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나쁜 일 (1) (12/210)


12화 나쁜 일 (1)
2022.10.15.


자이안이 괴멸된 요새를 발견하고 막 국경을 넘었을 무렵과 비슷한 시기.

“행방불명…… 이라고요?”

심복의 보고를 전해 들은 미오네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왕가의 일원에게만 그 존재가 은밀하게 전해지는 첩보 조직, 통칭 ‘그림자 부대’를 12명이나 사용한 임무다.

그것도 그녀의 직속 수하가 아니라, 국왕에게 부탁해 인원을 빌린 것이다. 실패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예정이 한참을 지났는데도 성공 보고가 전해지지 않고, 미오네가 따로 첩보원들을 꾸려 조사해보니 그림자 12명은 전원 행방불명. 정황상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중요한 자이안은 다행히 시체가 발견됐지만, 재차 조사해보니 사실 자이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란다. 미오네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부인,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이…….”

미오네는 오늘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심복의 보고를 들은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기함했다.

“마물이요?!”

“고블린 무리로 보이는 흔적이 다수. 그리고 정체불명의 대형 마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과도한 정보의 홍수에 미오네는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얼어붙었다.

생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각을 고속으로 정리할 때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만 보여주는 독특한 버릇이었다.

“국왕 전하께 보고드릴 준비를. 과장이나 추측 없이 사실만을 그대로 간결하게 전해야 해요.”

“그림자들의 행방이나 자이안의 생사도 말씀이십니까?”

미오네가 다시 입술을 씹었다.

마물이 발호하는 광활한 숲에서 16살의 소년이 살아남아 탈출할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하리라. 그러나 미오네는 그럴 수 없었다.

알레프 백작가라는 낡았지만 강력한 무기를 후환을 남기지 않고 온전히 왕가의 손에 넣기 위해서, 그녀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됐다. 추적대를 만들어 확실히 숨통을 끊어야 한다.

문제는 일리움 국왕 시모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시모스 왕은 자이안의 생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국외로 유배시켜 알아서 시름시름 앓다 죽어도 좋고, 혹시 죽지 않고 버틴다 쳐도 제깟 게 뭘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안일한 생각이야. 만에 하나 자이안이 살아있다면? 인간은 한 번 받은 악의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생물이야. 자이안이 암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기억한 채로 살아남는다면, 그래서 그 괴물 같은 재능을 복수를 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다면…….’

그러나 청년기에 겪은 치열한 계승권 다툼의 여파로 의심증이 도지고 만 시모스 왕을 설득하는 건 가족인 미오네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국왕에게서 빌린 그림자가 모조리 사라진 것도 치명적이었다. 타인을 믿지 않는 시모스 왕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이들이 바로 그림자 부대였으니까.

설득이 문제가 아니라 처벌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미오네가 독단으로 추적대를 꾸리기에는 전력이 모자랐다.

16살의 소년을 추적하는 것뿐이라면 지금 가진 전력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고블린은 물론이고 정체불명의 대형 마물이 발호하는 숲을 수색해야 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내가 모르는 치명적인 변수가 있는 게 분명해. 조력자? 자이안에게 내가 모르는 조력자가 있었나? 말도 안 돼.’

그런 변수가 없도록 미오네는 자이안을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백작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행해야 했지만, 정작 백작 본인이 저택에 머무는 날보다 없는 날이 훨씬 많은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 아이의 인간관계는 철저히 조율했어. 악의를 집중시키고, 선의를 끊었어. 희망을 잃지는 않도록 실낱만큼은 남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러면 뭐지? 그냥 마물의 짓? 우연?’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갔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녀는 입술이 찢어져 피가 맺힐 즈음에야 따끔한 고통을 곱씹으며 입을 열었다.

“……추격은 포기하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몰라서 묻는 거예요, 토리안? 당연히 안 괜찮죠! 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어깨를 늘어뜨리고 길게 한숨을 쉰 미오네가 잠시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밝고 명랑해 보이는, 스물셋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앳된 얼굴이 나타났다.

“별일이야 있겠어요? 우선 한시라도 빨리 전하를 뵈어야겠으니 채비를 해주세요. 백작께도 기별을 넣어 주시고요. 아, 정보 통제도 부탁해요. 자이안이 생사불명이라든가 하는 비슷한 소리라도 각하의 귀에 들어가선 안 돼요. 절대요!”

“이미 손을 써 뒀습니다. 백작 각하께는 자이안의 마차가 무사히 국경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훌륭해요. 내가 직접 택한 나의 그림자, 언제나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그게 그림자의 의무니까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환담을 나누며 미오네는 방을 나섰다. 심각하게 고민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작고 사소한 오차가 큰 불씨로 번질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일에 완벽성을 추구하는 미오네의 성격 탓에 오래 고민하게 되었을 뿐.

‘죽어도 그만, 살아있어도 그만.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쇠약증이 그 아이의 몸을 좀먹겠지.’

나이아, 그 눈부신 여자조차 극복하지 못한 병을 어린 소년 혼자서 어찌 극복할 수 있을까?

* * *

일리움 왕국, 최서단.

그곳에 인류 최후의 보루가 있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황무지. 그리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마물.

인간이 살 수 없는 땅. 인간이 허락되지 않은 피와 죽음의 땅.

마가 깃든 땅. 통칭 복마전.

알레프 백작가는 대대로 바로 그 복마전으로부터 일리움을, 나아가 인류를 수호하는 의무를 짊어졌다. 때문에 ‘변경백’이라는 작위는 오직 일리움의 알레프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경지대에서 외적을 막는 역할을 맡은 백작도 그냥 백작이라 불렀다. 적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과 마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것은 그만큼이나 무게가 달랐다.

이는 또한 왕국에 불과한 일리움이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열강이며 불가침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땅을 침공해 국력을 약화시킨들 이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공멸을 부추길 뿐.

그러나 정작 백작가가 누리는 권력은 그 명성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정확히는, 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왕가를, 그리고 일리움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배신이 곧 인류 전체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리움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백 년간, 일리움은 알레프의 충정을 치하하고 그들의 책무를 존중했으며 결코 부당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일리움이 불가침으로 여겨지듯, 일리움과 알레프 역시 불가침의 관계였다.

그 균형이 깨진 것은 수년 전이었다. 나이아가 죽고, 자이안에게 쇠약증이 발병하고, 백작과 미오네가 재혼한 바로 그때.

오랜 시간 균형을 이뤘던 신의의 평형추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땡땡땡땡땡땡!

“제2종 마물 경보! 반복한다! 제2종 마물 경보!”

접경지대에서 벌어지는 마물의 습격은 인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지 위에 경계를 긋듯 길게 늘어선 성벽. 그 중간지점에 지어진 요새에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쉬고 있던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전투를 준비했다.

“적 규모 보고! 추정 오크 14! 고블린 110! 코볼트 50! 샐러맨더 2! 이상!”

“샐러맨더?! 지랄 났네! 그게 왜 2종이야! 3종보다 더 빡세겠다!”

“전 교범대로 보고했습니다! 교범이 불만이면 저 말고 백작가에 따지십쇼!”

“미친놈이 선임 기사를 먹이려 드네?! 파라몬드네 경, 저놈 며칠 좀 풀어줬더니 저렇게 기어오릅니다!”

“둘 다 아가리 닫고 손이나 빨리 움직여! 곧 백작님 오신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셈이냐!”

전쟁과도 거친 같은 시간이 지나고 모든 병력이 제 위치에 도열했다. 제2종 대응 병력, 총원 450명.

그들 중 오늘은 몇 명이나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따위를 걱정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명실공히 대륙 최강의 기사단이기 때문이다.

“제군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맨 앞에, 대륙 최강의 무인이 언제나 앞장서기 때문이다.

“얼른 쓸어버리고 들어가서 발 닦고 쉬자. 점심 먹다가 뛰어나와서 지금 배고프다.”

-워어어어어어어―!

맥 빠지는 연설이었으나 반응은 극적이었다. 격렬하게 솟구진 사기 때문에 성벽 주변의 공기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올해 마흔하나. 이제 노장이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알레프 백작은 껄껄 웃으며 위풍당당하게 등을 보였다.

접적(接敵)까지 약 350미터. 백작은 거추장스러운 투구를 벗어 던지고 두 손에 각각 펄션과 메이스를 들었다.

길게 한 호흡.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육중한 거구가 한층 더 터질 듯이 부풀고, 갑주 틈새로 희푸른 빛이 치직거리는 파열음을 내며 번뜩거렸다.

다음 순간, 벼락이 수평으로 달렸다.

오랜 시간 단련한 무술과 그가 가진 특수한 마법 적성을 융합시켜 만들어낸 전투술.

전신에 벼락을 두르고 빛살처럼 전장을 누비며 적진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오직 알레프 백작 페르지오 알레프만을 위한 기술.

투구를 벗어 던진 이유는 시야가 좁아져 속도를 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이고, 펄션이나 메이스 같은 투박한 무기를 쓰는 이유는 쉽게 망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호사가들은 그 모습을 ‘살아 움직이는 푸른 벼락’이라고 일컬었다.

“뛰어라! 더 빨리 뛰어! 백작님께 뒤처지지 마라! 오늘 백작님보다 마물 덜 잡은 놈들은 추가 훈련일 줄 알아라!”

“갸아아악! 나발리오프 경이 직권 남용한다!”

“백작님한테 다 이를 겁니다아악!”

신화의 한 장면을 오려낸 것 같은 백작의 무위에 뒤따르는 기사단의 사기가 하늘을 뚫을 듯했다. 곧 두 진영이 맞부딪치며 대규모 접전이 벌어졌다.

고블린 등 하위 몬스터를 평기사 2~3명이, 강력한 몬스터인 오크를 소대장급 이상의 숙련된 기사 1~2명이 마크하며 철저하게 수의 우위를 유지하는 전술.

샐러맨더 2마리라는 변수가 존재했으나 백작이 이를 전담했다. 덕분에 기사단은 안정적으로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샐러맨더 2마리를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펼치고 있는 백작은…….

‘자이안 녀석, 이미 국경을 넘었으려나.’

딴생각이 한창이었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병에 걸리진 않았겠지? 힘들어도 내색을 않는 고집스런 놈이니……. 역시 하인을 더 붙였어야 했어. 하지만 그랬다간 미오네가 무슨 트집을 잡았을지.’

푹 한숨을 내쉬면서도 백작의 몸은 일말의 오차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이윽고 샐러맨더 한 마리가 쓰러지고, 동시에 펄션의 날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백작은 부러진 무기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발이 걸려 쓰러진 기사를 급습하던 오크에게 펄션이 날아가 박혔다. 백작은 그 모습을 보지도 않고 남은 한 마리와 대치했다.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 되겠지만…… 잠깐만 참거라, 자이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다시 가문으로 데려오마.’

이 또한 시련이리라. 더 크고 숭고한 뜻을 위한 시련. 그렇게라도 여기지 않으면 아마 백작은 오래전에 참을성이 바닥났을 것이다.

미오네, 그리고 그녀를 위시한 왕가가 무슨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오네가 자이안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그녀가 백작이 부재중인 동안 저택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 다는 아니더라도, 백작 역시 어느 정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간신히 여유를 내 저택에 돌아갈 때마다 상황을 확인했고, 백작 나름대로 정보통도 있었다.

복마전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자식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보다 더 크고 많은 목숨을 선택해왔다.

‘아버지로서는 별로라고…… 그 녀석이 그렇게 말했던가.’

자이안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항상 예의 바르던 아들의 직설적인 말에도 놀랐지만, 그 말이 통렬하게 진실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더 놀랐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못난 아버지였다.

그러나 못난 아버지일지언정, 아직 아버지임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참았다, 미오네. 네가 바라는 대로 그 아이를 내쫓았다. 이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타협이다. 이제 만족하느냐? 만족했기를 바란다. 만약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그 아이에게 더러운 손을 뻗는다면…….’

푸른 전광이 굳게 틀어쥔 주먹을 감쌌다. 갑주 틈새로 새어 나오던 섬광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더니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거칠게 방전하며 살아 움직이는 푸른 벼락 그 자체로 화한 그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목덜미를 붙잡힌 샐러맨더가 불을 뿜으며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

‘너희들이 오랫동안 이어진 신의를 그저 관행으로만 여기고 이를 저버린다면.’

콰아아앙!

내리꽂힌 주먹이 샐러맨더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커다란 턱이 지면에 처박히고, 뒤이어 놈의 온몸이 처참하게 터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와 살점은 페르지오를 감싼 전광에 닿은 순간 불타 사라지며 조금도 그를 더럽히지 못했다.

‘알레프가 일리움을 배신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의무를 저버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가장 먼저 깨닫게 될 것이다.’

왕가는 자신들이 목줄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알레프 역시 그동안은 얌전히 목줄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알레프가 그 목줄을 언제든지 끊어낼 수 있음을, 왕가는 아직 모른다.

페르지오 알레프.

살아있는 인류의 수호자인 그가 단순한 아버지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 * *

웨코스 공화국은 대륙 서남부 반도 지형에 위치한 나라다.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대해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리적인 특성 덕분에 어업과 해상 무역이 크게 발달했다.

유일하게 내륙으로 통하는 북쪽으로는 프린젠타티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두 나라는 오래전부터 상부상조하며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지키는 병력은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허술한 편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표현이며, 특히 밀입국자에 한해서는 주위 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격한 처벌을 가하기로 유명하다.

「즉 여기가 최종 보스라 이거지?」

탁 트인 가도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위.

교묘하게 몸을 숨긴 채 자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몰래 지나가긴 어렵겠네요.”

은 개활지다. 하늘이라도 날아서 통과하는 게 아닌 이상은 무슨 수를 써도 눈에 띄고 만다. 웨코스 공화국은 기상천외한 신기술의 발상지로 유명하니 어쩌면 하늘을 감시할 수단 역시 존재할지도 몰랐다.

「힘으로 뚫고 가기엔 숫자가 많은걸.」

“웨코스는 밀입국자한테는 굉장히 민감하니까요. 어떻게 힘으로 뚫고 넘어가도 지옥 끝까지 쫓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이상한 나라구만.」

“저도 소문으로 듣기만 한 거라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조금만 수상해도 가차 없이 입국 신청자들을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면 마냥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마차 여러 대를 끌고 있는 대규모 행상이 애걸복걸하며 매달려도 요지부동이었다.

「어쩔 거냐? 우회할까?」

“국경 전체가 개활지라 어디로 우회해도 눈에 띌 겁니다.”

「호오. 잠입도 안 돼, 우회도 안 돼, 힘으로 뚫고 가지도 못해? 막혔잖아?」

“그래서 말인데요, 삼촌. 좋은 방법 없을까요?”

「얼씨구. 이럴 때만 삼촌 찾냐? 내가 그렇게 쉬운 남자로 보여?」

“에이, 그래서 저 안 도와주실 거예요?”

「……기다려 봐. 생각 좀 하게.」

약 1시간 뒤.

“흐아아암. 오늘따라 한가하구만.”

“그러게. 재미없게 밀입국자도 안 보이고…… 어, 잠깐. 누구 온다. 한 명인가? 어린애 같은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아?”

가도 너머에서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척 보기에도 공포에 질린 안색이었다.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긴장했다.

“으아아아아! 기사님, 기사님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달려온 자이안이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마물, 마, 마물이 나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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