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데우스 마키나 (14/210)


14화 데우스 마키나
2022.10.17.


혼자서 지내기엔 지나치게 넓고 호화로운 방.

방 한가운데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던 프레이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나 혼자선 어쩔 수 없나.’

자이안이 혼자서 코카트리스를 쓰러뜨린 게 2주 전 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프레이는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지 않도록 펜던트의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제한을 해제하려 애썼다.

그러나 진전이 없었다. 프레이는 전문적인 공학자도 아니었고 하물며 펜던트 본체는 머나먼 외계 차원에 존재했다. 그가 혼자 애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3주간 프레이는 이 현실을 억지로 외면했으나, 결국 자이안을 또 위험에 처하게 둘 수 없다는 마음이 현실도피를 이겼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전화…… 받겠지?”

독약이라도 삼키듯 결사적인 표정으로 프레이는 전화를 걸었다. 우려와는 달리 신호음이 서너 번 반복되다가 곧장 전화가 이어졌다.

[으응? 으으으응~? 세상에, 이게 누구야? 하도 소식이 없어서 어디서 객사한 줄 알았던 아포칼립스잖아?]

스피커 너머로 하이톤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 알고 지낸 친우를 가볍게 놀리는 것 같은 허물없는 태도. 프레이는 턱 끝까지 올라온 한숨을 삼키고 더듬더듬 입술을 뗐다.

“지금 바쁘냐?”

[하하하. 바쁘냐고? 그야 바쁘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지이! 후처리고 책임이고 다 팽개치고 잠적한 누구랑은 달리 난 짊어진 게 많거든.]

통렬한 비난이었으나 정작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프레이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스피커 너머로 상대가 다시 말했다.

[이젠 좀 괜찮아졌어? 네가 직접 연락할 정도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해도 되지?]

“글쎄다.”

[헤에. 그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된 거 보니 괜찮아진 거 맞네. 다른 녀석들한텐 연락했어? 혹시 내가 처음이야? 만약 그러면 기쁜…….]

“미안. 마음은 알겠지만, 좀 급한 용건이 있다.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말만 해. 얼마든지.]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을 정리한 프레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펜던트가 재작동했어.”

잠시 뒤, 스피커 너머에서 무언가가 쓰러지고 무너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 * *

「자이안, 잠깐 멈춰 봐라.」

녹음으로 뒤덮인 평원을 가로지르는 가도를 당당하게 걷던 자이안은 걸음을 멈추고 머릿속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맥락 없이 던져진 화제에 자이안은 잠시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린 자이안이 이내 어벙한 표정이 됐다.

‘어…… 삼촌이 저한테요? 갑자기 누굴?’

「내가 전에 해준 지구 쪽 얘기들 기억하냐? 나와 나이아 말고도 최종 작전에 협력한 각성자가 세 명 더 있었다.」

‘공학의 신, 거신상, 성자 말씀이시군요.’

데우스 마키나, 아틀라스, 세인트.

영어나 라틴어도 없고 지구의 신화와도 무관계한 자이안에게 세 단어는 자동적으로 자이안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물론 그 말을 듣고 있는 프레이에게도 정상적인 지구 측 용어로 실시간 번역되어 전해졌다.

자이안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자 프레이는 장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금 갑작스럽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얼굴 한 번씩 봐야…….」

「저기이, 이제 들어가도 돼? 들어가도 되지? 들어간다?」

「뭐? 야 인마, 물어볼 거면 하다못해 대답을 먼저 듣고, 아니, 그니까 좀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미 문 열었고 반쯤 들어왔는데에? 다시 나갈까? 근데 그럼 더 어색하지 않을까?」

「……제길, 벌써부터 두통이 올라오네.」

프레이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호화로운 방으로 허락도 없이 들어온 인물은, 그동안 자이안이 그들에 대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성별이 반대였다. 간간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거침없이 막말을 꺼내는 프레이의 태도 때문에 남자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의를 닮은 흰 겉옷을 걸친 훤칠한 키의 여성이었다.

그것도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 정리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와 콧등에 아무렇게나 얹은 안경마저도 독특한 매력으로 승화시킬 정도로 대단한 미녀였다.

프레이 역시 나이에 비해 대단히 젊어 보였으나, 그녀는 과장을 좀 보태 20대로 보일 정도였다. 그의 동료라면 나이가 적지 않을 텐데, 각성자는 늙지 않는 건가? 자이안은 내심 놀랐다.

「네가 사전에 상의한 대로 움직일 거라고 믿은 내가 등신이지. 미안하다, 자이안. 이렇게 대뜸 소개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 꼴통은 그러니까…….」

「자이안!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훤하게 컸니?!」

‘네? 어…… 네?’

자이안은 잠깐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멍해졌다가,

“네?!”

아무도 없는 가도 한복판에서 혼자 기성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아, 아아아들이라뇨? 누구, 저요? 제가 당신 아들?”

「응응, 맞아! 내가 네 엄마란다! 맙소사, 이 목석이 아무 얘기도 안 해줬구나?」

“네? 어? 엥? 하, 하지만 제 어머니는 나이아 알코스라고…….”

「나이아는 사실 양모야.」

“네에에?!”

「내가 진짜 엄마란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양육을 나이아에게 맡겼지.」

“어법, 어버버버버버…….”

차례차례 밝혀지는 충격의 진실에 자이안은 잠시 말하는 법도 까먹었다. 잠시 자애로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여성이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야 이 꼴통아!」

그 순간 프레이가 여성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다.

「너는 인마, 해도 될 농담이 있고 하면 안 될 농담이 있지! 쟨 우리랑 다르게 순수해서 덥썩 믿는다고!」

「아파아! 자이안, 네 삼촌이 나 괴롭혀~.」

“네? 네? 하지만, 그게, 당신이 제 어머니시면 삼촌은 저랑 아무 관계도…… 아니, 그러면 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면 안 되고, 어…….”

「아하하하하! 귀엽네에. 어쩜 이렇게 리액션 하나하나가 귀여울까? 누가 봐도 나이아 아들 맞네.」

다시 웃기 시작한 여성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방금 그건 농담이었어. 유전자 검사를 할 수는 없으니 무작정 확신할 수는 없지만, 네 엄마는 정황상 나이아가 맞아. 나이아나 그 후손이 아니면 펜던트를 다룰 수 있을 리도 없고.」

“노, 농담…….”

자이안이 멍청히 그 단어를 따라 했다. 그제야 지금까지의 대화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 자이안은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삼촌.”

자이안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자기 잘못 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뒤늦은 자기변호였다.

프레이에 대한 자이안의 신뢰도가 좀 떨어졌다.

* * *

「믿기 힘들겠지만, 이 꼴통이 데우스 마키나다. 생각 없이 살기로는 나이아와 맞먹는 아주 대단한 꼴통이지. 보통은 나이아랑 구분하기 위해서 꼴통 2호라고 부른다.」

「잠까안, 숙녀한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아? 우리 자이안도 그렇게 생각하지?」

자이안은 그 말에 솔직히 동의할 수가 없어서 그냥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그를 빤히 바라보던 데우스 마키나가 갑자기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 쾌활하게 웃던 때와는 전혀 다른, 침착하고 포용력 넘치는 분위기였다.

「아들이라니…… 나이아가 이렇게나 멋진 선물을 남겨줬을 줄은 몰랐는데.」

아련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얘 말대로, 내가 데우스 마키나야. 인류 최고의 차원 물리학자고, 아티팩트 공학자고, 하는 김에 의사 면허도 가지고 있고,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펜던트의 어머니이고…… 저기이, 여기서 본명 말해도 될까? 보안에 안 걸릴까?」

「흥. 너도 오랜만에 보니 감이 죽었군. 이 방, 이 건물 전체가 내 영지다. 내 허락이 없다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그 어떤 짓도 할 수 없다. 내가 바로 아포칼립스다.」

「넌 여전히 중2병이 한창이구나. 응응, 동심을 잊지 않는 건 중요하지이.」

「중2병이 아냐. 정점에 이른 자가 갖춰야 하는 품격이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데우스 마키나가 다시 자이안을 바라보았다.

「아포…… 프레이가 괜찮다면 괜찮겠지이. 좀 모자라도 실력은 믿을 수 있으니까. 내 본명은 아르시아나야. 친밀함을 담아 아르스 이모…… 이모는 좀 별로다. 아르스 누나라고 부르렴.」

「야, 반백살. 나보다 6살 연상. 넌 양심이 없냐?」

「여자는 말이지이, 마음이 반짝반짝하면 언제나 소녀라고? 그리고 반백이 아니라 마흔아홉! 파릇파릇한 40대거든?」

「40대면 시커멓게 썩어문드히게뱝!」

섬광 같은 보디 블로가 프레이의 옆구리에 꽂혔다. 프레이는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에 쓰러졌다.

막역한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자이안은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프레이의 새로운 일면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는 밝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분 사이좋으시네요.’

「의사 양반. 자이안이 아무래도 시력에 문제가 생겼나 본데 전문적인 견해 좀 말해 봐라.」

「우리 자이안이 보는 눈이 있네에!」

「너도 제정신이……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우리 자이안’이라는 거냐? 남남 주제에.」

「지금 질투하는구나? 귀여워라아.」

“아하하.”

프레이는 부정했지만 자이안이 보기엔 역시 엄청 사이가 좋아 보였다.

「하루 종일 실없는 소리만 하다가 해 넘어가겠구만. 야, 공학자.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 그만 놀고.」

「그것도 그렇네에. 시간은 앞으로도 많으니까.」

헤실헤실하게 풀어져 있던 아르스가 미간을 꾹 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 순간 그녀가 두르고 있던 분위기가 돌변했다. 냉철한 이성과 무한한 탐구심,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의심으로 무장한 학자의 얼굴이었다.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공정을 시작한다.」

기계적인 말투로 아르스가 말한 순간, 그녀가 지금껏 매고 있던 금속제 백팩이 복잡한 구동음을 내며 펼쳐졌다.

내부에서 부품이 드러나고, 결합되고, 연결되며 삽시간에 전혀 다른 형상을 이뤘다.

이윽고 완전히 변형을 마친 그것은 흡사 금속으로 이뤄진 거미의 다리를 연상케 했다. 아르스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 기계장치의 다리들이 복잡한 궤도로 움직였다.

그 현상의 원리를 자이안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거 하나 들고 왔냐?」

팔짱을 끼고 심드렁하게 보던 프레이가 툭 말했다.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충분해.」

「그러냐. 네가 그렇다면 그게 맞겠지.」

아르스가 백의 안주머니에서 프레이가 가진 통신기와 똑같은 기기를 꺼냈다. 다리 하나가 기기를 넘겨받고, 이내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십 가닥의 다리가 쉴 새 없이 통신기와 접촉했다가 떨어졌다. 어떤 순간엔 창백한 스파크가 튀었고, 어떤 순간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나타나 복잡한 수식을 나열하다가 사라졌다.

아르스의 눈동자는 그 모든 광경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머릿속에 담았다. 동시에 해석을 병행했다.

「시간이 꽤 걸리는군.」

「펜던트 본체가 외계 차원에 있으니까. 통신기를 매개로 보안층을 허물면서 원격 접속을 시도하고 있어. 실물이 여기 있었다면 30초 안에 끝났을 거야.」

「그럼 어쩔 수 없지. 아, 자이안. 넌 갈 길 가라. 이건 네가 본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냐. 어차피 봐도 무슨 원리인지도 이해 못 할 거고.」

그제야 자이안은 꿈에서 깬 듯 흠칫하며 멈춰 있던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온전히 뇌리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프레이의 말대로 지금 그는 아르스의 작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 일련의 과정을, 그녀가 내뱉는 사소한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온전히 기억해놔야 했다.

그가 성장해 언젠가 둘의 발끝에라도 도달하게 됐을 때, 지금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머.」

얼마나 작업이 진행됐을까, 아르스가 갑자기 눈을 깜빡이며 맥없는 탄성을 터뜨렸다. 학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까 전과 같은 못 미더운 분위기가 돌아왔다.

숨을 죽인 채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프레이가 눈썹을 확 꺾었다.

「일하다 말고 뭔 짓이야?」

「그게…… 으으응~? 미안, 뭐가 잘못됐나 봐.」

「뭐 인마?」

그 순간 자이안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세차게 떨렸다. 그리고 셋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시지 박스가 나타났다.

[경고]

[중추 관리 영역에 대한 비인가 접근 시도를 감지]

[당장 모든 접근 시도를 중지할 것]

[지속적인 접근 시도 시 본 기기의 자폭 시퀀스가 작동할 것임]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얼어붙었다.

「야. 돌팔이 깡통.」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프레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 있던 아르스가 충격받은 얼굴로 홱 돌아보았다.

「돌……?! 그 말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데에?!」

「펜던트 네가 만든 거잖아. 자기가 만든 것도 못 다뤄서 자폭 스위치 건드릴 정도면 돌팔이 맞는데?」

「아닌데에! 난 잘못한 거 없는데에에! 펜던트가 이상해진 건데에에에!」

여태까지 장난스럽던 모습과는 달리 아르스는 떼쓰는 아이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지식이나 기술력을 폄하하는 것은 금기인 모양이다…… 라고 자이안은 현실감 없이 생각했다.

「칭얼대지 말고 원인이나 말해. 설마 그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모르면 데우스 마키나 반납해라.」

「누가 펜던트를 완전히 개조해 놨어. 말단부터 중추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아르스는 조금의 막힘도 없이 확정적인 어조로 물 흐르듯 답했다. 자이안은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했고 프레이는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거 같았다.」

「알면 얘길 해야지!」

「알려줘도 똑같을 거 같더라고.」

대답이 궁해진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프레이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며 한 번 손을 크게 휘저었다. 복잡하게 펼쳐진 기계 다리들이 순식간에 백팩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손에 든 통신기를 뚱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나이아가 그랬을 거야.」

「그렇겠지. 그 녀석 말고 다른 놈들은 네 기술의 반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프레이는 태평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혼자 아는 척하는 프레이가 얄미워진 아르스는 원망의 시선을 그에게 향했다. 그 순간 이번에는 자이안을 제외한 둘에게 메시지 박스가 나타났다.

[세이프티 서포터 ‘데우스 마키나.’ 이번 한 번만 봐주겠음]

[또다시 이런 불순한 행위를 시도하면 본 기기는 데우스 마키나를 블랙리스트에 등록하여 이후 모든 직접, 간접적 접속을 차단할 것임]

[앞으로는 현명히 행동하길 바람]

「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그녀가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메시지 박스 자체가 본래 펜던트에 없던 기능이었다. 사실 없던 기능이 생기는 것까진 놀랍지 않다.

인류 최고의 아티팩트 공학자인 아르스에게 무제한적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고, 천문학적 확률의 기적이 겹친 결과 간신히 탄생한 것이 펜던트니까.

제작자인 그녀도 펜던트의 모든 기능을 파악하지 못했고 같은 조건, 같은 공정으로 작업해도 재현할 자신이 없다고 공언한 오버 테크놀로지였다.

그러니까 몇 년 못 본 사이에 없던 기능이 생기는 것까진 크게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는 않은데…….

「얘 왜 이렇게 건방져? 꼭 자아라도 가진 것처럼.」

그게 문제다. 완전한 인공지능―에고 아티팩트는 몬스터 재해를 극복하며 폭발적으로 발전한 지구의 기술로도 도달하지 못한 꿈의 영역이었다. 그걸 손바닥만 한 펜던트 안에 이룩한 것이다.

프레이는 대답 대신 이마만 탁 짚었다. 무책임한 몸짓에 아르스는 인상을 썼다. 그리고 조용히 둘의 대화를 경청하던 자이안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흠.」

병렬 사고로 자이안의 주변을 탐지하고 있던 프레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소란스럽구만. 싸움이라도 났나?」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

자이안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물은 금속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이안의 지식이 옳다면, 분명 인간들끼리 싸우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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