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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숲속의 작은 마을 (2) (9/210)


9화 숲속의 작은 마을 (2)
2022.10.12.


도통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며 오솔길을 걷기를 약 10분. 나무가 듬성듬성해지고 마을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작고 초라한 마을이었다.

집들은 비바람이라도 좀 몰아치면 날아갈 것 같은 허술한 움집이었다. 마을 주위를 둘러싼 목책도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숲이라는 위험한 곳에 지어진 마을치고는 너무 허술했다.

‘역시…… 나라의 관리를 받는 마을이 아닌 것 같아요.’

마주치자마자 울면서 도망친 아이도 그렇고, 교묘하게 숨겨진 진입로도 그렇고.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면서 본, 불에 탄 듯한 토지의 흔적이 결정적이었다. 대륙 어디에도 화전을 장려하는 나라는 없다.

“엄마아아~ 아빠아아!”

품에 매달려 있던 아이가 쪼르르 내려가더니 마을 안쪽으로 달려갔다. 곧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자이안은 마을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외지인이 무슨 볼일이냐! 여긴 너 같은 놈들 따윈 필요 없다! 알아들었으면 썩 꺼져버려!”

목책 너머에서 낡은 농기구를 창처럼 두 손으로 쥔 남자가 사나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자이안은 잠시 망설였으나 이윽고 마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모인 사람들 사이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마을의 촌장입니까?”

“촌장……은 아니다.”

“촌장을 불러주세요.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촌장은 지금…… 그,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꺼지라고 했잖아!”

남자가 다짜고짜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설마 공격당할 줄은 몰랐던 자이안이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한 순간 프레이가 말했다.

「피하지 말고 가볍게 붙잡아라. 어려울 거 없잖아.」

프레이의 말이 맞았다. 피하려 한 건 훈련에 의한 조건반사일 뿐, 숲에 숨어 사는 화전민이 던지는 돌멩이는 자이안에게 아무 위협도 되지 않았다.

자이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돌멩이를 붙잡자,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주춤거렸다.

‘……괜히 겁준 것 같은데요?’

「차라리 그게 나아. 겁이라도 안 먹으면 얘기를 들을 생각도 않을 거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납득한 자이안이 재차 말했다.

“근처에 마물이 나타났습니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정말이에요. 언제 놈들이 여기를 알아차릴지 모릅니다. 당장 도망쳐야 해요.”

“거짓말하지 말랬잖아! 이, 이놈, 영주의 첩자구나! 우, 우릴 속여서 붙잡아다 옥에 가두려는 걸 모를 줄 알고!”

“아빠! 떽!”

갑자기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자이안이 구했던 소녀였다. 그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차림의 아이가 소리를 지르던 남자의 등에 올라타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 아저씨 거짓말 안 했어!”

“네이트?! 아야, 어억, 자, 잠깐 좀 내려와서…….”

“나도 봤단 말야! 이상하게 생긴 괴물! 죽을 뻔했는데 저 아저씨가 구해줬어!”

“하, 하지만, 네이트…….”

“떽!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봐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아니…… 하지만…… 이건…… 미안.”

“엄마한테도 사과해! 엄마 말 안 들었잖아!”

「흐하하. 꼬마애가 큰일 한번 하는구만.」

조금 전까지 팽팽하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다 큰 어른이 아이에게 혼나는 훈훈한 광경을 보며 프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외지인이 왔다고?”

“촌장!”

날 선 분위기가 누그러진 가운데, 안쪽에서 초로의 남성이 걸어 나왔다. 하얗게 센 머리와 깊게 새겨진 주름이 살아온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은 자세와 단련된 근육은 어지간한 젊은이보다도 더 활력적으로 보였다.

“외지인이라더니…… 어린애? 그것도 한 명? 지금 애 하나가 무서워서 우르르 몰려나온 게야? 이런 미련한 놈들.”

가까이 다가온 촌장이 김샜다는 듯 말하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노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이 움찔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프레이가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화전민 마을에서 촌장이나 맡을 사람이 아닌데?」

자이안도 내심 그 말에 동의했다. 때마침 촌장이 날카로운 시선을 자이안에게 향하며 물었다.

“오는 길에 얼핏 들어보니 마물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게 사실이냐?”

그가 위압적으로 말하며 다가왔다. 가까이서 마주한 촌장은 자이안보다 거의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자이안은 의식해서 등을 펴고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구먼.”

짧게 한숨을 쉰 촌장이 등을 돌렸다.

“따라 들어오거라.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 * *

촌장은 말이 잘 통하는 인물이었다. 미리 챙겨놓은 고블린의 귀나 코 따위 신체 부위를 보여주고 소녀 네이트의 증언을 더하자 곧장 마물의 존재를 믿었다.

‘고블린이 근방에 나타났다’라는 사실의 위험성 역시 곧바로 이해했다.

“그리고…… 더 강력한 마물이 있을지도 몰라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국경 요새가 괴멸했다는 사실까지 전하고 나자, 촌장은 완전히 마음을 굳힌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 결심을 직접 말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어려운 문제구먼.”

“어렵지 않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일 뿐이에요.”

“삶이 항상 죽음보다 나은 건 아니란다, 얘야. 우리처럼 힘없고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촌장은 아련한 눈으로 씁쓸하게 말했으나, 정답이 정해진 문제임을 그 역시도 알고 있었다.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고 그는 미련을 떨쳐낸 얼굴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설득해 보마. 하지만 당장 피난을 떠나는 건 불가능해. 아마도 하루 이틀 정도는 걸릴 테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마을이라도, 애착이란 게 있으니.”

“하루 이틀……. 그럼 전 그동안 뭘 할까요?”

“뭐?”

“네?”

침묵과 함께 서로 마주보기를 잠시, 촌장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하긴 뭘 해? 네 갈 길 가거라. 딱 보니 너도 사정 좀 있어 보인다만. 이런 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이나 축내도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영감님이 옳은 말 하시네.」

프레이의 말을 무시하고 자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 사이 마물들이 마을을 습격하기라도 하면요?”

“네가 여기 남아서 마을을 지켜주기라도 하겠다는 게냐?”

“네.”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자이안을 촌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맑고 올곧은, 그러나 자세히 보면 탁하게 흐려진 눈동자였다.

촌장은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갈피를 못 찾고 헤매는 눈빛이군.”

“네?”

“아무것도 아니다. 정 그러면 말리지는 않으마. 하지만, 너도 아까 봐서 알 테지만 이곳엔 널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거까지는 내가 어떻게 못 해줘.”

“괜찮습니다. 그냥 마을 외곽 쪽에 쪽잠 잘 곳이라도 마련해주시면 돼요.”

“더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촌장에 반문에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자이안은 아차 싶어서 자기 모습을 한 차례 내려다보았다.

흙먼지와 마물의 피를 비롯해 온갖 오물로 엉망진창이 된 옷을 내려다보며 자이안이 멋쩍게 다시 말했다.

“혹시 남는 옷가지 있으시면…….”

“입을 만한 걸로 골라서 주마.”

“가, 감사합니다.”

“겸연쩍어 하지 말거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뿐이다.”

논의를 마치고 촌장의 집을 나가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흩어졌다. 그 안에는 천진하게 웃으며 부모의 꽁무니를 뒤쫓는 아이, 네이트의 모습도 보였다.

환영받지 못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자이안은 그걸로 됐다 생각하며 촌장에게 들은 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갈피를 못 찾고 헤매는 눈빛.’

자이안은 미처 듣지 못한 그 말을, 프레이는 똑똑하게 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16살의 어린애에 불과하다. 그런 경험을 겪었는데 벌써 감정을 다잡았을 리가 없다. 안정되어 보이는 건 겉모습뿐이리라.

‘내가 이끌어줄 수밖에 없나.’

사실 내키지는 않았다. 자신의 길은 자신의 의지로 발견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도무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앞장서서 이정표가 되는 것 역시 삼촌이 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자이안.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날 바로 소환해라. 알겠냐?」

“삼촌? 갑자기 왜 그러세요?”

「사양하지도 말고,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지 마. 난 네 아군이고 널 배신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알았지?」

잠시 생각하던 자이안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부터 사양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소환할 거고, 사사건건 의지할 겁니다. 삼촌이잖아요.”

짐짓 장난스러운 말에, 프레이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됐고.」
 

* * *

피난 준비는 결국 밤이 깊도록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날 오전 중에는 피난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까먹지 말라고 계속 말해주는 건데, 너 아직 쫓기는 몸이다. 이렇게 마음 편히 드러누워 있을 때가 아냐.」

깊은 밤, 마을 외곽 작고 허름한 집. 침상 대신 깔린 짚단 위에 누운 자이안은 프레이와 함께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 있었다.

“낮에도 말씀드렸지만, 미오네 부인한테 당장 저를 추적할 여력은 없을 겁니다. 한동안은 괜찮을 거예요.”

넓은 숲속에서 사람 한 명의 흔적을 찾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그 숲에 마물까지 발호하고 있다면 대규모 병력이라도 파견하지 않는 한 답이 없다.

암살이 목적인 미오네가 그리 요란하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게 방심이라는 거다, 이놈아. 상대가 무슨 수를 쓸 줄 알고 섣불리 확신을…….」

불현듯 프레이가 입을 다물었다. 자이안도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느꼈다.

「한 명이군. 발소리는 작고 가볍고 빨라. 보폭은 좁고.」

“낮의 그 아이일까요?”

「긴장 풀지 마라. 마을 사람이 시킨 걸지도 몰라.」

프레이는 아이가 마을 어른의 사주를 받아 자이안을 해칠 가능성을 언급했다. 자이안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으나, 프레이의 닦달에 결국 칼자루를 붙잡았다.

문 앞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발소리가 잠깐 멈췄다. 자이안도 짧게 호흡을 멈추며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조금 뒤, 훤히 열린 문 너머에서 작은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히엑.”

아이가 뒤집어진 목소리로 비명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서 자기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잠시 소녀의 거동을 살핀 자이안은 얕은 한숨을 뱉으며 전신에 힘을 뺐다.

‘삼촌은 의심이 너무 많아요.’

「네가 너무 무른 거야, 이놈아.」

자이안의 볼멘소리에 프레이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 안 자고 있네…….”

“그러는 너도 안 자고 있네. 나랑 똑같구나.”

“후에에. 그, 그렇구나.”

아이가 조심조심 집 안으로 들어왔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결국 호기심이 이긴 모양이다.

자이안은 쥐고 있던 장검을 슬쩍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안으로 들어온 아이가 푹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넌 이름이 뭐니?”

“저, 저는 네이트라고 하고요, 9살이에요. 어, 조, 좋아하는 건 엄마랑 아빠랑 메무스 열매예요. 그리고 마을 어른들도 좋아해요. 그치만 아빠가 가끔 고집부리면서 소리 지를 땐 싫어요…….”

한동안 재잘거리던 네이트가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맞다. 낮에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작은 아이가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귀여워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문 앞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저 안 잡아먹을 거예요?”

“어…… 살면서 그런 참신한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안 잡아먹을게.”

“엄마 아빠가 처음 보는 아저씨 말은 믿지 말랬는데…….”

그리 말하면서도 아이는 조심조심 다가와 마침내 자이안과 가까운 위치에 앉았다.

“난 자이안…… 음, 자이안이야.”

“네, 네. 저는 네이트라고 해요.”

“하하. 네 이름은 조금 전에 들었어.”

“앗…… 맞다.”

헤헤 하고 멋쩍게 웃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네이트는 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조금 뒤 다시 고개를 들어 자이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나쁜 사람이에요? 어른들이 밖에서 오는 사람은 다 나쁘댔는데. 근데 나쁜 사람이면 저 안 구해줬겠죠?”

“…….”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는 순수한 질문이었으나 자이안은 저도 모르게 침묵했다.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리라 다짐했지만, 죄책감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죽었어야 할 목숨이 하인들과 병사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쁜 사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자이안, 내가 장담하는데 넌 지금까지 내가 본 누구보다도 호구…… 으흠, 착한 놈이다.」

프레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으나,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10분가량, 자이안은 아이와 두서없이 얘기를 나눴다. 별 것 아닌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나눈 그 실없는 대화가, 팔에 안은 온기가, 가슴 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시커먼 죄책감을 조금씩 풀어헤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큰일 났다. 엄마가 인사만 하고 얼른 오랬는데.”

한참 떠들던 네이트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아이가 돌아다니기에는 확실히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자이안은 네이트를 따라 일어나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아 들었다.

“데려다줄게. 집이 어딘지 알려줘.”

네이트의 안내에 따라 집으로 찾아가니, 부모 둘 모두 잠들지 않고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이안을 경계하면서도 둘은 아이를 안고 작게나마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둠에 녹아든 듯 고요한 마을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자이안은 조금 전까지 아이를 안고 있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마을에 온 건 어쩌면 괜히 빙 돌아가는 길일지도 몰라. 하지만.’

자이안은 두 손을 강하게 쥐었다.

‘힘없는 사람들을…… 저 작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그 행동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자이안은 가슴속에 작은 확신을 가졌다.

「너도 슬슬 자라. 각성자도 무적의 몸은 아냐. 너는 아직 성장기니까 특히 더 그렇고.」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인 자이안이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 *

‘그것’은 불쾌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배가 몹시 고팠다. 공복감. 이 숲에 자리를 잡은 뒤로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다. 둥지를 튼 뒤로는 주변에 파리떼처럼 몰려든 작고 하찮은 존재들이 자발적으로 먹을 것을 바쳐 왔으니까.

덕분에 자신의 주인과 비슷하게 왕처럼 떠받들어지는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끄르르르…….

눈을 가늘게 뜨고 감각을 뻗어나가던 그것은 의문을 느꼈다. 작고 하찮은 존재들의 숫자가 크게 적어져 있었다.

이대로는 식사에 차질을 빚고 만다. 그것은 육중한 몸을 일으키고 한 차례 고개를 뻗어 주위를 살폈다.

-쿠르르륵.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라마지않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진 그것은 흥얼거리듯 울음소리를 냈다.

감각을 더 세밀하게 뻗어 방향과 거리를 가늠한 뒤, 그것은 곧 찾아올 포식을 기대하며 탐욕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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