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하나하나 인사를 나눴다.
「알즈레드 상회가 상당히 유명한 모양이군.」
수많은 행인들 중 반 이상이 회장도 아닌 후계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증거였다. 정작 행인들과 농담을 나누는 모습에 권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때? 좋은 도시지?”
말을 몰아 다가온 유리아가 웃으며 물었다. 자이안은 마주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시끌벅적하긴 하네요. 사람들이랑 많이 친한가 봐요.”
“지금 선거 기간이라 그래. 너무 딱딱한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일부러 정부 차원에서 주도해서 축제처럼 진행하거든.”
“선거라뇨?”
“대통령 선거라고, 시민들이 투표해서 다음 대 지도자를 뽑는 거야. 아버지도 후보 중 한 명이거든. 그래서 요즘 알아보는 사람들이 좀 많아.”
상상도 못 한 정보에 자이안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유리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멋쩍은 표정이었다.
“자랑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너 우리 집에서 지낼 거잖아. 그럼 지금이라도 얘기하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
“……좀만 더 일찍 알려주지 그랬어요.”
“훈련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유리아가 혀를 빼꼼 내밀며 짓궂게 웃었다. 한 방 먹은 자이안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대통령 후보라니. 일리움으로 치면 국왕 후보, 즉 왕족에 버금가는 위치가 아닌가. 물론 실제로는 아주 큰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자이안이 알고 있는 바로는 그랬다.
“아아, 어쩌죠. 갈아입을 옷이…… 으아아, 지금 입은 거랑 별 다를 바 없는 것들뿐이네!”
“너무 부담 갖지 마. 그냥 옆집 아저씨 만난다고 생각해.”
“옆집 아저씨…….”
애석하게도 자이안은 전혀 모르는 감각이었다.
이윽고 행인들의 빈도가 점점 뜸해지고 대신 건물들이 점점 호화로워졌다. 완전무장한 채 순찰 중인 병사들,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상류 계층의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몸가짐을 바로 했으나, 자신의 허름한 옷차림을 새삼 떠올리고는 다시 마차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변경백의 후계자도 아니고 일리움의 귀족도 아니다.
“자이안, 이제 내려야 돼. 마차는 물류 창고로 보낼 거라 여기서 헤어져야 하거든. 저기, 누구 말 한 필 좀 보내줘! 대신 이따 술값 크게 챙겨줄게!”
용병 한 명이 전광석화처럼 달려와 공손하게 말을 양보했다. 이윽고 되돌아간 그가 기회를 놓쳐 분을 곱씹는 동료들에게 어깨를 으쓱이다가 얻어맞기 시작했다.
유리아가 거기 섞여 깔깔 웃는 사이 자이안은 말에 올라탔다.
“준비됐어? 그럼 가자.”
유리아를 따라 도착한 곳은 호화로운 저택이 즐비한 가운데에서도 한층 더 크고 웅장한 저택이었다. 저택 정문 앞에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안경을 쓴 냉혹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홀로 서 있었다.
“네가 체니 단장이 말한 소년이군.”
말에서 내려 손을 흔들며 달려간 유리아를 그냥 무심히 지나치고, 자이안에게 곧장 다가온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매복 중인 도적단을 막아내고, 오크를 혼자서 토벌했다던가?”
전신을 훑어보는 날카로운 눈빛에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옆집 아저씨는 개뿔.
“아빠! 딸이 지금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인사 한마디도 없어?”
“밖에선 아버지라고 부르랬다, 이 못난 녀석아.”
“지금 우리 말고 아무도 없잖아.”
“이 소년이 있지 않냐.”
“자이안은 남이 아니니까 괜찮고.”
“상단을 구한 영웅을 소개해 주는 게 아니라 사위 될 남자를 소개해 주는 거였냐?”
남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제야 자이안은 멈췄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얼굴이 새빨개진 유리아가 후다닥 달려와 빽 소리쳤다. 남자는 심드렁하게 귓구멍을 한 번 파고는 다시 자이안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비하면 다른 사람인 듯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사정은 통신구를 통해 들었다. 네 활약 덕분에 알즈레드 상회는 치명적인 경제적 손실을,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을 한 유리아를 한 차례 바라보고, 그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고맙다, 자이안. 알즈레드 상회의 모든 것을 걸고 네게 감사하마.”
* * *
알즈레드 상회의 주인, 벤야 알즈레드는 첫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자이안을 후하게 환대했다.
사적인 공간을 제외한 저택 어디든 드나들 수 있는 자유는 물론, 신분 증명 역시 유리아가 나서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코르니카 시민권을 만들어 해결해줬다.
보상금도 두둑하게 받았다. 저택에서 생활하는 동안 신변을 돌볼 전담 하인을 붙여주고, 원한다면 계속해서 저택에서 지내도 된다고 확언까지 했다.
“유리아가 자네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마찰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자네가 하는 일이니 말리지는 않겠네. 하지만 유리아에게 괜한 바람을 넣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자이안은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벤야가 딸의 ‘바람’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은 일목요연했다.
“내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이안의 속마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봤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지? 내가 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 딸의 방향성을 강제하고 있다는 사실? 둘 다 아니면 다른 문제인가?”
“…….”
자이안이 침묵하자 벤야는 작게 웃었다.
“유리아가 세 살 때 아내가 사고로 죽었다. 한창 상회를 키우느라 바쁜 시기였어. 그나마 남는 모든 시간을 오로지 유리아를 위해 쏟았지. 아직 어린 자네는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이런 ‘평범하지 않은 가정’일수록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는 법이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잘 모르는 타인이 자기 사정에 끼어드는 걸 불쾌해하기 마련이지.”
냉혹한 거절의 말이었다.
“내게도, 유리아에게도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다. 자네가 우릴 배려해 줬으면 좋겠군. 그럼, 나는 바쁘니 이만 실례하지.”
귀빈용 침실을 안내한 벤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다. 자이안은 넓은 방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서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급하게 결론을 내릴 필요도 없다. 시간은 많아. 천천히 생각해서, 네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으면 된다.」
「난 우리 자이안이 처음 하려고 했던 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원래 이런 일은 누구 말 듣고 이리저리 바꾸면 이도 저도 안 되기 마련이거든?」
「남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잖냐. 신중해서 나쁠 건 없지.」
두 사람 모두 일리가 있었다. 자이안은 복잡한 고민을 내던지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를 쉬길 얼마간,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자이안? 짐은 좀 풀었어?”
벤야와 교대하듯 찾아온 이는 유리아였다.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씻은 듯 산뜻한 모습이었다.
“쉬고 있었어? 내가 방해했나?”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괜찮으면 밖에 나가자!”
유리아가 두 팔을 쭉 펴고는 환하게 웃었다. 자이안은 이게 무슨 맥락 없는 소린가 싶었다.
“아까 말했지? 선거 중이라 축제 분위기라고. 코르니카는 평소에도 신나지만, 선거 중에는 훨씬 더 신나거든. 외지인이 선거 기간에 맞춰 관광하기가 쉽지 않은데 너 정말 운 좋은 거야!”
“집 안에 있으려니 심심한가 봐요.”
“맞아! 얼른 나가서 놀자!”
아침만 해도 훈련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더니 그새 기운을 차린 모양이었다. 자이안은 ‘혹시 훈련 강도가 모자랐나?’하고 검토해보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아까 가도를 지날 때도 느꼈지만 코르니카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인생의 절반을 좁은 저택에서 지낸 자이안에게는 흡사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상인들의 호객 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성난 고함과 환호성, 음유시인의 노랫말 따위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앞서가며 안내해 주는 유리아가 없었더라면 순식간에 미아가 되고 말았으리라.
유리아의 말대로 즐길 것도 많았다. 본래 웨코스는 온갖 독특하고 실험적인 신기술의 발상지로 유명한 나라다.
멀리 떨어진 상대와도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원거리 통신구, 사나운 맹수인 와이번을 길들여 이동 수단으로 삼는 항공 운송 등은 멀리 떨어진 일리움에도 전해졌을 정도다.
“와! 저것 좀 봐 자이안! 완성형 솜사탕이래! 아하하하, 결국 완성했나 봐. 저번 분기에 4차 시범형 솜사탕이라고 내놓은 건 사방이 끈적끈적해져서 난장판이 따로 없었는데.”
“솜사탕……이 뭔데요?”
“어? 그게 그러니까…… 설탕을 가열해서 녹여서…… 찬 공기와 접촉하면…… 음…… 달고 맛있고 행복해지는 거!”
설명을 포기한 유리아가 까르르 웃었다. 어이가 없어진 자이안도 결국 따라 웃었다.
“달고 맛있네요.”
“그치? 행복해지지?”
“……그런 것도 같고요.”
도시 한쪽에서는 자동화 마차 시범 주행 시연이 한창이었다. 별생각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던 자이안은 솜사탕을 떨어뜨릴 뻔했다.
“저럼 마차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냥 자동화 차라고만 부르면 이상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자동차라고 부르면 되잖아. 이게 무슨 바보 같은 문답이야?」
10미터 정도를 나아간 자동화 마차가 덜컹거리며 멈춰 서서 불길하게 떨어대기 시작했다. 돌발 사태에 사회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했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가 필사적으로 마차를 제어했다.
그러나 그 노력도 부질없이, 마차는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리더니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거 봐! 그거 구동부 설계가 엉망이라 제대로 안 돌아갈 거라고 내가 그랬지?! 돈 건 놈들 얼른 다 내놔! 으하하하, 독식이다!”
“데바인 상회의 후원을 받은 신기술 시연이 실패하다니…… 이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만.”
구경꾼들 사이에서 야유와 환호가 뒤섞였다. 듣고 있던 유리아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데바인 상회 거였구나.”
“유명한 상회인가요?”
“우리 집이랑 쌍벽을 이룬다고 해야 하나. 선의의 경쟁자…… 아니지, 평생의 숙적? 마침 이번 선거에도 아버지랑 같이 출마했고. 지긋지긋한 인연이야.”
벤야가 언급되자 자이안의 표정도 조금 흐려졌다.
“자, 아직 다 돌아보려면 한참 남았다구. 서두르자!”
슬쩍 그 얼굴을 본 유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자이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 * *
“후아! 잘 놀았다.”
광장의 분수 근처에 마련된 벤치에 털썩 앉으며 유리아는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저택을 나온 게 점심이 되기 조금 전이었는데, 어느새 서쪽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기운이 넘치네요. 훈련을 조금 더 어렵게 할 걸 그랬나.”
“노, 농담이지?”
“네, 농담이에요.”
뾰로통하게 자이안을 노려보던 유리아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넌 어때? 재밌었어?”
잠시 기억을 돌이켜본 자이안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행이다. 너도 앉아. 특별히 옆자리를 허락해 주지!”
유리아가 장난스럽게 자기 옆을 톡톡 두드렸다. 자이안이 곁에 앉자,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낮에 뭐라고 그랬어?”
“갑자기 무슨 얘기예요?”
“아버지한테 안 좋은 말 들은 거 아냐? 표정이 안 좋던데.”
자이안의 미소가 굳어졌다. 유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너무 맘에 담아두지 마. 아버지가 원래 좀 앞뒤가 막힌 사람이라 그래.”
“안 좋은 말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조언에 가까웠죠.”
“그래? 그럼 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복잡한 표정을 한 옆얼굴을 바라보던 자이안이 물었다.
“코르니카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응?”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그렇던데.”
유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한 방 먹었다는 얼굴로 웃었다.
“티 나?”
“반나절만 같이 오늘처럼 지내면 누구나 알 정도로는 나더라고요.”
“그렇구나.”
그녀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잖아. 어지간히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으면 보통 그렇지 않아?”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어지간히 안 좋은 일’을 겪은 자이안에게 일리움은 좋아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제 얘기를 좀 해 드릴까요?”
“……이렇게 갑자기? 숨기는 거 아니었어?”
“유리아는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자이안이 그녀의 목표를 지지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었다. 자유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역시 뼈저리게 실감했으니까.
그러나 프레이가 이전 말한 대로, 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자이안은 그녀에게 어느 한쪽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섣부른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건 두 번째이기도 했고, 그때보다 감정이 많이 정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얘기를 들은 유리아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히, 힘들었지이~!”
유리아가 자이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속절없이 안긴 자이안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그녀는 울먹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오~!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누나가 다 보듬어 안아줄게!”
“아뇨, 그렇지는…… 유, 유리아, 저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누, 누가 보겠어요.”
“훌쩍. 미안.”
원 없이 머리를 쓰다듬은 유리아가 간신히 그를 놔줬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달아오른 얼굴을 매만져 식힌 뒤 자이안은 으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유리아도 한번 천천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자유롭게 방랑하는 삶을 바라는 건지. 사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는데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 쪽이든, 전 유리아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놓치고 있는 것…….”
자이안의 말을 따라 읊은 유리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결정했어. 지금 당장 아빠한테 얘기하고 올게. 나 여행 좀 할 테니까 허락해 달라고.”
자이안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유리아? 제가 방금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미안. 나 지금 바로 돌아갈게. 지금 이 기분을 잊어버리면 안 될 것 같아. 길 안내 해 줄 하인 한 명 보낼 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자이안의 말을 듣지도 않고 유리아가 힘차게 달려 나갔다. 자이안은 망연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아저씨가 낮에 부탁하지 않았냐? 딸한테 괜한 바람 불어넣지 말아 달라고.」
“…….”
자이안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