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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숲속의 작은 마을 (3) (10/210)


10화 숲속의 작은 마을 (3)
2022.10.13.


피난 이틀 차.

“후우.”

뺨에 달라붙은 마물의 체액을 닦으며, 자이안은 작게 한숨을 뱉었다.

‘마물의 숫자가 제법 줄어든 것 같은데.’

민간인 무리가 숲속을 이동하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지난 며칠간 혼자 이동할 때보다 마주친 마물의 숫자가 훨씬 적었다.

「그동안 솎아내기를 한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군. 고블린이라고 해도 무한정 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반대였다. 고블린은 일정 숫자까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한도 이상으로 늘어난 뒤에는 먹이가 바닥나 아사하며 다시 급격하게 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고블린의 소화기는 식물을 소화하지 못한다. 근방의 야생동물이 씨가 마르는 순간 놈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숲에 이상할 정도로 야생동물이 없었던 것 자체가 그 징조였다.

「이제 큰 놈이 움직이기 전에 여길 빠져나갈 수 있으면 완벽한데 말이다.」

“큰 놈이라면…….”

국경 요새를 파괴한 마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자이안은 정체불명의 적의 위협을 상상하며 표정을 굳혔다.

자이안 혼자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노인에 여성, 아이까지 섞인 농민 집단의 이동속도가 빠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 속도로도 사나흘 안에는 숲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것.

“마물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어서 움직이죠.”

근방에 마물 냄새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자이안이 촌장에게 돌아갔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려 섞인 눈으로 자이안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괜찮으냐?”

“옷이 좀 더러워지긴 했습니다.”

“갈아입을 옷은 얼마든지 있다. 사양 말고 말하거라.”

마을 사람들과의 심적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경계심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강했다.

그들 눈에는 거침없이 마물을 참살하는 자이안 역시 괴물의 일종으로 보였다.

그래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촌장과 네이트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해준 덕분에 자이안은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지킬 수 있었다.

「무법자 마을의 촌장으로 있긴 아까운 영감이야. 저런 사람을 곁에 두고도 폭정을 일삼았다는 그 영주가 차라리 존경스럽구만. 내 앞에 보이면 내가 아주 예뻐해 줄 텐데.」

무법자.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였으나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나라가 정한 규율의 테두리를 벗어나 도망친 것은 사실이었으니.

게다가 기사단장이 영주를 배신했다는 건 일종의 반역이었다.

‘무법자라뇨. 좋은 단어들 놔두고 하필……. 잘못한 건 이분들이 아니라 법이에요. 제대로 된 나라라면, 지도자라면 그들에게 죄를 물어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된 나라였다면 사람들이 도망치지도 않았겠지. 영주가 폭정을 일삼지도 않았을 거고.」

가차 없는 정론에 자이안은 말문이 막혔다. 프레이는 쓰게 웃으며 그를 타일렀다.

「체제와 규율이 항상 올바르고 선하게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올바름은 맹목적인 믿음보다 끝없는 의심을 통해 연마되고, 마침내 빛을 발하는 거다. 자이안. 사람을, 사람의 선함을 무작정 의심하고 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갑자기 프레이가 말을 멈췄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시 의아해하던 자이안도 곧 얼어붙은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가까운 곳에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마을 사람들을 인도하던 촌장이 속도를 늦췄다. 자이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빌어먹을.」

프레이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그러나 대부분이 너무 늦어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남은 시나리오는 하나뿐이었다.

「큰 게 온다, 자이안. 지금이라도 도망친다면…….」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쿵, 쿵, 쿵! 둔한 울림이 먼 곳에서부터 똑바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동시에 냄새가,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강대한 마물의 냄새가 확 끼쳐왔다.

“모두 도망쳐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몸을 숨기세요!”

두꺼운 나무들이 굉음과 함께 쓰러지고,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움집 몇 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거대한 마물이었다.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거대한 적을 눈앞에 두고, 그러나 이어진 자이안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최우선으로 할 일은 놈의 주의를 끄는 것. 사람들이 안전하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섬광처럼 휘둘러진 칼날이 놈의 가슴팍을 때렸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 손바닥에 전해지는 바윗덩이를 후려친 듯한 감촉.

‘공격이 통했다’라고 표현하는 건 어폐가 있지만, 자이안은 만족했다. 형형하게 번들거리는 놈의 두 눈알이 자이안을 향했다.

「코카트리스! 하필 가장 귀찮은 놈이!」

마물의 모습을 확인한 프레이가 탄식을 터뜨렸다. 코카트리스, 닭의 머리와 수각류의 몸을 가진 기묘한 형태의 마물.

지구에서 전해지는 전설과 일치하는 몇몇 특징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전차를 방불케 하는 강력한 육탄돌격. 눈에 힘을 집중해 생물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

발톱에서 분비되는 마비 독에, 조금만 들이마셔도 내장을 녹여버리는 맹독성 숨결까지. 자이안이 여태까지 싸운 고블린과는 차원이 다른 놈이었다.

요새에 시체는커녕 핏자국조차 없던 이유도 분명해졌다. 코카트리스는 인간을 사냥할 때 마안과 숨결로 일단 목숨을 끊어놓고, 체내까지 완전히 돌로 만든 다음 쿠키처럼 쪼개 먹는다.

‘승산이 있을까?’

지금까지 자이안은 프레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다. 어쩌면 이번에도 기적을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냉정하게 계산해 봐도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코카트리스는 지구 기준으로도 강력한 마물이지만, 약점만 알면 죽이기는 의외로 쉬운 편이니까.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승산은 실낱같이 가늘었다.

결국 프레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허튼 생각을 몰아냈다. 확실한 길을 놔두고 어렵게 갈 필요가 없었다.

「기회를 봐서 나를 소환해라. 네가 쓰러뜨리기엔 버거운 놈이다.」

소리를 내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자이안은 코카트리스의 맹공을 견디며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절대 놈의 시선에 정면으로 닿지 마라. 코카트리스의 눈은 생물을 석화시킨다. 눈에 힘을 담아 대상을 약 1초 정도 직시하는 게 조건이다. 발톱도 피해. 마비 독이 묻어있어서, 피부에 닿기만 해도 위험하다.」

프레이의 조언을 자이안은 충실히 따랐다. 항상 적의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는 각도로 움직이고, 발톱을 이용한 공격은 최대한 안전거리를 두고 피했다.

체력과 정신력이 동시에 깎여나가는 공방을 나누며 수십 초 경과했을 무렵, 간신히 펜던트에 손을 가져다 댈 만한 틈을 발견했다. 자이안이 재빠르게 소리쳤다.

“아포칼립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잠시 방심한 자이안의 눈앞에 두꺼운 꼬리가 맹렬한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검을 수직으로 세워 막은 순간 강렬한 충격이 자이안을 덮쳤다.

포탄처럼 날아간 그의 몸이 거세게 나무에 부딪혔다. 끊어질 뻔한 의식을 간신히 다잡은 자이안은 급히 몸을 굴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께에에에엑!

코카트리스가 괴성을 지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왔다. 처음 마주쳤을 때 두꺼운 나무들을 수수깡처럼 쓰러뜨렸던 그 돌격이었다. 자이안은 필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이런 제기랄! 뭐야? 왜 갑자기 소환이 안 되는 거지? 소유자가 죽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니까, 긴급 소환 조건은 충족했을 텐데?」

[긴급 소환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습니다. 세이프티 서포터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세이프티 서포터 정규 소환을 위한 MP 축적량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현재 축적량……33.221%]

별안간 프레이의 눈앞에 반투명한 문장이 나타났다. 상상도 못 한 그 메시지에 프레이의 표정이 굳었다.

「뭔 개소리야!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가 조건이냐고!」

프레이가 격앙했다. 그러나 펜던트는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묵묵부답이었다.

프레이를 비롯해 펜던트에 등록한 각성자, 세이프티 서포터를 소환하는 기능은 대량의 MP를 소모하는 만큼 남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인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사용 가능한 긴급 소환 기능만은 예외였다. 예외여야 했다.

그게 펜던트의 존재 의의였으니까. 지금처럼 멋대로 메시지를 보여주며 소환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쥐어뜯은 프레이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자이안은 아직 싸우고 있었다. 한 번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침착하게, 전과 다르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에서 ‘포기’라는 글자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레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이안. 도망치자.」

그제야 자이안은 그런 수단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서운 공격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자이안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놈은 제가 도망치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설령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다음엔 마을 사람들이 죽겠죠.”

프레이는 독약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동의했다. 이미 적잖이 놈의 신경을 긁어 놨다. 지금 도망쳐도 놈은 지옥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도망칠 거였다면 아예 놈의 접근을 알아차렸을 때 그래야 했다.

「이런…… 빌어먹을!」

코카트리스. 분명 강력한 마물이다. 그러나 프레이에게는 손짓 한 번에 태워버릴 수 있는 놈에 불과했다. 크게 걱정하지 않은 건 그래서였다.

죽지만 않고 그를 소환할 수 있으면 된다. 힘든 싸움이겠지만, 자이안은 빈틈을 노려 프레이를 소환할만한 실력은 있었다.

설령 크게 다치더라도 남아있는 포션으로 치료하면 된다. 마물은 프레이가 죽이면 된다.

그러나 소환이 실패하면? 모든 전제가 무너진다. 프레이는 또다시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한다. 오래전, 그의 하나뿐인 가족이 사지로 향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까지는 나이아의 죽음에 초탈한 듯, 태연한 듯 행동했다. 조카 앞이었으니까. 어른인 자신이, 제 길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심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만신창이였다. 어쩌면 자이안보다도 더욱.

나이아를 구하지 못하고, 막지 못하고 무력하게 떠나보내야만 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씻겨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내가…… 내가 너를 강하게 윽박질렀더라면. 화전민 마을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제 갈 길이나 가라고, 그랬더라면…….」

프레이의 눈빛이 흐려졌다. 눈앞의 광경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삼촌. 그런 말씀을 하시면 화낼 겁니다.”

자이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놔두면 죽을 게 뻔한 사람들을, 어쩌면 제 손으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무시하고 그냥 가라고요?”

「네가…… 네가 그렇게 해서 살 수 있다면.」

“제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삼촌은 제가 정말 그런 짓을 하기를 바라세요?”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던 프레이가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지금 표정을 자이안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한심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표정일 게 뻔했다.

반면 자이안은 신기한 기분이었다. 뿌옇게 안개가 낀 의식이 선명해지고, 안개 속에 길게 뻗은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념의 길.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길.

“삼촌, 도와주세요.”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는 올곧은 목소리. 프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가 정말 살기를 바라신다면. 진정한 의미로 제가 살기를 바라신다면. 도와주세요.”

프레이의 얼굴이 울듯이 일그러졌다.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그 모습은 문득 과거의 어떤 광경을 떠오르게 했다.

“제가 이 마물을 쓰러뜨릴 수 있게. 여기서 꺾이지 않게. 제가 모두를 구하고, 저 자신에게 떳떳해질 수 있게.”

긴 숨을 뱉은 프레이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흘러넘친 감정을 다시 그러모아 가슴속에 눌러 담았다.

「자이안. 조언을 내리마.」
 

* * *

몸이 무겁고 시야가 흐릿했다. 언제 지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그 인식과는 반대로 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의식도 번뜩이는 칼날처럼 선명했다.

「모든 마물의 약점은 다 똑같다. 심장과 뇌. 생물과 다를 바가 없지. 중요한 건 마물의 단단한 몸을 어떻게 무력화시키느냐, 혹은 단단하지 않은 약점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프레이의 조언을 되새기며 몸을 움직인다.

‘여기서, 왼쪽.’

약 45도 각도 반보 앞.

상반신을 회전시키자, 방금 전까지 심장이 있던 위치를 날카로운 발톱이 꿰뚫는다.

「비늘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앞으로 세 번.」

카앙! 칼날이 쇳소리를 내며 코카트리스의 겨드랑이를 때린다.

「두 번.」

칼이 튕겨 나가는 반동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린다. 꼬리가 맹렬한 소리를 내며 눈앞을 스친다. 짧게 들숨.

놈이 자세를 추스르는 찰나의 틈을 파고든다. 칼끝이 비늘을 긁었다.

「조바심 내지 마라. 일단 방어에 집중해.」

프레이의 조언은 절묘하고 정확했다. 마치 수 초 뒤의 미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자이안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방어에 집중하자 기회는 금세 다시 찾아왔다. 빈틈이 큰 공격을 피하고, 몸을 비틀며 사선 베기.

「마지막!」

심장과 가장 가까운 비늘 몇 개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떨어졌다.

「됐어. 이제 비늘이 벗겨진 틈을 노려 심장을 찌르기만 하면 된다!」

-끼에에에엑!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몸에 약점이 생겼음을 알아차린 코카트리스가 사납게 울부짖었다. 놈의 공격이 비할 수 없이 거칠어졌다. 자이안은 다시 수세에 몰렸다.

‘승산이…… 있다. 분명해.’

프레이는 초조를 억누르며 전황을 주의 깊게 살폈다. 실낱처럼 가느다란 승산이었으나, 자이안은 초월적인 집중력으로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프레이가 승산을 확신하게 된 이유는 자이안의 집중력 말고 또 있었다. 아포칼립스의 수많은 권능 중 하나, 모든 에너지의 흐름을 읽는 ‘힘의 마안’이 그의 눈을 황금빛으로 불태웠다.

‘잉여 MP를 흡수하고 있다. 자이안의 높은 MP 흡수 비율이, 펜던트의 보조를 받아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했어.’

코카트리스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마물은 그만큼 많은 MP를 품고 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체외로 자연 배출된다.

마물은 이렇게 배출한 잉여 MP를 재활용해 스스로를 강화한다. 상위 마물이 특히 위험한 이유다.

본래 각성자는 잉여 MP를 이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이안은 놈이 배출한 잉여 MP 중 일정량을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코카트리스는 조금 더 약해지고, 자이안은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강해졌다.

「초조해할 필요 없다.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거다.」

자이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빈틈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마물도 필사적이었다.

놈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칼날이 잘못 박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틈을 만들어야 해.’

프레이의 조언과는 별개로 자이안의 머리도 끊임없이 회전했다. 더 큰, 치명적인 빈틈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공격을 유도해야 했다.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약점을 드러내야 했다. 놈이 공격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예를 들면…….

‘석화에 당한 시늉.’

-케에에엑!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순간 자이안은 놈의 의식이 집중되도록 왼팔을 내밀었다. 피부가 두꺼워지는 듯한 느낌도 잠시, 왼손 전체의 감각이 빠르게 사라졌다.

「자이안! 안 돼! 제발!」

프레이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자이안의 집중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자이안이 코카트리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코카트리스가 입을 크게 벌렸다. 프레이가 다시 한번 다급히 소리쳤다.

「맹독성 숨결이다!」

그 순간 자이안이 거리를 좁혔다. 놈이 맹독을 뱉기 위해 숨을 모으며 무방비해진 지금이야말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자이안이 돌처럼 굳은 왼팔을 휘둘러 놈의 턱을 후려쳤다. 동시에 놈의 심장에 깊숙이 칼을 꽂고, 단단한 몸을 박차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께에에에에엑!

처절한 비명과 함께 놈이 녹황색 안개를 뱉었다. 잠깐이라도 지체했다면 그대로 맹독의 안개에 휩쓸렸을 것이다.

최대한 거리를 확보한 자이안은 나무 기둥에 반쯤 몸을 기댄 채 놈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쏟아진 안개가 놈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심장에 박힌 칼자루는 물론 놈의 비늘까지 녹이기 시작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자기 맹독에 대한 면역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내 거체가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힘없이 뽑힌 갈기와 반쯤 녹아내린 비늘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케…… 에…… 흐르르륵…….

흐린 단말마가 마지막으로 부리 틈으로 흘러나왔다.

“이겼…… 나?”

자이안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프레이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주 잘했다. 이 망할 자식아.」

그 말에 뒤늦게 실감이 찾아왔다.

“이…… 이겼다아아…….”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자이안의 몸이 그 자리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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